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틈

도지성展 / DHOJISUNG / 都址成 / painting   2024_1019 ▶ 2024_1025

도지성_도시산책자-퇴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파스텔_91×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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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성 인스타그램_@dojisung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도지성

관람시간 / 11:00am~06:00pm

KMJ아트갤러리 KMJ ART GALLERY 인천시 남동구 인주대로 543 (남동구 구월동 1115-2번지) Tel. +82.(0)32.721.5187 www.kmjart.com @kmj_art_gallery

화폭에 담은 우리 도시의 시대별 초상 ● 작가 도지성과 우리 도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작가의 화업이 시작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도시 혹은 그 관심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지 않나 생각된다. 작가 그림의 출발점은 우리 도시가 양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80년대와 겹친다. 올림픽 개최에 즈음하여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과 주거 환경의 혁신이 다급하게 이루어지던 당시, 개발 광풍으로 묘사되는 사회상이 젊은 작가에겐 복잡다단한 감정과 인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물론 개발은 으레 권력과 자본이 유착되어 그편에 선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는 결과를 낳곤 했다. 그러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양산해낸 개발의 열기가 지금은 식어가고 있다. 비로소 공동체가 안정 단계에 접어들게 되며, 온전한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지성_도시산책자-소진된 사람_ 캔버스에 안료, 아크릴채색_61×50cm_2024

사실 도시에 살고 있지만서도 우리의 도시화 현상에 대해 좀 피상적이고 막연한 감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안락하고 달콤한 혜택을 맛보면서도, 담론에 직면해서는 비판과 냉소의 스탠스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시를 기술함에 있어 냉혈적 비정함과 삭막함이 주조를 띠는 느와르 풍의 리얼리즘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리얼리즘은 진경적이며, 보다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양식의 재현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전갈들이 득시글거리는 것 같은 잔혹한 서사가 아닌 밝은 대낮의 풍경 속에서 순수함과 꿈을 노래하고 있는 진경인 것이다. 어느덧 우리 도시의 초상은 과거와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지성_도시산책자-소진된 사람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_117×91cm

우리 작가들 사이에 오늘의 현실을 화폭에 담아냄에 있어 그 뿌리가 겸재 정선의 '진경'이라고 피력되곤 한다. 도지성 역시 겸재의 진경정신으로부터 미학적 세례를 받았음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시대적으로 진경의 개념과 의미가 한결같을 수는 없다. 이는 장르의 문제만도 아니며, 주도적 트렌드나 담론만의 차원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중국의 사대주의적 화론이나 혹은 오늘의 서구 추종적 미의식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있느냐의 내면적 차원이다. 지난 세대 모든 환경이 급격하게 서구 모델을 추종하면서 설정된 규범이나 카테고리들로 얼마나 주눅 들게 했던가. 오늘날 우리가 우리 것들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향유하고 있으니,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오랜 역사를 관통해온 도지성표 진경은 의의가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도지성_도시산책자-소진된 사람_ 캔버스에 안료, 아크릴채색_61×50cm_2024

작가의 90년대 작품들은 지금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황토 벌판에 어설프게 급조된 듯한 신도시의 모습이나 사막의 신기루 같은 이미지로 등장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뿌연 회색의 풍경들이 도지성표 진경의 시그니처였다. 실제 황토 오브제가 점착되어 개발의 상처에 대해 서술한 화면들은 무분별한 도시화에 대한 경종처럼 울렸다. 또한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를 스크래치로 휘갈긴 듯한 표현도 인상적이다. 몸짓을 오브제로 등장시킴으로써 황토분 오브제와 같은 라임으로 작용한다. 층수를 세다 헛갈려 포기하고 말았다는 듯이 다분히 뿌리치듯 긁은 것 같은 행위의 궤적들이 당시 도시에 대한 작가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지성_도시산책자-두 사람_ 캔버스에 안료, 아크릴채색_41×32cm_2024

그러다 2천년대를 지나면서 작가의 도시에서는 꽃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도시의 질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이 단계에서는 초기 신도시 개발의 삭막하고 황량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짜임새와 유기성을 갖추어나가는 정황들과 맞물려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단지가 조성되던 초기와는 달리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 때쯤, 조경수나 가로수들도 무성하게 자라 탐스러운 꽃을 만개시키는 그런 풍경들이 떠올려진다. 꽃들이 온 도시의 하늘을 부유하고 있다는 것은 상서로운 기운을 시사하고 있으며, 도시에 대한 시각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암시하게 된다.

도지성_도시산책자-두 사람_ 캔버스에 안료, 아크릴채색_41×32cm_2024

꽃과 관련한 또 다른 버전은 '도시 산책' 연작들이다. 산책이나 배회중 우연히 목격한 옥상이나 담벼락 아래, 창가, 복도 등의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초들로, 이는 도시에 산재한 도시문화 특유의 편린들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대상들에서 우리 도시와 사회가 진화해나갈 수밖에 없는 원천으로 파악하는 작가만의 진경적 미학의 한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알뜰하고 부지런하며 긍정적인 세계관 같은 것들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도시의 비좁은 공간에서 기동성 있게 이동하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포터블 네이처'이다. 한 줌도 안 되는 흙에 의지하고 있는 상징적 생명체에 감정이입한 낭만적 스케치이기도 하다. 과거의 향수, 특히 대규모 단지로 확장되기 이전 도시의 단편들을 회고하고 있는 듯한 정물이자 풍경이다. 초기의 삭막하고 불안정한 도시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양상이다.

도지성_도시산책자-틈 사이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파스텔_162×130cm_2024

가장 최근의 근작은 우리 도시가 그동안 진화와 성숙을 거듭하며 삶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내면에 담긴 것들을 서사로 하고 있다.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 꿈꾸며 희구하는 '순수성'에 관한 소통의 의지로 요약된다. 우리 공동체가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 도시를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킨 핵심은 바로 내면의 '순수성'이라 보았던 것은 아닐까. 사실 국가적, 사회적 경쟁력의 원동력으로 많은 것들이 운위되고 있지만, 인간적인 따뜻함과 순수함이 가장 큰 장점이지 아닐까. '도시의 틈'이라는 주제에서 '틈'이라는 말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통상적이고 분석적 방식이 아닌 직관적이고 비가시적 방식으로 도시의 일상을 관조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재현 자체를 상투적이지 않은 개성적 양식으로 수행하고 있는 효과들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도지성_도시산책자-틈 사이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파스텔_227×182cm_2024

작가는 이러한 순수함을 사유하면서 상징적으로 두 가지 소재를 등장시키고 있다. 바로 '매화'와 '별'이다. 먼저 가지들이 무성한 매화나무들 사이로 관조해본 일상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작가가 많고 많은 나무들 가운데 매화를 등장시키고 있는 이유는 선비적 이상과 유유자적하는 삶이라는 상징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매화가 만발한 도시는 곧 유토피아다. 굳이 유교적 담론을 답사해서가 아니라 만인이 평화롭게 살만한 도시의 이상 정도를 의식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매화를 그릴 때의 필선들과 감각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나뭇가지 틈새와 꽃이기도 하며 아닐 수도 있는 점묘의 틈새로 관조되는 평화로운 일상적 풍경의 재현은 도시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기도 하다.

도지성_도시산책자-틈 사이로_ 캔버스에 황토, 아크릴채색, 파스텔_91×117cm_2024

한편 근작 중 또 하나의 트랙은 별이 있는 야경 연작이다. 사방의 시야가 고층빌딩 숲들에 가리고, 대낯 같은 조명들로 인해 거의 밤하늘의 별을 볼 수도 없는 것이 오늘의 도시 야경이다. 오히려 작가의 그림은 쏟아질 듯한 별빛이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다. 화면에는 독특한 흘림 효과가 밤하늘의 운치를 고조시키고 있다. 캔버스 표면에 바니쉬를 칠한 후, 황토분이나 푸른 안료를 묽게 칠하고 물이 흘러내리면서 물성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로 인해 밤하늘은 유성쇼 같은 판타지를 연출하기도 한다. 순수함과 꿈꾸기가 넘치는 도시의 이상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내면의 대명사인 알퐁스 도데 단편 『별』의 배경을 마치 도시로 옮겨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도지성_도시산책자-기다리며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파스텔_45×100cm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 보니 우리의 도시와 일상의 실재를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우리 도시와 삶의 현재 상태를 이방인들이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온 보편적 가치나 세계관이 꽃피운 문화의 결실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의 3,40년 전과 비교해보면 여러 모로 안정되고 진화된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모든 문명은 부침이 있으며, 사회 또한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그토록 동경했던 나라나 도시들이 지금은 혼란과 불안에 빠져 있는 모습들은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우리의 오늘은 말할 것도 없고 미래를 위해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화면에서 역설하고 있다. 작가가 그림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명확하다. 순수성, 바로 그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작가가 그려준 우리 도시의 초상을 보고서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이 있다면, 우리 도시는 작가에게나 시민 모두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오아시스라는 것이다. ■ 이재언

Vol.20241019b | 도지성展 / DHOJISUNG / 都址成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