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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101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이 외 시간은 전화 예약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 2층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artertain_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들 : 그만큼 연약하고 불안정하지만 가장 큰 행복감을 주는 것들."
1. 팬데믹이 조금 진정되어 가던 2022년 2월, 국내 뉴스에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유럽의 동쪽으로 군인들이 이동하는 사진 이미지들이 국제 뉴스에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유럽의 한 지역에서 국지전이 발생했고 곧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에 따른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들은 지리적 거리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고 나는 수개월간 전쟁의 빠른 종식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SNS에 일상과 회복의 이미지를 주기적으로 업로드했다.
2.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신문기사를 통해 새벽에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행렬 사진을 보았다. 전쟁을 피해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른 모습이었다. '저들은 언제쯤 다시 식탁에 둘러앉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사진을 마주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일상의 상실은 나로서는 쉬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날 새벽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던 자동차 행렬이 아주 오래전 언젠가도 있었다. 1963년 여름, 미국의 한 시골 농가에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3일 동안 노래를 불렀다. 사랑, 자유, 평화와 공존을 노래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좁은 어깨를 내어주고 기대었다. 그날도 도로는 어딘가로 향하는 차량들의 행렬로 가득했다.
3. 에릭 로메르(Éric Rohmer)의 영화에는 식탁에서의 대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지나칠 만큼 일상적인 대화와 평범한 구도의 롱테이크로 인해 그 장면들은 영화 속 시간과 공간임을 인지함에도 그 경계가 모호해져 과거 내 기억 속 어디쯤으로 인식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식탁을 아우르던 빛 한 조각, 바람소리 한 조각, 음식과 사람들, 그 작은 한 조각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다시 돌아오길 마음속으로 바랄 때가 있다. 아마도 내 주변의 풍경이 이전과 다르게 변화됨을 감지할 만큼의 나이를 먹어서인지 가끔 이런 부질없는 상상에 휩싸이곤 한다.
4.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과거 TV, 신문, 잡지, 영화 등으로부터 차용된다. 현실 속의 미디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그 과잉된 양과 속도에 의해 접촉과 동시에 증발해 버린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미지들 중 극소수의 것들이 나에게 어떠한 흠집, 예술적 접근이 가능한 일종의 틈을 제공하고 작업의 동기부여를 주게 된다. 그 예술적 유희의 과정에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환기와 호출 즉 기억 속 미디어로의 접속이다.
과거의 미디어로부터 소환된 이미지들은 내게는 기억을 함유한 서사로 어떠한 사물의 형태에 가깝다. 물론 그것은 기억이기에 불안정함을 내재한다. 하지만 그 과거의 개인적인 서사에 현재성을 부여함으로 특별한 재현물로 되살아난다. 오늘을 결정지은 과거의 역사적 지점들은 나에게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되고 그 순간들을 현재와 연결하며 서로 다른 시간의 미디어를 오가며 접속하고 호출하는 방식을 예술 언어로 삼고 있다.
5. 어릴 적 하굣길에서 만나는 논에는 봄이면 물이 가득 차고 갖가지 곤충들이 스쳐가며 물파장을 만들어냈다.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갖가지 크기의 물파장을 쫓아 보고 있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구상하며 나는 생성과 소멸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물파장의 모양새처럼 그날의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행렬이미지들로부터 다음 이미지들을 끌고 왔다 사라지고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하였고 내 기억 속의 어느 지점, 역사적인 의미였을 그 이미지들을 현재와 마주 놓으며 은유적이고 비밀스러운 그들 간의 순환하는 공명에 집중하였다.
6. 우리 공동체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그 여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만약 있다면 마땅히 회복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불안과 공존하는 망각에 의존한 일상과 그것이 빚어낸 불면의 밤, 위태로운 우리 사회를 외면하고 말을 삼킨 자의 모습에서 여전히 우리 공동체가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회복할 수 있을까? 그 지점은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들, 연약하고 아름다운 그것들을 구원하는 것일 것이다. 집 거실 선반에는 1982년 어느 봄에 촬영한 퉁퉁한 얼굴살이 가득한 붉은 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국민학생 남자아이가 차렷 자세로 서있다. 아침이면 나는 그 아이를 보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한다. '오늘도 안녕하니?' (2024) ■ 박병래
Vol.20241018f | 박병래展 / PARKBYOUNGLAE / 朴炳來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