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와 K팝아트 특별展 Minhwa and K-Pop Art Special Exhibition
초대일시 / 2024_1115_금요일_03:00pm
참여작가 권용주_김상돈_김은진_김재민이 김지평_박경종_박그림_백정기_손기환 손동현_오제성_이수경_이양희_이은실 이인선_임영주_조현택_지민석_최수련 작자 미상의 민화가들
주최,주관 / 경기도_경기문화재단_경기도미술관 협찬 / 삼화페인트공업(주)
관람시간 / 10:00am~06:00pm 입장마감_05:00pm / 월요일,1월 29일 휴관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초지동 667-1번지) 전관 Tel. +82.(0)31.481.7000 gmoma.ggcf.kr www.facebook.com/ggmoma @gyeonggimoma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관장 전승보)은 오는 11월 15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한국의 전통 민화(民畫)로부터 한국적 팝아트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 전시의 작품은 작자 미상의 전통 민화 27점과 더불어, 현대미술 작가 권용주, 김상돈, 김은진, 김재민이, 김지평, 박경종, 박그림, 백정기, 손기환, 손동현, 오제성, 이수경, 이양희, 이은실, 이인선, 임영주, 조현택, 지민석, 최수련 총 19인의 작품 102점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주제에 관한 질문 ● 이 전시는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담고 있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민화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팝아트는 어떤 양상을 이루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K아트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민화와 팝아트의 사이에서 K팝아트가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 이다. 전시의 전 과정 안에서 이 질문들은 매 시점 각양각색으로 떠오르는 답을 비출 것이다. 이 열린 가능성 안에 한국 현대미술에서 바라보는 민화 그리고 K팝아트를 조명하고자 한다.
전시 길잡이로서 세 가지 세계관 ● 이 전시는 위와 같이 민화와 팝아트의 교차점에서 열망과 해학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생애의 사유에 따라 세 가지 세계관으로 감상할 것을 제안한다. 더 나은 현세(現世)를 위한 이상향의 염원 '꿈의 땅', 해학적 삶의 태도 '세상살이', 내세(來世)에 대한 상상 '뒷경치'로 전시의 소주제가 구성된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러한 삶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 지금의 시대적 예술적 자장(磁場)에서 발현되는 바를 살펴보며, 민화와 팝아트의 연관성 속에서 K팝아트의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세계, 꿈의 땅 ● 화조도(花鳥圖)나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등 전통 민화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에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장수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탐스러운 과일과 쌍을 이룬 새, 화려하고 옹골진 꽃과 나무, 신비로운 기물과 풍경 등이 소주제인 '꿈의 땅' 섹션에서 펼쳐질 경관이다. 글자들이 펼쳐진 그림에는 장수와 복의 의미나 이상적 이념을 다지는 뜻이 담겨있다. 넝쿨진 포도에는 알알이 맺힌 열매처럼 다산(多產)과 번성의 염원이, 영험한 동물로부터는 액운(厄運)을 떨치고자 하는 바람이, 덕목을 다지는 문자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 세속의 삶에서 그리는 이상향에 담긴 기복과 염원의 민화적 태도는 현대미술 작품에도 발견된다. 팝아트가 소비사회의 상품과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신성시하는 사회를 반영했듯, 전시 작품들은 지금의 사회가 속세의 일상으로부터 신성화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예술로써 반추하도록 한다. 현대 사회의 욕망과 이상의 혼성적 풍경이 꿈의 땅으로 초대한다.
두 번째 세계, 세상살이 ● 민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나 상황들은 어디 하나 똑같은 표현 없이 각각의 재치 있는 형태로 만물에 대한 해석과 세상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한 눈을 한 호랑이, 털이 쭈뼛 선 호랑이, 또 이러한 호랑이를 향하고 있는 야무진 까치, 민화의 호작도(虎鵲圖)에는 이처럼 익살스러운 동물의 모습이 등장한다. 벽사(辟邪)의 상징을 지닌 호랑이의 상징도 양반이라는 비유가 덧대어지면 위계를 해학적으로 전복하는 시도로 읽힌다. ● 호작도 외에도, 민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나 상황들은 어디 하나 똑같은 표현 없이 각각의 재치 있는 형태로 만물에 대한 해석과 세상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산업사회의 산물과 대중문화의 이미지나 제작 방식을 작품에 도입하여 고상한 예술의 경계를 위트 있게 전복한 팝아트의 태도도 이러한 접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작품들에서도 사회와 삶을 관찰하며 권위와 부조리를 초극하고 풍자로 묘사한 세상살이의 이야기, 미(美)의 전통적 기준을 기지 있게 반전시킨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세 번째 세계, 뒷경치 ● 민화 중에는 기복과 주술, 해학적 태도 외에도, 초월적 세계에 대한 상상을 중심으로 하여 현세 구복(求福)과 벽사에 대한 염원을 담은 그림들이 있다. 현세의 삶은 그 이후의, 혹은 너머의 내세에 대한 사유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민화에 담긴 토속신앙은 물론, 유교, 불교, 도교를 망라하는 종교적 도상과 신화적 상상은 삶을 관장하는 뒷세계의 경치로 이끈다. 무신도(巫神圖)나 신귀도(神龜圖), 심우도(尋牛圖),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등에는 신령스러운 동물과 인격화된 신, 추상적 세계를 상징하는 도상들이 서로 다른 개성으로 초자연적 영역의 존재들로 표현되어 있다. 주로 일상적 삶에 기반한 소재를 다룬 팝아트에서도 종교적 성화(聖畫)나 원시적 도상을 차용하여 현대의 사회와 문화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현대의 가치관, 종교, 대중문화, 미적 관점과 관련하여 초월적 세계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현재의 세계를 성찰한다.
민화, 삶 속의 그림 ● 그림은 우리 주변 어느 곳에나 있다. 간판이나 가구의 문양, 옷의 무늬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도 장롱과 병풍을 비롯한 집 안 곳곳에 민화가 걸려있었다. 이처럼 민화는 생활 속에 함께 하는 그림이었다. 민화의 상징에는 세속의 삶에서 행복과 번성,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와 삶의 이상향이 배어있다. ● 해학, 풍자, 기복, 주술 등의 상징적 도상과 더불어 민화에는 다시점 형태, 오색빛 천연색, 우화적 표현 등의 다채로운 특색이 발견된다. 이처럼 삶의 다양한 시선, 태도가 담겨있는 만큼 삶 가까이에 있는 예술로서 민화는 인생의 여러 고개를 넘는 과정에서 건강과 안녕, 번영과 계몽적 삶의 가치 등을 다지는 창이었다. 삶, 즉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는 일과 관련해 민화는 입체적 면모로 생애의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현대미술에서 바라보는 민화 ● 민화는 관념적 전통의 궁중이나 화원의 전문 예술 범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습되고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려졌다. 그만큼 그 정의와 범주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민화에 대해 조자용은 "무명성, 실용성, 공예성, 상징성" 등을 지닌 한화(韓畫)로, 김호연은 '겨레그림'으로, 김철순은 서민층의 욕구를 반영한 비전문적이고 소박한 그림으로, 이우환은 '생활회화'이자 "조선 회화의 본령(本領)"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이처럼 민화는 그 해석에 대해 개방적이며, 대중의 삶 속에서 예술적 효력을 지닌다. 민화가 지닌 다양한 함의를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다채로운 가능성의 장(場)으로 조명하려는 전시이다.
민화와 팝아트의 접점 ● 민화는 오랜 유래가 있지만 특히 조선 후기 계층과 사회, 경제의 변화와 더불어 성행한 이래 어떤 집단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지속적으로 사랑받아 온 우리 미술의 한 갈래이다. 대중의 삶 가까이에서 그려졌던 민화의 문화적 위치는 현대미술에서 팝아트의 대중지향적 속성에 비견될 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안에 담긴 삶과 세상살이의 태도를 팝아트의 면모와 더불어 주목해 보고자 한다. ● 한국 현대미술에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민화의 요소가 표면적, 심층적 차원에서 이어져 왔다. 특히 세속적 욕망의 이미지가 혼성적으로 구현되거나, 사회에 대한 해학과 풍자의 시선이 담기고, 당대 대중문화를 수용한 특징 등에서 팝아트와 유사한 태도를 살필 수 있다. 이처럼 민화와 한국 현대미술의 팝아트를 연관하여 보고자 하는 이 전시는 민화적, 팝아트적 태도에 주목하여 K팝아트를 길어 올린다.
민화와 팝아트 사이에서 바라보는 K팝아트 ● 전통 민화와 팝아트의 태도적 접점과 긴장 사이에서 작품들에 담긴 K의 양상을 때로는 민속적으로, 때로는 혼종적으로 등 유동적 양태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곧 한국 현대미술 면면에 나타나는 '한국성'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을 것이다. 민화와 K아트 사이에서 탐색해 보는 팝아트적 태도의 작품들을 영미권의 팝아트와는 각도가 조금 다른 'K팝아트'로 살펴보는 일이 한국 팝아트의 재정립을 위한 시금석 중 하나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알고 보면, 반할 세계 ● 삶 가까이의 예술로서 민화와 팝아트의 관계 속에 너른 범주로 그려볼 K팝아트는, 생활을 영위하는 삶의 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계, 닮고 싶은 세계, 또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다채로운 경관으로 펼쳐낼 것이다. ● 전시장에는 아카이브 섹션도 함께 마련되어 있어 심도 있는 전시 이해에 다가설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민화 화집과 팝아트, K문화 관련 연구 자료를 열람하며 전시에 담긴 질문들을 숙고할 수 있다. 민화와 팝아트, K팝아트의 열린 개념 사이에서 각자의 호기심으로 전시된 작품을 만날 때, 알고 보면 반할 세계, 혹은 알고 보아야 반할 세계, 그리고 알고 보면 새로이 보일 세계가 기다릴 것이다.
■ 섹션 1: 꿈의 땅 ★ 섹션 2: 세상살이 ● 섹션 3: 뒷경치
■ 백정기는 치유와 주술, 믿음에 대한 관심을 과학의 원리와 조각적 탐구로 풀어낸다. 전통 기우제(祈雨祭)*와 민속 신앙의 요소들, 전통 건축물과 기물을 차용하여 연금술사처럼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현대 조각의 언어로 엮어낸다. ●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2023)는 촛불 발전기 10점과 달걀 부화기 1점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촛불이 일으키는 정서적 반응과 열기와 같은 잠재 에너지가 기계 원리로 구현된다. ● 「Fusor」(2021)는 15세기 조선시대 '간의(簡儀)'라는 천문 관측 기기를 모티프로 한 핵융합기이다. 용과 해태 등의 조각들이 떠받들고 있는 이 기계는 과학과 기술에 깃든 주술적 염원을 담고 있으며, 현대 기술과 오랜 숭배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 닳아진 석상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벽사(辟邪)와 정화(淨化)의 전통적 형상들은 작가의 조각적 해석을 반영한다. 비물질적 에너지를 생성하는 기계와 호랑이, 봉황 등 민속 신앙의 형상, 그리고 3D 프린트 재질의 낯선 조화에는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열망의 요소가 혼재한다. 연금술적 작품의 상서로운 기계와 도상들이 세속적 염원의 혼종 풍경을 이룬다.
* 기우제(祈雨祭)란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 이 작품에는 과거에 부화기에서 실제로 태어난 병아리의 달걀 껍데기가 전시되어, 생명 부화의 흔적을 상상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 박경종은 미술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회화적 시도를 한다. 이발소의 그림 기법이나 밥 로스(Bob Ross, 1942~1995)*의 그림 기법 등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로봇과 동물 캐릭터를 그림에 등장시키는 등 하위문화, 상업 예술, 아마추어 그림으로 간주되는 장르를 그림에 삽입하고 콜라주(collage) 한다. 작가의 그림에서는 순수예술의 위계가 무의미해지고 친근한 이미지들이 복합적인 구성을 이루며 수수께끼 같은 낙원의 풍경을 펼친다. ● 「보물찾기」(2022)에서는 색색의 붓 터치 뒤로 숲의 풍경이 드러난다. 숲 사이에는 십장생(十長生)*과 연관된 만화 영화 캐릭터들이 숨어있다. 붓터치 안쪽에는 '신토불이(身土不二), 흙, 땅, 빛' 등의 단어들이 숨겨져 있다. 이 그림은 보물찾기의 염원, 캐릭터로 소환된 추억의 시간, 붓터치로 남은 회화의 흔적, 감상과 탐색의 순간 등 여러 층위의 시간들이 복합된 정경이다. ● 「만수만복」(萬壽萬福, 2022)은 전통민화의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양식을 차용한 것이다. 과거 최대의 의미였을 '백(百)'은 현대의 경제적 규모를 반영하여 '만(萬)'으로 변용되었다. 그림에 그려진 '수(壽)'와 '복(福)'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의 마음에 있는 길상(吉祥)의 염원을 반영한다.
* 밥 로스는 1983년 미국 PBS 방송국에서 그림그리기를 가르쳐주는 TV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화가이다. * 십장생(十長生)은 돌, 물, 학, 거북, 사슴 등 오래 산다는 열 가지 자연물 상징을 일컫는다. *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오래 산다는 의미의 수(壽)와 복될 복(福)자 등의 기복을 담아 문자를 그려 넣은 그림이다.
■ 김지평은 전통과 관련한 다양한 조건들을 재고하며 동아시아의 시각문화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의 새로운 가치를 상상한다. 특히 여성의 서사나 미술사에서 재야의 양식들을 주요한 소재로 하여 다른 차원의 이상향을 표현한다. 전시 작품을 중심으로 한 최근 작업에서는 병풍, 족자, 두루마리 등 서화의 부속품에 담긴 전통적 의미를 재구성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 「두려움 없이」(2014)는 벽사(辟邪) 민화 삼목구(三目狗)*를 차용한 것으로, '나쁜 기운을 쫓고 두려움을 없앤다'는 벽사의 의미를 여성의 관점에서 해석해 신화적 서사를 부여한 작품이다. ● 「산수화첩」(山水畵帖, 2023~2024)은 폐기된 기성품 병풍에서 떼어낸 산수화(山水畵)의 복제 이미지를 모아 입체로 만든 종이 콜라주(collage) 연작이다. 이상적 개념이 담긴 전통 산수화의 이미지 뒷면에는 골판지나 신문지 등 현대의 버려진 오브제들이 조합되어 있다. 좌대는 건축자재로, 설치는 박물관의 진열장 방식으로 혼합적 산수 조각을 이룬다. ● 「백납(百衲)병풍 – 아카이브 2020」(2020)은 여러 작은 이미지들을 병풍에 모아서 수집하고 보관하던 전통의 '백납도'(百衲圖) 양식을 활용한 것이다. 작은 이동 미술관이자 스크랩북과 같은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과 전시를 위해 수집한 이미지의 복제본들로 이루어진 아카이브와도 같다. 대체로 동서양의 미술사적인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민화나 부적들과 같이 이름 없는 민중들의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의 새로운 이상향이 펼쳐진다.
* 삼목구(三目狗) 는 눈이 세 개인 개를 뜻하며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역할을 하는 요괴이다.
■ 안무가 이양희는 한국 전통춤을 현대의 클럽이나 대중적 문화를 반영한 특유의 양식으로 변환시킨다. 「Twig & Trunk」(2022)의 두 영상 'Twig-Trunk'와 'Twig-Root'는 각각 나무의 몸통과 뿌리에 관련한 제목처럼 한국 춤을 나무에 빗댄 것과 같다. 이 영상은 작가가 생각하는 한국 춤의 중요한 부분인 인체 중심축의 움직임에 기반한다. 한 화면은 한국 춤의 춤사위로 오직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발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발의 표면에 비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근육과 핏줄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담는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클럽 춤 동작을 보여주는데, 한국 춤을 전공한 작가의 몸에 배인 스텝과 현대 하우스댄스의 스텝이 독특하게 뒤섞인 모습을 드러낸다. 근대에 한국 춤의 양식이 정리되는 과정에 스며든 융합적 양식과 현대에 이르러 작가에게 학습된 양식, 그리고 동시대 클럽 춤의 양식이 영상 안에 미묘하게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영상에서 점차 격동적으로 움직이는 신체의 중심축은 전통과 관습의 견고한 중심을 뒤흔들어 놓는다.
■● 이수경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범주로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의 작품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전통과 문화의 요소들이 한데 모여 다층의 시공간으로 함축되어 있다. 여러 문화적 요소들을 수집, 선별, 조합하는 번역가로서 예술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의 작품에는 거대서사*에 기록되지 않은 문화와 상상들이 담겨있다. ● 「불꽃 변주」(2023)의 밑그림은 작가의 '불꽃 드로잉' 연작의 경면주사* 드로잉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교 탱화의 제작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작가는 세밀하게 선을 이어 마치 수행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듯 무의식적이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려낸다. 이미지들은 거울처럼 대칭되는 구조로 서로의 세계를 비추는데, 퍼포먼스 영상 「쌍둥이 춤」(2012)에도 두 명의 무용수가 서로를 반사하는 구조로 한국의 전통춤을 춘다. 천상같이 하얀 배경에 한국 전통 기념품 가게의 인형처럼 치장한 두 무용수는 반전된 영상처럼 원본과 복제, 주체와 객체의 위상을 뒤흔든다.
* 거대서사(Grand Narratives)는 프랑스의 철학자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가 사용한 용어로, 보편적, 포괄적, 주류적 역사 서술과 담론을 이른다. * 경면주사는 천연 광물로 불로장생의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탱화나 부적 등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 오제성은 선대 예술가의 작품들을 좇아 과거로부터 동시대의 새로운 미(美)를 찾는다. 작가는 조각사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바탕으로, 근대 조각 이후의 양식적 기틀과 민속 조각의 자유분방함 사이를 현대 조각의 매체로 잇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사람들의 삶과 역사 가까이에 있어 왔지만 연구나 관리가 되지 않은 비지정문화재에 천착하여, 그것의 조형적 특징과 독창성을 탐구하고 작업에 차용한다. ● 「INDEX#3_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 2020~2024)는 여러 가지 종류의 조각상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서구의 문화가 청나라로 유입된 것으로부터 유래한 '다보각경도'는 조선에서 책거리에 종종 등장하는 모티프였다. 귀한 물건이나 이념의 상징을 그린 책거리처럼 이 작품에는 분청기법에서 3D 스캔 기법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문화적으로 혼종된 미적 지향과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금강산전도」(金剛山全圖, 2020)는 불변의 이상향으로서 금강산을 그린 민화의 '금강산전도'에 착안해 다양한 군상의 이상경처럼 선보인다. 「갓트론」(2023) 역시 단군상, 문인석 등 문화재들의 형상과 현대의 기성품을 조합한 로봇상이며, 「순천 선암사 산신」(2020)은 불교 문화권에 깃든 재래종 신의 조각상을 재해석한 것이다. 작품들에서 선대 예술 유산과 근현대 재료와 기법의 복합적 조화 사이에 깃든 작가 특유의 익살스러운 조형성을 발견할 수 있다.
■ 박그림은 불교 미술을 현대적으로 연구한다. 자전적 탐구를 바탕으로 퀴어 문화를 반영하여 재구성한 불화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보살'의 유형으로 인물이 등장한다. 두 인물과 함께 등장하는 호랑이는 영물과 같은 존재로서 나르시시즘적 페르소나를 대변한다.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과 새들은 각각 쌍을 지은 구조로, 사물 도상은 남근적 형상으로 퀴어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주로 담채나 배채 기법을 사용한 작가의 작품은 비단 위에 세밀한 선과 더불어 섬세한 고려 불화의 전통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통 기법을 이용해 이분법적 관념을 넘어서는 현대적 도상으로 다시 쓴 이상향을 그려낸다.
■ 이은실은 사회적 관습 뒤로 가려진 욕망과 심리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특히 성적인 은유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전통이나 사회적 금기로 억눌린 욕망, 이로 인한 심리적 갈등과 왜곡을 그린다. 언급되지 못한 열망의 이야기들을 담은 작가의 화면은 2차원과 3차원의 공간 구조를 넘어서 심연의 풍경으로 펼쳐진다. 그림의 초현실적이고 오묘한 풍경이 관능적 심상을 환기한다. ● 「망상의 일렁임Ⅰ」(2021)은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정신 질환으로 나타나는 욕망과 뒤틀린 심리, 망상 등의 정신적 영역을 마치 파도가 이는 듯한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부터 파생된 「망상의 일렁임Ⅱ」(2021)와 「망상의 일렁임Ⅲ」(2021)은 산수화(山水畵)처럼 보이지만 보다 구체적인 성적 은유를 담은 풍경이다. 남근 형상의 「꽉 찬」(2019)과 동물의 항문 부위 형상이 모여 협곡 풍경을 이루는 「숨겨진 계곡」(2016) 역시 욕망을 향한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 이인선은 이른바 오버로크(over lock)라고 알려진 기계 자수를 주된 매체로 삼는다. 작가가 서울여성센터의 직업교육을 거쳐 익힌 기계 자수는 한때 미군의 수요와 스카잔* 등으로 유행했지만 이제는 사양산업이 되었다. 작가는 이 자수만의 화려한 색상과 매끈한 실의 질감을 이용해 동서양의 신화나 타로, 점성술 등과 관련된 상징적 도상을 수놓는다. 그의 작품에서는 뱀이나 문어 등과 같이 서양과 동양에서 각각 긍정과 부정의 관념이 엇갈리는 소재가 등장한다. 긍정이나 부정으로만 각인되었던 신화적, 문화적 상징은 작가의 작품 안에서 이원적 의미를 지닌다. ● 「뿔과 뼈」(2024)에는 권력의 상징인 뿔과 죽음의 허무함을 비추는 뼈가 등장한다. 정의의 여신 형상을 한 해골은 이상과 혼돈을 동시에 보여준다. 「꿀과 독」(2020)은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성을 명료한 좌우대칭으로 상징화한다. 작가의 작업은 풍요와 욕망, 혼란과 허망함의 두 세계가 직면하는 화면을 이룬다. 삼재부적(三災符籍)을 모티프 삼은 「아에이오우」(2021)에서는 삼두매(一足三頭鷹)가 이러한 현대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지키고 있다.
* 스카잔(Sukajan/Souvenir Jacket)은 미군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기념으로 박아가던 복잡한 문양의 일본풍 자수를 일컫는다.
■ 손동현은 동양화와 미술사의 전통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기를 시도한다. 이 가운데 작가는 동양화의 주요한 주제였던 산수(山水)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 「박달나무 동산」(2023)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가 수원 화성에서 본 가을 풍경을 그린 「화성추팔경」(華城秋八京圖, 18세기)의 산수(山水)와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협접도」(蛺蝶圖)의 동물 그림 등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김홍도의 여러 작품들을 작가가 10폭으로 분할된 화면에 동시대적인 변용으로 이미지를 조합하고 그린 풍경화이다. 전통적 주제이지만, 마치 핸드폰 화면에서 확대하거나 움직여서 보듯이 현대에서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을 반영한 구도, 거대 스크린처럼 걸어가면서 볼 수 있는 광경, 그래피티와 만화 등 동시대 시각문화가 조화되어 새로운 이상향의 풍경을 이룬다. ● 「웅크린 용」(2024) 역시 상형문자로서 '용(龍)'의 서체 구조를 분해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고귀한 용의 문자를 현대 하위문화가 혼합된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과정은 곧 작가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과도 같다.
★ 김은진은 흑판과 자개, 한국화의 재료로 세상사와 욕망, 우화 등을 기묘한 풍경으로 그린다. 마치 기괴한 상상과 쾌락의 세계로 화면을 메운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와 같이 사회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연상시킨다. 「신의 자리-인산인해 2」(2020)는 인간 세상의 쾌락과 타락 등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작가의 해학적 관점으로 보여준다. '신의 자리'라는 연작의 제목은 신이 다녀간 자리, 올 자리, 지키고 있는 자리 등 인간 군상의 다층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 연작 중 「신의 자리-인산인해 2」에는 특히 K장녀로서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심청이'나 '원더우먼' 혹은 '늙은 여자이자 할머니'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내려오는 길 1」(2015~2023)은 작가가 교회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수리를 보고 뒤통수로 이어지는 길을 금강전도(金剛全圖)에서와 같은 산수(山水)로 연상하여 그린 작품이다. 늙은이와 젊은이로 대변되는 머리 이미지들이 얽히고 설킨 길에는 노화의 현실과 젊음의 관계, 나이 든 여성의 삶에 대한 작가의 풍자가 반영되어 있다.
★ 손기환은 딱지, 한국 만화, 카툰(cartoon) 등을 차용한 대중적 이미지 안에 정치적 사회적 비판 의식을 담은 회화와 목판화 등을 선보였다. 작가의 화면에는 홍길동과 같은 정의 구현의 캐릭터가 주로 등장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활동에 참여했던 그는 '민족미술협의회'에서 『만화신문』을 만든 바 있으며 현재 만화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DMZ 산수'(2012~2017) 연작은 축약된 풍경의 여백에서 장소에 대한 고찰을 불러일으킨다. 정치적 팝아트를 표방한 작가의 작업에서 'DMZ 산수'는 전통의 산수를 단순히 차용한 것이 아니다.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전통 산수에서의 풍경처럼 허용되지 않은 이상향으로서 DMZ를 전통 산수의 기호와 DMZ를 상징하는 요소들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목을 끄는 원색적 색채는 매혹적이지만, 이 풍경이 실제로는 닿을 수 없는 이미지로서 장소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 김재민이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며, 도시 변두리나 사회 주변부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조사한다. 작가는 조사 대상의 사고체계와 문화를 관찰하는 것 뿐아니라 스스로 체화하여 창작의 기제로 삼는다. ● 「소인 연구 중간 발표 - 소인에게 사랑을」(2024)는 대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낮추어 부를 때 칭했던 '소인', 즉 소위 '쇤네(소인네)'라고 불렸던 소인의 현대판 사례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실제로 '대한소인협회'를 창설하고 협회장으로 활동한다. 소인으로 자칭하는 민중의 성격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소인은 집단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조바심을 내며 존중과 관심을 갈구하는 등의 여러 특징들이 있다고 한다. 과거 조선의 소인에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소시민의 양태를 연구한 작가의 자조적, 해학적 시선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며, 전문 예술의 경계에 재치 있는 균열을 낸다.
● 임영주에게는 한국의 설화나 전설, 미신 등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이 예술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유사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작업들은 작가가 탐구하는 세계의 영매와 같이 작용한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현상과 믿음에 대해 관찰하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이 닿지 않는 사이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밑」(2015~2024)이라 총칭할 만한 크고 작은 작품들이 먼저 우리를 맞으며 다른 세계의 관문처럼 보이지 않는 흐름을 형성한다. 현대 소비문화 안에서 액운을 막거나 세속적 믿음의 대상이 된 것들을 풀어낸 작품들은 전시장의 한 부분을 미신 혹은 믿음의 장(場)으로 전이시킨다. ● 「애동」(2018)은 애국가의 "동해물과"에 해당하는 단순음을 반복하며 애국가의 영상에 등장하는 촛대바위의 모습을 비춘다. '야동'과 유사한 제목의 이 작품은 일명 '해꽂이'라 불리는 해돋이 경관의 명소로서 촛대바위에 덧씌워진 성적 코드와 숭배의 현상을 담는다. 반대쪽에 있는 「인증샷_푸른 하늘 너와 함께」(2018)은 영상 속 인물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낯익으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이끈다. 마주 보이는 「요석공주」(2018)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설화와 믿음,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원효대사(元曉, 617~618)와 인연을 맺은 요석공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역사에서 주목하지 않은 서사를 은유와 상징의 이미지들로 엮어 드러낸다. 동전이나 신체 현상, 북두칠성 등과 관련한 미신들이 요즘의 '밈(meme)' 영상처럼 지나간다. 짧은 영상들이 스치며 신화나 인터넷 소문처럼 실체 없는 이야기들을 띄운다.
★ 권용주는 일상, 노동, 생존에 관한 것들을 작품에 들여와 기존과 다른 조각 재료들 간의 만남 사이에 새로운 미학을 구축한다. 인공 폭포와 같은 임시적인 자연 환경을 만들거나 조각의 원료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질서와 다른 조각적 풍경을 창출한다. 재료 각각의 본성이 서로 성긴 조화를 이루어, 가상의 풍경을 상상하기를 제안한다. 「석부작」(2016) 연작은 작가가 주워 모은 시멘트 덩어리와 계란판, 폐지 등 사이에 풍란을 붙여 키워낸 작업에서 시작했다. 폐품으로 가짜 바위의 환경을 만들어 난을 기르는 고급 취미를 이어 붙인 작업적 태도는 계급적 위계를 재치 있게 해체하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이상향의 풍경으로 이끈다.
■ 김상돈은 한국 근현대 사회에서 지워져 가는 역사나 문화의 흔적을 예술로 되살린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한국 전통의 샤머니즘 문화와 현대 소비사회가 혼종된 세계를 이룬다. 특히 특정 지역이나 장소, 집단의 역사에 얽힌 기억과 흔적을 현재의 응축된 풍경에 소환한다. 「불광동 토템」(2012)은 삼존불처럼 숭고한 구도 안에 관능적으로 치장된 채 텅 빈 의자가 있다. 이 작품은 미군 부대가 있던 동두천의 미군 위안부들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명 '양공주'로 불렸던 여성들이 이용했을 법한 플라스틱 의자와 꽃들은 지금 불광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술집의 조명이나 장식들과 다를 바 없다. 그녀들은 이제 무연고 떼무덤에 묻혀있을 뿐이다. 1950년대 동두천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K컬처와 수입문화가 혼융하고 충돌하던 때에도, 과시적 소비문화가 혼성적 스펙터클을 이끄는 지금도 과열된 욕망의 이상향에는 텅 빈 의자가 있다.
● 지민석은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예술가이다. 샤머니즘이 과거에 돌, 나무, 산 등 우리 주변의 것들을 통해 인간 세계와 신들의 세계를 잇는 것이었다면, 작가는 지금 우리를 초월적 세계로 이끄는 현대적 샤먼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유한다. 도시의 삶 가까이에 있는 다국적 기업의 상표 이미지들은 작가의 작품에서 인격화된 신으로 등장해 신화적 서사를 만들어낸다. 전시된 신 그림들은 만물의 근원에 대해 성찰해 가는 작가의 탐구 중 '백팔신중도(百八神衆道)'*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들이다. 인격화된 각 신들은 한국 전통 샤머니즘과 현대 상표 이미지가 결합된 도상으로,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상표별 상형문자의 문자도(文字圖)*와 대응된다. 「오문자도(코, 스, 구, 캠, 치)」(五文字圖, 2024)는 작가가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의 양식을 빌어온 것으로, 현대인에게 무릉도원의 상징과 같은 상표 문자의 종합체이다. 작가는 예술을 샤머니즘적 관점에서 창작하며 그의 성찰을 매개하도록 한다. 신중도(神衆道)*와 문자도, 백수백복도를 현대적으로 번안한 작가의 작품은 지금의 사회와 우주관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 이 글에서 '백팔신중도(百八神衆道)'는 108위의 신을 그린 작가의 프로젝트를 일컫는다. * 문자도(文字圖)는 유교의 도덕적 지침으로서 효(孝), 제(俤),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문자를 도상과 함께 그린 그림으로, 문자에 따라 효도와 의리, 믿음, 예절 등의 뜻을 담고 있다. *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오래 산다는 의미의 수(壽)와 복될 복(福)자 등의 기복을 담아 문자를 그려 넣은 그림이다. * 신중도(神衆道)는 여러 신들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 최수련은 동아시아 문화영향권에서 한글문화로 번역된 문화적 양상을 회화적으로 탐색한다. 중국의 설화집(說話集)이나 화론집(畫論集) 등을 한글로 해제하고 필사하는 작가의 필체가 그림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고서 인쇄본의 미세하게 번지고 오래된 잉크의 형상조차 작가의 작품에서는 미묘한 회화적 선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글자의 가독성을 그림의 요소로 삽입함으로써, 색과 형태를 중심으로 한 순수회화나 고급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보여준다. 또한 서양미술의 재료로 동양화풍의 화법과 투박한 필기체를 중첩시켜, 동양미술과 서양미술의 이분법을 허물고 동양 회화 전통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인쇄물이나 TV 화면처럼 보이는 그림들에는 한국에서 유행한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면면이 회화적 이미지로 담겨있다. 삶 속에서 친숙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고서나 담뱃갑 카드 삽화의 일부 또는 오래된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대부분의 장면에는 교훈과 관습, 권선징악의 교리가 글자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한편 이에 도달하지 못한 캐릭터의 모습이나 서사가 등장하여 글귀에 대한 풍자적 해석으로 인도한다. 작가는 작품에 그려진 인간사와 저승의 관계, 관습을 현대적 한글문화로 덧쓰는 번역의 과정에서 양식적, 해학적 발견을 나눈다.
● 조현택의 도시 변두리 풍경 사진이나 자전적 사진 작업 전반에는 한국 특유의 상황과 정서가 포착되어 있다. 사회적 현상과 사진 매체 사이의 본원적 탐구 속에 디지털 조작 없이 드러낸 장면에는 이를 통찰하는 작가의 위트가 담겨있다. ● 「스톤마켓」(2019~) 연작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돌조각 판매상의 야간 촬영 작업이다. 이 연작에서 「스톤마켓-파주」는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믿음의 대상과 형상을 고민하게 하지만, 대개의 작품 속에는 부처상이나 성모마리아상, 민간신앙의 조각상을 비롯하여 신령한 동물이나 위인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들이 총체적으로 한데 모여 있다. 동서양의 종교적 영향이 뒤섞여 현대 기복적, 세속적 열망의 혼종과 집합을 보여주는 이 연작에서 현세 너머의 존재에 대한 가지각색의 원시적 상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돌조각 모음은 또한 초월적 세계에 보내는 세속적 기원, 그리고 상품의 위상에 놓인 조각과 종교의 진풍경(珍風景)을 보여준다. ■ 경기도미술관
Vol.20241115f | 알고 보면 반할 세계-민화와 K팝아트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