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류

곽민정展 / KWAKMINJEONG / 郭玟廷 / painting.installation   2024_1129 ▶ 2024_1211 / 월요일 휴관

곽민정_망망 (茫茫-17)_캔버스에 유채_160.2×130.3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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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주최,기획 / 곽민정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인 HQ GALLERY IN HQ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97 (연희동 719-10번지) 1층, B1 Tel. +82.(0)10.9017.2016 @_innsinn_

바다가 펼쳐질 때 시작하는 것들 ● 망망대해(茫茫大海)라는 말이 있다. 내가 그날 본 바다도 망망대해였다. 펼쳐진 바다를 보는 내 시선은 무엇을 따라가고 있었을까. 하나의 물결이 여러 개가 되어,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한 번, 여러 번 반복한다. 그 하나하나가 힘을—생성과 소멸이라는 힘을 지닌다. 바다의 깊이, 그 심오함은 밖으로 꺼내어질 일이 없다. 오히려 외부에 밖으로 꺼내어질 일이 없기에, 바다는 신비로운 얼굴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괴수가 바다에서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바다는 충분히 신비롭다. 파도가 사라져도 바다는 거기에 있다. 파도가 일어도 바다는 거기에 있다. 수많은 소멸과 생성을 내뿜는 그곳에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생각해 보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해변에서 바다를 보는 것과 다르다. 수평(선)으로 중심 잡은 안정된 구도로 함께 서는 것과 달리, 내려다보는 시선은 인간과 바다가 고정과 요동을 반복한다. 수평선 너머 보내는 기대나 동경보다는 보내는 곳이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 심오함이 펼쳐진다. 펼쳐진 바다 위에서, 내가 보내는 안정적인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빠져들듯이, 끌어당기듯이 내 시선은 심오함을 앞두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곽민정_망망 (茫茫-18)_캔버스에 유채_160.2×130.3cm_2024
곽민정_망망 (茫茫-12)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4

개인전 《난류》에서 곽민정이 선보이는 회화 작업은 바다를 조감도의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망망」과 「섬광」 시리즈가 그런데, 작가는 바다를 펼친 장면이나 일부분 확대해서 그린다. 어떤 면에서 바다는 익명적인데, 그가 바다에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신비로운 얼굴에 특정성은 없고 모든 생명이 탄생하고 또 돌아가는 터전이라는 심오함이 저 깊은 곳에, 꺼내어질 일 없이 있다. 그러나 살랑이거나 거센 물결, 이 하나하나의 생성과 소멸을 목도할 때, 심오함은 잠시 밖으로 꺼내어져 그 상태에서 깨어난다. 우리는 그때 심오함을 망막으로 느낀다. 시선의 살갗으로 느낀 심오함의 끄트머리는 조망하는 자세에 서던 우리의 눈을 다시 뜨게 한다. 상공이나 벼랑 위에서 보는 듯 가만히 서 있다가, 그 심오함에 시선도 자세도,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작가가 본인의 회화 작업을 '극적인 감정'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다의 이런 힘을 감지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극적'이라는 말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힘의 역동성을 의미하고(dramatic), 다른 하나는 연극적(theatrical)이라는 뜻이다.

곽민정_맺혀있는면(4)_캔버스에 유채_27.2×22cm_2024
곽민정_맺혀있는면(5)_캔버스에 유채_27.2×27.2 cm_2024

곽민정은 작업할 때 본인이 몸소 경험해 본 바다 대신 인터넷상의 이미지를 활용한다. 조망하는 시선이 실제로 단절된 상태—보는 사람과 이미지, 작가와 다른 사람의 경험, 작업실과 바다—에서도 유지될 때, 극적인 성질은 마치 연극 무대와도 같은 거리를 전제로 한다. 내 앞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보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 끌어당기는 힘은 내 앞에 나타난 무대뿐만 아닌, 말 그대로 '뒷막'에 자리한다. 무대가 끝난 뒤에 우리가 보는 심오한 어둠은 우리를 무대 앞으로 세운다. 그 순간, 시선의 전환이 일어난다—대중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보듯이, 우리는 물결 하나하나, 그 생성과 소멸에 시선이 끌리는 무대에 놓이게 된다. 곽민정이 바다를 몸소 경험하는 일화 대신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다와 (시선으로도, 경험으로도) 일체가 되지 않는 시각적 경험에, 이 순간적으로 전환되는 경험에 (그야말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다를 보고 느끼는 아름다움과 두려움은 일직선으로 고양하는 일체화의 경험이 아닌, 아름다움과 두려움 두 사이를/에서 너울거리고 전환하는, 덜 안정적인 시선에 비롯된다.

곽민정_섬광 (Flash bang-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181.8cm_2024
곽민정_난류 (warm current-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4

내가 보내는 안정적인 시선은 펼쳐진 바다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망망대해—이 바다 앞에서 나는 말을 잃고 보고 있었다. 생성과 소멸을 내포한 심오함은 이번 전시에서 흑백의 대조를 통해서 한층 더 강조된다. 붓질 하나하나의 일고 사라짐은 에어블러쉬의 흑백 표현으로, 그러나 흐릿하게 스며들면서 심오함에 더 다가간다. 한편, 지하 공간에서 선보이는 평면 설치 작업 「난류」에서 우리는 천과 함께 너울거리는 바다를 본다. 에어블러쉬 표현과도 달리, 우리는 더 가까이서 물결의, 흐름의 촉각성을 대면한다. 전시명이자 작품명인 '난류(亂流)'란 글자 그대로 뒤섞이는 흐름을 말한다. 그러한 바다를 볼 때, 우리의 시선은 어지러움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한다. 곽민정은 '난류'라는 표현을 가지고 오면서 유화, 에어블러쉬, 천의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바다에 시각적으로 접근한다. 그 이유는 각기 다른 표현 방식 안에서 얻어지는 공감각적 경험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곽민정_섬광 (Flash bang-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4
곽민정_섬광 (Flash bang-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1×32cm_2024
곽민정_섬광 (Flash bang-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2×21.9cm_2024

우리가 보는 바다에 수평선이 없을 때, 물결과 물거품, 퍼지고 고이는 흐름 하나하나에 시선이 가게 된다. 어쩌면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는 말처럼, 망망대해 앞에서 나(自)는 어디에도 없는 거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이 펼친 곳에 휘말려 빠지지 않고 서 있다는 사실이다. 곽민정의 펼쳐진 바다 앞에서 우리는 목도한다. 극적인 순간은 클라이맥스 없이 매번 일어난다—그리고 사라진다. 이 극적인 시각장 안에서 나는 내 호흡을 바다와 함께 맥박친다. 아름다움과 경외 사이, 그 속에서, 할 말을 잃음에 이르는 아름다움을, 그리고 두려움을, 이 감정의 순간적인 일고 사라짐을 목도하면서. ■ 콘노 유키

Vol.20241129e | 곽민정展 / KWAKMINJEONG / 郭玟廷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