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종근당 예술지상

박시월_오세경_최수정展   2024_1010 ▶ 2024_1021

콜로키움 / 2024_1012_토요일_02:00pm

2024 종근당예술지상 콜로키움 : 회화의 자리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관 오픈갤러리 발제 / 구나연(미술평론)_서다솜(독립큐레이터)_안소연(미술평론)

주최 / (재)세종문화회관_(사)한국메세나협회 주관 /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 종근당

관람시간 / 11:00am~07:00pm 10월 10일_01:00pm~07:00pm / 입장마감_06:3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로 81-3번지) 1관 Tel. +82.(0)2.399.1000 www.sejongpac.or.kr @sejongmuseum

회화, 사물과 사건의 이해자(理解者) - 흐름과 경향 ● 회화는 시각예술의 왕좌에 있지만 언제나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 추상미술과 다다의 등장으로 예술 개념과 표현의 획기적인 변화 속에 회화의 개념과 형식도 더 다양하고 복잡한 변화를 겪었다. 21세기를 가로지르면서는 전지구적 정보화 사회와 디지털문화가 만들어낸 세계상의 급격한 변화가 회화의 역할과 의미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 현대사회의 탈종교화 또는 세속화의 큰 흐름 속에 회화는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성찰하고 경험하는 중요한 예술형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회화는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의 문제, 개인의 심리와 마음 나아가 정신이라는 내면으로 더 깊이 그리고 멀리 나아간다. 회화는 사물과 사건의 가장 중요한 표현형식이자 이해자로 여겨진다. ● 어떤 주제나 소재, 스타일이건 화가들에게 익숙하고 내면화되는 것, 동시에 가장 민감하게 다뤄지는 것은 '물성'이다. 우리 미술계에서 '물성'이란 말은 매우 형이상학적으로 다뤄지는데, 사실 작가의 신체활동에 관계하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며 존재 전체성을 온몸으로 동일시하고 느끼는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물감과 캔버스와 붓과 몸의 근육과 신경과 감각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며 미시적이면서도 동시에 거시적인 통합된 감각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손 끝의 촉각에서 그리고 눈의 미묘한 시각을 통해서, 또한 후각의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감각을 통해서 전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사유가 뒤엉킨 몰입상태, 일종의 명상을 떠올려도 좋다. 이번 종근당예술지상 기획전 초대 작가들의 회화를 통해 우리는 현대 미술의 또 다른 길, 또 다른 세계와 접촉한다. 가늠할 수 없이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대 회화의 경향성을 느낄 수 있다.

박시월_조난_종이에 연필, 유리_162.2×112.1cm_2024
박시월_조난신호_종이에 연필, 파스텔, 유리_42×29.7cm_2024
박시월_틈을 잡는 법_종이에 연필, 색연필, 파스텔, 유리_20×20cm×60_2024

박시월 작가의 세계는 매우 섬세하고 미시적인 조형작업의 반복으로 구성된다. 이미지는 아주 흐릿하게 인식된다. 연약한 조형성 또는 표현의 효과가 무수히 반복되면서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가는 작업을 타인의 기억, 타인과의 관계와 그 관계의 흔적을 수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흩어진 기억을 모으듯 얇은 선들을 반복적으로 그어 희미하고 투명한 드로잉으로 기록한다. 작가는 아름다움의 문제를 투명한 욕망의 문제로 이해한다. 타인의 가장 내밀한 경험과 기억을 수집하는 방법이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가 태몽을 통해 느꼈을 행복감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그리고 욕망의 성취, 결핍의 충족에 대한 확실성과 불확실성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품 '뜬 구름 잡기', '무지개를 잡는 법', '이식된 꿈' 등은 이러한 타인의 꿈 또는 감정을 자신의 작업으로 가져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구심은 그대로 작가의 주제가 된다. 타인의 경험과 기억을 공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단지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관계를 통해 공유와 공감이 가능한지 모색한다. 이런 기묘한 탐구는 무엇보다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특수한 관계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어머니가 대표적인 타인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뚜렷한 주제의식과 함께 독특한 이미지를 구성하는 바탕이 된다. ●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라캉의 주장을 떠올려보면, 타자의 서사가 곧 나(주체)를 구성한다는 주장을 마주한다. 그런데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 모든 아이디어와 주장이 반드시 현실이 되고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타자와 나의 관계는 상호작용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추상적이다. 매우 모호하다. 확증할 수 없는 이미지들의 덩어리가 된다. 더구나 예술가의 인식과 주장은 더욱 그렇다. 박시월 작가의 드로잉은 전통적인 드로잉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작품의 주제와 제목 또는 작업노트에서는 매우 사변적인 주장을 펼친다. 사적이고 소소하며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것을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과의 관계와 공감, 소통의 문제는 현대 예술가들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화두이다. 타인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어서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박시월 작가의 연필 드로잉 또한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드로잉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특별한 인내를 요구한다.

오세경_매미의 꿈_한지에 아크릴채색_70×70cm_2024
오세경_발악 Struggle_한지에 아크릴채색_100×187cm_2024
오세경_오아시스 Oasis_한지에 아크릴채색_128×190cm_2024

오세경 작가의 세계는 불길한 전조들로 가득하다. 일상의 아이러니한 순간이나 사회적 문제, 사건의 부조리함을 극적인 상황으로 연출한다. 불, 빛, 연기와 같은 특유의 회화적 장치를 통해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번 전시 이전에 오랫동안 여고생 또는 청소년들을 모델로 하여 놀이 동산이나 골목길, 해변과 같은 공간과 낯선 초현실적 상황을 뒤섞으며 기이한 감각과 분위기를 표현해 왔다. 특별한 상황 속에서 강박 속에 놓인 느낌과 감정을 극화한다. 붉게 물든 세계가 눈앞에 제시된다. 현실을 닮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공간과 환경이 개인을 억압한다. 극도로 긴장한 개인은 불안하다. 작가의 세계는 개인이 규범과 제도를 견디며 사회화되는 과정을 마치 공포물이나 미스테리한 세계를 배회하는 경험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적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오세경 작가의 이미지들은 불편하거나 또는 미묘하게 금기시되는 것들을 건드리고 그 경계를 넘나든다. 분명한 폭력적 또는 야만적 상황과 교묘하게 불편한 시각적 긴장과 갈등이 공존하고 있다. ● 작품 '괴물'은 탈출구 없는 불타는 아파트 베란다에 사람이 서있다. 곧 불길이 그를 삼켜버릴 것이다. 괴물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불타는 아파트인지 아니면 불 그 자체인지, 아니면 불길에 곧 휩싸일 사람인지 모호하다. 작품 '아수라'는 더 상징적이다. 뱀이 뒤엉킨채 불타고 있는 모습을 들개가 바라본다. 개는 정면을 응시하며 마치 그림을 보는 관객을 바라보는 것처럼 연출되어 있다, 개 앞에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밀려온 죽은 상어가 뜯겨진 채 있다. 뒤엉킨 두 마리의 뱀은 영생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포즈이다. 거기에 죽은 상어의 사체와 응시하는 들개, 그리고 불길이 더해지며 독특한 상징성을 더 강화한다. 불빛에 어른거리는 존재, 사물, 사건, 상황이 반복된다. 작가의 세계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불안과 공포와 부조리한 상황이 반복된다.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되어온 감각과 감정, 문제들을 섬세하게 구성해낸다. 가장 개인적이며 일차적인 것들이 실상은 가장 사회적이며 보편적인 문제와 맞닿아있다.

최수정_refractionreflection_cave A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자수_105×150cm_2024
최수정_refractionreflection_cave A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자수_105×150cm_2024
최수정_refractionreflection_cave AA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자수_105×150cm_2024

최수정 작가의 세계는 거울상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재현된다. 무엇이 진실한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의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세계의 이미지이다. 동일성과 유사성은 분명 존재론적으로 다르지만, 우리의 현실은 동일성과 유사성이 뒤엉키며 공존한다. 서로 융해되어 위치가 수시로 뒤바뀌는 현실들, 이미지들이 우리가 거주하는 대지이다. 서로를 반영하는 두 현실 또는 두 이미지는 서로를 굴절시킨다. 광학적 시각적 경험이 위상학적 중심을 상실한 채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떨리는 또는 굴절되어 변형되는 현실들이 하나의 쌍을 이루며 구성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떠올리는 동굴 속과 밖의 빛과 그림자, 형상과 허상, 실재와 이미지가 공존한다. 반영과 굴절의 무한수열의 운동이 벌어진다. 세계는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하며 개인은 쉽게 허상에 사로잡힌다.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세계와 삶이란 바로 실재와 비실재, 실상과 허상,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스팩타클하게 운동한다. 2D와 3D, 4D로 지속적으로 극사실적 세계와 초현실적 세계가 융합하며 전진한다. 이미지는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지와 현실이 통합되고 분열하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실재성의 운동, 이미지의 진동이 독특하게 연출된다. 다차원의 사물과 이미지가 평면의 형식 속에 표현된다. 회화이자 동시에 회화가 아닌 어떤 기묘한 상태의 이미지들이 눈 앞에 제시된다. ● 작가는 오랫동안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자기 고유의 세계관을 구성하고자 모색해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일어나는 사고의 전개와 감흥, 강박적 맥락과 유동적인 생각들에 집중하여 이를 회화에 담아낸다. 회화의 표면은 정교하고 집요하게 구성된 이미지와 개인이 벗어날 수 없는 일상 현실의 감각을 가로지른다. 그린다는 것은 가치중립적이며 계통학적인 놀이이다. 회화는 관계 짓는 구조로써 직물, 편물로써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편집과 분열의 카오스모스 공간이다. 또한, 물리적 '표면'과 '감각'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가늠하며 캔버스라는 전통적 회화의 조건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방식을 실험한다. 이를 통해 회화와 공간, 그리고 서사와 서사를 작동시키는 이미지의 사이를 탐구한다. 회화와 설치, 오브제 등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회화 작업을 통해 회화의 전통적인 가치와 역할, 방식 등에 도전한다. 회화는 전통적인 회화의 형식에 머물지 않고 일종의 멀티미디어의 한 형태로 이해되는 것 같다. 작가는 수많은 의미층을 회화의 표면에 직조(織造)해 나간다.

나오며 ● 회화에서 표현성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기성 회화에 반발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미술가들은 한결같이 회화 또는 예술의 본질에 직접 다가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술의 역사 속에서 본질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한 작가는 거의 없다. 미술가의 본령은 예술의 본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저마다 주장하는 본질이란 어떤 본질인가. 공통된 보편적 본질의 합의점에 결코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회화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본질의 정체를 잠시 드러내려는 활동이다. ● 박시월은 타자를 어머니와 등치시키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사유를 끌고나가며 회화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오세경은 초현실적 불안과 공포 또는 예비할 수 없는 사건을 마주했을 때 만들어지는 심리상태와 그 의미를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한다. 최수정은 시각적 경험의 미시적인 변화와 섬세한 과정을 추적하며 실재와 이미지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들 초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예술분야에서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혼융되고 다양한 갈래로 분화해 가는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 회화는 개인에게는 현실과 초현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형식이다. 더 이상 묘사가 아니며 설명도 아니다. 회화는 과거 미술가들이 추구했던 문제들, 전통적인 주제와 소재들로부터 너무 멀리 나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선배 예술가들의 성취와 경험은 현재 회화작가들이 변화하는 세계와 문화에 대한 더 정확한 인식과 태도, 존재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현대 회화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신뢰할 만한 더 많은 서사(敍事)를 제공한다. 현대예술은 '나'라는 유일무이한 개인의 존재성에서 출발한다. 감상자가 공감과 이해를 첨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언제나 감상과 이해를 통해 작가가 비워 놓은 자리를 관객이 채워나간다. 썰물과 밀물처럼 이미지의 파도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미지의 파도는 사실 이미지의 바다가 표현되는 형식이다. 작가들의 개별적 감각과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차원의 보편적인 실재을 감지한다. ■ 김노암

Vol.20241010a | 제11회 종근당 예술지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