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가은_김인영_김지영_김한나_신재훈 엄태신_이서희_정선욱_정선주_정훈
참여시민 김서연_김승우_송혜연_이시현_이한빈_황하_방채원_채송화 Collaboration(김민찬, 석지원, 용유찬, 우한나, 전준, 채솔민)
후원 / 경기문화재단_엔엔알(nnr) 기획 / 정선주
관람시간 / 10:00am~05:00pm
갤러리 와부 GALLERY WABOO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천로 35 Tel. +82.(0)31.521.6801~2
....기계시대 문화는 신화에서 성장해온 자연과학이 겨우 얻어낸 것, 즉 사유 공간으로 변용된 관조 공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이나 근대의 이카루스인 프랭클린과 조종할 수 있는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는 지구를 다시 혼돈으로 되돌려버리는 치명적인 거리 감각의 파괴자입니다.... -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中 ●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유기적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신경 기관이 없는 무기물로 자아를 확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던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의 결론은 '인간의 비참함'이었다. AI와 쳇봇(ChatGPT)이 인간의 사유를 대신하는 동시대의 상황에 본 단체는 인공지능 신경망이 아닌 인간의 유기체적 신경망을 사용한 사유로의 회귀를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예술가의 사유 방법을 통해 촉발 시키고자 한다. 이 과정은 예술, 예술작품, 창작의 과정이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고, 상상하며, 감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적사유가 제거되어가고 있는 동시대의 흐름에 물음표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변곡점은 일반적으로 평면 곡선에서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을 뜻한다. 보통은 인생의 전환점,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라고 사용되며 어떤 상황이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게 되는 계기를 일컫는다. 본 단체는 전시를 통해 각자의 일상에 어떠한 변곡점이 존재했는지 참여작가들과 14명의 시민 참여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참여하는(혹은 관람하는) 시민들의 익숙한 일상에 질문을 던짐으로 AI와 쳇봇(ChatGPT)이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삶에 파동으로 남아 유의미한 변곡점을 생성하길 기대한다. ■ 정선주
수면 위에서 퍼져가는 마블링은 장력과 움직임에 따라 서로 마주치고 밀려나 기존의 모양을 벗어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한다. 드로잉작업은 한순간 형성된 마블링 이미지를 떠낸 것으로 이 드로잉에는 선의 정점이나 하강, 상승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한 순간에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스며들고, 스며들고, 스며드며 흔적만 남긴다. 나의 일상의 변곡점은 '내면에서는 새로운 초현실적 무엇을 기대하듯 납작해지고 휘어질 수 있지만, 여전히 흔적만 드러나는' 일상 전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 김가은
「생각의 모래성」은 질문과 답변이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관람객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이다. 관람객은 질문에 답하며 사유의 시간을 경험하고, 그 과정은 모래로 시각화되어 화면 위에 축적된다. 사유의 흔적은 쌓이거나 흩어지며, 각 관람객의 참여가 모여 하나의 풍경을 형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래의 풍경은 개인적 사유를 넘어 집단적 사유의 흔적으로 확장되며, 생각이 축적되고 연결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사유의 시간을 회복하고, 생각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흔적과 관계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 김인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해리포터처럼, 우리는 종종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마법 같은 세상을 꿈꾸곤 한다. 구멍이나 틈새 같은 곳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지 않을까? 일상 속 우리가 우연히 지나칠 법한 어떤 곳, 그 장소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어두운 구멍 혹은 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문과 같은 장치가 된다. 나는 작품을 통해 누구든 일상의 틈 안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채워 넣어 일상의 변곡점을 이룰 여유와 의미를 찾기 바란다. ■ 김지영
이미지 작업의 대상은 언젠가 내 두 눈으로 목격했던 것. 걷다가 멈춰 서서 가만히 보고 있게 되는 것들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바람 분 채로 굳어진 듯한 길가의 나무가 그러하듯 말이다. 노을 빛을 받아 색이 덮힌 건물의 외벽 또한 그러하듯 말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이미 존재하는 일상과 사물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찾아 이미지로 담는다. '아파트'. 밤이 되면 하나 둘 불이 켜져 집마다 수백 가지의 빛을 띠는 유리창. 기능을 가진 거대한 면들. 지구를 떠날 생각이 없는 우주선처럼 아파트는 수많은 삶과 이야기를 그저 품고 있는 이 공간을 나는 동경한다. 나는 나의 일상과 기억, 평온과 심상이 뒤엉킨 이 건물을 습관처럼 기록하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 김한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 누군가가 무언가를 감각해 정의 내린 것을 간편히 접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기보다도 매체를 통해 간접 경험하는 빈도가 높아지며, 타인이 느끼고 사유한 것을 자신이 직접 느낀 것이라 여기는 일종의 감각 오류로 인해 스스로 사유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시를 쓰는 것과 같이, 실재하는 대상을 감각하고 상상으로 확장해 사유하며 표현하는 행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시:어」는 신도시에 조경된 공원에 자생하던 수양버들의 잎사귀를 수집해, 상상을 덧입혀 청사진에 옮기고 조형한 작업이다. 수면이 연출된 푸른 화면 안에서 버들잎은, 유랑하는 낙엽이다가도 헤엄치는 버들치가 되기도 한다. 포착한 대상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사진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주관적 사유에 기반한 물리적 표현이 더해진 결과이다. 옛 선인들은 주유청강(舟遊淸江) 하며 유수, 유엽을 신체로 직접 감각하며 풍월을 읊곤 했다. 풍월 속 유명한 주인공들 이를테면 하늘, 땅, 바다, 해, 달, 별, 나무 등은 화자를 만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다가도 정의라는 경계를 넘어 이상과 현실, 연모와 그리움과 같은 다른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언어로 빚어진 시에서 무언가는, 명료성과 실용성을 벗어나 가능성을 품은 채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한낱 잎새에 이는 바람은 누군가를 괴롭게 하고, 죽음과 삶의 언저리를 논하게 하며, 바다가 들리게 한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 그대로를 너머 상상하고 느낀다는 건, 가능성의 한계를 초월케 하는 일종의 선견 행위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나와 당신의 우주에서는 무엇이 춤추며 노래하는가, 고이 품어볼 시어가 되는가. ■ 신재훈
이 시대는 눈 맞춤을 사회적 상호 작용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라고 일컫는다. 눈 맞춤을 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특성은 상대방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이 굴절되고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한결같은 눈 맞춤만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생명체가 있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주한 눈은 신뢰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되어 나의 일상을 뒤흔들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고양이를 그리고 있다. 그들과 소통을 위해 오늘도 말을 걸어본다. 니야~옹 ■ 엄태신
내가 감각하는 동시대 일상은 기후 위기와 팬데믹, 전쟁 등으로 인해 삶의 지형도를 변화시킨 지점이며, 지난 세기가 규정한 가치를 재고하는 변곡점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동시대성은 '이미 확인된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잇는 '현재'를 감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뉴노멀'이라는 새로운 일상을 보다 면밀하고 사려 깊게 관찰해야함을 요구 받고 있다. 시각예술은 이러한 동시대의 상황을 이미지로 드러내며, 창작자의 작업은 쏟아져 나오는 현재를 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내가 감각하는 일상의 이미지와 작업 소재를 채집하는 행위를 통해 현재의 변곡점을 지속적인 창작의 지점으로 치환한다. 작품 「#lab」은 채집의 순간 걸어둔 다양한 해시태그의 실험실을 가시화 한 것이다. 죽은 벌,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 등 채집의 대상은 독특한 풍경의 패턴과 화려한 배경을 이루는 반짝이는 오브제 뒤에 감춰진 채 무수한 가치의 충돌로 드러난다. ■ 이서희
동시대 인류는 풍부한 물질을 누리는 것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있다.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 용도를 다해 쓸모 없게 된 것들에 대한 순환의 문제를 다방면으로 해결하고자 우리는 노력한다. 마치 달항아리 제작기법처럼 말이다. 달항아리는 18세기 영정조 시기에 조선왕실 관요에서 만들어진 항아리이다. 보통 40cm가 넘는 이 항아리는 큰 대접을 2개 합쳐서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당시 기술로는 목물레로 큰 항아리를 한번에 만들고 구울 수 없기에 소성과 수축률을 계산해서 두개의 대접을 접합하는 제작기법을 만들었고, 이후 크기와 무관하게 형태와 제작방식이 같다면 달항아리라고 명명한다. 이 작업은 달항아리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달항아리는 문제가 되는 재료의 특성과 방식을 길고 깊은 사유와 실험을 통해 극복하고자 구현된 방법이다. 점력이 없어, 쓸 수 없어, 버려질 흙을 아름답게 재탄생 시킨 달항아리 기법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길고 깊은 사유를 통한 해법이 필요하다. 나의 일상은 비어있는 시공간을 기워 나가는 과정이다. 채우지 못하고 깁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적절한 외벽의 두께를 가지고 있고, 일정한 간격을 가진 칸막이가 있다면, 약간의 지워짐과 약간의 선명함에 차이가 있다면, 그리고 어느 순간 반짝이는 빛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 정선욱
나의 일상은 비어있는 시공간을 기워 나가는 과정이다. 채우지 못하고 깁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스스로에게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은 적절한 외벽의 두께를 가지고 있고, 일정한 간격을 가진 칸막이가 있으며, 약간의 지워짐과 약간의 선명함에 차이가 있고, 어느 순간 반짝이는 빛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을 '툭!' 건너뛰게 하는 무엇이 있다. 벌써 3년 동안 지역에서 함께 소통해온 시민관객 중 본 단체의 전시프로젝트에 참여해온 분들이다. 이 작품 안에는 자신의 일상에 변곡점으로 작동한 텍스트, 오브제, 사진 등을 내어준 시민관객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일회용컵 대신 플라스틱 컵에 이름을 쓰고 사용 중인 민찬이의 결심, 인생 최애 볼펜을 선뜻 전시오브제로 제공한 지원이, 의견을 나누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오브제를 쉼이라 이름 붙이 유찬이,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영어 에세이를 생각을 변화시킨 계기라고 전해준 한나, 끊임없는 도전이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준이, 그리고 만지면 마법처럼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개구리 인형을 전시한 솔민이까지 이 설치작업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의 일상 안에서 기워 낸 과정이었다. 이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AI와 쳇봇(ChatGPT)이 대답할 수 없는 소소한 사유의 결과이며, 이러한 인간의 유기적 감각이 여전히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 정선주
이 작품은 원래 36개의 도자 오브제로 제작된 시리즈 중 일부를 설치한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특정한 시간의 틀 안에 갇혀 있는 나의 일상을 설치작업으로 표현하였다. 물레로 만든 도자에 눌림, 찌그러짐, 손자국 등 외부 자극의 흔적을 그대로 소성하여 완성한 도자와 길이가 다른 목재 오브제는 감정의 기복, 생각의 변주, 내적 성찰을 가시화한 것이다. 이 작업은 우리가 일상이라 명명한 익숙한 반복의 상황이 결코 동일한 반복이 아니며 순간순간 다른 에너지의 방출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원래 '시간의 틀', '소통과 관계', '엉성한 사색' 등을 주제로 연리문, 캐스팅, 투각 등의 기법을 사용한 도자작업을 주로 하였는데, 이 전시를 통해 촉발된 다른 재료에 대한 관심과 실험은 작업을 향한 또 다른 변곡점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 정훈
Vol.20241129j | 일상의 변곡점_아주 작은 것들로부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