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1017_목요일_04:00pm
2024 공주 올해의 사진작가展
주최,주관 / 공주문화관광재단 후원 / 공주시_공주시의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아트센터 고마 ARTCENTER GOMA 충남 공주시 고마나루길 90 2층 Tel. +82.(0)41.852.9806 www.gongjucf.or.kr www.facebook.com/gjcf2020 @gjcf_2020 www.youtube.com
공주, 사찰, 그리고 만행의 길에서 만난 진경 Gongju, Temple, and True-view Scenery from Manhaeng(Traveling Practice) ●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의 언행록 또는 소승불교의 경전으로 알려진 『아함경』에 나오는 우화에서 유래한다. 아주 오래 산 눈먼 거북이 백 년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우연히 기대 쉴 나무가 떠내려왔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살게 되는 확률을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기적 또는 뜻밖의 행운이라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오승현의 사진은 이처럼 어렵게 얻은 귀한 순간들의 기록 모음이라 할 수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대웅전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여주는 생과 사의 세계, 쓰임을 다하고 본래의 자리와 동떨어진 곳에 뉘어있는 목탁, 혼탁한 속세에 뿌리를 두고 초월적 존재의 세계를 향해 솟아있는 불탑, 소망과 정성이 지켜낸 아슬아슬한 돌탑들... 오승현은 이러한 장면을 공주를 대표하는 사찰들에서 만났다. 약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밤낮없이 수행하듯 찍고 또 찍은 끝에 만난 순간들이다.
공주는 예로부터 불교 문화의 중심지였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수용된 삼국시대에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는 백제 불교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공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마곡사와 더불어 갑사, 신원사, 동학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창건되었다. 말 그대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고찰들이다. 오승현은 이 천년고찰들의 풍경을 한 점 꾸밈없이 질박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일반적으로 풍경 사진이라면 광활한 느낌의 와이드 앵글 사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피사체가 깊은 산 중의 천년고찰이라면 장대한 산세를 병풍 삼아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법당의 기품이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팬포커스(pan-focus) 효과를 이용한 사진을 생각하기 쉽다. 이에 대한 예시로 풍경 사진의 대부인 앤설 애덤스(Ansel Adams, 1902-1984)가 표현한 요세미티 국립공원 사진을 꼽을 수 있겠다. 그는 미국의 자연미를 상징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압도적인 경관을 광활하게 열린 공간으로 담아냈다. 그의 사진이 원초적 자연의 경이로움을 사실적이고 선명한 질감의 흑백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오승현은 공주를 대표하는 사찰들의 구석구석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묘사했다.
그는 원거리에서 하이 앵글로 천년 사찰의 외형적 위상을 포착하는 대신 클로즈업, 로우 앵글, 또는 명암대비가 약한 수평적인 조망을 선택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여백이 많은 화면을 구성했다. 게다가 고감도의 거친 회색 조로 변환한 화면은 부드럽고 따뜻하면서 소담한 분위기를 연출할 뿐만 아니라 대상의 구체성을 휘발시켜 전체적으로 은은한 묵향이 배어 나오는 한 폭의 한국화처럼 담백하게 절제된 미학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신작은 피사체의 표피보다 그 이면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강한 끌림이 있다.
일찍이 사진의 등장이 가져온 시각 혁명에 주목했던 독일의 선구적 문예 이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사진의 작은 역사(Short History of Photography, 1931)'에서 카메라에는 눈에 보이는 의식의 공간만이 아니라 사진가가 의도하지 않은 무의식의 공간이 포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승현에게도 사진이란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게 하는 매체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은 특히 이번 전시의 제목 『3천 셔터의 고요』와도 일맥상통하는 삼천 컷의 포토모자이크(photomosaic)에서 잘 드러난다.
포토모자이크란 수많은 작은 사진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큰 이미지를 형성하는 예술 기법으로 개별 사진이 전체 이미지의 일부분으로 작용하여, 멀리서 볼 때는 한 장의 메인 이미지를 형성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각각의 사진이 독립적인 요소로 존재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번 전시에서 오승현은 가까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버려 놓치기 쉬운 사찰의 일상을 삼천 장의 사진으로 모아 포토모자이크를 만들었다. 이 효과는 그의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현대적 미학과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접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의 포토모자이크는 육안의 한계를 넘어서 사진이 없으면 지각될 수 없는 시간성을 보게 한다.
예를 들어 삼천 컷의 불탑 사진은 불탑이라는 상징적 구조물에 대한 시각적 명상과 동시에 그 안에 내포된 시간성과 역사를 상기시킨다.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좋은 인연 만나게 해주세요' 등 불탑에 얹어진 갖가지 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진경산수화의 진경(眞景)이 단순히 실재하는 풍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 체득하는 과정을 부단히 반복한 후에 표현한 산수의 본질이듯, 불자들이 삼천 배를 하듯 한 컷 한 컷 정성과 염원을 담아 완성한 오승현의 삼천 컷은 피사체의 조형적 가치를 넘어서 공주의 천년 사찰들을 지탱해 온 종교적 정서와 초월적 지향을 보게한다. 한마디로 그의 사진은 피사체의 본질을 강조한다.
많은 작가가 사찰 사진을 찍는다. 오승현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한국 사진계의 거목 육명심은 "나의 작품의 뿌리는 불교"라 밝히고 전국 산사를 돌며 도량과 스님들의 사진을 흑백 필름에 담았다. 그 외에도 불상, 단청, 절집 등 우리나라 전통건축물로서의 사찰의 면면을 주목한 작가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오승현이 보여주는 사찰 사진과 이들 사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여백'이다.
오승현은 여백을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위한 중요한 장치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대상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면서 화면의 배경을 무한한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는 추상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직선으로 쭉 뻗은 불탑의 최상부와 그 위로 펼쳐지는 부드러운 구름이 인상적인 하늘, 단정하게 합장인(合掌印)을 한 부처의 옆얼굴과 대조적으로 흐릿하게 물러난 배경, 마치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길을 제시하는 듯 법당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 등 그의 작품 속에서 여백은 단순히 화면의 빈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존재를 둘러싼 사색의 공간, 시간과 영원의 상징, 그리고 관람자와 감정적 연결을 시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가보지 않은 길, 가고 있는 길, 하루하루가 여행이며 만행(萬行)인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풍경들. 이것이 오승현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천년사찰의 도시 공주의 진경(眞景)이다. ■ 진혜윤
Vol.20241017c | 오승현展 / OSEUNGHYEON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