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ymorph the Night

방소윤展 / BANGSOYUN / 房昭潤 / painting   2024_1031 ▶ 2024_1130 / 일,월요일 휴관

방소윤_Polymorph the Night展_스페이스 소_202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스페이스 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소 SPACE SO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42(부암동) Tel. +82.(0)2.322.0064 www.spaceso.kr @space__so/

어둠이 두터운 밤. 두 발끝에 바로 맞닿아, 길게 늘어진 물결이 있을 것이다. ● 다만 멈춘 발길을 다시 재촉하지 못한 것은 집요한 눈길이 검은 허공을 무자비하게 뒤진다 한들 수면 위 가는 투사 한 자락 길어내지 못하게 하는 지독한 밤 때문이다. 눈이 먼 채로, 서서 망설인다. 굳어 버려야 하나. 이토록 지루한 공황에서 정지하여 끝을 맺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결말이 아닌 것 같다. 좀 더 유려한 태도로 바꾼다. 눈을 감는다. 다르지 않은 풍경. 눈을 뜨고서 보았던 것이 조금의 다름도 없이 보이는 것을 경험한다. 아니다. 이제는 물결을 볼 수 있고, 물속으로 발도 다리도 집어넣을 것이다. 그리고 허리도, 어깨도, 정수리도. 그러다 숨이 너무 달아 참을 수 없게 되면, 아니면 사방에서 너무 많이 짓눌러 견디기 힘들어져 버리면. 그때 이 몸을 혼신으로 당겨 뒤집어 까고, 다른 몸이 되려 한다. ● '폴리모프(polymorph)'는 주어진 하나의 형체에서 벗어나 그 어떤 모습으로도 자유롭게 변하거나 변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마법 중 하나이다. 전설의 마법사 또는 일부 엘프들만이 행할 수 있었던 매우 강력한 고대 마법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이제는 마법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이들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망각의 시대에 와서 구태여 고대의 주술을 깊은 흙 속에서 불러내려 하는 이도 있다. ● 방소윤은 분명 무엇인지 모를 무언가를 변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방소윤_The voice that calls 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24 방소윤_Untitled_황동_5×4×2.5cm_2024
방소윤_The voice that calls 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24

먼저 가상공간의 층위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가상 세계는 주체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공간과 완전히 통제를 벗어난 공간으로 나뉜다. 통제를 벗어난 가상공간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킹 공간이다. 동시대 사회를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사회의 구성원이며 디지털 계정으로 자기 등록을 마친 인류라면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 수많은 불특정 다수가 데이터를 소비하고 생산하기 때문에 개인이 정보를 정제할 수 없다. 또한 무심코 행한 클릭과 스크롤을 취합하고 기록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개인이 경험하는 세계를 무의식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공간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이 공간은 사용자, 즉 디지털상의 인류에게 아주 탱글탱글하고, 친절하다. ● 반대로 통제할 수 있는 가상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다. 특수한 목적과 의지를 가진 이들이 이 공간의 언어와 규율을 습득해야만 이곳에 도달할 수 있다. 처음 이 공간에 입장해 경험하는 것은 건조한 기능적 틀에 갇힌 허공(void)일 것이다. 모든 데이터와 정보는 개인의 주체적인 의지와 선택, 그리고 수행에 따라 생성되고 조작된다. 이 두 공간을 교차하며 존재하는 방소윤은 자신이 한순간 피조물이 될 수도, 조물주가 될 수도 있음을 직감한다.

방소윤_Polymorph the Night展_스페이스 소_2024

방소윤은 SNS 공간에서 원초적인 욕망과 감정의 속도에 맞춰 이미지를 자유롭게 취사선택하고 이를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로 끌어와 소스(source)의 지위를 부여한다. 그가 여러 문화적 맥락으로 겹겹이 중첩된 디지털 이미지를 내재화하고, 아주 단순한 특징들에 따라 이미지를 심상에서, 그리고 소프트웨어에서 완전히 분해하고 나면, 개별의 이미지 조각들이 내포하는 서사와 맥락은 선명해진다. 조각의 의미값이 내면의 욕망과 감정에 부합할 때, 그는 이를 기반으로 하는 특정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된다.

방소윤_The portal in obscur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5×91cm_2024

무의식이 현실의 조각을 재료로 삼아 꿈을 설계하듯이, 방소윤은 조각난 이미지 소스들을 재료로 '블렌더(Blender)' 상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재구성된 세계의 풍경은 원본 이미지에서의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그것이 지닌 속성 또는 그로 인한 분위기의 일부만을 편집해 보여준다. 이로써 그가 창조한 신세계를 경험하는 이들은 강력한 기시감과 낯설음을 동시에 감각하게 된다. 기성의 현실을 최적의 효율로 흉내 내기(mimic) 위한 표현적 장치인 미세 폴리곤(polygon) 구조와 고화질 디지털 텍스처는 가상의 풍경에 정도를 넘어선 자연스러움을 부여한다. 인식은 기괴한 거부감과 매력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는 마치 이 생경한 광경을 처음 마주한 듯 포착하여 재현한다.

방소윤_Another me broken into scal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5×127.5cm_2024

방소윤은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하지 않고 '바라본다'고 서술한다. 제 삼자적 관점으로 직접 생성한 세계에 접근하는 독특한 태도는 세계를 포착하여 만든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그는 AI 기술 기반 이미지 편집 플랫폼인 '클립드롭(Clip Drop)'에 3D 필드에서 만들어 낸 인물을 '재해석(reimagine)'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디지털 데이터 기반의 사고(intelligence)는 탈(mask)과 얼굴을 분리하여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Another me broken into scales›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재해석의 과정을 지나자 탈과 얼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탈의 표면을 이루는 요소는 피부로, 눈동자로, 배경으로 이식되었다. 재해석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디지털 사고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장면에 더 큰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인간적이지 못한 결과물을 제시한다. 복수의 재해석으로 생성된 2세대 이미지들의 특징은 대형 회화 작품 ‹Have you been seeing me as I have been seeing you?›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텍스쳐들은 완전히 길을 잃고, 대상의 경계도 모호해져 버린다. 디지털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동안, 방소윤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의 재해석을 수행한다. 원본 이미지를 두고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물감 드로잉을 계속해서 그려내는데, 이는 물질이 운반해야 할 비물질적 특성을 손끝으로 의식해 내는 동물적 훈련에 가깝다.

방소윤_Hidden portal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27.5cm_2024 방소윤_Red-eyed cau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4.5×27.5cm_2024 방소윤_Have you been seeing me as I have been seeing you?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5×175cm_2024

가상과 현실의 층위에서 생성된 수많은 돌연변이 이미지가 재해석의 레이스를 마친 뒤 도착점에 한데 모이고 나면, 작가는 이 집합들을 바라본다. 집합들 속에 존재하는 여러 눈동자들 또한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이 시점에 방소윤의 세계는 온갖 낯설고 불편한 비인간적인 감각들의 침투에 무참히 진동하다가, 망가뜨려진다. 불순물과도 같은 괴이한 시선들에 견고히 조직되어 있던 규칙, 기준, 욕망, 본능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방소윤_Four legged wi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40.5cm_2024
방소윤_Polymorph the Night展_스페이스 소_2024

그러자 그는 새로운 정신의 세계를 입고, 다시 태어난다. 폴리모프! 이제 낡은 무의식을, 껍데기를 다 벗어내고 기이함, 즐거움, 신비로움, 불안함, 음울함 속에 깊이 잠긴 채 새롭고 아름다운 혼종적 초상을 그려낼 수 있다. ■ 최수지

Vol.20241031l | 방소윤展 / BANGSOYUN / 房昭潤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