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

Overlaid stories, Yours and Mine

서영기展 / SEOYOUNGGI / 徐永奇 / painting   2025_0226 ▶ 2025_0320 / 월요일 휴관

서영기_잃어버린 방향 Lost Direction_종이에 아크릴채색, 유채_210×106cm_202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영기 홈페이지로 갑니다. / www.seoyounggi.com

서영기 인스타그램_@seo_younggi

프리오픈 / 2025_0226_수요일_04:00pm   아트토크 / 2025_0312_수요일_07:00pm

아트토크 「덧입히는 이야기들」 스페셜 게스트 / 윤규홍(미술평론/예술사회학)

2025 예술공간 집 기획초대展

주최,기획 / 예술공간 집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집 Artspace House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158번길 11-5 Tel. +82.(0)62.233.3342 www.artspacehouse.com @artspacehouse

'예술공간 집'에서는 2025년 첫 전시로 서영기 작가의 기획초대전 『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展을 개최합니다. 서영기 작가는 자신의 일상 속 만나게 되는 장면들을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선이 스민 풍경을 그려갑니다. 평범한 일상의 단면들을 들춰내며 적막한 풍경에 따스한 시선이 스미고, 고요한 장면들에 작은 파문을 불러일으킵니다. 낮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밤의 풍경, 사람의 흔적이 없는 적막한 풍경, 낯선 감각을 일깨우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 그렇게 작가로부터 발췌된 풍경들 앞에 우리를 서게 합니다. 작가 내면의 시선과 고요하게 마주했던 풍경은 삶의 단편적 무대가 되고, 그 위에서 저마다의 다채로운 극이 펼쳐집니다. ●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작품활동을 해오며 켜켜이 쌓아 올린 단면들을 한데 엮어내며 서영기 작가만의 시각언어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자 합니다.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그림들에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축적되며 작품 세계가 더 깊이 확장되고 공감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 2.) ■ 예술공간 집

서영기_부유하는 마음 Wandering Thoughts_종이에 아크릴채색, 유채_210×106cm_2025

어둠과 고요로 이끄는 그 무엇 ● 화가 서영기는 이번 개인전에서 일종의 숨바꼭질을 벌인다. 화가에게는 익숙한 지점을 아무도 모르게끔 그리는 것도 기술이다. 여기서 그게 가능한 건 배회의 동선 안에 낚인 풍경이 그 안에 담겨있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덮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건물 반 간판 반의 도시 경관을 소재로 채택하지 않는 부분 또한 크다. 관객은 술래가 되어 작품 속 기시감 어린 장소가 어디인지 하나씩 찾아야 한다.

서영기_남겨진 몫 What's Left to Face_종이에 아크릴채색, 유채_210×106cm_2025
서영기_침묵을 배우는 시간 Calm Moments_종이에 아크릴채색, 유채_210×106cm_2025

물론 그림을 재미있게 보는 데는 이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작가의 완성작을 통틀어 보면, 같은 세대 화가들이 공유하는 틀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형식을 문학 연구에 빗대면 블라디미르 프로프가 했던 민담 형태 분석처럼 이끌 수도 있다. 즉 시공간을 초월한 형식적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이런 개인의 자취도 객관화할 여지를 만든다. 다름 아니라 미술사 방법론이 그렇다. 양식의 경향은 미술가, 남자, 더 성숙한 단계로 접어드는 청년기 같은 인구통계적 변수로 절편을 썰어서 볼 성질이 아니다.

서영기_숨바꼭질 Hide and Seek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24
서영기_창에 그린 마음 A Mind Painted Through the Window_캔버스에 유채_37.9×45.5cm_2025

이처럼 한국 동시대 회화 경향 속에서 작가의 지점을 확인하고 전후좌우에 있는 딴 화가들 작업과 대조한 다음 서영기 유니버스를 염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긴 한데 내게는 그런 능력이 딸리는 데다, 한 서양미술사 연구자가 균형 잡힌 비평으로 서영기 작가의 회화를 관통한 일이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이 작업에 관한 학술적 접근을 양초롱 선생의 비평으로 마주했으며, 나는 나대로의 제안을 한다. 전시장의 평균 온도를 재는 데 관심을 둔 나는 작품을 둘러싸고 작가와 관람자가 벌이는 게임을 기다린다. 그러면 필자는 양쪽을 지켜보는 입장인가? 그럴 리가. 당연히 관람자 처지다. 숨바꼭질에 심판이 어디 있나?

서영기_흔적 Left Behind Trace_캔버스에 유채_65×53cm_2025
서영기_저너머 Somewhere Over the Rainbow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25

이번 개인전 『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는 작가에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있었던 상황을 뽑아 비춘 거울과 같다. 이 거울에는 미지의 장소만 있을 뿐, 주인공도, 딴 사람도, 그가 겪은 일도 빠졌다. 거울 없는 거울은 오직 그의 내면을 내밀하게 비추는 반영체다. 거기에는 고요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림 속에는 사람이 없으니까 목소리 역시 없다. 타인한테서 들을 말이 없으며, 본인이 무수하게 내뱉었던 독백도 없다. 어둠은 소극성과 두려움의 조건이며, 적막함은 고립이나 결핍의 배경이다. 허나 그것은 한편으로 자기 충족의 표명이기도 하다. 더는 생짜배기 예술가가 아닌 그는 평론가 같은 다른 이들의 말과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전할 단계에 올라섰다. 작가는 그저 감각의 날을 벼리고, 행여나 채우지 못한 숙련 상 맹점을 메우는 데만 힘 쏟으면 된다.

서영기_마음의 무게 Weightless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5
서영기_작은 결실 That's Serendipitous!?_캔버스에 유채_45.5×37.9cm_2025

그는 한 지역을 기반으로 삼은 무대에서 청년 작가로 이룰 수 있는 영예를 하나씩 누리고 있다. 예술공간 집에서 갖는 초대 전시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나 보상은 그것들과 맞먹는 무게를 지니는 법. 전시를 앞두고 작가는 기대 못지않은 부담감을 혼자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생활 규칙을 통해 단순함을 이어가려는 작가도 다가오는 큰일 앞에서는 평정한 삶의 흐름이 망가진다.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게, 불안정성의 문턱에서 겪는 심한 떨림이 창발성의 연료다. 이때 산출물이 참되거나 허튼 예술을 갈라 평가한다. 이 전시를 앞두고 디렉터는 조금은 매몰차게 작가를 요동치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보고 있는 이것이다.

서영기_흐렸던 기억 Memories in Blur, Blur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5
서영기_묘한 풍경 In a Flash_캔버스에 유채_53×40.9cm_2025
서영기_바운더리 Boundaries_캔버스에 유채_27.3×22cm_2025

실은 거의 처음부터 완성형에 가까웠던 서영기 회화가 미술관이 아닌 갤러리에서 본격적으로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에게 이 과업은 창작 개념을 다시 정돈하는 계기일지 모른다. 개인전에 새로 등장한 연작은 경이롭지만 그렇다고 크게 당혹스럽지 않은 작품 목록의 합이다. 음악의 푸가 기법처럼 중첩되고 반복되는 줄기의 첫 소절은 21세기식 르네 마그리트 화풍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도상이다. 박하게 따지면 시대적 경향에 올라탄 절충주의 같던 이미지는 자기 폄하와 초월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역설을 발판 삼아 재현성과 환영성 사이 어디쯤에 고유한 스타일을 새긴다.

서영기_무엇이 보였을까 Unrevealed Answer_캔버스에 유채_33.4×24.2cm_2025
서영기_볼 수 없던 날 Invisible_캔버스에 유채_27.3×22cm_2025
서영기_기묘했던 밤 Silence Swing_캔버스에 유채_22×27.3cm_2025

작업이 도달한 오리지널리티는 작가 자신을 옭아맨 습속도 한몫했다. 이 특징은 작가에게 친숙한 화폭이 세로 규격이라는 점이다. 취향의 좋고 덜 좋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문화유물론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늘 따진다. 그들 식으로 생각할 때, 책은 기본적으로 세로 형식으로 소통한다. 반대로 스크린이나 TV는 가로 형태다. 광각 폭을 담으려는 풍경화는 가로를,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초상화는 세로 그림이 화면 구성에 더 수월하다. 그런데 서영기의 풍경 그림은 세로가 주종을 이뤘다. 스마트폰으로 소재를 담기 때문이란 건 어렵지 않은 추론이다. 촬영 방향을 반대로 돌리면 셀카가 되고, 그것은 거울의 대체 기능이다. 거울도 대개 세로 모양이고, 앞서 내가 말한 '서영기 그림은 또 하나의 거울'이란 명제도 어쨌든 설득력을 갖추는 셈이다.

서영기_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展 @ 예술공간 집_2025
서영기_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展 @ 예술공간 집_2025

예술 체계와 기술 체계를 묶은 문화 양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시각 매체의 등장으로 이 그림과 해석이 더는 신선하지 않을 때가 올 거다.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다. 앞으로 길게 펼쳐진 생애 동안 한 미술가의 작품이 한결같으리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예술가는 그 시대에 맞게 진화한 촉수로 자신이 가장 희열을 느끼는 작품을 펼치면 그걸로 충분하다. 특별히, 서영기 작가의 작품에는 그 밑바닥에 허무가 깔린 만큼 큰 변화 폭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작업에 관해 내게 했던 첫 마디가 이렇다. '나는 그림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싫다." 내 생각엔 그것도 메시지다.

서영기_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展 @ 예술공간 집_2025
서영기_발췌된 풍경, 덧입혀지는 이야기展 @ 예술공간 집_2025

작가가 자기 작업을 객관화하기 위해 끄집어냈던 여러 단어가 있다. 이를테면 외로움, 후회 같은 낱말은 당사자만 독차지한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일기와 같은 일정 기간 반복해 돌아봄에서 그런 고백이 전형이란 점은 분명하다. 작가가 솔직하고 싶은 만큼 그림은 뭔가를 더 짙게 가린다. 그가 누리고 또 누렸던 행복만큼 짓눌렸던 불행, 혼자 있음을 즐김에도 예술로 소통을 바라는 욕구, 무엇보다도 메시지가 없음을 선언하는 메시지. 이와 같은 미학과 윤리의 논리적 이율배반성은 진선미의 합일을 거스르지만, 예술은 그러한 어긋남도 매혹으로 끌어안는다.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데 이 그림들은 편법이나 궤변이 아닌, 작가에게 있어 가장 투명한 술회일지도 모르겠다. ■ 윤규홍

Vol.20250226e | 서영기展 / SEOYOUNGGI / 徐永奇 / painting

@ GIAF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