등지기엔 아쉬운   -산을 사랑한 여자들

The women who loved the mountains

김리아_소목소복_신수연_전아현展   2025_0228 ▶ 2025_0608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휴게시간_12:00pm~01:00pm / 월요일 휴관

삼각산금암미술관 Samgaksan Geumam Art Museum 서울 은평구 진관길 21-2 Tel. +82.(0)2.351.8554 museum.ep.go.kr @eunpyeong_museum

산 그리고 여성 ● 그리스 신화에서 '산'의 탄생은 만물(우주)의 어머니이자 대지의 신 가이아(Gaia)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와 바다의 신 폰토스(Pontus)와 함께 산의 신 우로스(Ouros)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로마 신화에서는 몬테스(Montes)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신화 속 '선문대 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는데 구멍이 뚫린 곳으로 떨어진 것이 산이 되었고 마지막 한 곳에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높고 커다란 존재,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져 경외감이 드는 존재, 온 자연을 감싸안듯 한 자리에 우직하게 자리하는 산. 우리가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머니'를 마주하는 본능인 것이다.

김리아_산 너머 산_폴리카보네이트에 비닐테이프_80×90×350cm_2025

산 그리고 남성 ● 왜 우리는 '산'을 통해 '남성성'을 떠올리게 된 것일까? 이는 인간이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남녀의 역할이 구분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다. 거주지를 떠나 남성은 사냥하고 여성은 농사와 살림, 육아를 하며 자연스럽게 물과 가까이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아가 음양설(陰陽說)을 통해 남성은 하늘, 여성은 땅이라는 인식이 자리했다. 산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만물 중 가장 하늘과 가까이 닿아 있는 존재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 현실 너머의 세상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상과 경천사상(敬天思想)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지의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거칠고 가파른 존재에 대한 대항(對抗),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만끽한 정복감은 먼저 산의 매력을 알게 된 자의 쾌락인 것이다.

소목소복_산 시리즈-트레이_원목에 나전_37.4×17.2×4cm×4_2025

산 그리고 우리 ●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산등성이는 땅의 근육이고 흐르는 강물은 땅의 혈맥'이라고 하였다. 정선은 금강산과 그 주변 명승지를 그린 「금강산도」와 비 개인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등을 남겼다. 강희언도 혈맥이 돋은 듯 굵직한 산맥을 자랑하는 「인왕산도」를 그렸다. 과거 산을 기행하고, 작품을 남기고, 국토 관련 자료를 기술한 주체는 모두 남성이었다. 이들은 하늘과 맞닿은 대자연을 먼저 접한 자로 산에 대한 찬미와 경외를 후손에게 전하였다. ● 시간이 흘러 1973년 북한산 인수봉 여정 길 개척자인 이만숙, 김태숙의 벅찬 소감은 2016년 등산 관련 잡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청량리랑 동대문을 뒤져서 중고 카라비너를 구하고 집에서 하네스를 직접 꿰매 입었어요. 모래내금강에서 수제 장비를 맞추고, 크레타 슈즈에 평상복을 입고 등반했지요. 밤새 여정 길 크랙에서 볼트를 박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한 별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었어요. 바위에 매달려 멀리 도시에 아침이 오는 것을 지켜보곤 했지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 문명이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산봉우리에 가까이 닿을 듯 높아진 오늘, 거침없이 산을 오르는 대지의 여식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산을 빚은 어머니를 닮은 여성들은 남겨진 유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신수연_설산_분청 혼합토, 타렴성형, 화장토 채색, 산화소성 1250℃_20×46×46cm_2024

산 그리고 네 여자 ● 고층 빌딩과 기계로 점철된 도시로 빠르게 변화하였다. 그 건조한 무채색 사이에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현대인은 일상을 벗어난 숨고르기를 위해 '산'을 찾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기에 아름다움과 청량함을 망각하고 갈망한다. 요즈음은 산과 인접한 대중교통 승강장에서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여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묵직한 배낭과 투박한 등산화를 채비한 생기를 띤 모습은 구름 아래 솟아오른 봉우리를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번 「등지기엔 아쉬운-산을 사랑한 여자들」 전시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산'을 탐구하고 탐닉한 여성 예술가 4명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김리아는 유년 시절부터 산과 가까이 거주하였고 성인이 된 지금 북한산 인근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간 그녀를 스쳐 간 많은 산과 지금의 북한산, 1960~80년대 산림녹화 사업에 대한 자료를 통해 작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과 이를 통해 재구성된 산을 보여준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연합일, 인간과 자연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임을 표현한다. ● 소복소복은 2025년 새롭게 시도하는 주제로 '산'을 선택하였다. 과거 선조들이 자연을 통해 풍류를 즐기던 것에 착안하여 일상에서 산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나뭇결 위로 한라산, 설악산, 북한산을 자개로 나타내었다. 젊은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옛 화가들이 전국을 돌며 그림으로 남긴 산수화를 사적인 공간에 걸어두고 즐기듯 현대인이 어렵지 않게 자연에서 평안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 신수연은 '산'을 마주하여 얻는 안온함을 도자로 나타내었다. 유년 시절부터 결혼하고 육아를 하는 현재까지 그녀의 곁에는 늘 산이 있었고 심신이 지칠 때마다 산을 올랐다고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 배우자,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다수와 현대인에게 전하는 위안은 한 줄씩 쌓아 올린 흙 위로 촘촘히 중첩된 붓 자국이 자아낸 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새하얀 눈을 맞은 산봉우리는 포근한 이불을 덮은 듯하기도 고민과 슬픔, 괴로움에 반창고를 덧씌운 듯하기도 해 시리기보다 따뜻하다. ● 전아현은 운무에 가려진 수묵화 속 산을 현실로 꺼낸 듯한 연출로 보는 이에게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태백산, 지리산, 월악산 등을 묘사한 심산(深山)이라는 작품 제목에 걸맞게 장엄한 기백이 느껴지는 고도 높은 우리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스라이 사라져 멀게만 느껴지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는 산을 통해 작가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치유와 위로를 공감각적 표현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아현_深山, Mt.Worak 120-35-35_레진, 콘크리트_35×120×35cm_2023

우리는 높은 산에 올라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의 계획을 다잡는다. 거대한 산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나약한 존재로서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야호' 하며 외치기도, 숨이 차올라 한계를 느끼면서도 자꾸만 하늘에 닿으려 한다. 지난 시간 속 거대한 기암절벽과 푸르름은 남성이 취할 수 있는 공간이자 도전의 자연물로 여겼다. 김리아, 소목소복, 신수연, 전아현 네 명의 작가는 산과 주변 경취, 산과 함께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느껴지는 남성성의 향과 잔상을, 산을 만들었던 태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발현하였다. 생명이 움트는 봄, 북한산을 향한 설렌 마음이 삼각산금암미술관에도 불어오길 기대한다. ■ 위아름

Vol.20250228a | 등지기엔 아쉬운-산을 사랑한 여자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