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0927_금요일_05:00pm
주최 / G컨템포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G컨템포러리 G contemporary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66 가야랑빌딩 3층 Tel. +82.(0)2.6324.2139
공중정원-SPACE X에 존재하는 액상(液狀)의 사건과 사물 ● 이은은 다양한 매재를 사용하는 작가다. 그가 사용하는 매재는 전통적인 페인팅은 물론 언어, 영상, 사운드, 오브제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매재와 그 매재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조형의 세계를 시종일관하는 이은의 사유의 축은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여 어떤 좌표로 존재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우리는 먼저 이은이 누구보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실력을 지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은은 청소년기부터 문학적 수련을 해왔다. 문학은 언어로 짓는 집이다. 이은이 구사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다. 시적 언어는 논리적 언어나 설명적 언어의 대척점에 서 있다. 개념의 구축을 위한 논리적 언어, 설명적 언어는 형태와 구조가 '솔리드'하다. 이런 류의 언어들은 인식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균질공간에서 질서정연하게 배치된다. ● 이에 반해 끊임없이 의미의 변성과 해체를 꾀하며 새로운 의미의 생명체로 생성하려는 시적 언어는 그 형태와 구조가 '리퀴드'하다. 이 시적 언어의 지각이 포착할 수 있는 집합은 비균질적인 장소성에 깃들며 얼마간의 무질서를 품으며 존재하려 한다. 시적 언어는 형태에 있어 정체가 애매모호하고 그 구조는 연약하고 취약하다. 시적 언어는 명확한 해석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 불명확한 깊이에서 분방한 생명력이 돋아난다. 완성도도 구체성도 결여되어 있지만 꿈틀거리며 계속 자라나는 생명력의 언어다.
이은의 체질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시적 언어를 미술에 대입해본다면, 현대미술의 구성요소인 형태, 구조, 물성, 그 가운데에서도 물성의 영역과 겹치는 데가 많다. 형태와 구조가 우리를 인식의 세계로 이끌어간다고 한다면, 물성은 일단 지각과 감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물성의 불명확한 깊이에 깊숙하게 함몰되었다면 우리는 일체의 논리, 지식이 멈추어진 상태, 필경은 지각과 감각마저 멈추어진 무(無)의 상태 즉, 비지(非知 non-savoir)의 세계로까지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은이 구사하는 물성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은의 물성은 페인팅을 위한 물감에서 오브제, 영상, 사운드 등으로 폭넓게 확장되었다. 물성에 따라 인식과 감각이 혼재되기도 하고 감각 일변도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디어의 출발이 대체로 시적 언어에 있는 만큼 형태와 구조의 구축보다는 그 파격적인 감각의 생성을 용이하게 하는 물성에 치중하고 있음이 자연스레 포착된다. ●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은의 페인팅은 드리핑 작업이다. 드리핑은 형태와 구조를 구현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기법이다. 형태와 구조가 약화되는 만큼 숨어있던 물성이 돋아난다. 그 물성은 매우 액상적인(리퀴드) 물성이다. 액상(液狀)은 이은 작품의 요체를 설명해주는 키워드의 하나다.
페인팅에서 물감은 액체의 상태에서 고체의 상태로 진행된다. 물감이 완전히 굳어져서 딱딱한 고체가 되었을 때, 페인팅은 안정성을 지닌 완성품이 된다. 물론 이은의 작품 속의 물감도 물리적으로는 그 과정을 똑같이 거친다. 그런데 이은의 페인팅 작업에서 화면의 운용에 집중해서 보면, 축축한 물감이 순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액상적 세계의 시간이 주도적임을 알 수가 있다. 명사로서의 완성된 페인팅의 상태 즉, 딱딱하게 굳어진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축축한 물감이 계속 흐를 것 같은 동사로서의 페인팅의 세계, 다시 말해 생성(becoming)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순간적으로 구현된 액상의 세계를 일정한 시간 동안 유지되도록 장르적으로 구현한 작업이 영상작업이다. ● 축축한 물감과 같은 액상의 물성에 흐름을 주는 것은 중력이다. '장소'에 놓인 모든 사물은 중력에 순응한다. 이은의 오브제 작업에 등장한 소품은 의자다. 의자는 인체가 고스란히 받아야 할 중력을 경감해준다. 그러니까 의자는 그 자체로서는 중력에 순응하는 존재이나 기능적으로는 중력에 저항하는 구조물이다. 몸뚱아리를 갖고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의 삶은 평생 중력과의 저항이다. 의자가 다소 그 중력을 거두어 준다. 낡은 의자에는 중력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삶의 안식과 시간이 묻어있다. 중력에 저항하는 의자에 중력에 적극 순응하는 축축하게 드리핑된 물감들이 순리의 가르침인 양 흐르고 있다.
"작품명 「Chairs 13」으로 영상극과 함께 꺼내 볼 생각이다. 부재하는 나. 초대자 "L"를 포함한 13인의 사람들. 순간들. 시 한편을 짓고 곡을 선정하고 사운드를 채집하고 나래이터가 되어 지시하며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버무린 14'30"의 즉흥극을 일으켰었다. 불협과 엇박의 조율. 그 시간의 촘촘한 채집 기록들. 스토리를 담지한 의자들을 다시 열린 방식으로. 평면 작업을 포함한 이 모든 일들은 모종의 시간이 지배하고 일으켜지는 지극한 개인의 사유의 영역 『공중 정원』의 범우주적 사건들이다."('공중정원' 전시를 위한 이은의 작업메모)
페인팅 작업을 위시하여 이은의 작업들은 미완성의 상태로 계속 이어지는 듯한 시간성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시간예술인 음악을 닮은 데가 많다. 완성된 음악을 미분하면 음표가 나타난다. 처음의 음표에 다음 음표가 대답한다. 그 대답은 질문이 된다. 다다음 음표가 또 대답한다. 질문과 대답이 끝없이 이어진다. 질문과 대답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음악의 경우 침묵이지만 조형의 경우 액상의 사건, 사물, 물성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은이 구현하고자 하는 조형적 사물과 사건은 '공중정원-SPACE X'다. 정원이라는 장소에는 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벌레와 새가 날아든다. 공중정원은 고층의 인공구조물에 조성한 정원이다. 인공(Artificial)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정원이다. 그러나 그 인공이 추구하는 건 결국은 화초와 벌레 같은 자연(Nature)이다. 자연은 유기적이다.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자라나는 유기체는 액상의 생성점을 갖고 있다. 그 생성점은 성장을 향해 떨고 있다. 이은은 모든 작업에서 생성점이 돋아나는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은의 작품이 액상적이라는 건 인공 속에서 자연을 가꾸기에 즉 공중정원을 구현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이은의 작업은 시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애초 페인팅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이 사운드, 영상 등 시간예술로 점점 범주를 넓혀나가 필경 공중정원에 이르렀음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 황인
Vol.20240922c | 이은展 / LEEEUN / 李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