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길

한대희_추유선_정길수_이경민_김지섭展   2024_1004 ▶ 2024_1025 / 월~수요일 휴관

그음공간

초대일시 / 2024_1004_금요일_04:00pm

특별출연 / 한수지 작가 소리 공연

작가와의 대화 2024_1018_금요일_02:00pm 2024_1025_금요일_02:00pm

후원 / 경기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수요일 휴관 ▶ 관람신청(구글폼)

그음공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한서로375번길 52-65 (위곡리 90-2번지) Tel. +82.(0)10.2667.9933

어느새 누구나 인간세를 당연하게 인정하는 시대이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역사는 남겨진 뼈 조각 외에 확인하기 어렵다. 자연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인간은 어떻게 자연을 왜곡시키고 있는가? ● 인간 또한 자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 낸 환경은 더 이상 자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자연과 자유는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생태접점'이란 생각을 토대로 내가 자유로 자연을 새롭게 조형하는지, 자연이 내 자유를 조형하는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에게 자본주의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스스로 목적이기를 포기하고 수단으로 제공할 때만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다. 스스로 목적으로서 자기 규칙을 만드는 작가들을 위해 자유가 자연을 만나는 생태접점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세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천처럼 보인다. ■ 산으로 가는 길

한대희_1983 이영신_영상설치_2024

길은 양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기획 '산으로 가는 길'은 '사회로 가는 길'의 역설처럼 들린다. ● 1983년 5월 5일 일상의 균열을 일으킨 한 사건_중공민항기 비상착륙에서 시작된다. 어린이날 오후 공중에서 들리던 굉음과 사이렌소리.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청각으로 각인됐다. 그리고 10살이었던 그 해 또 하나의 이미지는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던 친구_'이영신'이다. 나는 현재의 그녀를 모른다. 우리는 같은 지역을 다른 목적으로 배회하지만 의식적 접점이 생기지 않는다. 현재 나는 '그녀'를 연기한다. 아마도 나는 그녀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연기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얼굴 _뒤통수일지도 모른다. ● 오래된 기억은 한 개인이 자신과 연관지어 형성한 맥락적 서술의 형태로 저장된다.주관이 만든 서사엔 오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니면 의도적, 선택적 오류로 가공해낸 서사일 수도 있다. 한 사건에 대한 집단기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공통의 기억 그 자체가 하나의 주체가 될 수도 있지않을까 . 꿈과 기억은 현실의 재료로 만든 허구라는 공집합에 존재하는 것 같다. ■ 한대희

추유선_'알레르기'에 대한 소고_ beginning_헌 옷을 잘라 만든 실, 석고, 바퀴, 자, 카트, 소금 등_가변설치_2024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가 늘 나를 괴롭힌다.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비염으로 시작했던 알레르기는 천식과 두통으로 이어졌으며, 이제 햇빛 알레르기까지 발생해서 여름을 견디기 쉽지 않다. ● 단지 신체적 알레르기만은 아니다. 심리적 알레르기도 있다.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지탱해주었던 예술교육 정책의 변동은 준비 없는 상태로 작업과 함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을 찾도록 했다. 부둣가에 위치한 거대기업 물류창고에서의 새벽 아르바이트는 작업과 병행하기에 적절해보여 간헐적이지만 일 년 간 들어온 상품과 나갈 상품들을 적재하고 집품하는 입출고 노동(Labor)을 했다. 물류시스템의 모듈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진 역사를 알 필요가 없게 했다. 단말기와의 접속이 가장 중요한 시스템에서 타인과 접속되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일 뿐 아니라 관계의 끈은 언제든 끊어질 수 있기에 회피하게 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노력보다는 끈끈하게 유착되어 있는 가상세계에 접속하는 것이 기쁨을 주었다. ● 신체는 로봇, 레일, 바퀴가 만들 수 있는 속도와 접속되며 나의 속도에 무심해지고 에너지드링크와 접속함으로써 신체 구조가 무너지고 있음을 회피한다. 모듈로써의 접속과 회피는 감정과 감각을 마비시켰고 노동(labor)에 대한 알레르기를 발현시켰다. 그러나 나는 노동(labor) 알레르기 증상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날이 심해져 갔음에도... ● '산으로 가는 길'에 대해 들었을 때 '바다로 가는 길'을 떠올렸다. '바다로 가는 길'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물론 더 다양한 길이 있겠지만... 나의 '알레르기' 현상에서는 아직 두 갈래이다.) 한 갈래의 길이 내게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길과 접속하고자 한다. 그 길이 내게 치유와 변신의 기회를 줄지는 모르겠다.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길이 겹치고 흐트러지기에 어느 선에 서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무엇에 접속했었고 무엇을 회피했었던지, 무엇을 회피하고 무엇을 접속해야 할지 더듬거리며 찾아보고자 그 시작점에 선다. begining!! ■ 추유선

정길수_새와 집에 관한 알레고리 Ⅲ_ APCLS(a polygenetics crisis laboratory system)_ 스프러스 구조재, 각파이프, 비계 파이프, 클램프 등_ 약 2100×160×160cm(메인 모뉴먼트), 가변설치_2024

앞선 거인의 등짝에 새겨진 무늬를 쫓아 정신없이 뛰다가 어느 날 문득, 거인이 등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자락에 얼핏 아스라이 먼 산이 보였다. ● "길은 어디에도 없고, 또 있다." ● # 인류세 기후 위기 여섯 번째 대멸종 ■ 정길수

이경민_오만무늬_五萬紋_디지털 이미지 2024

차갑고 단단한 금속이 내리는 빗물에 산화되어 녹(鏽)이 퍼져 흐트러지고, 산으로 스며들어 녹(綠)으로 이롭게 한다. 아시바미술관이 장락산 줄기에 자리하며 남긴 흔적(작업)들과 앞으로 작가들이 조형할 작업을 무늬로 연결하고자 한다. 아시바미술관에는 지금까지 참여한 작가들의 조형 언어들이 산과 작용하여 형성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이 아름다움을 분리하고, 연결하고, 중첩하여 무늬의 언어로 다시 조형하려 한다. ● 작업의 실천 가능성은 복수성을 기반으로 한 판화 기법과 무한성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저작권 공유에서 찾을 수 있다. 복수성은 전통 벽지 제작 방법인 롤러, 블럭 판화를 활용해 복수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이를 이차 생산품으로 제작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여러 환경으로 배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시바미술관이 위치한 설악군 지역 생활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퍼지는 것을 바란다. 전단지, 씨앗 포장지, 편지 봉투, 달력, 쌀 포대, 막걸리 포장지, 비닐봉투 등 다양한 지역 문화 속에 적용하여 작가의 조형 흔적들이 직간접적으로 녹아드는가능성을 시도해 본다. 무한성을 기반으로 한 실천은 바로 저작권 공유이다. 지적 재산권인 창작물을 복제, 배포, 편집 가능한 형태로 등록하여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오만 지역으로까지 확장되는 무늬를 목표로 한다. ● 작가의 작업이 실용적 무늬로 확장되어 창작과 지역사회가 이어지는 조형이 나의 작업임을 주장하며, 산으로 가는 길이 지역 사회로 가는 길과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지역 문화, 개인, 또는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오만 상상을 해본다. ● 오만[五萬] (사투리): 매우 종류가 많은 여러 가지를 이르는 말 ■ 이경민

기획미술 : 그음공간 ● 주체의 경계를 긋는 것이 첫 그음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음공간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주체가 되어, 어떤 다른 목적에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 목적들의 나라를 꿈꾸었다. ● 그런 의미에서 전시를 위하여 미술관에 의존하지 않고, 소유권의 빈틈을 찾아 작업이 요청하는 공간을 만들고 전시하는 「아시바미술관」기획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작가들이 기대어 함께 작업하는 연기창작을 유지하면서 산으로 가는 길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 오래 기르던 늙은 고양이의 눈빛이 서늘했다. 마지막 일주일 그 서늘함을 남기고 산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고양이도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주체로서 인간은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렇게 산으로 가는 길을 시작했고, 지역문화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 나 홀로 산으로 가는 길에 지역 사회로 이어지는 길이 있을까? ■ 김지섭

전시오픈 소리 공연 - 한수지_걸음으로 건진 소리들 「Mountain Fugue」 ● 낮은 등허리와 뾰족하지 않은 순둥한 한국의 산들을 생각한다. 포근함에 가까이 다가서면 다정했던 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정수리의 한참 위로 한계를 모르는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제아무리 순한 뒷 산이라고 해도 산은 내게 짙은 검은색의 두려움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자라는 곳. 자라는 동시에 스러지는 몸짓들. 첫 필드 레코딩을 통해 들어본 산의 소리는 평온함 대신 웅얼거림이 있었고, 치열했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었다. ● '산으로 가는 길' 오프닝 공연을 기획하며 이전의 느낌들을 다시 재생시켜 보았다. 산을 오르며 마주한 생물들은 스스로 진동하며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아시바 미술관이 위치한 산을 따라 걸으며 이곳의 소리를 듣고, 작품과 주변 환경, 그 사이에 흐르는 소리의 감각들을 캐내어 보려 한다. 특히 평소에는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들, 인간의 청각 범위에서 놓치기 쉬운 소리들, 사람 이외의 생명체나 물질이 만들어 내는 진동의 소리들을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이 소리들은 아시바 미술관과 주변 환경의 청각적 좌표를 드러내고 이를 음악으로 재해석 하는 작업의 기초가 될 것이다. ● 음악의 도입부에서는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가며 돌림노래가 반복되지만, 점차 여러개의 화음과 멜로디가 서로를 따라가고 변형되는 과정을 통해 푸가(Fugue)의 형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푸가(Fugue)의 어원처럼 소리들은 도망가고(Fleeing) - 다시 쫓고(pursuing) - 하나의 덩어리로 돌아오는(coming)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노래하는 음악이 되어 있을 것이다. ■ 한수지

Vol.20241004b | 산으로 가는 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