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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페이스북_www.facebook.com/changhee.carla.lee 인스타그램_@changhee_carla_le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17일_11:00am~05:00pm
아르떼숲 Arteforesta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12 Tel +82 (0)2.722.5009
남는 건 늘 한 조각 이미지였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다른 이들과 함께 한 많은 순간이 사라졌다. 저장되지 않은 시간이 꿈처럼 느껴져 자주 슬펐다. 티베트어 '슐'은 거기에 있던 무언가가 남긴 자취를 뜻한다. 사람들이 수시로 그 위를 밟고 지나가서 땅에 남은 자취인 길도 슐이다. 이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의 건축물을 짓고자 했다. 길을 걷고, 경로를 기록하고,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스마트폰으로 동선을 기록하며 걷는 일을 규칙으로 삼았다. GPS는 작은 점들을 연결해 경로를 하나의 선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발걸음을 이어가면서도 마음은 한 풍경에 붙잡혀 종종 걸음을 멈추었고 그럴 때마다 폰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았다. 디지털 기록만으로는 사물 고유의 삶과 의미를 보여줄 수 없기에 잎을 줍기 시작했다. 사물을 채집하는 일에는 관계의 본질적 요소인 촉감이 깃들어 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줍기를 통해 사물의 무게를 느꼈다.
작업실로 돌아와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드로잉하고 점차 캔버스의 크기를 키워가며 유채로 그렸다. 최종 붓칠 아래에 이전의 붓칠이 가려지던 과거와 달리, 밑그림, 끄적임, 잘못 그린 선과 형태 등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했다. GPS 동선이 토대가 되니 작품이 점차 추상화되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사물과의 인상적인 만남은 설치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폰은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했다.
걷기를 중심으로 한 수행 프로젝트를 이끈 것은 불안감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 사라져 버리는 기억,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걷고 보고 느끼고 이를 기록하며 덜어내고자 했다. 내게 규칙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삶과 작업에서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바람이 컸기에 중단없이 이어갔다. 도심을 걷기로 선택하면서 마주친 뜻밖의 풍경들이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을 찾으며 자주 길을 잃었지만, 또 그 길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때의 기록과 생각, 감정들이 하나하나 쌓여 다양한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1년 6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현실에 더 굳건히 발을 디디게 된 동시에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또한, 삶과 작업을 꾸려가기 위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 ■ 이창희
Vol.20241106j | 이창희展 / LEECHANGHEE / 李昌熙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