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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0923_월요일
후원 / 부천문화재단_부천시 기획 / 하자유 본 전시는 부천문화재단 차세대전문예술활동지원 『청년예술가S』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ALTERNATIVE SPACE ARTFORUM RHEE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조마루로105번길 8-73 (상동 567-9번지) Tel. +82.(0)32.666.5858 artforum.co.kr @artforumrhee www.facebook.com/artforumrhee
어떤 작품은 우리를 아주 멀리 데려가지만, 하자유의 작품은 우리를 가까운 곳에 오래 머물게 한다. 하자유의 주된 모티브인 '흔적'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사라져가는 공간과 순간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옮긴 유화 작업은 대상을 화면 위에 흔적으로 담아내는 반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다수의 판화 작업은 목판 위에 흔적을 새기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장면의 서정성과 대상의 시각적 재현에 집중한 페인팅과 달리 하자유의 판화는 촉각적 경험을 통한 체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전시 제목인 《공연히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더니》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다. 이는 '긁어 부스럼'의 북한 속담으로, 공연히 숲을 쑤셔 뱀을 나오게 해 위험에 빠뜨린다는 말이다. "나는 그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어내는 꿋꿋하고도 어이없는 존재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 심연의 동력을 파헤쳐 보고 싶어졌다. 구태여 뱀을 일구는 자는 무엇 때문에 일구는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 것을···. 아름다움을 목격했다는 사실로 숲을 파헤쳐 뱀을 일구어가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뱀과 같이 꿈틀거리는 수많은 생명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긁어 부스럼은 예술가들이 가장 잘 해내는 것이며 그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 시간이면 등반할 숲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헤매는 사람처럼. 오르기에 목적을 두지 않는 무위, 우연에 맡겨진 거닐기. 다가오는 이미지와 감상에 스스로를 내맡긴 채 흔적으로 남길 순간의 광경을 음미하는. 이것저것 둘러보고 들춰보는 산책자의 태도가 곧 하자유가 말하는 예술가적 태도이다. ●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페인팅이 한 발짝 멀리서 숲을 바라본 것이라면, 판화 작업은 눈 덮인 숲 한복판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하얀 땅 위에 찍은 불규칙한 발자국이며 매끄러운 공백의 나무판에 새긴 거친 흔적이다. 우리는 작가가 구태여 새겨둔 발자국을 뒤따라 걷는 사람이 되어 기꺼이 함께 한가로이 헤매기도 하며, 그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했던 얼굴과 장면을, 순간을 함께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하자유가 마음껏 헤집어놓은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 정우연
하자유 개인전 《공연히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더니》는 우리 삶에 깃든 목적 없는 행위에 대한 숭고한 믿음을 말하는 전시다. 공연한 시간, 허망한 과정의 표상이 하자유 작가가 작업한 목판의 패인 마디마디에 고요히 대응한다. 전시되어 있는 20여 점의 목판 조각은 추상적 행위의 난삽한 칼질 같기도, 의도적으로 형체를 흩트린 특정한 자흔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목판 층위에 새겨진 이미지,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부산물을 작가가 지은 시적인 제목과 함께 본다.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면 자라있다」, 「낯선 이의 등과 무심코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여름이 지나간 자리」,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길이 시작되는 곳에 고여 있는」처럼, 텍스트가 담지한 정서가 목판에 음각으로 누적된 시간의 느린 감각과 함께 섞여 지금에 서정적으로 공명한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작업실에서 키웠던 화분과 동네 어귀 골목의 풍경, 스마트폰에 담은 작가 자신과 주변인의 얼굴, 산책했던 풀숲 아니면 갯벌의 이미지가 목판의 군데군데 새겨져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고, 그 주변을 감싸거나 해치듯 파헤친 칼의 우연한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 '펼쳐지지 않음을 인지하면서도 이 세상에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을 감수하여 삶이라는 판을 긁어내는 생명들이 들끓고 있다.' (하자유 작가노트) ● 작가의 일상과 그 일상의 시선에 포착된 무언의 형상이 어쩌면 '공연하게' 복제되고 옮겨져 지금의 전시를 이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공연함'에 대한 '공연하지 않은' 믿음을 갖는 것 같다. 헤치지 않고는, 파내어 긁어내지 않고는 모르는 미지의 것을 일구고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대한 신념을 수호하는 것이다. 생명이 오고 가는 정경을 대하는 호기심, 불투명한 삶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는 의지, 그리고 어느 젊은 예술가의 지속적인 활동에 대한 용기로도 해석될 수 있을 신념을. ■ 오정은
사라져가는 공간과 순간을 포착하여 캔버스 또는 목판 위에 새기던 기존 작업과 이어지면서 흔적을 남기는 의미 자체의 행위를 고민하는 작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작년에 비해 짐이 너무나 많아진 작업실을 보며 당장은 좋다고 하는 이 행위가 어느 시점이 되면 또다시 짐으로 전략해버린다는 걱정이 앞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 모든 행위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이다. 내가 발견하고 목격한 어떠한 주파수를 감각하여 시각적 행위로 나의 몸을 움직여 기록한다는 것에 나는 아직 해야 할 이유를 구태여 찾아내야만 했다. ● '공연히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군다'는 '긁어 부스럼'의 북한 속담이다. '긁어 부스럼'을 검색했을 때 뜻풀이로 북한 속담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통상적으로 '긁어 부스럼'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나는 그 부정적인 시선들로 가득한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어내는 하나의 꿋꿋하고도 어이없는 존재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는 그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존재에게서 심연의 동력을 파헤쳐 보고 싶어졌다. 구태여 뱀을 일구는 자는 무엇 때문에 구태여 일구는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 것을 굳이 복잡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 나는 아름다움을 목격한 죄로 끝없이 수라갯벌의 살아있는 현장을 기록한다는 활동가의 말이 떠올랐다. 과거의 수많은 생명이 가득했던 갯벌의 아름다움을 목격한 이는 과거의 찬란했던 터전에서 모든 것이 막히고 가치가 공유되지 않는 현재에도 아름다움을 목격했다는 사실로 지금의 숲을 파헤쳐 뱀을 일구어가는 이들이다. 그들이 구태여 파헤친 숲이 존재하기에 뱀과 같이 꿈틀거리는 수많은 생명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나 그 이면에 파여진 조각들과 흔적들로 파생되는 것들이 있다. 흩날리고 사라져버리는 듯한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흩어진다 하여도 그것이 가진 생명력을 목격한 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의미이며 목적이 되기도 한다. 나는 현 사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당장 명료화되지 않은 하루를, 어떠한 발걸음을 이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끝내어 멈추지 못하며 당장의 유토피아가 펼쳐지지 않음을 인지하면서도 이 세상에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을 감수하여 삶이라는 판을 긁어내는 생명들이 들끓고 있다. ● 더위에 못 이겨 선풍기를 틀었다. 내가 파헤쳐놓은 톱밥이 미풍의 바람에도 작업실 곳곳으로 흩어진다. 이들의 복잡한 흔적들이 끝끝내 공연히 숲을 헤쳐 대지의 일원으로, 녹색을 품은 줄기로, 저 밑에 도달하는 뿌리를 감각할 수 있는 존재로 일구어낼 것이라고 긁어 부스럼을 내는 말을 하고 싶다. ■ 하자유
About Artist ● 하자유(b.1997)는 사라져가거나 새롭게 마주하는 것들을 유화와 목판에 흔적으로 남기며 작업한다. 북경 중앙미술학원 판화과를 졸업하였고, 2023년 개인전 《흔적이 풍경이 될 때》(미루갤러리, 서울), 《흘러흘러 어디로 가나》(예술공간 광명시작, 광명)을 시작으로 2023, 2024 부천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Vol.20240923e | 하자유展 / HAZAYOU / 河自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