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태경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 8-6 Tel. 070.4401.6741 @onewwall
재개발의 움직임이 크고 작게 느껴지는 서울 성북동에 오뉴월 이주헌은 위치해있다. 이 건물은 도시 발전과정은 과감하게 역행하면서도 자체적 시간은 거스르지 못한 채 충실히 낡아가는 중이다. 이 공간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살림집으로 쓰이다, 2015년부터 좋은 집이라는 뜻의 이주헌이라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하며 낡음의 미학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 실험적 전시와 워크샵이 끊임없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주헌은 여전히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기능하나 다채로운 경험의 장소라고 칭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기왓집은 일주일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지의류地衣類라는 살가운 이름의 이끼류 곰팡이가 터전을 잡아가며 늙은 목재는 따끔한 위협감을 준다. 이를 보고 있자면,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한물간 공간'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회상의 역방향》은 이러한 이주헌의 위치, 외형, 현대미술 공간으로서 맡고 있는 역할이 '한물간 것' Veraltet이라는 앙드레 브르통이 언급한 초현실주의 단어와 맞물리며 시작되었다. 브르통, 발터 벤야민을 비롯한 철학자들은 몇 년 전에 유행이 지난 낡은 장소를 두고 용도를 잃은 한물간 공간이라 일컬었다. 이 인물들은 한물간 것이 과거-현재-미래라는 근대적 시간 개념에 파열을 내는 지점에 주목하였다. 다시 말해, 초현실주의자들은 '한물간 공간'과 그 안에 아로새겨진 '한물간 것'에서 그들이 그토록 반하는 삼분법적 시간 개념을 비롯한 이성적 질서를 깨뜨릴 가능성을 탐지하였던 것이다. 이는 한물간 것이 애잔한 회상의 촉매로 작용하여 과거를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물간'이라는 단어는 현재(자본주의가 뼛속까지 침투한) 더 이상 최적의 물질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을 이를 때 주로 사용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은 돈이 안되는 한물간 것을 고스란히 놓아두는 것을 너그럽게 용인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는 시선의 연장으로 작용하여 의식주의 취향, 이를 위한 소비가 한물간 것이 아닌지 자기 검열하게끔 하고 있다. 따라서, 한물간 장소와 물건은 타임라인의 아래로 밀려나며, 도시의 외양은 조금씩 빠르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한물간 것은 또 다른 유행으로 나타나며 레트로Retro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그릇 안에 담긴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 감각을 묘하게 흔들어 놓는 잠재력을 띠고 있어 과거의 한물간 것의 용의와 대칭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한물간 공간에 한물간 것이 새겨져 있다는 앞선 철학자들의 말과 달리, 한물간 전시장 속 작품은 시간의 역방향으로 혹은 순방향으로 소생하고 생장하는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다. 임상빈의 「서울 1」(2022), 「서울 2」(2022)는 대도시에서 흐르는 시간은 압축하되 여윳공간 없는 속도감을 확대해 보여준다. 또한 엄아롱의 「Move and Move」(2019-2022)는 대량생산의 폐해로 혹은 거주자의 이동으로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겨진 용도를 잃은 자재가 다시 재생에 가담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배미정의 회화 작품들은 각기 다른 과거에 존재했던 객체를 영롱한 배경으로 소환하며 그로부터 발현되는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순수한 가치를 보는 이에게 전달한다. 신디하는 어긋난 타임라인에서 어딘지 익숙한 외형의 미래 생물이 현재에 도달할 때 느껴지는 낯선 감정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로써, 낡은 전시장은 두터운 먼지를 털고 새로운 감각 경험의 장으로 끊임없이 거듭나게 된다. ■ 이태경
Vol.20241002m | 회상의 역방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