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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102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트큐브 2R2 갤러리 ART CUBE 2R2 서울 강남구 선릉로 563 Tel. +82.(0)2.556.1880 artcube2r2.com
잃어버린 현재를 찾아서 ●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부서지고 말았다. 남은 것은 침묵. 제발, 나를 이 벌판에서 홀로 울게 내버려다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아!」) 명상적인 화면(심상용), 침묵과 고독으로 동결된 이미지(정형탁), 생의 원칙에서 나오는 그림(박영택)으로 자신의 미적 형식을 구축해 온 황인란은 이번 전시에서 이전 작품들보다 색상과 구성에서 더 다채롭고 화려해졌다. 300호와 200호가 넘는 대작에서부터 작은 소품까지 이전의 이미지들이 감각적으로 극대화된 느낌이다. 화면을 꽉 채운 장미의 찬란 아래 소녀는 눈을 감고 있고 나비는 생의 그림자처럼 살포시 앉아있거나 5월의 우거진 잎들이 소녀의 문신과 옷주름 속에서 파란 청춘으로 물든다. 닿지 못한 시선과 무심한 입술, 샘솟는 우수로 가득 찬 소녀의 머리에는 한 아름의 눈부신 꽃과 깃털이 정돈된 새가 소녀의 사색을 찬란하게 만들고 고독을 아름답게 만든다.. ● 사실 고독과 사색을 지시하는 기호는 넘친다. 밤하늘에 홀로 남은 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비 오는 역의 기차, 부러진 돛대와 따개비만 붙은 어촌의 낡은 폐선 등은 흔한 고독의 문화적 기호겠다. 하지만 황인란은 아름다운 소녀, 흐드러지게 핀 꽃, 영원처럼 앉은 새, 먼 바다에서 건너온 듯한 나비로 고독의 기호를 완성한다. 생의 찬란함을 밑절임 삼아 고독과 사색의 기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연민으로 비유할 수 없는 찬연한 꽃 속에 소녀가 안기면서 애수의 향취가 배어나오는 것이다. 생의 역설로 고독의 기호를 완성하는 것이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와 아픔을 지닌 많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한 계기는 인간에 대한 내 관심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인간 존엄과 자율성, 평등함을 배운다면 우리는 타인을 더욱 이해하고 연대하며 애정을 갖게 되겠죠. 그러한 생각들이 제 작업과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술과 도덕 가치의 오랜 화두가 떠오르는 작가의 말을 듣노라면 작품 속 이미지들이 건네는 알레고리가 마냥 아름다움만을 위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다빈치가 세례 요한을,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를 하나의 근원적 이상으로 그렸다면 황인란의 소녀 역시 자잘한 일상 속에서 건진 순수한 인간의 원형으로 읽어야 한다. ● "작품에 등장하는 새와 꽃, 소녀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 모종의 서사를 이룹니다. 새는 때로 우리를 영혼과 영원의 세계로 이끌지만 반대로 부조리하고 부정적인 세계로 유혹하죠. 소녀는 내적이고 도덕적인 성찰을 기반으로 선하고 아름답게 스스로를 조율해가는 순수한 인간의 원형입니다." 속(俗)과 성(聖)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통속적인 것과 밀교적인 것이 서로를 필요로 하듯 아름다운 소녀는 삶의 여러 층위를 거울 삼는다. 과소가 아닌 과다가 현대 사회를 병들게(한병철)한다면 작품 속에서 세상의 소리들은 침묵의 상자 속에 봉인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연대감은 인물을 그리는 작가로서, 또한 성숙한 한 인간으로서 제가 평생 추구해 가야할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미술사가들은 리듬, 위계, 구조, 색채, 비례 등 형식적인 특질들을 분석하고 삶의 여러 다른 방식들과 차별화를 통해 현대예술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연구는 실제 삶에서 구분되는 그 무엇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예술이 되었다. 삶에서 떨어진 특징들이야말로 예술이 순수해지는 과정인 셈이다. ● 그렇듯 황인란의 작품에서 삶의 구체적 감정들을 찾을 순 없다. 작가는 삶의 여러 층위,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기나 질투, 경쟁과 과시욕, 사회적 차원에서 불평등, 빈곤, 자본주의의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하나의 시대적 양식으로 드러내고자 할 뿐이다. 드러냄의 방식이 현실의 재현과 모방이 아닌 또다른 고독과 침묵의 초월적 세계여서 관객은 현실세계를 잠시 떠나 헤매는 것이다. 이 순수의 풍경은 시대인식과 타자인식, 관심과 공감, 동정적 혜안(empathy)이 알레고리처럼 숨어 있기에 더욱 미궁이다. 현실을 보되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외양으로 상승하되 내면으로 하강함으로써 작품은 예술가가 자신의 삶을 보내고 살아갈 생생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 이 내면의 처소에서 한 아름다운 소녀가 관객을 안내한다.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안내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 곳은 저 먼 이상의 길이 아니라 현실 어딘가 우리가 찾고자 했던 파괴할 수 없는 내면의 길인지 모르겠다. 소녀는 그 길을 안내하는 베아트리체인지도. ■ 정형탁
Vol.20241024c | 황인란展 / HWANGINRAN / 黃仁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