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 2024_1106_수요일_05:30pm
지역작가공모지원사업 A-ARTIST Ⅴ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 수성구 무학로 180 Tel. +82.(0)53.668.1840 www.ssartpia.kr @ssartpia_official
알레프 1(Aleph 1)' - 무한을 향한 무상과 순환의 여정 ● 작가 권무형은 이번 개인전에서 '알레프 1(Aleph 1)'이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알레프는 수학에서 '기하급수적 무한(無限)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된다. 자연수의 집합, 가산 무한 집합처럼 주로 집합 이론을 수학적으로 풀이할 때 사용되는 개념어로 무한의 철학적 개념을 수학적으로 형식화한 용어다. 따라서 이 주제어는 권무형이 그간 작업 전반을 통해서 골몰해 온 인간, 자연 그리고 우주의 존재론과 같은 철학적 개념 아래 제시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 "한계가 없다"는 의미의 무한은 흔히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무한성(infinity), 무한대(∞)로 지칭되지만, 서구 세계관에서 신(神)에게만 해당되는 영역인 영원성(eternity)의 개념과 쌍둥이처럼 응대한다. 영원성 또한 시작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과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까닭에 선험(先驗)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이러한 주제를 권무형은 왜 꺼내 들었을까? ● 답은 서구의 존재론이기보다 동양의 존재론에서 도출된다. 서구의 존재론에서는 영원성을 불변의 존재로 추앙해 온 신의 위상과 통합하고 신과의 관계에서 본질과 인식을 논하는 형이상학적 탐구에 집중해 왔다면, 동양의 존재론에서는 영원성을 윤회와 같은 순환적 시간성이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삶과 연계한 무상(無常)의 세계관으로 이해해 왔다. 그뿐인가? 동양에서는 무한을 음양오행처럼 자연과 우주에 내재된 관계의 원리를 통해 본질은 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생각해 보라. 불교의 색즉시공(色即是空)은 우주의 모든 '색(현상, 물질)은 곧 공(고정된 실체와 본질이 없음)'임을 설파하면서 모든 것이 늘 변화하고 서로 인연에 의해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동양의 존재론적 사유는 모든 것은 생멸(生滅)하고 변화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같은 것이다. ● 권무형은 제행무상의 존재론적 사유를 작품 창작을 통해서 성찰한다. 그는 1996년 27세에 프랑스에 유학하게 되면서 유럽의 다양한 나라에서 실험했던 비디오, 퍼포먼스, 판화, 사진, 설치 등 다매체 창작을 두루 거치면서 도달한 지점은 인간 존재에 관한 깊은 성찰과 더불어 명상과 함께한 과정 예술이었다. 어린 시절의 특별한 임사체험이나 타자의 죽음을 맞이한 충격적 사건에 대한 강력한 트라우마가 추동한 이러한 존재론적 탐색은 현상 너머의 본질을 결코 고정된 무엇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에 이른다. ● 그는 생성소멸의 자연과 생로병사의 인간이라는 존재 의미 안에서 작업을 찾아 나서면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한다. 캔버스 위에 물풀을 입히고 고운 흙을 얹는 정교한 채움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그 위에 크고 작은 원형이나 다양한 기호 그리고 텍스트를 쓰고 올리는 무작위의 드로잉을 통한 채움의 과정과 다시 캔버스를 기울여 물감을 떨어내는 비움의 과정을 지속해서 반복한다. '채움-비움-채움'을 반복적으로 연쇄하는 과정을 거친 캔버스 위에는 어느덧 질료의 흔적으로 가득한 화면이 만들어진다.
태어나 생기를 품고 성장하고 이내 병들어 쇠약해 죽음에 이르는 인생처럼 그의 회화는 첫 물성의 개입과 성장 그리고 서서히 그것의 쇠퇴와 소멸을 맞이한다. 캔버스 위에 쓰거나 그린 후 다시 지운 물감층은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지거나 박락되면서 마치 인간의 피부에 생기는 주름처럼 시간의 흔적을 만든다. 또 어떤 경우에는 캔버스 위에 바른 흙이 수분을 완전히 잃어 그 위에 겹겹이 올린 두껍고 무거운 물감층이 서서히 혹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특별히 보존을 염두에 두지 않은 그의 작업이 지향하는 바는, 어떠한 의도된 결과물을 만드는 일에 있지 않고, 어떠한 깨달음을 얻어가는 명상의 과정이자, 정화되는 자신을 찾아가는 수행과 같은 일임을 명확히 한다. 그것은 권무형이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답이 없는 가운데 답을 지속해서 찾아가는 인간 숙명에 응답하는 것이기도 하다: "끝없이 변해가는 세상처럼 포기하지 않는 탐구의 자세가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 변해가는 세상에 응답하며 세월의 흐름에 자기 몸을 싣는 일! 그는 삭발한 머리카락과 수염이 자라는 변화의 과정을 매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2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행한 적이 있다. 그는 이러한 과정 중에 한 그루의 나무 형상으로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은 변화의 흐름을 머리카락에 투영해서 나무와 같은 자연과 비교해 본 셈이다. 또한 다수의 퍼포머를 동원해 '팔괘(八卦)'가 함유한 존재론의 의미를 되묻는 집단 퍼포먼스를 통해 그는 인간-자연-우주가 변화의 과정에서 만남을 지속하는 동양의 연기(緣起) 철학을 시각화한 바 있다.
권무형이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는 '알레프 1(Aleph 1)'이라는 주제는 향후 다음 전시가 '알레프 2'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즉 '무한'에 대한 서구적 인식을 음양오행, 색즉시공, 제행무상 그리고 연기처럼 동양적 사유를 통해 성찰하는 일을 다음 전시에서도 이어 나갈 것을 명확히 한다. 서구와 동양의 전통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지만, 오늘날의 그것은 이제 상통한다. 마치 동양의 연기 철학이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유를 전하는 것처럼, 서구의 양자역학 또한 모든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얽힘 현상'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양자역학에서 입자 상태가 확률적으로 결정된다는 비결정론이나 불확정성은 동양의 도가 철학에서 자연의 변화 원리나 무위(無爲)의 철학과 닮아있고, 양자역학에서 미시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전체적인 관점 또한 동양철학에서 일원론적 사유와 연동한다. 그뿐인가?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주체와 객체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철학은 선(禪) 철학에서 주관과 객관의 상응 관계와 공유한다. ● 이번 전시에서 야심 차게 선보이는 거대한 설치 작품은 유선형으로 깎은 크기가 제각기 다른 무수한 스티로폼 모듈 위에 석고, 돌가루, 풀을 혼합한 매재를 바른 후 그 위에 천연 펄프 죽을 도포해서 만든 것으로, 날개와 같은 다양한 크기의 모듈들을 커다란 도넛 모양의 둥그런 원을 그리듯 설치한 것이다. 내부의 서클을 그리는 작은 모듈과 외부의 서클을 만드는 큰 모듈의 만남은 그의 작업을 우주와 같은 거시 세계 속에서 거주하는 미시적 세계로서의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임을 은유한다. 이 작품에서 모듈 하나하나는 소우주로서의 인간이기도 하며, 자연 속 하잘것없는 이름 모를 들풀이기도 하다.
권무형에게 있어, 창작의 관심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탐구로 지속된다. 중력과 소리 혹은 삶과 죽음, 그리고 우주적 시간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도 그가 붙들어 쥐고 있는 화두가 있다. 나는 우주의 생명체 중 그저 미미한 한 존재일 따름이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 그래서 모든 존재는 그저 우주의 한 일부의 자격으로 위치하면서도 생성하고 소멸하는 거대한 생명의 순환 운동에 순연히 동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 권무형은 무한한 우주 속 미물의 인간 존재에 대해 명상하고 성찰하는 작업을 지속해 나간다. 따라서 이 거대한 설치 작업은 그의 작업이 분명 오브제의 결과물을 남기는 작업이되, 명상과 같은 수행 과정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빙하기에 이른다. ● 이처럼 권무형의 이번 전시는 우주의 순환 원리를 상징하는 기호처럼 만들어진 설치 작품이나 원형 혹은 반원의 서클을 담은 회화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시간 과정을 기록한 회화 통해서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되묻는다. ■ 김성호
Vol.20241106k | 권무형展 / KWONMOOHYOUNG / 權武亨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