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사이 귀를 기울이네

한혜림展 / HAMHYERIM / 韓惠琳 / mixed media   2024_1129 ▶ 2024_1210 / 일,월,공휴일 휴관

한혜림_아그락_종이, 석고, 점토, 철망, 스피커 외 혼합재료_150×176×45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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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북구예술창작소 소금나루2014 2024년 11기 입주작가 결과보고展

주최,주관 / 북구예술창작소 소금나루2014_플랜디파트 후원 / 울산광역시 북구

관람시간 / 09:00am~06:00pm 토요일_09:00am~03: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소금나루 작은미술관 울산 북구 중리11길 2 북구예술창작소 소금나루2014 Tel. +82.(0)52.289.8169 www.bukguart.com @bukguart

소통의 시금석(touchstone) ● 한혜림은 현대사회가 암묵적으로 투명 인간 취급하는 이들을 작품화한다. 사회가 보려고 하지 않는 이들과의 소통은 소통의 시금석이 된다. 최근 작업에 영감을 받은 '할매돌'에서 보여지듯, 작가가 각별하게 다가서는 이는 노인이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복지정책이나 관련 상품 외에 문화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 문화와 예술이 젊은 한때의 사치가 아니라 삶의 필연성으로 체화되는 게 이상이라면, 수명 100세를 기준으로 인생 1/3 가까이 차지하는 노년은 중요하다. 노년은 자연에는 거의 없는 인간적인 현상이다. 가혹한 생존경쟁이 지배하는 자연 상태에서 동물이 늙어서 죽는 일은 거의 없다. 인류세 이후 '인간적'이라는 관념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근대 이후 노인은 보호와 관리라는 미명 아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추방되곤 한다. 방황하는 치매 어르신들을 위해 가게들이 협업하는 프로젝트 『치매 등대지기』에 참여한 바 있었던 한혜림은 '기억지킴이'라는 방문 봉사를 병행하면서 지도의 형식으로 만든 「돌아온 봄」을 만들기도 했다. ● 이러한 작업은 타자화된 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감금하여 삶의 무대에서 보이지 않게 한 『광기의 역사』(미셀 푸코)를 떠오르게 하는 지배적 질서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 사회도 저출산 고령사회로 진입한지 오래됐다. 1인 가구 비중이 늘어나며 그중에서도 고령층 비율이 최고로 높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도 곧 해당되는 가까운 미래임을 알려준다. 얼마 전 뉴스에 의하면 30년 뒤에는 5집 중 1집꼴로 가구주 연령이 80대 이상일 것으로 전망됐다.(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장래가구추계) 작가가 노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선 자전적 요소가 크다. 몇 년 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이후에 그 또래의 집단과 관련된 작업과 일을 해왔다. 물론 한혜림의 작품이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대표적인 타자를 다루면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경우다. 소수는 다수가 되기 마련이다. 노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줄 아는, 요컨대 나이 차이가 큰 세대와 잘 소통하는 것도 그의 자질이고 능력이다.

한혜림_나는 잘 지냅니다_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_2024

그러한 소통을 시도함에 있어서 노인들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은 아니다. 노인과 자주 접함으로서 그들의 어두운 측면도 경험한 터다. 한혜림의 작업은 과도한 감정이입이나 계몽적 의식 대신에, 대상 또는 현상에 최대한 투명하고 중성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특히 잃어버린 세대와 더불어 잃어버린 감각을 활성화한다. 청각성과 촉각성이 그것이며, 이러한 방점의 이동을 통해 미술의 중심이었던 시각성 또한 반성한다. 빅토르 주어칸들은 『소리와 상징』에서 우리의 감각 경험 중에서 유일하게도 음은 전적으로 살아있는 생(生)에 속한다고 본다. 귀에 들여오는 음성 신호들은 당신에게 당신과 닮은 존재가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데아를 숭배했던 고대 희랍인들처럼 시각적인 것에 너무나 깊이 고정된 관점은 초월적이다. 그러한 관점은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전형적인 상을 낳았다. ● 『소리와 상징』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신호들이 더 정확한 모방을 가능하게 하지만, 관심을 끄는 일은 소리를 통해 더 잘 이루어진다'(루소)고 인용한다. 반면 시각은 타인과 소원하다. 리차드 세넷은 『살과 돌』에서 강화된 시각중심주의는 근대 도시 개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모든 장소는 시선의 장소가 되었으며, 현대인은 더 냉정하고 개별자가 되었다. 이 개인들은 토크빌이 말하듯이 '서로의 운명을 생소하게' 느낀다. 그래서 기술은 접촉에 대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리차드 세넷은 접촉의 결핍에 기반하는 지배적 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시각 이외의 감각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이는 다양성, 복합성, 이질성을 고무하고 지배에 대한 저항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노인이라는 '소재'를 소재주의로 '타자'를 타자화(대상화)하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가 쉽게 빠지기 쉬운 이 함정을 벗어난 것은 감각의 방점을 시각에서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한혜림_당신의 고향은 어디시길래_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_2024

작품의 형식에 스며든 내용은 형식과 내용 그자체를 확장시킬 수 있다. 예술이 현실과 접속할 때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는 내용 만큼이나 형식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내용은 형식에 반영되고, 형식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잠재적 내용을 현실화한다. 한혜림은 타자와 함께 타자화된 감각을 같이 다룬다. 주체와 대상의 거리를 전제하고 대상을 물화시키는 시각 대신에 청각과 촉각을 부각시킨다. 형식은 영상, 영상설치, 공공영역에서의 실천 등 다양하다. 가장 고등한 감각이며 미술의 주요 감각인 시각성을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가 실험의 연속이다. 이번 전시에서 '파이고 못생긴' 입체조형물은 울산의 둘레길을 걷다가 발견한 '돌할매'에서 영감을 받았다. 돌할매는 울산뿐 아니라 전국에 많이 있다고 한다. 돌탑처럼 민간 신앙과 관련된 돌할매는 돌을 밀어서 안 당겨지거나 안 들려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화를 담고 있다. 그 돌은 당기지도 못할 만큼 약한 이에게는 다소간 유리한 내용이다. ● 작가가 만든 돌할매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입체조형물은 수수께끼같은 형태를 가지며, 시각적으로는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한혜림의 작품 전반에 깔린 촉각적, 청각적 감수성은 보이지 않는 차원을 건드린다. 이 작품은 관객이 만져봐도 된다. 석고로 만들어진 덩어리는 어머니와의 촉감을 연상시킨다. 만지기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은 실체가 없는 것을 계속 만지는 손을 형상화하게 했다. 할머니들의 인지기능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손뼉치기를 소재로 한 작가의 작품이 있는 것처럼, 손은 촉각을 상징한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의 박물관』에서 과학적 연구를 빌어서 '다른 감각은 특정 감각기관에 집중되지만 촉각은 온몸에 다 퍼져 있다'고 하면서', '촉각은 최초로 점화되는 감각이며 대개 마지막에 소멸한다'고 인용한다. 그래서 표준은 시금석(touchstone)이다. 촉각은 한혜림의 작품에서도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 통로이며 특히 몸과 몸의 접촉을 통한 소통도 중요하다. ● 『감각의 박물관』에 의하면 신체 접촉은 인류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신체 접촉은 나와 타자의 차이, 나의 외부에 누군가, 엄마가 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감각은 잃어버린 시간과 더불어 환기되고 활성화된다. 돌할매의 돌을 밀면 나는 소리라고 상상되는 '아그락'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아그락 거리는 소리와 '스윽~'하는 비질하는 소리는 그만큼의 염원과 행위가 내재한다. 작가는 이 소리로 노래도 만들고 돌이 굴러가는 듯한 영상도 만들었다. 작가에 의하면 울산의 아그락 돌할매는 다른 지역의 돌할매와 달리 윗돌들만 맨질맨질하고 돌할매 자체는 울퉁불퉁 하게 패인 것이 특징이다. 이전 작업에는 주간 보호시설에 계신 어르신들과 콩을 고르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작품에서는 외할머니의 노래를 파형으로 바꿔서 무용수들과 협업하기도 했다. 소리가 안 들리는 시청자들에게 소리와 대사를 문장으로 번역하던 일을 하기도 했던 작가는 감각 간의 번역을 시도한다. ■ 이선영

어물동 언덕 중턱에 자리한 아그락 돌할매는 소원을 들어주는 돌이다. 할매를 찾아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돌할매 위에 얹힌 작은 돌들을 밀고 당기며 바람을 담는다. 수많은 이들의 손길을 받아 반질반질해진 작은 돌들과 달리, 돌할매 본체는 빌고 간 소원만큼이나 조금씩 깎이며 일그러져 보인다. 제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손등에 주름이 늘어가듯, 할매의 표면도 닳고 패여 깊은 자국을 남긴다. ● 할매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나는 '아그락'이라는 이름이 돌을 갈 때 나는 소리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많은 이들의 소원을 담아온 끝에 아그락거리는 힘찬 소리보다는 서그럭거리는 잔잔한 소리만 남긴 채, 돌할매는 참 조용히도 소리내시고 있다. 그렇게 자리를 지키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의 살을 빌려주는 할매여, 나도 그녀의 살을 빌려 안부를 묻는다. ■ 한혜림

Vol.20241129b | 한혜림展 / HAMHYERIM / 韓惠琳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