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O THE CLOUDS, IN TO THE FOREST

이헌展 / LEEHEON / 李憲矸 / painting   2024_0927 ▶ 2024_1006 / 월요일 휴관

이헌_Forest_캔버스에 유채_19×33.4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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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인 HQ GALLERY IN HQ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97 (연희동 719-10번지) 1층, B1 Tel. +82.(0)10.9017.2016 @_innsinn_

작은 창으로 본 인지적 풍경 ● 이헌의 풍경화 앞에 서게 되면 그림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드넓은 하늘, 휘몰아치는 구름, 거센 바람 그리고 숲을 이루는 거친 나뭇가지, 식물의 줄기들, 이 모든 거대함과 섬세함이 아주 작은 틀 안에 들어 있다. 방안의 창문으로 내다본 바깥의 풍경처럼, 그리고 인간의 눈으로 마주한 넓은 세상처럼.

이헌_Internal 2_캔버스에 유채_60.6×72.2cm_2024

유화 물감의 기름과 바니시로 인해 항상 빛을 머금고 있는 그의 풍경화는 포근하기보다는 어딘가 서늘하다. 그의 회화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불안한 정서를 담고 있다. 대게 이런 경우 풍경을 대형 캔버스에 그림으로써 규모의 힘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헌은 소품이라고 불리는 작은 캔버스에 풍경을 담아냈다. 캔버스는 풍경을 바라보는 창문처럼 외부를 담는 틀로 대변되어 오곤 했다. 이에 그는 캔버스를 창문을 넘어 눈이라는 틀로 비유하는 듯하다. 인간의 작은 눈으로 본 거대한 자연 풍경은 화가의 불안한 현실을 더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그가 처한 현실은 왜 이리도 불안한 것일까.

이헌_Internal_캔버스에 유채_28×60.6cm_2024

이헌은 오랜 시간 나무, 숲, 하늘이 담긴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전통적인 유화 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2017년쯤부터 그는 작업실 근처 공사장의 철근과 건축 폐기물, 그리고 지역에 있는 습지의 나무와 덩굴을 조합하여 「접경」 연작을 지속해 왔다. 이 연작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한 공간에 혼재함으로써 자연 풍경의 외형 뒤에 감춰진 도시 환경의 이면을 암시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시선과 관심이 캔버스 안의 순수 조형 요소나 화면을 구성하는 미학적 방법론보다는 자신의 삶이 놓인 현실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캔버스에 유화물감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표면적으로는 사실적인 고전 풍경화를 그리는 그의 내면에는 미술사를 탐구하는 것에 대한 갈망과 유구한 회화사에 짓눌린 중압감이 내재해 있었다.

이헌_접경 7_캔버스에 유채_22.7×15.8cm_2019

2021년 그가 직접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전시 『erase』(2021, 예술공간 집, 광주)에서 그는 미술사의 흐름 속 화가로서 본인의 위치를 재정비하기 위해 회화의 형식과 태도를 재고하며 명화를 해체, 재구성한 「말레비치 지워버리기」(2021), 「마그리트 지워버리기」(2021) 등 일종의 개념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말레비치의 정사각형, 원, 십자가를 검게 지우고, 마그리트의 파이프를 부식시켰으며, 종이 위에 흑연을 검게 문질러 「아는 것을 지워버리기 위한 드로잉」(2021)을 발표한 이 시기의 회화를 그는 스스로 '검은 회화' 연작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전시 서문 말미에 그는 "개인적 사유가 회화적 공정을 거쳐 작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실패했거나 성취했던 점, '지우거나 없애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설픈 흔적'마저 새로운 가능성으로 발견되길 기대한다"고 언급하며 그의 회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정하고 있었다.

이헌_Horizon_캔버스에 유채_48.5×60.5cm_2024

미술사와 회화사 속에서 헤맨 후, 그의 「접경」 연작은 두 갈래로 나뉘어 전개된다. 「접경」의 공사장 속 인공물과 습지 같은 자연물이 결합한 풍경에는 작가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그는 의도와 무관하게 스스로 바라본 세상을 화면에 재구성함으로써 작품에 현실에 대한 발언, 나아가 서사를 부여하고 있었고, 오늘날 동시대 회화에서 화면 속 붓질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 또한 담고 있었다. 근작에서 그는 「접경」 속 서사의 영역을 「클라우드」 연작으로 확장하였고, 그 안에 있던 회화 기법과 형식 실험을 「숲」 연작에서 이어 나가는 듯하다.

이헌_주피터_캔버스에 유채_36×53cm_2023

「클라우드」 연작은 어두운 하늘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이 땅의 굴곡과 이어져 하늘과 지평선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려 불길한 감정을 유발한다. 이 연작은 작가가 광주 작업실에서 본 하늘과 전남 담양에서 본 지평선을 조합해 그린 것으로, 현실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풍경에 반영한 회화이다. 그는 지평선과 하늘이 만나는 모호한 경계에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거기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그는 여기서 또 다른 불안을 떠올렸다. 그것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 대해 회화 작가로서 그가 갖고 있는 적대감에서 비롯된 불안일 것이다. 현실의 땅으로부터 발 딛고 바라본 세상 그리고 물성으로 대변되는 회화 재료를 통해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 물리적인 몸이 없음에도 정보와 이미지를 실어 나르는, 그 자체로 실체 없는 실재인 디지털 환경은 경쟁자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화면 속에서 지평선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구름은 그의 물리적 현실인 대지를 압도하고 경계를 잠식하는 디지털 환경의 데이터 클라우드로 은유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디지털 환경과 물리적 공간 간의 대립 구도는 화가 이헌에게는 불편한 현실이지만 피할 수 없는 회화적 조건이기도 하다.

이헌_Cloud 09_캔버스에 유채_30.5×53cm_2023

그는 사전 인터뷰에서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를 너무 쉽게 스크린을 통해 접하다 보니, 그림을 그릴 때 단지 화면 속 사진을 모사하는 것에 치우쳐질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붓질'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붓질에 대한 그의 사유는 「숲」 연작에서 드러나게 된다. 「숲」 연작은 일상에서 목격한 숲과 자연을 그린 풍경화다. 그가 직접 본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이지만 시간, 장소, 사건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아 관념적인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작품 속 숲은 작가가 감정을 이입한 풍경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기호라기보다는 화면 안에서 –작가 스스로 손가락에 달린 눈이라고 표현한- 자신의 시지각적 궤적을 '붓질'에 집중하기 위해 재현 대상을 의식하지 않고도 구성할 수 있는, 정서와 감정의 개입이 최소화할 수 있는 관념적인 대상을 고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의 「클라우드」 연작에 비해 붓을 섬세하게 세워 반복적으로 중첩한 세필 자국의 풀들을 볼 수 있다.

이헌_Cloud_캔버스에 유채_53×28cm_2023

흥미로운 지점은 화면에 구현된 풍경이 언뜻 사진처럼 사실적이고 매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면 오히려 실제 원본을 반영하는 것과 무관하게 붓 자국, 물감을 문질러 드러난 천의 표면, 물감의 거친 질감 등 재료의 물성 그 자체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그의 풍경화는 사진의 표면을 모사하는 재현에 중점을 둔 회화가 아니다. 그의 회화 과정에서 재현의 문제는 초기 구도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만 기능한다. 이후 작업 과정에서는 풍경의 원본에 대한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화면 위의 대상을 추적하는 손끝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된다. 붓을 세워 반복한 붓질과 붓질의 충돌, 그 붓질의 중첩으로 인해 밀리고 닦인 물감 자국이 화면에 고스란히 남게 되며 이와 같은 수행적 붓질의 흔적은 화면 속 새로운 '회화적 공간'을 창출하게 된다.

이헌_The moon_캔버스에 유채_36×53cm_2023

그는 스스로 「숲」 연작에서 '붓질'이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여 언급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 있어 붓질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다시 생각해보면, 「클라운드」 연작에서 보았던 작가가 갖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경계, 오늘날 스크린이나 화면을 통해 쉽게 접하는 사진의 이미지를 신뢰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수행적 붓질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연약하지만 실체가 있는 신체를 통해 대상을 인지하고, 합리적이지 않고 무의미한 행동처럼 보이는 반복적 붓질에 집중해 '손가락 눈'의 인지적 궤적을 창출하는 것이 그의 풍경화가 갖는 유의미한 힘일 것이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풍경을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것, 오늘날 오래된 매체인 회화의 의미를 되찾는 것, 재현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재현을 초월하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그가 구현한 '인지적 풍경'이 작은 틀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작은 틀로 적절한 풍경을 보려면, 창문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의 범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이헌의 숲을 처음 보고 헷갈렸던 때가 생각난다. 나무들이 빼곡한 큰 숲을 멀리서 본 모습인지, 한 아름의 덩굴과 식물 줄기를 가까이서 본 모습인지. 결국 잘 보고 잘 아는 방법은 몸과 틀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것이겠다. ■ 이민훈

Vol.20240927i | 이헌展 / LEEHEON / 李憲矸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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