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난 Heavy Orchid

전장연展 / JUNJANGYEUN / 全章演 / sculpture.installation   2024_1012 ▶ 2024_1103 / 월요일 휴관

전장연_무거운 난 Heavy Orchid展_ 통의동 보안여관 신관 B2 아트스페이스 보안 2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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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홈페이지_jangyeunjun.cargo.site 인스타그램_@jangyeunjun   

초대일시 / 2024_1012_토요일_04:00pm

주최,주관 / 전장연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울특별시 2024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프로그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통의동 보안여관 ARTSPACE BOAN 1942 서울 종로구 효자로 33 신관 B2 아트스페이스 보안 2 Tel. +82.(0)2.720.8409 www.boan1942.com @boan1942

일상의 풍경을 조각과 설치로 선보이고 있는 전장연은 반복적인 선그리기의 훈련으로 완성되는 문인화의 난치기를 참고한 입체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시장 한 가운데 작업실을 구하고 일과 후 과일과 신선식품을 사들고 귀가하는 반복적 일상을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연습으로 은유한다. 장가방의 무게가, 과일과 생수의 무게가 당기고 누르는 힘이 되어 다양한 철판의 곡선을 만들어 낸다. ■  

전장연_시장가방 Market Bag_혼합재료, 철판_45×150×38cm_2024

일상은 수평적이다. 그것은 완만하고 위계 없는, 균질하게 반복되는, 사건 없는 시간의 연속으로 인지되곤 한다. 그러나 우린 그 수평성이 무수히 많은 레이어의 중첩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고 있다. 일상은 납작하기보다 입체적이며, 일상을 채우는 순간들은 제각기 두께와 무게, 움직임을 갖는다. '입체적 수평성'이란 말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들리지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에 이미 수많은 순간과 경험들이, 도시와 사물들 그리고 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수평성의 세계로부터 울퉁불퉁한 입체를, 그것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일상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전장연_무거운 난 Heavy Orchid展_ 통의동 보안여관 신관 B2 아트스페이스 보안 2_2024

전장연 개인전 『무거운 난』에서 일상의 수평성과 입체성을 포착해본다. 작업은 일상에서 작가가 본 것, 만진 것, 경험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말 그대로 하루를 지나며 반복되는 경험과 장면들이 전시를 채우는 것이다. 카펫이 넓게 깔린 전시장에는 얼핏 단조롭게 보이는 얇은 철 조각/면들이 부드럽게 휘어진 채 직립해 있다. 「어제와 오늘」(2024), 「난치는 사과」(2024) 등은 수많은 일상적 사건에 '차이들'이 잠재하는 모양으로 '가변적 평평함'을 드러내며 전시장에 솟아 있다. 그것은 육중한 기념비를 추종하지 않는 수직성으로, 정지된 평온함을 따르지 않는 수평성으로 구성된다. 작품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고 움직이길 반복한다. 수평성과 수직성의 병치, 또는 정지와 움직임의 교차는 앞서 언급했듯 "진정한 일상의 감각"―여러 경험과 사회적 환경, 관계가 복잡하게 조직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전장연_어제와 오늘 Day and Day After_ 철판, 알루미늄_110×40×28cm_2024_부분

같은 맥락에서, 「시장가방」(2024)과 「손에든 무게」(2024), 「두부한모」(2024) 등에서 무언가를 들거나 당기고 있는 신체를, 시장이나 마트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 일상의 장면에는 수평과 수직의 세계가 교차한다. 늘어선 세계를 돌아다니는 존재들에게 다층의 시간과 공간, 자기 성찰, 그리고 사회에 관한 사유가 더해진다. 작가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걸어가듯 특정 사물―예를 들면 무언가가 담겨 있는 비닐봉지, 과일, 생수 묶음 등―을 얇은 철 조각/면들에 더한다. 여기서 '더하기'는 단순한 추가 이상의 균형과 긴장을, 미묘한 어긋남과 움직임을 생성해낸다. 사물들은, 작가가 아침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일과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장을 보는 등의 행위와 순간을 경유한다. 주물을 뜨거나 석고붕대를 감싸 만들어진 오브제들은 단순한 소비/경험의 흔적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행위와 공간들을, 그날들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구성한 증거물일지도 모른다. 얇은 철판에 더해진, 그만의 긴장과 상황을 만드는 사물들은 특정 기능이나 목적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자율적인 탐험의 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 이를 통해 관객은 마치 도시를 산책하듯, 2) 또 다른 인물의 일상적인 날들에 가담하게 되지 않을까. 전시는 그 자체로 일상과 도시의 여러 순간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상상하는 장소가 된다. ● 다시 사고되는 수평의 시공, 잠재적 일상의 전환지로서의 전시는 특정한 창작의 태도를 관통한다. 전시는 단단한 철판을 유연한 물질로 인식시키고 사소한 사물의 시각성을 병치하는데, 작가는 그러한 작업의 방법과 표현을 과거 문인화에, 특히 사군자의 '난치기'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밝힌 문인화적 태도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더 이상의 유효함을 탐색할 수 없다 여길 구태의 방식은 작가의 작업에서 어떻게 적용/재구성되고 있을까.

전장연_난치기 Nanchigi_장지에 먹_28×72cm_2024

먼저, 문인화가 자연 대상을 이미지화하는 방식을 당대적으로 변용하는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전장연은 현대 도시의 풍경을 문인화의 표현 방식을 차용해 그만의 시각적 어휘로 풀어낸다. 사군자 묵법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곡선과 직선의 조화, 그리고 먹의 농담을 통해 만들어내는 강약의 리듬감은 작업에서 유동적인 선과 곡선의 3차원적 조각으로, 그에 더해지는 사물들의 구성으로 변환된다. 여기서 도드라지는 조각/사물의 여백은 거리를 두고 자연을 관조하며 그로부터 관계를 탐구하는 문인화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전시/작품의 상당 부분을 비워둔 작가는 문인화 식 여백의 개념을 현대미술의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듯하다. 전시는 단순히 비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기보다, 과거 방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형태와 색을 새로이 탐구한 결과를 드러내고, 비어있으면서 동시에 채워지는 가운데 주어진 대상을 넘어서는 기억과 사유를 마주하게 한다.

전장연_무거운 난 Heavy Orchid展_ 통의동 보안여관 신관 B2 아트스페이스 보안 2_2024

'난치기'의 즉흥적인 붓과 먹의 사용을 닮은 작품은, 함께 포착된 자연적인 모양은 일상의 감각과 사고를 다각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조각들은 과거의 문인화가 연잎의 미묘한 움직임이나 대나무의 흔들림에서 시간의 감각을 포착했듯 흘러가는 오늘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전시는 긴 호흡의 보기를 전제하면서 다른 세계와 방식을 상상하길 제안한다. 그렇게 작가는 순간의 목격과 기록에 그치지 않은 시간성의 드러남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계속되는 순환 속에서도 변화하고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작품들은, 자연과 시간에 대한 전통 회화의 접근 방식과 사유를 오늘의 시공에 겹쳐놓으며 또 다른 물질과 사물로 재구성한다.

전장연_손에 든 무게 Weight on Hand_ 혼합재료, 철판_193×25×130cm_2024_부분

누군가는 이러한 태도와 방식을 두고 '전시가 일상을 미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질문할지 모른다. 어느 실존주의자는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부조리나 허무함을 떠올리며 전시에서 그것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혹은 반대로 저 조각/사물의 무게가 삶의 고단함을 가리킨다고 우길지도 모른다. 전시는 단조로운 일상 안에서 반복적인 삶을 무조건 긍정하지도, 실존주의적 고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일상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실천적 언어라 할, 무의미를 재고한다. 작업은 반복되는 하루를 겸허히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관계가 함께함이 드러난다. 전장연은 일상의 순간들, 그 안의 사유와 현실적 문제들을 단순히 지우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고 거듭해서 이미지를, 물질과 사물을 포착한다. 이는 현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도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감각하는, 심지어는 극복하는 행위가 아닐까. 일상을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며, 과거의 방식과 당대적 풍경이 포개지는 전시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거운 난』은 단정 지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시가 말하는 일상의 모습은 쉽고도 어렵게 자리한다. 넓게 퍼져 있기도 위로 솟아 있기도 하다. 단단한 동시에 얇고 강하며, 정지된 채로 움직이길 멈추지 않는다. 분명한 대상과 형상을 드러내면서도 그 감각과 해석에는 엄청난 차이의 가능성을 남겨 놓는다. 이러한 전시의 모습은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일상과 닮아있다. 『무거운 난』을 이리저리 걸으며 무수히 많은 관계를 찾아보는 것은, 어쩌면 오늘의 가능성을 축소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 권혁규

* 각주 1) 다음을 참고. 미셸 드 세르토(신지은 옮김), 『일상의 발명 – 실행의 기예』 (문학동네, 2023). 2)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파리의 근대 도시 경험을 바탕으로 '산책자 Flâneur' 개념을 제시했다. 벤야민은 이를 통해 목적 없이 도시를 유랑하는 데서 발생하는 근대적 경험을 상정하고, 걷기의 의미를 산출했다.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 발터 벤야민(조형준 옮김), Flâneur,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2008).

Vol.20241012g | 전장연展 / JUNJANGYEUN / 全章演 / sculpture.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