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1122_금요일_03:00pm
참여작가 강운_신도원_임남진_정송규 정정주_조영대_최정윤_한정식
주최,기획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5:3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2~6 www.muan.go.kr/museum @muan_museum_of_art
모더니즘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던 추상미술이 요즘 소장품을 중심으로 국공립미술관이나 유수의 사립미술관 전시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재고해보는 자리로서의 역할이 가장 큰 동기로 여겨지는데, 그만큼 우리 미술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가 두터워지면서 추상미술 또한 고비를 이루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는 드라마틱한 사실을 반영해준다. 다원화된 요즘의 추상미술의 현상은 구상미술이 그래왔던 것처럼 모더니즘의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변화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 '抽象'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물 또는 개념 따위의 개별자들로부터 공통점을 파악하고 추려내는 것'이다. 고대 중국 전국시대인 기원전 3세기경에 쓰여진 '한비자(韓非子)'에는 "견골상상(見骨想象)"이라는 말이 나온다. '코끼리의 뼈를 보고 코끼리를 그려본다.'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한문에서 유래한 '抽象'의 의미에는 '알 수 없는 모호한, 혹은 비가시적인 것들을 상상을 더해 유추해내어 상징적 이미지로 굳혀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어의 'abstract'란 말은 라틴어 'abs-trahere'에서 유래된 말로 그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서 핵심을 추출하여 요약하고 응축시킨다'는 뜻이다. ● 동양이나 서양에 나타난 추상의 어원적 의미에는 모두 대상으로부터 본질적인 것, 명료한 것을 응축하여 끌어내는 것과 비가시적인 세계를 상징화하여 나타내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추상'과 관련된 활동은 어떤 사건이나 물질에 대한 사변적인 태도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이성적 𐄁 논리적 태도에 가깝다. 다시 말해 추상화(抽象化) 과정에는 오랜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왔던 남성적인 로고스(logos)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의 현대미술은 전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의 앵포르멜 추상형식이 거의 동시에 한국으로 유입되어 새로운 현대적 미술형식으로 공존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이 '서구의 추상미술의 영향을 받아 출발했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접근이지 않을까?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해왔던 추상의 어원적 의미, 동양사상의 전통과 정체성 그리고 전후의 여러 심리적 요인들과 산업사회로의 진입으로 인해 변화된 시각적 현대성이 갈등과 기대로 교차하는 속에서 우리의 추상미술이 배태되었다는 점에 좀 더 세심하게 주목해야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흔히 50년대 후반의 앵포르멜-60년대 기하하학적 추상-70년대에서 80년대를 주름잡던 모노크롬 양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자리 잡은 한국의 추상미술의 계보를 좀 더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세기말의 우울과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질서 위에 새로운 정신적 이성적 절대적 논리를 세우고 테크노피아를 열망하는 근대적 주체로의 욕망을 공격적으로 나타내며 양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고 새로운 주체로 서기 위한 실존적 이론과 모더니즘의 확장을 위해 동양의 사의적 태도의 전통과 철학을 내포하는 이러한 추상미술의 역사가 타자를 배제하는 가부장적 계보 위에 세워졌음을 비판하면서 과연 동시대의 추상이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가능성을 볼 수 있을까? ● 2024년 오승우미술관 마지막 기획전인 『抽象, abstract, 추상』展은 이처럼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로 확장하고 있는 동시대 추상미술의 양상이 어떻게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운이 그리는 형상과 색들은 이원적이지만 중의적이고 이내 합일을 이루어 궁극에는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작가의 시선은 구름이나 물방울, 공기와 같이 항상성보다는 가변적인 연약한 대상에 머물러 있으며 상처나 아픈 기억들이 작가로부터 출발하여 이러한 대상들에 투사되고 종내는 관조와 사유, 치유의 방식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회화에서 추상화(抽象化)의 과정은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권력적인 로고스로부터가 아니라 가장 여린 모습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대상에 잠기면서 점차 자신의 몸에 물들어가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파랑」 연작은 여수의 장도라는 섬에서 진행된 레지던스기간 동안에 그려진 것이다. 이 연작은 3백여 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여수 바다의 색인 동시에 날씨와 바람에 따라 파도가 일고 포말을 튕기며 천태만상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하나의 붓으로 그린 점이나 획이 점차 번져나가는 기법으로 그려낸 추상화이다.
신도원의 「자연생성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몇 겹의 드로잉으로 그려왔으며 컴퓨터를 이용하여 3D 미디어회화로 변환시킨 뒤 미디어아트로 완성시켰다. 구름 생성기, 코끼리, 로봇토끼, 식물이나 알 수 없는 기호와 텍스트 등이 그려진 그의 평면 드로잉은 1초에 30여 작품이 유영하듯 입체적으로 구현된다. 매우 거친 선으로 그려진 형상들은 마치 카오스적인 세계에서 이제 하나씩 생성되고 있는 듯한 원시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이 평등하게 공존하고 있는 문명 이전의 순수한 생태계를 보여준다.
임남진의 「연서, 戀書」, 「오래된 편지」, 「든 자리 난 자리」 연작들은 그녀를 널리 알려지게 했던 세밀한 불화형식의 풍속화 시리즈 이후 추상형식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며 최근에 제작된 추상 작품들이다. 특히 「Still Life_연서(戀書)」시리즈는 그녀가 감로탱화에서 보여준 삶의 끝없는 이야기를 이 고스란히 접은 상징적인 쪽지 안에 감춘 채 비단 바탕에 은은하게 스며드는 분채나 주, 녹청, 군청의 깊이를 가진 채색의 색면기법으로 대체된 추상화이다. 그녀는 자신의 추상화에 대해 "지나간 시간과 사연들이 얽히고설켜서 가장 밑바닥에 놓인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며,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려는 욕망의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정송규의 추상화는 조각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랜 조형적 실험을 거친 후에 오방색의 색면들이 단색조의 색면이나 편린으로 쪼개져서 기하학적 요소인 작은 점으로 변화되었다. 처음에는 색면 속에 어머니의 초상이나 장독대 같은 형상들을 품었으나 점차 미니멀한 추상형식으로 변화되었다. 흑백 도트로 이루어진 후기 추상화에서는 수묵화처럼 넉넉한 여백이 존재하며 엄격한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살아남아 호남지역 1세대 여성 추상작가로서 어렵게 뿌리를 내린 작가 내면의 강한 기조와 자유로운 환희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정정주는 건축의 창과 파사드, 기둥, 계단 등의 구조물를 통해 만들어지는 빛의 움직임과 형태를 입체적인 빛의 구조로 추상화하여 시각과 응시의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소외나 갈등과 같은 인간의 심리적 요소부터 초월적 존재인 숭고에 이르기까지 그 실재와 상징적 의미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작가이다. 「metaphysical star」는 led의 인공 빛이 직교하며 만들어내는 색으로 빛나는 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차갑고 견고한 금속 바리케이트의 이미지를 통해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풍부한 자연과 태양으로 가득한 남도의 색으로 채워진 빛은 역사의 상처와 갈등을 미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있다.
조영대의 회화는 어머니의 보자기를 모티브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추상화이면서 동시에 정물화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추상회화에 보자기라는 정물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모란디 (Giorgio Morrand)의 정물화를 오랫동안 연구했으며, 선과 색과 빛이 여백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대상의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내는가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그의 「어머니의 보자기」라는 추상화는 적당한 마띠에르가 있는 그림의 표면과 물감을 계속해서 쌓아올려 형성되는 두께를 지닌 입체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어머니의 보자기에 표현된 선과 색면은 그가 이전에 풍경화나 들꽃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인상파적인 빛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들인데 이러한 사실은 추상이 인상파에 나타난 빛의 거친 입자 덩어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원론적인 회화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어머니의 보자기-선」시리즈는 단색조 바탕에 그림의 표면을 도구로 깊게 파내면서 형성되는 수직의 서정적인 선들이 달리고 있는데 이것은 바탕에 깔려 있는 깊이가 검은색 혹은 푸른색으로 표면 위로 올라온 것들이다. 두터운 물감의 깊은 바탕으로부터 살갗으로 올라오는 선의 본질은 모든 인간의 그리움과 슬픔의 원천이자 근원인 모성성을 나타내고 있다.
최정윤의 설치작품인 「The flesh of passage」는 소금으로 만든 흰 검 무리들이 세워져 있고 파랑과 보라색을 띠고 있는 소금 꽃이 그 가운데 서 있다. 적을 공격하는 무기로서의 쇠검이 소금이라는 물질로 바뀌면서 결과적으로 사람의 목을 베거나 몸을 찌르는 검의 칼머리와 칼날은 바스러져 그 공격성을 잃어버렸다. 작가는 검을 쉽게 부서지고 변화하는 소금이라는 물질로 칼을 대체하면서 칼이 의미하는 무기, 전쟁, 권력, 종교, 역사와 같은 남근적 상징들을 흔들어 무화시킨다. 그는 또한 꽃이라는 또 다른 대상을 통해 화려한 꽃을 발화시키는 남근적 생식기의 근원적 욕망에 주목한다. 유기체적 남근 역시 자연의 진화를 생각해본다면 타자를 정복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리비도적 욕망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소금으로 된 검과 꽃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남근적 의미를 대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감추어진 속성을 대의적인 비유로 나타내고 있다. 결국 인간과 자연의 무의식적 욕망을 다루고 본질적인 속성을 끌어내기 위해 대상을 소금으로 변화시킨 것은 최정윤의 독특한 추상화적 코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정식은 지표가 뚜렷한 사진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존재의 본질과 근원의 문제로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에 의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고요'의 미학적 방식이기도 하는데, 바로 풍경의 추상화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선택하는 풍경은 강원도 원주, 경기도 가평, 황악산 직지사 등의 구체적인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공간을 특정할 수 있는 확실한 지표를 그는 의도적으로 지워버림으로써 추상화시킨다. 물, 바람, 나뭇잎, 공기, 돌, 파도와 같은 자연의 흐름은 셔터와 함께 이미 과거 시공의 세계로 죽음을 맞이하고 고요와 적막, 다시 말해 동양 철학의 바탕인 공(空)의 세계로 회귀한다. 동양철학에서 공의 의미는 '비어 있는 것',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슬픔의 근원을 마주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추상화된 사진에 나타난 '고요'의 미학은 이 근원을 마주하게 만드는 갈라진 틈-바르트가 이야기한 푼크툼의 세계-을 이야기하고 있다. ■ 박현화
추상미술은 기존의 재현이라는 조형 문법을 깨뜨렸다. 그것은 조형 언어 자체, 즉 기표만이 존재하는 기호로 출발했다. 모든 기호가 그렇듯 추상미술의 기표 뒤에도 기의가 숨어있다. 이는 끝없이 의미를 생성하고 소비하고자 하는 인간의 존재적 특성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색채와 형태 그 자체만을 보여주고 그것만이 전부일 것 같은 추상화에서도 우리는 기필코 기의를 찾는다. 추상 1세대인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두 작가의 작품에서도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당대의 맥락 속에서 조형 언어 뒤의 기의를 추적했다. ● 문화라고 하는 의미의 거미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운명인 우리에게 추상미술은 어쩌면 구상미술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채로운 의미의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구상미술처럼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다가오는 추상미술은 다양한 의미의 층을 통해서 때론 명상 속으로, 때론 음악적 울림 속으로, 때론 강한 에너지장 속으로, 때론 비극적 슬픔 속으로, 때론 평온한 심적 균형감 속으로, 때론 따스한 위로와 치유 속으로 인도하는 등 우리에게 기나긴 여운을 안겨준다.(전시서문 「추상주의자의 조용한 초대, 그리고 긴 ....... 여운」에서 발췌됨.) ■ 김승환
Vol.20241029k | 抽象, abstract, 추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