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과 나비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   2024_1018 ▶ 2024_1116 / 월요일 휴관

박소영_황홀한 생각 ecstatic thought_ 레이스 천, 폴리에스터_65×360×180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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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1018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부드러운 형태들 ● 쌓고 문지르고 붙이다 보면 저 둥근 요강에서 시작된 일이다. 백색 사기로 만든 요강의 둥근 표면을 따라 푸른색 모란이 복스럽게 피었다. 날개를 커다랗게 펼친 나비도 비어있는 둥근 여백을 따라 난다. 긴긴밤 누군가의 침상 밑에서 시중 들던 요강이 쓸모를 다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수집품이 되었다가, 우연히 박소영의 작업실로 옮겨졌다. 깊숙한 내부에 스며 있던 배설의 체취마저 씻어낸 사물은, 둥근 표면의 형태에 따라 탑이 되었다. 열 네 개의 요강을 수직의 질서로 나열한 박소영은 사물의 텅 빈 내부를 새로운 (조각적) 형태의 중심축으로 가져와 높게 이어 붙였다. 이때, 오랫동안 사물에 눌러 붙어 있던 후각의 기억은 둥근 탑의 수직성으로 옮겨와 뜻밖의 촉각적 실체로 변환되었다. 냄새는 지워지고 표면의 부드러움이 전면에 드러난다. ● 한 사람의 신체와 내밀하게 결합되었던 사물은, 원초적인 배설 행위를 화려하고 충만한 아름다움의 형태로 가림막처럼 감싸고 있다. 이 사물의 둥근 표면은 본능적인 욕구를 내부의 심연에 묻고, 이내 "부귀"와 "장수"에 대한 욕망으로 전환시킨다. 박소영은 이러한 사물의 표면에 주목한다. 그는 모란과 나비 문양에 얽힌 상징성과 탑의 수직성, 그리고 사물에서 조각으로 전환될 때의 형상과 공간의 관계 등을 낱낱이 떼어내 살피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종의 배설 행위에 견줄 만한 창작의 노동에 대해 환기시키면서, 그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쏟아져 나와 예술의 형태에 이르게 되는 수행적 행위 자체의 긴장을 다루기도 한다.

박소영_탑 pagoda_오브제, 스테인리스 스틸_230×50×40cm_2024
박소영_폭포 waterfall_오브제, 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테인리스 스틸_ 290×50×40cm_2024_부분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 공간 가장 깊숙한 곳에 「탑」(2024)을 세우고, 박소영은 사물이 조각이 되는 순간과 그 과정을 매개하는 반복적 행위로서 "쌓기"의 수행성을 조형적으로 시각화 한다. 벽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바닥으로부터 홀로 곧게 선 「탑」의 형태는, 깊숙한 내부로 하강하는 배설의 행위를 대신하여 외부에서 목격되는 조형적 단위의 반복에 의해 수직으로 상승하는 운동성의 변화를 도모한다. 말하자면, 본래의 사물 속에 깊이 축적된 "떨어짐"의 (비가시적) 형상은, 또 다른 쌓기에 의한 형태의 구축성을 통해 공간 속에서 "일어남"의 가시적 존재로 전환된다. 이 마술 같은 쌓기의 행위는 종이 위에 물감으로 모란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또 다른 실천으로 이어진다. 「모란」(2024) 연작 각각은 정면을 향한 누군가의 얼굴 초상 같이 (비현실적으로) 꼿꼿하다. 그래서인가, 바로 옆에 놓인 요강의 둥글고 내밀한 몸체 같기도 한 이 모란의 형태는, 낱낱의 꽃잎과 이파리들을 나란히 이어 붙여 "부드러운 형태"에 이르게 된 찰나의 균형과 긴장을 보여준다. 쌓기의 행위는 그에게서 그리기의 행위와 같고, 이 그리기의 행위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칠하기의 행위는, 또 다시 붙이기 행위와 엮인다.

박소영_모란과 나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24

「황홀한 생각」(2024)의 표면을 덮고 있는 저 반복적인 붙이기 행위의 위태로운 강박과 바닥에 웅크린 인간 형상의 윤곽을 감싼 부드러움의 형태를 보자. 「탑」과 「모란」 연작에서 「황홀한 생각」으로 이어진 형태의 긴장감은, 사물 혹은 대상의 표면을 감싸는 반복적 행위와 그것으로 인해 저 부드러움의 형태 안에 내재하게 된 무한한 압축과 팽창의 수평 관계를 알아차렸을 때 비로소 마주할 수 있을 테다. 「황홀한 생각」은 흰색 레이스 조각을 하나씩 이어 붙여 웅크린 인체 표면을 바닥에 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직립한 인간 형상의 수직성을 수평적인 땅의 형상에 대응시키는 어떤 비가시적 힘의 균형을 가늠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저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의심할 여지 없는) 수직성이 땅의 표면 위에 수평적인 추상 이미지로 전환된 것 같은, 눈 앞에서의 시각적 상상을 불러오면서 말이다. ● 「폭포」(2024)는 요강 안쪽에 긴 레이스 뭉치를 고정시켜서, 바닥에 있어야 할 요강을 벽으로 이동시켰을 때 그 위치의 전환에서 비롯된 형태의 잠재적 변화를 "폭포"에 비유한 셈이다. 「탑」의 수직성[상승]이 반대 방향의 또 다른 수직성[하강]으로 반복되는 「폭포」의 형태는, 「황홀한 생각」의 인체 형상 표면에서 빠져나온 흰 색이 추상적인 땅의 덮개로 변환하는 감각과 유사하면서도 상이하다. 내부와 표면, 수직과 수평, 흰색(의 빛)과 검은색(의 어둠)을 대비시키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전복을 자처하기도 한다.

박소영_그녀에게 dear her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테인리스 스틸_ 98×120×65cm_2013~24
박소영_나비야 butterfly_종이에 연필, 과슈, 글리터 글루_49×79cm_2024

수수께끼 같은 형상이다. 「그녀에게」(2013-2024)의 (설명할 길 없는) 검은 색은 그 형태의 표면을 온전히 가렸다. 「황홀한 생각」에서 그랬던 것처럼, 박소영은 검은 색 레이스 조각 하나에서 시작한 반복적인 붙이기 행위로 저 삼차원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처지에 이르도록 했다. 「모란」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얼굴인지. 어떤 사물의 둥근 몸체인지, 더 나아가 방금 전에 본 흰색 레이스 안의 웅크린 인체 형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덩어리가 그 안과 밖의 간극을 한없이 두텁게 벌려 놓은 것만 같다. 요강에서 쏟아져 땅으로 떨어지는 긴 레이스 더미의 과도한 반짝임처럼, 「그녀에게」의 표면에 무겁게 들러붙어 있는 검은 색 레이스는 저 형태의 내부 어디선가 빠져나온 과도한 어둠 같다. 그 안과 밖의 변환을 매개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형태의 부드러움, 그것이 이 조각가의 몸에서 고된 수행적 행위를 이끈다. 「그녀에게」의 내부에는, 이처럼 영영 알 수 없을 지도 모를 형태의 속사정이 있다. ● 내부 심연의 어둠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온 듯한 저 부드럽고 유연한 형태의 덩어리 실제 안쪽에는, 역설적이게도 노란 꽃이 핀 대지의 밝음을 보여주는 반전의 수수께끼가 자리하고 있다. 안과 밖이 뒤집힌, 혹은 과거와 현재가 전복된 것 같은 이 형태의 부적절함은, 임의의 형태를 (시각적) 부재에 가깝도록 반복적 행위의 결과로 뒤덮으려는 회의와 되레 (시각적) 실체를 가진 형태의 표면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이 서로 공존하며 교차하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배설의 원초적인 욕구를 덮은 요강 표면에 부귀와 장수의 욕망을 새겨 넣었던 것처럼, 「그녀에게」에서는 내부와 표면이 뒤집힌 채, 바깥으로 쏟아져 나온 "부재의 표상"과 함께 내부로 전치된 표면에서 그것[부재]을 애도하려는 "시각적 욕망"이 감지된다. ● 그렇다면, "나비야"라고 이름 부르는 것만큼 분명한 애도의 행위가 또 있을까. 박소영은 「나비야」(2024)에서 요강 표면에 누군가가 장수를 염원하며 그렸던 나비 형상의 상징성을 언어로 변환시킨다. 이때, 박소영은 글자 모양을 따라 나란히 배열된 나비 형상의 윤곽 안에 색색의 반짝이 풀을 화려하게 칠하는 반복적인 행위로, 스스로 이름 부르기의 실패와 좌절, 즉 (궁극적인) 언어의 부재에 맞선다. 결국, 글자와 그림, 그 둘을 매개하는 쌓고 붙이고 그리는 행위의 반복이 서로 꼬리를 물고 되풀이 된다.

박소영_모란과 나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24
박소영_모란 peony_캔버스에 레이스 천_37×37cm_2024

물감을 섞어 붉은 모란 꽃잎을 종이 위에 반복해서 그리고, 색색의 반짝이 풀로 그린 나비 모양을 연결해 다시 나비를 호명하고, 식물 패턴이 전사된 투명 필름지를 크게 오려 붙여 거대한 날갯짓을 흉내내면서, 그는 어떤 사물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어떤 형태에 이른다. 어떤 대상의 발견과 함께 전개되는 임의의 형태에 관한 상상은, 점차 구체적인 행위와 상황에 가 닿는다. 사물에서 형태, 형태에서 상황으로 이어지는 작업의 전개 과정에서, 박소영은 지난한 수행적 행위를 감수한다. 쌓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고, 문지르는 행위는 노동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반복적 행위는 딱딱해져서 곧 소멸할 것 같은 사물의 죽음 앞에서 돌연 부드러움의 형태에 관한 연금술을 펼친다.

박소영_모란과 나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24
박소영_날갯짓 flapping wing_클리어 필름_가변크기_2024
박소영_그녀에게 dear her_브론즈_ 65×49×58cm×2_2024 박소영_나비 butterfly_종이에 오브제, 글리터 글루_29×42cm_2024

흰 벽에 둘러싸인 또 다른 공간에 들어섰을 때, 수직적인 탑의 잔상이 눈에 아직 남아서인가, 분홍과 초록, 뾰족함과 둥금, 투명함과 불투명함이 서로 겹쳐 있는 하나의 추상적인 형상이 큰 벽에 부유하는 것 같았다. 박소영은 이 형상에 「날갯짓」(2024)이라 이름 붙였다. 큰 깃털 같기도 하고, 허공에 솟아오른 산이나 허공으로 길게 늘어진 나무 같기도 하고, 전시장 입구에 얌전하게 깔아놓은 모란 꽃 낱장의 소복한 질감처럼 꽃잎과 이파리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겹쳐놓은 의례적인 형상 같기도 했다. 박소영은 투명한 필름지에 식물로부터 가져온 추상적인 패턴을 전사시켜, 낱장의 깃털과 이파리와 날개 사이를 오가는 모호한 형태의 단위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차곡차곡 연결하고 중첩시켜 모란과 나비 사이의 여러 형상을 연상시키며, 유연한 「날갯짓」의 상승하는 가벼움을 시각화 했다. ● 검은 색의 청동 조각 「그녀에게」(2023-2024) 두 점은, 같은 공간 속에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날갯짓」과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동시에 과도한 어둠의 질감을 쏟아냈던 또 다른 「그녀에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똑같은 인간 형상의 반복, 날개를 향해 점진적으로 놓여 있는 둘의 닮음은, 웅크린 몸의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모란과 나비에 투사된 부귀와 장수에 대한 욕망처럼, 날갯짓에 투사된 어떤 형상에 대한 인간적인 열망은, 저 검은 색의 부드럽고 둥근 표면을 감싸 안을 듯 하다. 요강의 둥근 표면을 감싼 꽃과 나비처럼, 「황홀한 생각」에서 신체의 수직성을 땅의 수평성과 연결시켰던 흰색 레이스의 강박적인 부드러움처럼, 둥글게 웅크린 신체의 표면은 수직으로 상승하려는 무의식의 욕망을 자신과 대면한 흰 벽 위에 투사하려 했던 모양이다. ● 웅크린 작은 몸, 그것을 흙으로 만들어 같은 몰드에서 몇 개의 주물을 떠낸 박소영은, 과거 어느 때에 무모할 정도로 표면을 갈아서 추상적인 덩어리에 다다랐던 것처럼, 아무런 질감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매끄러운 표면에만 열중했다. 두 점의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다 쏟아낸, 혹은 이제 또 다른 어떤 형상을 꿈꾸는, 부드러움의 형태 안에 존재하는 인간 형상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쩌면 요강은 그러한 인체와 동일시 된 사물에 가깝다. 요강을 분홍색 레이스로 감싼 채, 그 내부에 붉은 유리 파편들을 넣고, 분홍색의 긴 레이스 타래를 옆으로 흐르게 해서, 「흐르는 강」이라 이름 붙였다. 탑과 폭포를 거쳐, 흐르는 강에 다다른 형태의 변환은, 화석처럼 단단해진 죽음의 형체로부터 다시 그 표면 위에 새로운 형태에 대한 욕망을 투사하는 부드러움의 가변성을 시사한다. 「나비」(2024)의 지루해 뵈는 반복적 행위의 연결에도 불구하고, 평평한 표면에 납작하게 밀착될 수 없어 각기 다른 모서리의 두께와 그림자의 크기를 변주해 놓는 저 유연한 곡선의 부드러움처럼 말이다.

박소영_흐르는 강 flowing river_ 오브제, 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테인리스 스틸_40×220×20cm_2024_부분
박소영_나비 butterfly_오브제, 글리터 글루_40×51×11cm_2024
박소영_노란 나비 yellow butterfly_캔버스에 유채_49×79cm_2024

굳이 곡선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간격을 조율하며 마음 속의 아름다움을 단순한 선긋기로 대신하고자 했던 수행적 행위를 그는 다시 환기시킨다. 「노란 나비」(2024)는 둥근 요강에서 시작된 이 일이, 아름다움에 대해 사유하고 욕망하는 인간적 행위의 수행성과 깊이 연루된 것임을 알게 한다. 마치 일체의 전환이 중단된 단단한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이 부드러운 형태들이 지닌 긴장과 모순을 지속적으로 되풀이 하는, 고된 예술적 노동과 대면시킨다. ■ 안소연

Vol.20241018e |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