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beautiful moments of my life
작가와의 만남 / 2024_1116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강호 GALLERY 江湖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32길 22-1 2층 Tel. +82.(0)2.764.4572 gallery강호.com @gallery_kangho
빛[깔]을 좆아 나를 찾기: '새롭다는 것'의 증명력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3) 인간이 갖고 있는 고귀한 행위가 '기록하기'와 '표현하기' 이 두 가지라고 본다면, 문예는 '생각[思]하고, 기록[錄]하고, 표현[表]하고, 감각[感]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美]'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유가 없다면 기록할 수 없습니다. 기록할 수 없다면 전해 질 수 없으며, 전해지지 않는다면 표현할 방법이 끊겼다는 말이고, 또 표현을 하지 못하다면 그것을 지금 느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문명이고 문화이고 인문이면서 인간의 자기 선언입니다. ● 전인숙 사진가는 자연과 일상, 즉 빛에 깃든 작은 것을 찾아 기록하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자연이란 저절로 된 것이고 일상이란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일들입니다. 내가 관여하기도 전에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들과 내가 관여한다고 새로워지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자연과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사진가가 포착하는 어떤 상태(순간과 공간과 피사체)를 판단하는 일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전인숙 사진가의 "일상"들은 "늘" 그런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진가는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담는 기계가 아닙니다. 사진가는 언제 어떻게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판단하여 적극적으로 적시에 개입해 찍어 내는 사람입니다. 남과 구별되는 판단과 가치를 통한 개입을 하기 때문에 사진가의 일상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걸 빛깔이라고 하든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전인숙 사진가의 요즘 일상은 이정인 사진가와의 '마주보며' 지내는 일입니다. 이 일상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¹처럼 젊은 그리움의 근거가 아닙니다. '육체는 낡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웁고/ 시간은 흘러가도 목적으로 새로워지'²는 시간에 기댈수록 더 새로워지는 일입니다. ● 이정인 사진가가 카메라를 잡은 지는 7년 되었습니다. 사진가 전인숙이 이정인 사진가가 80세 즈음할 때 카메라를 사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정인 사진가는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는 일', 사진을 '찍어서 주는 일'이 자신의 '길'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정인 사진가도 '일상'을 찍습니다. '딸들과 손자녀와 가족', '교우들', '언니와 형부들', '경노당의 벗들'과 풍경도 찍습니다. 이정인 사진가는 누군가를 찍어 주는 걸 즐겨 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섰고 틈만 나면 찍었습니다. 그게 사진가입니다. 삶과 일치된 실천이 전문가입니다. 이정인 사진가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정인 사진가의 일상은 카메라를 들기 전과 든 이후로 나눠집니다. 이 땅에 오래도록 터 잡아 살아온 여성들은 대부분은 집안일을 하는 딸로만, 생계를 위해서만, 자식을 위해서만 살아왔습니다. 그런 세월이 80년이 흐른 뒤, 처음으로 가져 본 카메라는 살을 '신명'나게 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이라는 것, 사진이 나를 나 답게 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정인의 일상은 특별해 졌고, 이정인과 관계 맺은 나이든 벗들과 친지들과 만남이 특별해 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이정인-전인숙 사진전은 출품한 작품들은 사진에 대한 몇 가지 통찰을 줍니다. ● 첫째 사진 찍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을 얻는 것을 넘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유용한 예술이라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 둘째 이-전 두 사진가의 사진 하기는 단순히 찍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 함께 사진으로 관계 맺기를 하는 '사회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가와 피사체와의 수직적인 관계라는 기존의 사진 문법과는 다른 수평적인 또는 객체(피사체) 지향적인 관계라는 실재하고 있는 사진 관용성을 보게 됩니다. 수평적 더 나아가 객체지향적 사회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셋째 사진가는 피사체를 통해서 자신을 보고, 그런 통로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이런 자기 실현은 '마주보기', 즉 서로를 피사체로 한 사진 찍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가와 사진가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서로의 삶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됩니다. 사진가 집단 밖의 사물과 사람을 찍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사체가 되는 사진가. 이번 작품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스스로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넷째 일상이란 똑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추구할 때 늘 '새로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사진 하기는 나이의 문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예술적인 실천'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사진의 문법 보다는 사진을 통한 관계를 더 두텁게 하고 수평적으로 세상을 보면서도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아주 '평범'한,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사진의 가능성을 읽었습니다. ● 이번 '사진하기'는 '우리가 본 것들과 보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꿈속의 꿈'³을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롭다는 것'을 찾아 나서는 행동으로 개인의 삶과 예술과 사회가 일치된다는 강력하게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어쩌면 '내가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 하는 80세에도 삶이란 여전히 태초의 빛처럼 찬란히 빛나고 있음을 알게 해 준, 이정인-전인숙 사진가께 경의를 표합니다. ■ 이창수
¹ 황동규, '즐거운 편지' ² 김현승, '신년기원' ³ 에드가 알랜 포우, '꿈속의 꿈'
이 전시는 두 여성의 작품이지만 우리의 이야기… 90 나이를 바라보는 황혼의 이정인 사진가와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소생의 기록이다. 저의 어머니인 이정인사진가는(1937년생) 일제강점기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6,25전쟁 속에서 소녀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여성들은 결혼 후 대부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오직 가정을 위한 내조나 며느리로 이름 없이 살아왔다. ● 그러나 그녀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 새로운 삶의 여정을 나선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카메라가 함께 있었다. 카메라로 자신과 이웃의 생활상을 찾아 질곡의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삶의 또 다른 활력소를 찾아간다. 가족과 이웃을 기록하며 자기의 정체성과 "사진가"라는 자부심을 키워왔다.
가족이자 딸인 전인숙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모녀(母女)의 혈연지간 이지만 때로는 작품의 비평에는 냉정하게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이 교차하는 주변의 공간을 만나면 항상 렌즈를 통해 세상의 삶을 기록하며 관조하였다. ● 이런 배경에서 이번 사진전은 사진 이상의 끈끈한 연고와 삶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구도나 심도보다 기록성과 삶이 우리에겐 더욱 중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활동해 왔다. 이렇게 황혼기의 나이를 극복하고 사진가임을 깨닫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두 사람 "전인숙과 이정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일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랑과 삶의 무게가 녹아 있는 공간을 평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 이 전시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그 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영감을 줄 것을 감히 소망해 봅니다. ● 나이는 시간의 축적이고 삶의 연계이자, 자신의 기록이고 그 흔적의 총화이다. 우리는 모녀로서 같은 취향을 갖고 서로 기록하고, 이웃을 기록하는 시간이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해 왔으며,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의 다큐 생활은 계속될 것입니다. ● 그런 연유로 이 전시는 "어머니 이정인" 사진가의 삶에 대한 딸 전인숙의 오마주(homage)이다. 이 전시를 엄숙히 "이정인 여사"에게 바칩니다. ■ 전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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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1113a | 내생의 화양연화-이정인_전인숙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