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움을 그러모아

Gathering Vibrance

정명조_최윤하(메종드 윤)展   2024_1107 ▶ 2025_0202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휴게시간_12:00pm~01:00pm / 월요일 휴관

삼각산금암미술관 Samgaksan Geumam Art Museum 서울 은평구 진관길 21-2 Tel. +82.(0)2.351.8554 museum.ep.go.kr @eunpyeong_museum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우리의 노래와 이야기가 이웃 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 든 것이. 한류(韓流), 이 커다란 순풍 덕분에 과거와 현재가 눈앞에서 공존하고 있다. ● 마천루 속 고궁과 옛 가옥이 자리한 거리에는 흑운(黑雲)과 노을과 달빛을 머금은 탐스러운 타래 위로 나비와 꽃이 앉았다. 곱게 땋아 내린 한 줄기를 따라가면 다소곳이 자리한 댕기로 시선이 가고 이 댕기와 대비되는 비단 저고리와 풍성한 치마가 곳곳을 누비고 있다. ● 곱다. 그들의 나이가 몇 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생김새인지도 모른다. 그저 청량한 웃음을 흘리는 뒷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뿐이다.

정명조_Play-Ground #20-02_캔버스에 유채_116.7×72.7cm_2020

200년 전 여인의 소망을 담다 ● 눈, 코, 입, 귀 등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모두 앞을 향하고 있다. 본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라 타자와 소통을 하고 고립을 막기 위해 현재의 모습과 같이 부착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상대를 설득하고 매혹적으로 보이고자 화장(化粧)문화가 발전했다. 이 화장(化粧) 못지않은 변천사를 보인 것이 복식(服飾)이다. ● 우리나라 여성의 옷차림에서 앞모습 못지않게 뒷모습에 공을 들인 것은 조선시대 유교 사상의 영향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는 예절, 효도, 충성,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한 사회였다. ● 머리 수식(修飾)은 고대 경천(敬天)사상에서 비롯한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은 염원의 상징인 올림머리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남녀유별의 상징적 의미로 남성은 상투 머리, 여성은 쪽머리와 댕기 머리로 변화하였다. ● 복식에서는 여성에게 정숙, 예의, 정절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였기에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는 맨살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에 바람에 흩날리는 한복의 직선과 곡선의 조화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였다. ● 패식(佩飾)에서는 금, 은, 옥, 원석 등을 이용하여 자연에서 따온 형상(꽃, 곤충, 풀 등)으로 절제미를 강조하였다. 신분의 차이도 뚜렷하여 이를 엄격히 구분하고자 하였기에 의복의 색채와 문양에서 최소한의 요소로 아름다움을 표출하고자 하였다. ● 고대부터 이어져 온 조선의 여성은 '꾸밈'에 대한 본능으로 다양한 장신구를 사용하였다. 이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성을 표출할 수 있는 자신의 의지였다. 그리고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일생에 있어 다복, 다산, 부귀영화, 장수 등의 염원을 담은 주술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정면으로 노출할 수 없었던 바람이 뒷모습을 통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정명조_The Paradox of Beauty #24-01_캔버스에 유채_162.2×112cm_2024

정명조는 대학생 시절 학교 인근 한복집에서 마주한 활옷에 매료되어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그녀가 그린 여인은 증명사진을 찍은 듯 단조로운 배경 속에서 유독 두드러지는데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라고는 머리 모양과 장신구와 옷차림뿐이다. 「Play-Ground」 연작 속 여인은 작품의 제목인 '놀이-터'와 같이 한 폭의 문인화를 즐기는 듯한 구도를 띠고 있다. 문인화는 사대부층이 여흥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국화, 연꽃, 안개처럼 자욱하게 머문 글귀를 배경으로 서 있는 여인은 두 단의 가체와 칠보 비녀, 원석 뒤꽂이 등 화려한 머리 장식이 돋보이는데 이 장신구는 영·정조 시절 가체 금지령을 선포하게 만든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차림 또한 붉은색, 옥색에 가까운 푸른색, 박을 입힌 저고리가 인상적이다. 이들은 이러한 '꾸밈'의 행위가 예(禮)이자 '놀이'인 것이다. ● 땅을 끄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린 뒷모습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벌과 나비를 기다리는 한 떨기의 꽃 같기도 하다. ● 「Play-Ground」 연작과 대조적으로 「The Paradox of Beauty」 연작은 짙은 배경에 왕실 여인의 옷차림을 한 뒷모습을 묘사하였다. 구중궁궐 속 여인은 신분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장신구도 옷차림도 차이가 있다. 조선 왕조의 역사에 남을 인물로서 그에 맞는 위엄과 권위를 치장하는 것이다. ● 떠구지 머리와 붉은색에 금박으로 뒤덮은 활옷은 예장용 차림으로서 조선시대 여성의 생에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시작이자 성장의 차림이다. 여인의 곁에서 다섯 마리의 나비가 자유롭게 노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와 연결되는 듯 「The Paradox of Beauty」 연작 중 붉은색 당의에 어여머리를 한 여인의 뒷태가 담긴 작품이 있다. 그녀의 곁에는 한 마리의 나비가 외로이 배회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퇴색한 여성성 또는 궁중 여인의 고독한 삶이 묻어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가체 금지령 이후에는 궁중 여인도 쪽머리를 하고 첩지를 올렸는데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금빛의 첩지를 착용한 여인의 뒷모습을 만날 수 있다. 금빛의 첩지는 비빈 이상, 왕후가 착용하는 첩지로 봉황이나 용 모양이 있다. 칠보, 비취 등 호화로운 머리 장식을 착용했음에도 궁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어깨를 덮은 금박과 동일한 당초문의 배경에서 암시할 수 있다. ● 작가는 간결한 배경으로 인물의 화려한 옷 색과 금박 무늬, 머리 장식에 이목을 끌었다. 앞모습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특정 대상을 지칭하지 않은 여인의 뒷모습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다수 여성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 또한 여성 작가로서 지난(至難)한 시간 동안 봉황, 용, 스란문, 길상문, 화문 장식을 수놓듯 그리며 과거부터 상징한 자신과 주변인에 대한 안녕과 행복을 바란 것이라고 여겨진다.

최윤하(메종드 윤)_파스텔 장신구 세트 1_화섬원단(양단), 메탈프레스, 자개, 담수진주, 인견사, 원석_가변설치_2024

21세기 여인의 소망을 담다 ● 조선시대 한복은 질박하지만 화사하고, 정숙하지만 생동하며 위의(威儀)가 있으되 딱딱하지 않은 복식 미를 이룩하였다. 은은한 색조와 강렬한 색상을 조화롭게 사용한 한복은 고유의 점잖음과 정숙함을 만들었다. ● 남성의 머리 장식은 종류와 디자인이 단조롭지만, 여성은 다양한 머리 장식이 발달하였고 머리를 빗는 과정부터 머리 모양을 완성하는 과정까지 미적 효과와 함께 예(禮)를 중시하였다. ● 쪽머리는 앞부분에는 장식할 수 없으므로 여러 가지 뒤꽂이를 꽂아 멋을 냈는데 뒤꽂이에는 연봉, 국화, 나비, 빗치개 등을 즐겨 사용하였다. 특히 빗치개는 윗부분은 은행잎과 같은 모양으로 밀기름을 머리에 발라 정리하거나 빗살 사이의 때를 제거하는 데 사용했다. 아랫부분은 길고 뾰족해 머리의 가르마를 타는 실용적 도구로 쓰였다. ● 댕기와 떨잠은 신체의 은폐된 부분이 많은 한복에 어우러져 착용자의 작은 동작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는 선율의 미, 율동미를 선보인다. ● 또한 우리의 선조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불릴 만큼 소색(素色)을 즐겨 입었고, 옥색이나 연분홍색 등 명도가 높은 색상을 사용하여 단정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러한 옷차림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는 의복에 생기를 주는 패식류를 의복에 착용하였다. 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재료는 사용하지 않았고 여성의 경우 향갑, 향낭, 침낭, 장도 등의 노리개를 달았다. 노리개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여성 전용 장신구로서 몸을 치장하기 위한 것으로 계절이나 행사. 의복의 색상과 어울리는 것을 옷고름이나 치마허리에 달아서 옷차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노리개와 같은 패식류는 대개 액을 막거나, 장수, 부귀, 다산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글귀로 당대 사람들의 삶과 염원을 담았다.

최윤하(메종드 윤)_청록색 장신구 세트_화섬원단(양단), 메탈프레스, 자개, 담수진주, 인견사, 원석_가변설치_2024

최윤하는 옛 선조의 미의식을 이어가며 21세기 현대인에게 전통 장신구의 매력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선시대 여성이 장신구를 패용할 수밖에 없었던 유교 사회의 관습을 이해하고 이를 대중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유행만을 좇지만은 않는다. 우리 고유의 멋과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전통을 유지한다는 타협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 작가는 꽃, 나무 등 자연물과 더불어 각종 사료에서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장신구 제작을 의뢰하는 자의 성별, 옷차림, 나이, 색상, 쓰임새 등을 고려해 유일무이한 공예품을 제작한다. ● 그는 자신이 만든 장신구를 소장한 자가 그 장신구를 착용했던 행복한 순간을 잊지 않길 바란다. 더불어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도 많은 이들이 우리의 장신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실용성을 띤 장신구를 만들고자 긴 시간 작업실을 지킨다. ■ 위아름

Vol.20241107p | 싱그러움을 그러모아 Gathering Vibranc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