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우민아트센터 주최 / 충청북도_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우민아트센터 WUMIN ART CENTER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북로 164 우민타워 B1 Tel. +82.(0)43.222.0357/223.0357 www.wuminartcenter.org
에딧, 다시 그린 오늘의 이야기 ● "사전에는 훌륭한 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만가지 단어들이 다 실려 있지만, 그 안에는 단 한 편의 시도 들어 있지 않다."1) ● 모든 순간을 누락 없이 축적하는 데이터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방대한 비물질 아카이브에서는 다양한 시대, 공간의 이야기와 이미지, 소리와 움직임이 데이터의 형태로 축적되어 종횡으로 펼쳐집니다. 텍스트, 이미지, 소리, 영상은 무한정 웹에 저장되고 뭐든 올라가면 그곳에 영원히 머무르며, 우리는 유튜브, 핀터레스트 등에서 클릭 몇 번으로 지나간 시대, 먼 곳과 낯선 문화권의 사물과 이미지, 정보와 지식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성과 역사성을 벗은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는 과거-현재, 이곳-저곳의 거리감을 압축하며 (채 겪어보지 않았고, 소유한 적 없었던) 빛바랜 순간들을 지금의 시점으로 가져옵니다. ●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존재하고 더는 새로운 것이 없기에 그것을 나의 취향대로 선별하는 감각이 수집, 저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누군가는 무수히 축적된 아카이브의 세상에서 준 에디터, 공급자가 되어 그 무엇을 건져 올려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고 아카이빙합니다. 영감 수집 부계정에 나열된 정방형 이미지들, 상황별 추천 플레이리스트, 매일, 매주 그날의 소식을 전해오는 웹진들. 그것은 완연한 생성이 아닌, 취향과 관점에 따른 조합과 재구성이자 의미와 감각을 갱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전시 《에딧 EDIT》은 이렇듯 데이터의 무한 수집과 저장, 편집과 재생산이 가능해진 오늘, 회화의 영역에서 창작의 의미 갱신이 가능하다면 어떤 양상일지 고민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전시 제목 에딧 EDIT은 '먹다, 낳다'라는 뜻의 라틴어 eder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에디팅, 에디토리얼 실천은 '가능성을 가진 재료를 모으고 주관적 사고 과정을 거쳐 재배열하여 의미를 형성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전시는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이미지, 서사의 세계에 무심히 손을 뻗어 다시 톺아보며 자신이 마주한 오늘을 그리는 창작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납작하고 평평한 회화면 위에 이미지/이야기 파편을 여러 겹의 레이어로 쌓아내고 수평으로 나열하며 나에게 다가온 것들을 엮고 다시 쓰는 움직임을 상상해봅니다. 익숙함과 명확함, 낯섦과 모호함 사이에서 새로운 이미지와 서사를 구축하기. 그것은 단 한 편의 시도 들어 있지 않는 사전으로부터 단어를 골라내어 새로운 시를 쓰는 과정이자, 별의 자리를 이어 별자리를 그리는 아포페니아(apopenia)2)적 창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전시에는 회화 작가 6인(김도연, 신선우, 왕선정, 우정수, 조민아, 최수련)이 참여합니다. 이들은 1980-90년대에 태어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이미지 소비에서 생산으로 전이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겪고 데이터에 대한 무한한 접근과 선택, 해석의 자유를 누린 세대에 속합니다. 더불어 대중문화와 서브컬처, 게임과 만화 등 다양한 시각문화 이미지를 접하며 성장했습니다. 작가들은 과거의 미술 도상이나 형식, 이야기, 대중문화적 요소, 이국적 문화 코드, 또는 세계 바깥에서 접한 이미지, 기억, 이야기 파편들을 모아 지금, 나의 시점에서 다시 보고, 읽고, 쓰고, 그리며 새로운 알레고리/내러티브를 형성합니다.
우정수는 중세의 삽화, 미술사의 주요 회화, 소설과 만화의 캐릭터 등 다양한 시대의 시각 이미지와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 맥락을 해체, 재구성하여 알레고리적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듭니다. 작가는 서로 다른 시대, 문화 산물로부터 접한 이미지,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며 불안과 강박, 우울과 같은 도시인의 심리적 징후를 회화로 그립니다. 과거의 문화 산물이나 하위문화의 이미지 레퍼런스를 차용할 때 이미지 발생 시점과 차용 시점의 간격으로 인해 미세하게 발생하는 의미와 감각의 차연,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상상력의 틈새에 서서 '다시 쓰기, 다시 그리기'를 시도합니다. 그의 작업에서 여러 이미지 소스는 연속, 중첩, 파편화, 반복 배치되어 이미지 시퀀스를 생성하고 작가는 특유의 드로잉을 여러 레이어로 더하며 이미지 서사를 쌓고 소거합니다. 작가는 기존의 이미지를 반복, 변형하며 냉소적이고도 유머러스하게 도시에 사는 예술가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을 드러냅니다.
왕선정은 삶에서 경험한 사건과 감정을 그립니다. 기독교의 도상이나 신화, 문학의 모티프나 상징을 활용하여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 차원으로 전이합니다. 작가는 가정폭력과 같이 세상을 살며 마주하는 비극과 불행을 우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연출합니다. 여러 모티브를 활용하고, 강렬한 색채와 일그러진 형상과 구도로 인간 군상을 그리며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 나약함과 탐욕, 무모함을 은유적으로 제시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제목과 화면 속 장면, 주조를 이루는 색채와 인물/사건이 표현된 방식 사이의 미묘한 간극은 관람자 각자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는 실마리를 형성합니다. 작가는 과거의 도상을 경유해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그리며 내가, 그리고 우리가 맞는 일상의 불행을 포용하고 승화합니다.
최수련은 오늘날 동양풍 이미지가 제시되고 인식되는 방식과 글과 그림이 공존하는 동양 전통 회화의 구조를 흥미롭게 보며 작업합니다. 작가는 귀신이 등장하는 1980년대 영화 장면을 한문과 영문 자막으로 구성된 저해상도의 이미지로 다시 그리거나, 기이한 이야기를 담은 지괴소설을 따라 그립니다, 화면 속 이야기에서는 선인과 악인의 경계가 모호하고, 평범한 사람이 이유 없이 죽음을 맞게 되며, 이야기의 끝에는 웃음과 허무함, 썰렁함이 뒤따릅니다.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이 통하지 않고 서구의 근대성과 합리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조리한 세계지만, 지금도 현실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익숙하지 않은 고전 경구를 학생이 공부하듯 어설프게 받아쓰고, 한자 독음과 한글 뜻풀이, 그리고 동양의 고전 화법의 예시를 여러 레이어로 구성합니다. 대중문화에서 익숙하게 소비되거나 고전의 형태로 전승된 텍스트를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볼 때 파생되는 익숙함과 낯섦, 진지함과 엉성함, 우스움과 허무함의 정서를 오가며 서구적 근대화를 겪은 동양인 내면의 오리엔탈리즘적 태도를 반추합니다.
김도연은 개인의 경험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질병을 앓으며 분명 몸에서 어떤 증상이 발현되나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했던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이미지로 풀어가거나 타인에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작가는 인간을 압도하는 풍경과 자연의 동식물들, 동서양의 전설과 설화, 신화와 같이 오랜 세월 전해져 온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작업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때로는 안온한 낙원과 같은 공간에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거나, 인간의 눈을 가진 동물들이 모여 삶을 노래한다. 환상 같던 경험이 새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머무르게 된 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업보에 관한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우리 현실에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기도 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것들, 자기에게로 불현듯 다가오는 감각과 이야기가 내면에 남기는 모호한 잔상을 화면에 옮겨 관람자와 공유합니다. 왕선정 작가가 화면에 뭉쳐진 색채로부터 인물을 발견한다면, 김도연 작가는 비어 있는 장지에 자연히 생기는 주름에서 형상을 찾아 그려냅니다. 화면의 복잡한 형상과 구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꿈의 장면처럼 흐르고 관람자의 해석에 열려 있습니다.
조민아는 일상에서 상황에 따라 태도와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양상, 공생과 홀로 살기, 조화와 부조화, 갈등과 연대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관계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작가는 같은 시대를 살더라도 우리 각자는 오늘의 상황을 서로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서로 다르게 체감하는 시대와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누군가'를 그린다고 말합니다. 인물과 모티브의 선택과 구성, 배치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의 회화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특정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는 인물과 상징들이 복합적인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면 옆에 장면, 이야기 옆에 이야기가 연달아 펼쳐져 이미지 시퀸스를 이루는데, 이러한 이미지 다발은 그 자체로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각자의 속도와 시차로 오늘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현실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을 반영합니다. 작가는 일상이나 영화에서 얻은 모티프를 참조하되, 옛날 기록화나 책의 삽화처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직접적인 모티브를 화면 안에 구성합니다. 나아가 과거의 종교화나 기록화처럼 여러 상황을 동시다발적이고, 다시점으로 구성하며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현실에 대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신선우는 현대와 문화적 전통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복잡한 사회현실을 은유합니다. 그의 회화에서 존재하는 시각 요소들은 인터넷을 통해 접속한 다른 시공간의 문화와 역사로부터 끌어온 이미지 조각들입니다. "유튜브와 인터넷 전반 덕분에 가능해진 시간여행에서 결정적인 점은, 사람들이 전혀 뒤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시공간 아카이브 평면에서 수평적으로, 옆으로 움직인다."3)는 누군가의 말처럼, 작가는 데이터 세상에서 시공간의 간격을 극복하고 다른 문화를 차용할 수 있게 된 오늘의 현실에 주목합니다. 시차 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접속할 수 있기에 가능한, 중심과 주변, 다수자와 소수자의 위계 구도가 흐려진 세계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동질화, 혼종, 오역의 현상들을 살펴보고 화면 안에 구성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스케치나 출사 사진, 웹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참조하되, 포토샵으로 이미지 속 인물의 인종이나 의상, 형태를 변형하여 작업에 활용합니다. 화면에는 여러 국적, 인종, 문화의 인물들이, 의미심장한 상황 속에서 나타납니다. 작가는 관람자 각자가 기존에 가진 정보와 가치관, 상황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간대와 문화적 의미 사이를 횡단하며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를 제안합니다. ● 여섯 작가의 작업들에는 중세의 삽화 드로잉이나 대중문화 이미지나 전설과 신화, 고전 매체의 이야기 등 다양한 레퍼런스가 작가적 시점에서 차용되고 각색되어 화면에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개의 캔버스가 모여 커다란 화면 하나를 이루고, 파편적 이미지들이 수직으로 겹쳐지거나 수평으로 나열되고, 외부로부터 차용된 것들은 작가의 재구성과 재해석을 거쳐 다층적인 이미지로 변모합니다. 곧 다시 쓰고 그리며 자기화하는 그 시간과 과정이 여섯 작가의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존재한 것으로부터 시작했으나 존재한 적 없던 이미지와 이야기. 전시는 관람자에게 익숙하고도 낯선 화면에 접속해 이야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화면이 내포한 삶의 현재적 양상을 살피며 작가의 시선과 시간을 상상해보기를 제안합니다. ■ 우민아트센터
* 각주 1) 브루노 무나리, 「판타지아」, 『에디토리얼 씽킹』(서울: 터틀넥프레스, 2023)에서 재인용 2) 아포페니아는 서로 무관한 현상들 사이에 의미와 규칙, 연관성을 찾아내는 인식방식을 가리킨다. 3) 사이먼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서울: 작업실유령, 2020)
Vol.20241102y | 에딧 EDI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