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g, the Wolf, and the Doppelganger Forest
북토크 / 2024_1121_목요일_07:30pm
임원묵 시집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 북토크 장소 / 진부책방스튜디오 ▶ 예약하기
기획 / 이소라 주최,주관 / 임원묵(시인) 자문 / 방승호(문학평론가)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스페이스 미라주 Space Mirage 서울 중구 을지로 130-1 401호 @space.mirage
시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 손에 들고 어디든 이주할 수 있는 한 권의 시집, 그 안의 목소리를 약속된 시간과 공간에 펼쳐놓는 세계. 이번 전시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은 임원묵의 시를 출발지로 삼아 시각예술가 김슬기와 김형규의 긴 호흡을 거쳐 이곳에 왔다. 시와 시각예술을 잇는 운율과 공백, 그 사이를 흐르는 이미지는 각자의 섬을 잠시 접고 포개진 풍경을 시도한다.
임원묵의 시집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2024)에 수록된 동명의 시에서 화자는 '시를 쓰는 내가/그게 사격술인 줄도 모르고'라고 고백하며 '어두운 숲길만 뱅뱅' 돈다. 전시는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지러운 시간 속에서, 도플갱어를 만난 어두운 숲길 일지라도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예술의 시간은 어떤 모습인지 그려본다. 독일의 문학 이론가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이 어느 생동하는 정신이 어떤 만들어진 문자(Buchstabe)에 담겨 나타나는 곳에 예술이 있다 1) 고 말한 것처럼, 시문학은 예술의 한 장면이다. 여기서 예술은 시문학을 일컫지만, 슐레겔이 『시문학에 관한 대화』(2023) 초입에서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포에지(Poesie)를 지니고 있다고 언사 한 점을 상기해 보자.포에지는 시인의 문학작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의 어원인 포이에시스(Poíesis), 즉 생산하고 형성하고 창작하는 능력 자체를 가리킨다는 의미에 더욱 눈길이 간다. 인간의 상상력과 정신성을 구체화한 것이 예술이라는 측면을 부각한다면, 예술은 장르와 매체의 구분을 뛰어넘고 새로운 시도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룩한 기술 발전은 예술의 역사와 함께했고, 시각예술은 조각, 회화, 사진을 거쳐 이제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시대에 이르렀다. 예술은 우주의 시간에서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인간의 시간을 붙잡아 문자, 조형, 이미지 등으로 반향 한다.
전시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는 원고가 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도달하기 전부터 관객과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될 오늘을 상상해 왔다. 이곳에 다다를 당신을 위해 임원묵은 다정한 목소리로 이 초대에 응해준 관객에게 전시 안내서를 발송했다. 김슬기는 마주한 시의 한 장면들을 얄팍하거나 솟아오른 조각들로 빚어내고, 김형규는 서사의 흐름을 혼동케 하는 전략으로 화자의 목소리를 빌어 오늘의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임원묵은 이번 전시에 시집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 2) 을 선보이며 관객에게 보내는 안내서를 동봉했다. 그는 「도플갱어 숲은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14통의 편지 사용법을 소개하고, 시에서 출발한 우리의 긴 여정을 함께 하자며 응대를 시작한다. 친절한 안내자인 그 목소리는 관객이 편안히 앉아 판판하고 빛나는 순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하얗고 봉긋한 의자에 앉아 납작한 조각과 시공간의 뒤섞임을 바라보라고.
김슬기는 시를 읽으며 불 꺼진 도시 곳곳에 놓인 동물들과 동물의 얼굴을 한 조각들을 생각했다. '모두가 잠든 사이에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3)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거나, 혹은 근거 없이 떠돌아다니는 미디어상의 개념과 이미지 등을 탐구해 온 김슬기의 시선은 도시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로 향한다. 「Dump: 어둠 속의 당나귀와 고양이」는 모두 잠든 밤,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도시의 한 골목을 발견하고 일기를 써가듯 자신의 손끝으로 이미지를 지었다. 전작 「Sprinkle Babies」(2023)에서 선보인 널따란 부조 조각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한다. 작가는 마티카(Martica) 목판을 칼로 파낸 후, 말랑하고 부드러운 석분 점토를 손으로 쌓아 올린 다음, 이내 딱딱하게 굳은 점토를 다시 갈아내며 매일을 기록했다. 김슬기는 나무를 깎아내고 봉긋하게 돋운 표면을 다시 갈아내어 허무는 과정을 반복해 얄팍하고 납작한 조각을 만들었다. 「Dump」 시리즈인 「Dump: 말 드로잉」은 불 꺼진 도시의 또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드로잉을 하듯 하찮은 날벌레의 몸짓과 귀 그리고 오래전 방송가를 떠돌던 페가수스도 유니콘도 아닌 말 동상을 새기고 붙였다. 「오렌지의 새벽」은 학대받은 오렌지가 학대받지 않고 방치된 새벽을 생각하며 만든 작업이다. 작가는 곰보투성이에 바늘구멍 수천 개를 더 뚫고 싶은 근질거리는 밤이 무엇인지 상상하며 마티카 목판에 오렌지를 새기고 또 새겼다. 김슬기의 작업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어두운 밤, 불 켜진 도시 한 귀퉁이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 맞닥뜨린 누군가(무엇인가)이다.
김형규는 「고백과 독백 그 어디」 4) 에서 발신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전화 장면과 서울 도심 풍경을 원테이크 영상으로 보여준다. 수신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거나 생각이 많다고 말하고는 이내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이어지는 혼잣말 같은 대화를 이어간다. 높은 지대에 서서 도시를 아래로 바라보며 나누는 독백을 닮은 목소리는 흔들리는 바람 자국과 음악가 양방언의 곡 '로터스 플라워'로 옮겨간다. 2채널 영상인 「시간이 멈추면 계절이 간다」는 시간적 서술을 뒤섞음으로써 장면 조합에 따른 관객의 독자적 해석을 기대하는 작업이다. 영상은 2채널을 각각 분할된 이미지로 보여주다가 곧 하나의 이미지로 펼치며 프레임을 넘나든다. 두 개의 화면이라고 생각했던 블랙박스는 시간, 장소뿐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인식의 유보를 제안한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어느 날, 비가 내리는 한순간에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밤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새로운 계절을 끌어왔다. 계절의 변화는 우주의 질서 속에 일어나는 거대한 사건처럼 느껴지지만, 일상의 장면에서는 찰나의 순간으로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작품은 계단을 오르거나, 움직이는 차량의 시선, 시간을 보여주는 그림자 등을 통해 시적 상상력을 교차하며 우리를 새삼 생경한 시절의 장소에 데려다 놓는다.
전시장 중앙에 놓여 있는 「미래에 보내는 노래」는 기획자의 제안으로 시작한 세 작가의 공동 작업이다. 세 작가는 이어달리기하듯 순차적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건네받아 응답하며 예술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다. 마중물을 대는 김슬기의 푸른 두 개의 조각은 시와 등을 맞대고 온도를 나누며 빚어졌다. 「푸른 맨발의 인간」은 유리 조각들이 깨진 채 뒹굴지만, 아무렇지 않게 바다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푸른 불씨」는 나무에 털실 띠를 두르듯 불씨에 털옷을 입히는 촉각적 상상력에서 시작해 이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울 것 같은 감각들을 보여준다. 김형규는 「하얗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에서 깃털, 모래 등이 흩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예술이라는 건 빛처럼 손에 붙잡히지는 않지만, 어떤 형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텍스트는 시와 같은 문학작품으로, 시각예술은 조각, 회화, 미디어 영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지 물으며 예술의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임원묵은 두 사람의 시각 이미지를 이어받아 전시장에서 시의 문장으로 이뤄진 「종착역」을 떠올리며 작품에 온점을 찍었다. 「미래에 보내는 노래」는 시문학에서 시작한 시각예술이 다시 시 문구로 수렴됨으로써 또 다른 예술의 출현을 예고한다.
시인과 시각예술가의 만남은 시적 언어와 시각 이미지의 완벽한 호응이나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마주 오는 너를 만나'듯 둘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시와 이미지는 순환의 고리를 그리며 예측 불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전하지 못한 말들을 삼킨 채, 어두운 숲길에서 당신을 그리며. ■ 이소라
* 각주 1) 프리드리히 슐레겔, 『시문학에 관한 대화』, 이영기 옮김(파주: 문학동네, 2023), 19. 2) 임원묵의 첫 번째 시집으로, 2024년 10월 4일 민음사에서 발행되었다. 3) 김슬기, 작가 노트. 4) 김형규의 미발표 장편 독립영화 「초대받은 사람」(2024)의 한 장면이다.
□ 임원묵 시집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 북토크 - 일시: 11월 21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진부책방스튜디오(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112 2층) - 진행: 송현지 문학평론가 - 정원: 25명 - 참가비: 5,000원 (노쇼 방지 음료교환권) - 주최: 민음사 - 신청: ▶ 예약하기
Vol.20241114f |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