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한효진展 / HANHYOJIN / 韓效辰 / photography   2024_0924 ▶ 2024_1006 / 월요일 휴관

한효진_「쉰,」 이경윤_90×12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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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진 인스타그램_@han_hyojin1974

초대일시 / 2024_0928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진위주 류가헌 Mainly Photograph Ryugaheon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 아카이브빌딩 B1 2관 Tel. +82.(0)2.720.2010 www.ryugaheon.com blog.naver.com/noongamgo @ryugaheon

쉰에, 멈춰 '쉰' 오십인의 초상 ● '오십,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 그렇다고 늙었다고 말하기는 이른 나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겸연쩍은 나이, 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모두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나이, 이만하면 그런대로 잘 버티며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은 나이, 그런 가운데 얼마나 나를 잃고 살아왔는지 자꾸만 회한이 드는 나이.' ● 『쉰,』의 서문에서, 박지수(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자)는 나이 오십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직접 오십을 맞은 경우가 아니라도, 어느 연령대든 쉬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진가 한효진이 『쉰,』을 시작한 것도, 그녀 자신이 오십을 앞둔 시점에서였다. 젊지 않지만 늙지도 않은 나이, 그녀는 포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겸연쩍음을 택했다. 새로이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자기처럼 서로 상충 되는 심경으로 오십을 맞는 동갑내기들을 사진으로 기록키로 한 것이다. 나이 오십의 사진가가 오십 세, 동갑내기들을 만나 삶의 중반부에서 찍은 영정사진 「쉰,」이 그것이다. ● 그는 사진기를 들고 서울, 대전, 광주, 제주 등 전국의 '쉰 살' 오십 명을 차례차례 만났다. 누군가는 학교 연못 가 수양버들 옆에, 누군가는 지은 지 100년이 넘은 한옥 앞에 자신을 세웠다. 어떤 이는 '사진 속 내 모습이 마지막이라면, 편안하고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을 기억해주기를'이라며 환히 웃고, 어떤 이는 '내 영정사진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며 뒤돌아서서 얼굴 표정을 숨겼다. ● 어떤 이는 '밋밋하던 인생에 활기가 되어 준' 반려견과 함께 찍히기를 원했고, 또는 장구나 기타, 첼로처럼 자신의 삶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악기나 사물들과 함께 찍히기를 바랐다. 또는 전 생애 동안 가장 많이 입은 옷인 의사 가운을 입거나 미사포를 쓴 채로 남겨지기를 바랐다. ● 서로 사진가와 피사체로 마주보았지만, 실은 같이 그들이 맞은 오십이라는 나이를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50세 총 50인의 초상사진과 그들의 사유로 한효진의 사진 시리즈 「쉰,」이 완결되었고, 같은 제목의 전시와 책으로 선보여진다. ● 한효진 사진전 『쉰,』. 제목 '쉰'은 나이 오십을 이르는 호칭으로서의 쉰이자, 삶의 중반부에서 잠시 쉬며 사유한다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전시는 9월 24일부터 2주간, 사진위주 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린다. ■ 류가헌

한효진_「쉰,」 김다라_80×60cm_2023

서로를 환하게 비추는 자리"어느 날 한 나무꾼의 아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제 남편 사진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 혹시 남편이 숲에서 일하다 죽어도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요."" (존 버거, 장 모르, 『말하기의 다른 방법』, 눈빛, 1993, 61쪽.) ●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며칠 후 사진가는 나무꾼의 아내가 한 부탁에 따라 그의 집을 방문한다. 며칠 전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아내에게 핀잔을 줬던 나무꾼은 상기된 표정으로 사진가를 정중하게 맞는다. 그는 가장 깨끗한 셔츠를 준비해 꺼내 입었고, 평소와 달리 정성껏 빗질을 해 머리도 정갈하다. 어젯밤에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와 표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아내 몰래 연습까지 했다. 아내는 차를 내오고, 사진가는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도 눈길은 분주하게 집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빛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부드럽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나무꾼의 얼굴과 몸집도 훑어본다. 차를 다 마신 사진가는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들고 창문가로 향한다. 하얗고 얇은 커튼을 반쯤 치고 의자를 창문과 사선이 되도록 돌리고, 나무꾼에게 앉아 보라고 손짓한다. 그가 의자에 앉자 사진가는 옷에 생긴 주름을 펴고, 나무꾼의 턱에 부드럽게 손가락을 대고 고개를 살짝 움직이게 한다. 그러자 나무꾼의 콧날 오른쪽에는 부드러운 그림자가, 반대편 광대 부분에는 가벼운 빛이 감돈다. 뒤로 물러난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어 프레이밍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고개는 그대로 두고 눈빛만 살며시 따라오라고 주문한다. 나무꾼은 카메라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사진가의 손짓에 집중하면서 그의 지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따른다. 너무나도 성실하게 부동자세를 취하는 나무꾼을 뷰파인더로 바라보며 사진가는 호흡을 고르며 얼굴에 빛이 서리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1초 전도 아니고, 1초 후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숨을 멈추는 동시에 셔터를 누른다. 나무꾼에겐 난생처음 경험했던 어색하고 쑥스러운 시간이 더디게 지난 후에야 드디어 촬영이 끝난다. 비록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무꾼은 하루 종일 도끼질을 한 것처럼 피곤함을 느낀다. 온몸에 진이 빠진 것 같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뿌듯함이 몰려온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내 증손자들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겠군.' (위의 책, 39쪽. 여기에는 장 모르가 농부 '마르셸'의 초상사진을 찍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나무꾼의 초상을 촬영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저 촬영 과정을 지켜만 보았는데도 나무꾼의 아내 역시 짙은 고단함과 보람을 동시에 느낀다. '이제야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 생겼어.' 사진가도 마찬가지로 몹시 노곤하지만 뿌듯하다. '마침내 노동자의 참된 얼굴을 담았어.' ● "한 장의 사진은 사진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보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의 관심이 제각각 어우러져서 때로는 모순을 빚어내기도 하는 만남의 자리이다. 이런 모순들은 사진 영상이 원래 갖고 있는 모호성을 감추는 동시에 증가시킨다." (위의 책, 7쪽.)

한효진_「쉰,」 이지영_80×60cm_2023

한효진의 사진 작업 「쉰,의 초상」을 바라보며 상상으로 그렸던 나무꾼의 촬영 과정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사진 한 장에 어우러진 사람들, 그들의 제각각인 관심이 빚어내는 모순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 『쉰,』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 모두 현재 나이 오십을 맞은 이들이다. 그 사진을 보게 될 사람을 미리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관객 또한 나이가 오십인 이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오십이 된다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도, 찍히는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작업의 발단부터 직접적으로 작가가 오십이 된 소감에서 비롯되었다. 그 복잡하고도 심란한 속내를 간단히 넘긴다면, 나와 동갑내기인 이들을 찾아 영정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작업의 동기에 깊이 동조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사진가의 촬영 제안을 받아들여 조금 이른 나이에 난데없이 영정사진을 찍게 된 참여자들 저마다의 동기도 온전히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효진_「쉰,」 장민화_80×60cm_2023

오십,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 그렇다고 늙었다고 말하기는 이른 나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겸연쩍은 나이, 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모두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나이, 이만하면 그런대로 잘 버티며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은 나이, 그런 가운데 얼마나 나를 잃고 살아왔는지 자꾸만 회한이 드는 나이. 동양적인 관념에서 완성을 뜻하는 '백(百)'을 기준으로 삼으면 오십은 언제나 미완성의 나이인 셈이다. 이제 절반쯤 살았고, 아직 절반쯤 더 살아야 하는 삶의 반환점에서 지금껏 살아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동시에 앞으로 살아야 할 길을 내다보는 심사는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절반의 삶을 넘어 더욱 가까워진 노화와 죽음의 시간 앞에서 무심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나이 오십을 맞은 착잡한 속내는 그저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이 또한 지나간다고 하여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효진은 복잡한 심경을 스스로 혼자 다독이는 대신에 자신의 처지와 같은, 현재 오십을 맞은 이들을 찾아 나선다. 그는 학창 시절의 친구였거나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동갑내기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자고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인 쉰 살의 오십 인을 차례차례 카메라에 담기 위해 서울, 대전, 광주, 제주 등으로 떠난다. 그리고 동갑내기인 그와 그들은 함께 만나 촬영자와 피사체가 되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다. ● 그렇게 태어난 수십 장의 초상사진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또 궁금해한다. 그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그의 사진을 영정으로 사용할까. 나와 닮은 그들을 향한 그의 눈길은 담담한가, 진중한가, 따뜻한가, 친절한가, 애틋한가, 살뜰한가, 애잔한가, 헛헛한가, 씁쓸한가, 허무한가 ... 그들은 자신의 마지막 사진으로 사용해도 괜찮을 만큼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까. 요즘 관심을 쏟으며 가꾸고 있는 텃밭에서, 오랫동안 에너지를 쏟았던 일터에서,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방에서, 애정과 취향이 듬뿍 담긴 물건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사진 속의 그 모습은 나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이 사진들을 그들다운 모습으로 기꺼이 받아들일까.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나무꾼의 초상이 노동자의 참된 얼굴을 드러냈을지, 그 사진으로 아내는 남편의 기억을 담보할 수 있을지, 증손자들이 사진을 통해 증조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지 확실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효진_「쉰,」 박철웅_80×60cm_2023

다만 내게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진 속에 보이는 그들의 빛나는 얼굴이다. 「쉰,의 초상」을 계속 바라볼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면, 기이할 만큼 얼굴이 가시적으로 빛난다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에 촬영되었고, 또 카메라 앞에서 서로 다른 사연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모두 한결같이 빛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건조하게 말한다면 분명 조명 기법 때문이다. 얼굴에는 빛을 더하고 배경은 어둡게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초상사진에서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흔한 방식이다. 이를 통해 안색은 전반적으로 밝아지고, 부분적인 음영은 더욱 도드라져 얼굴의 입체감이 한결 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한효진의 사진에서는 어두운 실내이든 밝은 야외이든, 바닷가에서 맑은 하늘 아래이든, 도시 속에서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밑이든, 먼 거리에서 전신숏을 잡아내든, 가까이에서 상반신만 프레이밍하든, 얌전하게 가만히 앉아 있든, 경쾌하게 분주히 춤을 추고 있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무엇에 상관없이 얼굴에 빛이 감돈다. 자연광과 인공광, 반사광과 확산광... 그 모든 얼굴마다 가미된 다양한 빛을 찬찬히 바라보면, 그것은 조명 기법일 뿐만 아니라 촬영자가 지닌 의지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 어떻게든 그들의 얼굴마다 빛을 비추겠다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마음을 모두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떤 단단한 결심만큼은 도드라지게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이 절대 누추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자신의 사진이 그들의 모습에 절대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세팅된 그의 카메라와 조명 앞에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몹시 고르고 고른 나의 장소와 시간에서, 애써 고민하고 고민한 나다운 모습과 포즈를 각오하며... 이제 이처럼 카메라 앞뒤에서 교차하는 그와 그들의 살뜰한 정성스러움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어쩌면 그 마음은 나무꾼을 바라보며 숨을 멈췄던 사진가의 호흡과 닮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마음은 사진가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아끼고 아껴뒀던 찻잔을 꺼내는 나무꾼 아내의 손길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마음은 거울 앞에서 셔츠의 단추를 모두 꼼꼼하게 채우던 나무꾼의 옷매무새와도 겹쳐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결국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마지막 순간에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발현되는 정갈함과 반듯함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이뤄진 오십여 차례의 정갈하고도 반듯한 '만남의 자리', 그와 그들은 거울을 바라보듯 서로를 바라본다. 그와 그들의 눈빛은 자신과 닮은 얼굴을 서로 환하게 비춘다. 잠시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 박지수

쉰, 반백 살이 되었다. 살아온 만큼 살 수 있을까? 무던히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불현듯 부당하게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무얼 약속할 수 있을까? 그저 오늘의 안녕에 감사하고 지나온 시간에도 감사하다. 지난 날, 숱하게 헤매었던 날도, 실수 했던 순간도 기억 속에 그저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 오십 살의 이름으로 그와 우리의 사진 한 장 있다면 그를 기억하기에, 그 시간을 기억하는데 조금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한다. 쉰에 잠시 나와 동갑내기들을 돌아봤고 오십여 차례의 만남 속에서 얻은 이 순간은 앞으로 채워 갈 시간과 함께 할 것이다. 결국 쉰, 은 오십 살 동갑내기들을 찾아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의 안녕을 바라는 작업이었다. 부디 10년 후에도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 한효진

Vol.20240924d | 한효진展 / HANHYOJIN / 韓效辰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