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편린 Fragment of memory

서지원展 / SEOJEEWON / 徐志源 / painting   2024_1012 ▶ 2024_1027 / 월요일 휴관

서지원_마주보기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15×22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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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인스타그램_@seo_jeewo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예술협동조합 이루_갤러리 광명 후원 / 광명문화재단_광명시_경기문화재단_경기도 기획 / 서지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광명 Gallery Gwangmyeong 경기도 광명시 양지로 19 어반브릭스 4층 438,439호 Tel. +82.(0)2.899.7747 @gallery_gwangmyeong

서지원 작가를 위한 글 : 여전히, 나는, 여기에 - # 허물어지는 방 ● 건축, 도로, 신호, 붉은 땅 위에 포장된 이 검은 땅에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활보하고 있는 이 도시는 현재 진행형의 풍경을 품고 있다. 지속적으로 변형되고 무너지며 재건된다. 노선과 경로가 넓어지고 소유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개인의 기억을 담고 있는 집과 방은 허물어진다. 스스로 부서지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면서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상아탑을 쌓아갈 뿐이다. 이 속도는 매우 빨라서 세대와 집단을 구분하고 나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을 쓸모의 저편으로 소각한다. 각자 지니고 있는 특성과 색은 이 효율의 상아탑을 위해 묵살된다. 목적 없는 결말과 텅 빈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보편과 통속, 효율과 합리를 위한 일련번호가 많은 이들의 얼굴에 새겨지면서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공백이 만들어진다. 보호하기 위해 제작된 규율과 법칙은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의 접근을 막는다. 그 어느 곳에서도 고정된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시간과 고요한 공간은 언제나 우리의 등 뒤, 어제, 머나먼 과거에 존재했던 유물로 남아있다.

서지원_관중들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15×110cm_2022
서지원_별 헤는 밤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53×50cm×2_2024
서지원_별 헤는 밤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53×50cm_2024
서지원_별 헤는 밤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53×50cm_2024
서지원_별 헤는 밤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95cm_2024

# 스퀴즈, 중력이 사라진 땅 ● 자본시장에서 생산의 범주에 속해있는 공산품과 제품은 소비와 소진을 위해 제작된다.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안에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이곳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을 잉태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멈추어 머무를 수 있는, 고정되고 기댈 수 있는 완결의 땅은 없다. 억압과 폭력, 과잉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시스템이 설계한 지시와 목적을 따라야 한다. 이 안전과 보안의 좌표는 기호와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가까운 변두리에서 효율과 성과를 위해 작동되고 있다.

서지원_TAP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95cm_2024
서지원_Green Wall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53×50cm_2024
서지원_보물섬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95cm_2024

스퀴즈는 사전적 의미로 압착과 같이 무언가를 쥐어짜는 의미로 통용된다. 서지원의 화면에서는 붓 자국과 유사한 형태들 등장한다. 빠른 속도록 긁어내거나 쓸린 듯한 색면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스퀴즈라 칭한다. 모든 구기 종목에서 유일하게 공이 아닌 사람이 최종 좌표로 들어와야 득점이 인정되는 야구에서 작전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희생을 감수한 반전의 작전, 야구의 흐름을 변화하고자 활용되는 이 스퀴즈는 그의 화면에서 날것의 리넨 위를 적극적으로 긁어낸다. 원색을 넘어서는 높은 채도를 지닌 이 스퀴즈들은 도시에서 영역과 방향을 표시하고 안전을 표기하는 용도로 널리 쓰이는 형광 도료와 닮았다. 낚시에서 물 안의 상황을 감지하기 위해 쓰이는 찌처럼 가로와 세로의 교차지점이 무수하게 엮이는 팽팽한 리넨의 평면 위를 부유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그가 온전히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땅이자 유연한 벽이다. 이 땅과 벽을 견고하게 만든 평면, 일종의 영역이 제작되면서 그의 작업은 비로소 시작된다. 이는 신호다.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 이 거친 표면 위에서 춤사위를 펼치는 그의 스퀴즈는 아주 밝은 색으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매우 빠른 속도감으로 스스로의 땅을 표기하고 있다.

서지원_흔들리던 것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4_2024
서지원_흔들리던 것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4
서지원_흔들리던 것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4
서지원_흔들리던 것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4
서지원_흔들리던 것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4

# 단단한 웃음과 한 조각의 껍질 ● 긁어내고 스치고 감싸는 유사붓질 사이로 사물이 파고든다. 어쩌면 기억의 조각, 어쩌면 작가가 딛고 있는 도시의 잔상인 이 오브제는 때때로 우리의 얼굴을 드러내거나 단단한 기념비로 자리 잡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작업은 두 개의 프로젝트로 나누어진다. 전시의 명칭은 '무명의 얼굴'과 '기억의 편린'이다. 이 두 가지 장 모두 나와 외부 사이에 존재하는 '안과 밖'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경계가 거울이 되어 스스로 무명이라 칭하는 자신의 얼굴을 직면(무명의 얼굴)하거나, 사이에 흩어진 기억과 풍경의 조각들을 모은 기록(기억의 편린)을 꺼낸다. 이 두 개의 공간은 이항대립으로 분리되지만, 동시에 이중결합으로 서로의 영역을 공유한다. 그는 이 연약하고 얇은 구분 점에서 흘러가는 기억의 살갗을 수거한다. 눈과 귀, 코와 입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 우리가 가진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그것을 짓누르고 주무르고 뭉개는 손의 운동만이 남아있다. 무명의 얼굴로 기획된 이 공간에는 일종의 덩어리들이 진열되고 있다. 단단하고 견고한 돌탑과 같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상아탑처럼 얇은 기둥 위에 쌓아 올려져 있다. 이들의 모습은 초상보다 두상에 더 가깝다. 표정은 숨겨진 채 물리적인 움직임만이 그들의 얼굴을 감싸고 있다. 이들은 익명이 아닌 무명의 우리 자신이다. 구분할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익명이 아니라, 구별할 수 있고 특정할 수 있는 이름 이전의 두상이다. 반면, 기억의 편린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공간에는 텅 빈 오브제들과 부유하는 사물들이 등장한다. 비어 있는 사물과 채울 수 없는 공간으로 대변되는 상실의 좌표가 새겨져 있다. 화면에 깃든 이 고정된 기호는 빠르게 재건되는 오늘의 풍경에서 유일하게 반복되는 안정과 방호의 기호들이다. 이것은 불안의 좌표이자 미완의 상징이다. 이를 통해 그는 완결과 결말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던 미완의 지점과 우리의 흔들리는 두 눈을 붙잡아 두고 있다. 사물의 껍질이 남아 있는 이 부유하는 곳에서는 특정된 시간과 장소는 없다. 구분된 세계와 명사로 가득 찬 세계로부터 새겨져 온 잔상과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기록 아닌, 일종의 증명이다.

서지원_하루의 발견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2
서지원_하루의 발견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2
서지원_하루의 발견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2
서지원_Mummy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53×50cm_2023
서지원_Mummy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2

# 여전히,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 사각의 캔버스, 정사각형처럼 보이지만,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아주 조금 어긋나 있다. 배경으로 설정된 리넨의 구조와 직물의 얽힘이 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의 화면은 회화가 지녀왔던 보편성을 띠고 있지만, 아주 조금의 어긋남과 드러남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표기한다. 이것은 단서다. 보편에서 통속으로 개인에서 공동체로 묶여가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안부이며 인사다. 이제 그에게 어떠한 재현과 표현은 그다지 중요한 지점이 아닌듯하다. 그저 자신의 자리와 위치를 표기하는 일과 자신을 구성하고 이루는 오늘의 시공간에서 남길 수 있는 단서를 새기는 일에 집중한다. 더 이상의 균열과 분열은 없다. 작가 서지원은 자신이 설정한 중간지점, 시작과 결말 사이에 있는 과정의 시간과 흔적으로 남아 있는 잔상의 장소에서 고요하고 날카롭게 외친다. 그리고 유실된 우리를 향해 말한다. ● "여전히,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 박소호

Vol.20241012h | 서지원展 / SEOJEEWON / 徐志源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