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유랑 - Contraction and Expansion

살누스_송하영_이한나_정성진展   2024_1027 ▶ 2024_110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주최,기획 / 최정수

관람시간 / 10:00am~06:00pm

아트스페이스 인 ART SPACE IN 인천 연수구 아카데미로 119(송도동 12-1번지)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교수회관(2호관) 1층 Tel. +82.(0)32.835.8560 finearts.inu.ac.kr

과거 없는 미래의 현재 ● 국토가 좁아서일까, 우리의 땅에 대한 욕망은 매우 크다. 반도에 분단까지 더해 거의 섬과 같은 형국에다가, 산악 지형 비중이 높아서 거주할 수 있는 땅이 넓지도 않다. 이 전시의 소재인 송도도 그런 이유로 확장된 땅이다. 뻘을 매립해 생겨난 이 도시는 다른 신도시보다 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됐다. 존 로크가 말한 '타블라 라사(tabula rasa)', 즉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석판' 같은 곳이다. 경험주의 철학자는 이를 마음과 비교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대지에서 가능하다면, 유럽의 호전적인 백인이 도달하기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을 '타블라 라사'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 전시에 참여한 네 작가는 도시계획가의 비전 속에 제외되어 있었던 것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하나 찾아내며 그것을 현재화한다. 미래에 저당 잡혀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그들은 꿈과 무의식, 개인적 집단적 기억, 그리고 욕망과 전망을 작품에 두루 포함시킨다. ● 유랑의 대상인 송도의 특징은 과거가 없는 미래이며, 그 결과 현재가 모호하다는 특징이 있다. 전시장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넓게 조성된 차로 안쪽 인도에는 걷는 사람이 거의 안 보이는, 선이 아니라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추상적 공간이다. '추상적 공간은 구체적 자리'(조너선 스미스)에 비해 사회가 규정하는 상징계의 좌표가 결정적이다. 권력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보다 투명하게 위치짓고자 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자와 보는 자의 비대칭 관계 속에서 투명화 전략은 역풍을 맞는다. 뻘밭이 '첨단산업, 관광, 레저, 주거 기능을 포함한 종합 개발계획'(인천 경제청)을 가지고 여의도 17배 면적의 '글로벌 자유경제구역'으로 탄생된지는 20여년 밖에 안된다. 근대는 강력한 도시화를 통해 발전하기에 밀집은 상시적 조건이 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거의 폐허에서 시작된 개발은 일상어에서 '건설적이다'라는 표현을 긍정어로 만들었다. 하지만 개발지상주의라는 근대적 프로젝트가 절대화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 인간과 자연은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완전한 청사진 안에서 살 수만은 없다. [송도유랑] 전의 작품들은 개발을 통해 생겨나는 것과 그에 반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전시 부제인 'Contraction and Expansion_수축과 팽창'(기획; 최정수)은 한 방향이 아니라 두 방향을 보는 역설적 시각을 견지한다. 발전주의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지만, 그 중 하나로 기대와 결과에 대한 차이를 지적하고 싶다. 미래도시인 송도는 기업이나 교육기관 등 그자체로 미래를 약속하는 기관들이 자리한다. 미술 또한 그것이 '현대미술'이 된 이후, 미래 그자체로 간주되었다. 미래에 과도하게 쏠린 전망은 근대의 특징이다.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지나간 미래]에서 18세기 이후의 역사서술에서 '새로운 시대'라는 개념이 빈번히 사용되었다고 한다. 코젤렉은 어떠한 시간이 새로운 시대로, 즉 '근대'로 경험될수록 미래의 도전은 점점 더 커졌다고 말한다. ● 이질적 경험을 생산하는 시간 간격의 단축이나 경험들을 소진시키는 변화의 가속은 근대를 특징짓게 되었다. 급격한 근대화가 이루어진 나라의 경우 경험과 기대의 분리 정도가 더욱 크다. 코젤렉이 말하듯이 미래의 세계는 현재나 과거의 세계와는 질적으로 다르리라는 확신 속에서 미래의 몫이 불균형적으로 커졌다. 모더니즘을 필두로 해서, 근대부터 많아지는 '--주의'라는 개념들은 모두 인간의 경험보다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기대로 구성된다. 미래를 앞서 간취한 송도에 대한 이 전시 작품들은 시간적 경험 리듬의 변화로 표현되고 있다. 바다와 갯벌이 있던 장소는 오랫동안 자연의 순환이 지배했고, 인간도 그와 더불어 살았을 것이다. 그때도 세계는 변화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의 경험과 새로운 기대 사이의 간격이 전개된 생활세계를 파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근대의 시간은 모든 것을 유동적으로 만들었으며, 변화는 물신화되었다. 송도의 경우 인간의 경험보다 기대가 큰 현대적 시간구조의 원칙을 가진다. ● 경험은 땅에 스며든 모든 것들과 함께 무시된다. [지나간 미래]에 의하면 어떤 시대의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경험을 소화해내는 가운데 미래의 비중이 커진다면, 그 세계는 새로운 경험을 모으고 점점 빨라지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에게 점점 짧은 시간 간격을 강요하는 기술적, 상업적으로 고도로 형식화된 세계이다. 미래의 청사진에 대한 일방적 신념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앞으로 쭉 나아가고자 한다. 재구성된 미래는 중립적이거나 만인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프로젝트의 추진자에게 유리하다. 근대의 계몽적 프로젝트는 독재적이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좌우익의 대표적 독재자들도 나름 심미적이었다. 그들은 고전주의 미학의 한 켠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바 있듯이, 근대 또한 강력한 지배적 코드로 총체화시키려는 야망에 추동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후의 폐허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세워진 국제주의 양식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힘을 얻었다. [송도 유랑]전은 예술 특유의 '거리두기'를 통해 발전지상주의 이면과 이전을 포함한 심리적 지도그리기를 시도한다.

살누스_쌍둥이 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0×300cm_2024

살누스의 [쌍둥이 섬]은 원래 저녁 노을 가득할 해안가 풍경이어야 했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핏빛 화면 속 여기저기서 다치고 죽고 놀라는 미지의 생명체는 송도의 간척사업이 진행될 당시 원래 그곳에 살았을 생명체의 관점으로 본 경악스러운 풍경이다. 상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다를 바 없어 섬뜩하다. 실제로 그곳은 한국 전쟁 후 미군과 영국군의 주둔지였고, 송도라는 명칭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한다. 제국의 그늘 아래서 '가장 힘 있는 자에 붙는' 전략으로 발전을 이끌어온 남한 사회에서 전쟁은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엄청나다. 인간과 자연 또한 그러한 쓰레기가 된다. 한국 뿐 아니라 전후를 겪은 모든 나라가 추진한 근대의 프로젝트는 단숨에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과거를 깔아뭉개는 과정이었다. 지축을 흔드는 폭발, 진동, 화염, 연기 등에 고통받았던 것이 단지 갯벌의 생명체들이었겠는가. 발전이라는 극한의 경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에는 자연스러운 생명체가 아닌 기형적 괴물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은 발전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돌고돌아 인간에게 오는 것이 (재)개발의 경제학이다.

송하영_Supernova & Highl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163cm×4_2024
송하영_Supernova & Highl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163cm_2024

송하영의 [Supernova & Highlight]는 마치 색색의 포스트잇 메모지를 붙여 놓은 듯한 광경이지만, 그리드로 구획된 화면 하나하나를 다 색칠한 그림이다. 특히 전시장 모서리를 끼고 설치된 화면은 모서리에서 사각형들이 계속 발생하는 느낌이다.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새로움은 현재를 고정시키지 않는다. 정사각형이라는 구조적 단위는 이합집산하면서 일순간 영원한 현재를 연출한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지배종을 정신분열과 연결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지된 매체인 그림에 잠재적 운동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이 작품을 기초로 만든 동영상 작품이 전시장 안팎에서 상영됨으로써 비교된다. 도시는 그의 작품 속 색깔처럼 다양성의 도가니다.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 현대의 속성은 원색을 넘어서 야광색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다양성 또한 조율된다. 그 무엇이든 구획된 사각형 안에서의 자유이다. 일종의 카오스모스다. 중간중간에 초신성 폭발같은 이미지들은 팽창하며 빛을 발하는 도시에 대한 작가의 인상이다. 도시 또한 별처럼 원소의 운동과 관련된다. 작품의 구조적 단위인 정사각형은 원소에 해당된다. 10x10cm 소품도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어 포자처럼 떨어져 나가 증식된다.

이한나_Back from the Future_모니터 4대, 좌대 4개, 3D 애니메이션 4개, 반구 4개_가변설치_2024
이한나_Back from the Future_모니터 4대, 좌대 4개, 3D 애니메이션 4개, 반구 4개_가변설치_2024

이한나의 [Back from the Future]는 과도한 미래가 지운 희미한 과거를 하나하나 호출한다. 작품들은 마치 박물관에 안치된 유물이나 표본, 오르골, 스노우볼 같은 축약모델처럼 연출되었다. 망가지거나 사라지기 쉽기에 더욱 견고한 구조가 요구되었다. 투명 반구에 마치 홀로그램이 들어앉은 것처럼, 주마등처럼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사진이나 영상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념비이며, 작가는 미디어의 속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기계 복제는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사라지게 했지만, 아우라는 새로운 기술로 다시 복구되곤 한다. 송도는 1930년대 중반 10만여 평의 매립지에 송도유원지라는 관광 단지를 조성하여 놀거리 볼거리가 변변치 않은 시절에 큰 역할을 했다. 요즘 말로 '핫플'이었지만, 거센 파도같은 근대화의 시간은 그것들을 빛의 속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렸다. 이한나의 작품에서 당시 거기에 있던 오리배, 회전목마, 대관람차, 동물원 등의 이미지들은 3d 프로그램을 통해 재현된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유원지 풍경의 단편들은 과거를 완전히 삭제하고 들어선 도시에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사라진 인간의 기억, 감성, 경험 등은 홀로그램을 통해 저장, 재생될 것이다.

정성진_해몽경_알루미늄 프로파일, 3D 프린트, 24인치 모니터(8대), 홀로그램 프로젝터, 아크릴_가변크기_2024
정성진_해몽경_알루미늄 프로파일, 3D 프린트, 24인치 모니터(8대), 홀로그램 프로젝터, 아크릴_가변크기_2024

인공위성이나 전파망원경처럼 생긴 정성진의 작품 [해몽경]은 정보들을 부단하게 재생한다. [해몽경]은 '꿈의 신호를 해석해 영상으로 송출하는 장치'라고 한다. 대중들에게 꿈과 무의식을 형성하게 해주었던 20세기의 대중문화가 헐리웃이나 디즈니처럼 꿈을 만드는 공장에서 생산되었다면, 이제 차원을 달리하는 21세기 정보기술에 의해 꿈 자체를 소통/유통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프로이트의 모델에 따라 빙산 아래층에 고여있었던 것들이 정보기술과 예술에 의해 하나하나 풀려나오며 코드화되고, 유통/소통의 회로에 진입한다. 그의 작품은 꽃잎처럼 둘러싸인 화면이 많아서 더욱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영상을 하나하나 읽기에는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단편화되고 흐릿한 이미지들은 작가가 송도에서 수집한 실제의 장면들을 원천으로 하지만, 영상은 정확하게 재현되기 보다는 마치 꿈 속같은 이미지의 명멸로 나타난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은 무시간으로 규정된다. 시간과 공간이 빠르게 뒤섞이는 작품은 기이하게도 고요하게 다가온다. 8개의 LCD가 대칭을 이루며 중심의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에워싸는 구조는 21세기형 만다라 같다. ■ 이선영

Vol.20241027c | 송도유랑 - Contraction and Expansion展

@ 제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