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 아카이브 1988~2024

FACE : Archive 1988~2024

김석展 / KIMSUK / 金錫 / sculpture   2024_1023 ▶ 2024_1104

김석_유리심장_각종 술병파편, 조명_30×25×20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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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홈페이지_www.kimsuk.com

초대일시 / 2024_1023_수요일_05:00pm

기획 / 나무화랑

관람시간 / 01:00p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1. 예술가들은 예술로 철학을 한다.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든지 생산된 작품은 깊은 사유와 추리를 통해 이미지가 구현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서 얼굴 조각은 철학적 사고가 함축되어 표상되었다. ● 이번 전시는 1988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의 작품 중 얼굴 조각을 선별하여 전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8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줄곧 현대 도시인의 '존재론'과 '인식론'의 관점을 인체 형상에 투영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형상의 표현은 현실적인 삶의 세계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고 엄밀히 말하면, 인체 형상의 개념적 진화 과정을 거친 여정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얼굴 조각의 형식 실험은 작업의 변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였는데, 닮지 않은 방식으로 닮은 유사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천착하며 고민한 점이 그것이다. 이른바 존재론적 관점의 투영과 인식론적 관점의 발견이었다. 재현의 극대화로부터 절제된 단순 형식에 이르기까지 얼굴을 통한 인간의 존재와 인식의 교집합 같은 연속성은 일종의 영역확장이었으며 '미술의 모험'이었다. ● 인간의 의식·무의식 표출은 체화된 몸의 행위 과정을 거치는데, 일종의 '현상학적 해석'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몸을 좀 더 내면화한 것으로 환원시킨 것은 얼굴이다. 얼굴은 몸의 일부지만 치열한 삶의 정신성을 더 대변한다. 특히 조각 작품으로 구현된 몸이 사회적인 상징물로 존재할 때 더욱더 다양하고 면밀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오랜 시간 나는 인간의 얼굴을 치열하게 다루었고 표현성에 주목하였다. 그 명확한 이유는 인간의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얼굴의 표면에 각인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김석_Homo Philosophicus_ 나무에 페인트, 실리콘_180×135×135cm_2024
김석_Episteme_나무에 페인트,레진_227×145×54cm_2022

2. 1980년대 20대의 나에게 사회·정치 상황의 이해 방식은 비판적 시각이 강렬했고 이를 통하여 인간의 본질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접근했던 인간에 대한 나의 질문들은 '에피스테메'와 같이 시대의 무의식적 흐름에 의해 작용하는 소시민의 '희망 상실'로 받아들여졌다. 이 당시 본격적으로 조각 작품을 제작하면서 소재로서 인간 형상을 선택하였으며 이로 인해 '삶의 주체로서 인간'을 모색하려 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습작을 거쳐 80년대 후반에 발표하였던 나의 작품들은 그런 '희망 상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인적 해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소시민적인 일상 「슬픔,1988」과 같이 보편적 생활인으로서, 소시민의 정서 반응을 작업으로 포착하는 일이었다. ● 80년대의 얼굴 조각은 이러한 정서적 배경을 담고 있는데 시대적 상황을 비껴갈 수 없다고 해도 그 상황의 인식으로 인해 갖게 되는 슬픔, 비애, 그리고 왜소함 등이 은유적으로 표현되도록 노력했다. 그 일례로 형식 실험 과정에서 고전적인 표현의 범주를 바탕으로 나의 해석을 덧붙이는 작업이라든지, 인체의 해체를 통한 조형 실험 등은 나에게 있어서 조각의 중요한 표현 어법이었다. 주목할 점은 내가 시도했던 의미 부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인간이 느끼며 반응하는 심리적, 정신적 병리 현상의 사회화를 시각화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내 작업에서 동시대성을 획득하기 위해 역사의식의 표현을 형상화하는 시도였다. ●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88년 이후 지속된 소조(Modeling) 작업의 브론즈작품 「기억, 1992」부터 이후 지속된 다양한 재료를 통한 형식의 변주 과정은 현실세계 속에서의 다양한 인간 정서가 투영되었다. 요컨대, 인간의 존재와 인식의 범주 속에서 작품 제작이 지속된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제작 과정에서는 예술적 감정을 표출하는 대신 조각의 언어를 도구 삼아 미술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조각 언어가 궁극적으로 조각 형식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석_청춘숙취_와인병 파편, 철_50×58×33cm_2019
김석_녹색숙취_소주병 파편, 철_55×58×33cm_2018

3. 90년대 초 나의 작업에서 예술의 중요한 실험은 인체 형상의 해체 방식으로 -파괴되고, 널부러져있는 신체의 각 부분-현실 속 인간의 실존성 「기억,1992」, 「기억-복원3」, 「인간의 기억들,1996」을 비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파괴된 인체 형상의 덩어리를 통해 인간의 역사성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유의미의 획득 행위였고, 덧붙이면 이념적 이데올로기의 붕괴(동독의 붕괴)에 의한 인간존재의 혼돈과 성찰 등에 관한 보고서 같은 것이었다. 또한 나의 개인적 체험인 외국 여행을 통해 만났던 서구의 역사적 유물 조각품(부수어져 있는)들은 파괴된 형태의 잔해로 인해 나에게는 기억의 파편과 왜곡된 진실이 뒤엉킨 장면으로 다가오면서 작업의 방향성에 영향을 주었다. ●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런 표현성과 서술성을 배제하고 정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단순한 형태에 집중하는 조형성의 탐구 「무(無),1998」, 「반복 혹은 부피의 소멸,1999」가 핵심이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가속화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싶은 욕구가 지배적이었다. 이를테면 현대 사회는 인간의 사고가 현실 속으로 용해되기조차 숨 가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모든 개념과 정의가 새롭게 설정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가치 기준이 상실되고 몰개성화된다는 점에 주목했었다. 인간의 욕구는 집단적인 동일시(Identification) 현상을 욕망한다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1998년 '단순미에 투영된 휴머니티'의 전시주제를 설정하여 얼굴 조각을 시도하였다. ● 원기둥, 정육면체, 구, 원뿔 등 규격화된 입체 덩어리에 새겨진 얼굴의 음각 형태와 윤곽선은 절제된 이미지 「무(無)-3」로서 그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미니멀적 요소보다 그러한 형태를 통해 나타난 인간의 또 다른 면모, 즉 관념적 인간 형상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나는 이런 조형적 방식이 삶과 존재에 대한 사회적 병리현상과 사회적 관계를 영위하는 인간의 틀과 그 삶의 언저리에 연관하여 색다른 감정으로서 담담하게 휴머니티를 드러낸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것은 인간애적인 측면에서 한발 물러나 중성적인 냉랭함을 내포하고 있는 무표정의 양각 음각을 통해 냉정한 현실의 공허감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한 형태에서 단순한 질량감을 느끼며 구상조각의 설명이나 감정이입에서 벗어나려는 것인데, 그것은 사회성을 심도 있게 다루는 리얼리즘과는 또 다르게 인간존재에 대해 반문하는 것이었다. ● 요컨대 획일화 되어가는 현대의 인간성에 대한 관점의 표출이었고 얼굴 조각의 형식적인 면에서 중요시 한 점은 기본적인 형태의 반복성을 포착한 점이었다. 주목하자면 단순한 형태감이 가지는 무색(無色), 무취(無臭)의 고요함(명상적 이미지)을 통해 내용의 서술적인 방식을 피하는 것은 당시 나에게 매우 핵심적인 얼굴 조각의 표현적 관점이었다.

김석_미메시스 풍경-무거운 생각, 가벼운 생각_ 폴리에스터, 철_34×70×40cm_2014
김석_미메시스 풍경-탄생_자동차보닛, 폴리에스터에 페인트_136×115×24cm_2014
김석_ARE YOU HAPPY? 3_철판, 폴리에스터에 페인트_145×130×30cm_2009

4. 80년대~90년대의 작업은 인체 형상을 통해 주로 동시대의 사회성을 드러내는 것을 주제로 삼았었다. 신체(몸)를 이용하여 변형, 생략, 단순화시켜 표현의 폭을 넓히는 실험을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품 제작 과정은 인간의 삶에 관계하였고, 인간의 역사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업 의도와 작업론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통한 주제 의식은 심도 있게 표출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따라서 이런 점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며 더욱더 작품 제작의 이유와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재료의 사용 이외에 영상이나, 음향 그리고 표현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소재/재료를 이용해야 한다고 의식하였다. ● 심오하고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제작 의도도 역시 중요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자로하여금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의 제작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맥락적으로 보면 얼굴 조각에 있어서 「호모사피엔스-그 이후, 2000」, 「지식의 무게, 2000」, 「지식의 깊이, 2000」와 같은 작품들은 이에 해당한다. ●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있는 강철봉과 비대해진 머리의 얼굴 조각 「지식의 무게, 2000」는 인간의 실존을 감내해 내려는 취약한 인체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휘청거리는 갈대와 같은 시각 현상은 머리와 몸체의 불균형, 문명과 자연의 불균형을 암시하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지식의 무거움'의 전시주제는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팽배해진 지식과 그에 따라 점차 그 중요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인간의 존재를 자연 현상으로 대비시켜 상징적으로 불안전한 지식을 표현하려는 목적이 분명하였다. 말하자면 '지식의 한계는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얼굴 조각 작품은 지식의 임의성에대한 관심으로 귀결되었으며 아울러 지식과 문명의 불완전한 성질을 상징하였다. ● 지식에 대한 도그마(Dogma)는 독단적인 신념일 수도 있다. 「나의 본질, 2004」는 지식과 인식에 관하여 본질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 설정이었다. '동일성과 타자'에 대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으로써 동일성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되어 타자의 관점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나'라는 본질은 생물학적 신체(X-ray)나 타자의 시각이미지로서의 사진이미지 그리고 물성화된 재현 형상으로서도 똑같은 '나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런 관점은 확고하다고 보는 지식의 연약함을 한순간에 타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나의 본질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만든 얼굴 조각(얼굴 작품)이었다.

김석_찬란한 나르시시스트의 모순된 증명들_ 사인보드, 스피커앰프_161×125×25cm_2006~7
김석_끝없는 사유3_분홍대리석_38×25×11cm_2006
김석_나의 본질1_컬러 프린트_40×90cm_2004

5. '미술가들에게 인간 형상은 어떤 것인가?' ●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간성(베르그송의 순수지속 시간이 아니라 물리적 시간)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미술의 역사에 나타난 미술품에서 그 실마리를 쉽게 발견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 형상은 재현과 표현의 과정을 거쳐 미술가에게 주된 모티브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많은 미술가들은 끊임없이 창작이란 신념 아래 '인간, 육체, 신체' 주위를 맴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어쩌면 좀처럼 풀릴 수 없는 의구심이겠지만 나의 상식적인 해답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명증의 진리에서 의구심을 떨칠 수 있다. ● 인간의 삶, 그리고 온갖 잡다한 이념과 군더더기가 녹아있는 인간 형상은 나에게 주저할 수 없는 창작의 도구이며 훌륭한 모티브가 된다. 하물며 소재의 진부함 때문일지라도, 그 것의 극복은 나에게 새로운 창작의 희망과 설레임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인간과 몸의 관심은 동시대의 이념 속에서 사회적 욕망의 주체가 되고 또한 타자가 된다. 「찬란한 나르시시스트의 모순된 증명들, 2006~7」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만든 작품이다. 인간은 집단 사회의 생물학적 존재인데 욕망의 충돌은 비껴갈 수 없는 테제다. 이런 점은 부재한 집단적 욕망이 혐오스러울 만큼 털 달린 '혀'와 검은 선그라스(스피커)로 체화되고 물화되었다. ● 2007년을 전, 후하여 당시의 내 작품에 시그널이 작동하고 있는 기계들은 기호를 생산해 내었고 이 때문에 읽기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런 기계는 욕망하는 기계로 상상할 수 있으며 기호를 창출해 낸다. 이때 인간 모상에 의해서 개념을 만들어내는 이 기계의 작동원리는 외적 물리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육화된 것은 욕망의 기호가 된 것이다. 치환의 극적 효과에 의해서 신체가 기호이미지로 둔갑한 상황은 욕망의 신체가 곧 함의적 기표덩어리로 정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김석_지식의 깊이_나무합판_70×360cm_2000
김석_지식의 무게_석고, 강철_100×700×600cm_2000

6. 재현(모조)된 얼굴은 현대인의 표면적인 얼굴 이미지다. 아쉽게도 내면세계의 성질을 표출하는 방식의 인간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본래 의도 하려고 한 '숭고'의 정신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숭고'는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면의 확장(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미적 숭고)을 이야기한다. 또한 재현할 수 없는 것의 비감각적 표상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어 「ARE YOU HAPPY?, 2009」, 「미메시스 풍경-탄생, 2014」 얼굴 부조조각은 동시대 인간상의 현전(presence)을 '숭고'로 해석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늘 꿈꾸는 현대인들의 유토피아를 이미지화하고 싶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마땅한 방식으로 '잉여의 소비행위'에 주목했고 결국 소비의 이미지는 기호화된 색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 2009년 이후 몇 년에 걸쳐 제작된 얼굴 부조조각은 화려하게 채색된 다양한 형형색색의 색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했고 소비패턴을 주도하는 color로 이루어졌다. 이때 소비패턴은 일종의 기호화된 색을 말한다. 현대 사회의 소비는 흔히 '기호를 소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작품에 등장하는 색의 띠나 구성은 소비를 기호화한 색으로 볼 수 있다. 갖가지 무늬와 디자인된 색의 구성은 현대 사회의 상징기호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상품 이미지로 해석 가능하다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만족한 행복을 다양한 소비를 통해 이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 동시대 사람들의 인간상을 규정짓는 방식 중 하나로는 타자의 욕망을 갈구하는 것이다. 기호의 소비뿐만 아니라 모방(미메시스)의 욕망 역시 현실 인간의 표상으로 잠정적 규정이 가능하다. 나는 현실이 '미메시스 풍경'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는 점을 상정하였다. 연관하면 작품 곳곳에 문신을 해서 넣은 기호와 아이콘은 희망의 원리를 의식하게 하고 숭고한 행복을 빛나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안내하며 가시적인 것보다 더 완벽한 세계를 표방하는 욕구와 욕망에 주목하였다. 결과적으로 마음의 일루젼을 시각적인 일루젼으로 전치시켜 놓은 얼굴 조각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확대시킨 얼굴에 다양한 색을 입혔다. ● 자동차 보닛판 표면에 부조로 부착한 얼굴 조각 「미메시스 풍경-탄생, 2014」은 인간의 삶과 행동에 대한 '산문(essay)'이고 행복과 죽음에 대한 이상세계의 모방(미메시스) 풍경일 수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그와 대비된 죽음은 이런 것을 함유하는데, 끊임없이 도달하고 싶은 순수함, 죽음, 욕망을 시각화하였다. 이로써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고 기쁨과 분노가 공존한다. 인간의 모방적 사유는 항상 완벽하길 바라고 그 때문에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목적이며 아름다움의 진리이긴 하지만, 결국 그곳에 이르지 못하기에 현실 인간은 우울함과 쓸쓸함이 끊임없이 체화된다.

김석_호모사피엔스-그 이후_혼합재료_2000×2000cm_2000_부분
김석_반복,혹은 부피의 소멸_거울에칭_45×45cm_1999

7. 나에게 있어서 인체 형상의 상투적인 이미지 표현 방식 거부는 매번 작업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창조성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이며 아울러 작품제작과 표현의 기쁨 원천이다. 그래서 나는 적절한 시간이 지날 때 동일한 방식의 작업방식을 거부하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표현성의 상투적 프레임과 양식상의 동일성을 계속 추구하지는 않는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작품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시도하는 나의 태도를 만족한다. 「녹색숙취, 2018」, 「청춘숙취, 2019」는 이런 맥락에 해당하는 얼굴 조각이다. ● 나는 줄곧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동시대적 정서에 주제를 삼고, 이를 조각의 조형 어법으로 표현해 왔는데, 「녹색 숙취, 2018」는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현대인 혹은 나 자신이 현대 사회에서 체감하는 존재론적 관점을 보여준다. 존재와 인식 사이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현실 인간은 기호식품 '술'과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하였는데, 이를 작품화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녹색의 깨진 소주병 파편을 부착하여 만든 흉상 인물은 날카로운 유리의 물성으로 인해 고독함과 비애의 현대성을 암시한다. 이는 술을 마시며 고통을 토로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서사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표면의 깨진 소주병 파편은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혹은 대중적인 술병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우리시대 삶의 정서를 함유하고 상징한다. 소주병 파편을 섞어서 만든 얼굴 두상은 어쩌면 현실이 투영된 희노애락이라는 상징물일 수 있다. ● 「청춘숙취, 2019」 깨진 와인병 파편의 얼굴 조각은 익명의 현대 도시인들을 필연적으로 강렬하게 상징한다. 요컨대, 불확실성의 사회는 늘 지속되어 왔다. 그 안에서 젊은 군상들, 다시 말해 청춘들의 존재론적 현상은 알코올 섭취가 필연적일 수 있다. 이것의 체감은 일종의 종교일 수도 혹은 철학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와인병 표면은 다중적인 현대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반복적으로 체화하는 지금이기 때문이다. 나는 깨진 술병과 함께 지식, 인간의 총체라는 얼굴 결합을 통해 현실 인간적인 조각 방법론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석_무(無)-3_브론즈_22×22×22cm_1998
김석_인간의 기억들_석고, 합판, 조명_230×600×600cm_1996

8. 최근 작업은 인간을 길고 가느다란 연필로 형상화하여 물성화시키고 사물화한다. 이미 재현(모조)의 의미에서 벗어난 연필의 인간 형상은 지우개로 된 머리, 가느다란 구조체인 연필다리와 팔이 되어 새로운 인간 형태로 환원되었다. 그중 연필 인간 몸체에 다양한 얼굴 조각을 접목하여 만든 인체 형상은 존재, 인식, 사유 등 해석의 폭을 넓히는 확장성을 갖고 있다. 이는 생물학적 인간 형상이 '연필의 구조체=지식'으로 치환된 것이다. 「Homo Philosophicus, 2024」는 바로 이런 점에 부합하는 작품이며 현실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진리의 세계를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투영되었다. 지식과 철학으로 대변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머리는 연필과 결합하여 인간의 사유 욕구를 담담하게 촉구한다. ● 이외에도 다양한 사물을 부착한 연필 작품들은 미셀 푸코의 '에피스테메' 해석이 가능한 복합적 상징 함유한다. 이를테면 사물들에 내재된 인식 체계와 관습을 부정하고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해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식들, 이른바 '그것이 과연 진리이고 옳은 정의인가?'에 관해 존재의 성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묻고 싶은 충동에 기인하여 연필 조각을 시작하였다. 마치 동시대인들의 부유하는 현실을 상징하는데 이를테면, 삶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며 욕망의 헛헛함을 가로지르는 현실 인간들의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사유와 철학에 관해 현대인들의 새로운 도전과 재인식을 권고하는 것이다. ● 강렬한 빛이 투과된 「유리심장, 2024」은 각종 술병 파편으로 집적된 얼굴 조각으로 인간의 존재(실존)와 인식의 사이 어느 지점에 있는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체감하고 있는 주체의 존재론적 관점에 관하여 심장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술병 파편은 적절하게 주위를 환기시킨다. 조명에 의한 유리의 반사 불빛은 더한층 이성적 사고의 진리와 연약한 감성의 심장이 교차되는 이율배반을 보여준다. 덩어리로 집적된 술병 파편의 얼굴 조각은 동시에 현대인들의 초조, 불안의 심장이다.

김석_기억-복원3_철 캐스팅_40×30×13cm_1994
김석_기억_브론즈_104×130×88cm_1992
김석_슬픔_테라코타(이후 브론즈캐스팅)_22×33×15cm_1988

9. 나는 현실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진리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조각의 조형언어를 충분히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줄곧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동시대적 정서에 주제를 삼고, 이를 조각의 조형어법으로 표현해 왔다.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현대인 혹은 나 자신에 대한 주제는 현대 사회에서 체감하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관점을 보여준다. 조각 영역으로부터 탈 영역의 확장과 실험은 당연한 의무감으로 다가온다. ● 동시대인들은 부유하는 현실 속에서 '맞지도, 틀리지도 않은 어느 지점'인가에 인간 삶의 진리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늘 허전하며 세상의 헛헛함 속에 고뇌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부질없는 욕망의 현실 속에서 동시대 현대인들은 '존재하지만 부재'하는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얼굴 조각을 만들고 사유한다. ■ 김석

Vol.20241023a | 김석展 / KIMSUK / 金錫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