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떠오를 우리의

김문선展 / KIMMOONSUN / 金文單 / painting   2024_1023 ▶ 2024_1105

김문선_가닿는 곳마다_종이에 연필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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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일부_인천문화재단_인천광역시

관람시간 / 01:00pm~07:00pm

부연 婦椽 Buyeon 인천 중구 개항로106번길 8 Tel. +82.(0)507.1315.0311 @buyeon.site

산책자의 '보기'와 풍경에 대해 ● 회화가painter에게 풍경은 오로지 '풍경'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풍경회화가 에드리언 버그나 데이비드 호크니는 여러 번 반복하여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같은 장소를 끈질기게 그려낸다. 단지 변화하는 계절의 자연 풍경을 담으려 하기 보다는 풍경과의 조우를 통해 어떻게 그릴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문선의 회화는 풍경의 형태를 띈 어떤 것을 쫓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간을 넘어선 '풍경'인지, 풍경을 조합하는 '태도'인지, 풍경을 관통하는 '보기'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김문선_너를 잊은 너에게_캔버스에 유채_200×160.6cm_202415
김문선_곧 떠오를 우리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디지털 프린트_140×110cm_2024

부연에 들어서자 커다란 두 점의 캔버스 작업이 마주 선다. 「너를 잊은 너에게」(2024)와 「곧 떠오를 우리의」(2024)란 작품이다. 마치 풍경의 조각들을 하나의 화면에 조심스레 배치한 듯하다. 무언가 기억하기 위해 인화한 사진들을 앨범 오래된 페이지에 펼쳐 놓듯이, 아니 노트북 화면 위 많은 윈도우window, 스마트폰 속 겹쳐진 네모처럼 파편화된 이미지가 캔버스 위를 구성한다. 이미지 속 풍경들은 다른 시간이나 장소를 입고 있는 듯 이질적이나 기묘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보여지는 이미지가 완결된 목표가 아닌 듯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즉 김문선에게 풍경은 숲 길이든, 바다이든, 골목의 한 자락이든 관계없을 듯 싶다. 왜냐하면 회화가는 자신이 본 것은 선택하여 늘어놓음으로 '보다'라는 행위를 화면 위에서 끈질지게 설득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을 입은 풍경의 조각들이 그럼에도 서로에게 연결된 것은 시간을 넘어선 혹은 병렬된 '보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김문선_가닿는 곳바다_종이에 연필_각 21×29.7cm_2024
김문선_찬란_디지털 프린트_50×50cm_2024
김문선_흩트러지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5.8×22cm_2024

이러한 '보기'의 태도는 여러 점의 연필로 그려진 연작 「가닿는 곳마다」 (2024)에서 더욱 드러난다. 세밀한 묘사가 가능한 도구일수록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은 더디고 섬세하다. 그러한 도구로 시시각각 변하는 윤슬을 잡아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김문선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 진다.본 것을 의심하면서도 오로지 보는 것을 의지해 그려 나가는 행위 말이다. 작가의 그림을 보며 그가 보았을 매일의 풍경을 떠올린다. 긴 시간 산책을 통해 채집했을 공원의 풍경, 간척지의 고인 바다, 단 한 순간도 같지 않을 햇빛. 사계절이 변화하는 동안 몸으로 체득되고 관찰하게 된 풍경의 모습은 풍경 그 이상이다. 오랫동안 습관을 만들어오며 담았을 '보기'의 행위는 '보기'와 '그리기'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한 회화가로서 스스로에게 묻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김문선_'아'라던지'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0.9×72.7cm_2016
김문선_윤슬을 따라 오르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2×25.8cm_2022

이러한 '보기' 가운데 김문선은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기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전작 「'아'라든지 '음'」에서 그리고 최근작「플러스」까지에도 간간히 상징적 존재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창'이라던가 '새', 혹은 '파도', '시침과 분침이 없는 시계'의 형태를 한 상징들은 회화가가 그리기를 통해 내면의 풍경을 먼저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림 속 창은 창 고유의 통과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내부와 외부의 풍경을 선연히 나눈다. 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 긴 날개와 꼬리 깃털을 가지고 있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은 모호하다. 쏟아지는 파도와 가리키지 않는 시계 역시 특정하지 않은 불안을 내포한다. 김문선의 회화는 이러한 상징들이 드러내는 내면 세계에서 막 외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참이다. 여전히 불안함을 가지고서 말이다.

김문선_곧 떠오를 우리의展_부연_2024
김문선_곧 떠오를 우리의展_부연_2024
김문선_곧 떠오를 우리의展_부연_2024
김문선_곧 떠오를 우리의展_부연_2024

작가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는 게 힘들어져 아이패드에다 드로잉을 했다고 했다. 네모난 패드 안 네모난 가상의 창에서 그려냈을 많은 드로잉들이 다시 네모 위에서 겹쳐지고 구성되어 족자 형태의 드로잉과 회화로 실험되었다. 어디든 말아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이동가능한portable 회화이다. 산책자로서 작가는 매일 이른 아침 두어 시간 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걸으며 감각했을 것이고 그러한 그의 존재 확인이 그림으로 드러난 셈이다. 매일 보지 않고는 알아채지 못했을 오래된 나무의 어린 가지를 발견하며 말이다. 이제 김문선의 회화에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물음이 막 외부의 세계의 풍경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걷고 보고 그리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여 온 듯 치밀하고 끈질긴 붓질로 말이다. ■ 민경(이민경)

Vol.20241023k | 김문선展 / KIMMOONSUN / 金文單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