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인천광역시와 (재)인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2024 예술창작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개최되는 사업입니다.
기획 / 한주옥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임시공간 space imsi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48 Tel. 070.8161.0630 www.spaceimsi.com www.facebook.com/spaceimsi @spaceimsi
'기원(origin)'을 연구하는 것의 함의는 특정 개념이나 현상의 발생 그리고 이론의 근간을 밝히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과거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고정되지 않은 현재와 미래의 순환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총체의 맥락에서 변화와 전환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도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기원의 의미를 조정하며 시작하는 전시 『무늬, 주름으로 만든 기원 (Origin Made of Patterns and Wrinkles)』은 생태와 환경적 관점의 축에서 기원의 본질을 사유하며, 오랜 기간 축적된 원인들의 결과와 반응에 주목한다. 이에 우연한 접촉, 감각의 감응,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비롯된 현상과, 기원이 추동하는 사상적 힘을 근거 삼아 공존의 패턴을 모색한다. 문득, 중첩된 차원(overlay)에서 비롯하는 이질적인 시간을 의식한다. 그리고 다양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리듬을 잠시 상상하고 바라본다. 과거, 현재, 미래가 얽혀 순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들로 대체(substitution)될 양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결, 일렁이는 빛, 그리고 기류에 의해 부서진 잔영에서 미세한 흔적이 유독 뚜렷하게 포착되듯, 기원의 경로를 상상하고 떠올릴 때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원을 선형적인 출발점이 아닌 복합적인 층위와 관계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전시 '무늬, 주름으로 만든 기원'은 자연과 인공, 변형과 보존, 생명과 소멸에 이르는 이항적 항목들이 순환과 반복이라는 사이클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결속한다는 본질을 조명한다. 하나의 예로,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미생물부터 시작해 모든 고유한 개체, 즉 '크리터(critter)'의 역할을 통해 생명체와 환경 간의 복합적 관계를 강조한다. 이는 유기체 간 상호작용을 넘어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고, 종의 시작과 끝을 구분하는 시도를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로 나아간다. 이러한 항들의 연속성과 분리 불가능성을 인지하는 감각은 개인의 삶에 흐르는 시간의 감각과 상응하며, 생명, 물질, 존재의 연대를 사유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 거니림, 손희민, 송지현, 어밍은 자연물과 인공적 대상, 물질의 결합을 통해 생성되는 다양한 현상을 예술적 탐구의 방법으로 삼는다. 전시 출품작 대부분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원소적 특성을 지닌 점토와 빛이 투과하며 다양한 색을 수용하는 레진 등을 활용해 제작한다. 이들은 물체의 한정된 형태를 그리는 대신, 각기 다른 고유한 질감, 색, 빛의 가감을 통해 견고함을 넘어선 유동성을 이해하고, 도전한다. 이러한 접근은 현실의 물리적 차원이 될 수 있고, 예술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각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시각적 차원이자 은유적 표현인 '무늬와 주름'은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내포하며, 생성과 변형의 과정을 상상하는 지표가 된다. 동시에 이들이 번역한 기원은 회귀의 흐름 속에서 무한한 나선의 일부로 생성되길 반복한다. 이 궤적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변주되며 시간의 층위를 탐색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어떤 무늬와 주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가?
거니림은 도시 환경에서 주변부로 여겨지고 관습에 의해 소외되는 자연과 풍경, 사건들에 주목하며, 통상적인 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껍질 속 Ⅰ, Ⅱ, Ⅳ, Ⅴ」(2023-2024) 과 「뿌리 Ⅰ, Ⅱ」(2024) 연작은 플라타너스(Platanus) 혹은 버즘나무라고 불리는 나무의 밑동, 뿌리를 박제하듯 기록한 작품이다. 자연의 복합적인 측면을 압축하는 '껍질'과 '뿌리'는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변화와 보이지 않는 근원을 암시한다. 작가는 미감과 관리의 용이성으로 인해 도시 공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플라타너스의 껍질과 뿌리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검은색 물감과 유리질 유약으로 마감되어 처음에는 정체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피의 자연스러운 텍스처와 세심한 패턴이 드러나며 작품의 본질이 점차 분명해진다.
생물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생물의 진화와 기원을 탐구해 온 손희민은 물리적 대상에 대한 과학적 사실과 사변적 접근을 결합하여 비결정적 시간 및 공간의 차원을 조각적 사고로 연계해 왔다. 그 과정에서 특정 개체에 내재된 성분과 구조를 세밀하게 해석하는 작가의 표현 방식은 고생물학적 가설과 지질학적 이론을 기초하여,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병합한 독특한 시각 언어로 발전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에디아카라 생물군」(2023) 연작은 인간의 등장 훨씬 이전인 선캄브리아기와 고대 생물군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며, 진화와 기원에 대한 작가의 사고를 환기한다. 더불어, 전시 공간 중앙에 설치된 신작 「Wrinkle, ongoing evolution (주름, 계속되는 진화)」(2024)는 세월의 흔적을 은유하는 리얼리티 적 특성과 미래적 상상을 담은 기하학적 구조로, 자연과 인공,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가 마주할 존재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밍에게 햇빛은 작가에게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조건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태양 빛을 받은 장소에서 유독 잘 자라난 식물들, 즉 새롭게 생성된 생태계에서 진화의 흔적과 패턴을 발견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를 상상한다. 이에 점, 선, 면 표현된 드로잉은 작가가 존재를 기록하고자 하는 방법 즉 미세한 단편이나 거시적 질서를 탐구하려는 과정을 압축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을 은유한다. 임시공간의 큰 유리창에 발 형식으로 설치된 작품 「햇빛모음」(2024)은 해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흔적을 남기는 작품의 일환으로 제작된다. 또한 영상 작품 「너의 피라미드」(2024)에서 작가는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접촉하는 자연을 지각하며, 신체와 의식의 확장을 연계해 나간다.
송지현은 지역의 환경적 요소에 따라 변화하는 점토의 특성에 주목하며, 물질의 근본적 성질을 결정짓는 단일 원소에 집중한다. 고온 소성(firing) 과정에서 구리, 철, 망간 등의 원소가 발색하는 색의 변주와 견고한 형태 속에 담긴 점토의 유연함을 발견하며, 물질의 복합적 가능성을 시각 언어로 구축해 나간다. 이러한 태도는 매체의 근원적 차원인 자연을 수용하고, 순환의 언어로써 미술의 영역과 교량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M~W」(2024)는 얇은 판재를 압착하여 주름을 내는 기계적 기법 혹은 시간이 흐르면서 외부로 떨어져 나온 건물의 부품을 연상시키는 부조 형태로 완성된다. 작가는 여행 중 우연히 시선이 머문 공용 화장실의 'M', 'W' 기호에서 성별 표시를 넘어, 곡선으로 연속성을 나타내는 시각적·형상적 연상 작용을 포착한다. 이는 사회적 범주 또한 자연의 속성과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며,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작가의 생동하는 조각은, 유일하고 온전한 것 또는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것 사이, 경계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 한주옥
Vol.20240921e | 무늬, 주름으로 만든 기원 Origin Made of Patterns and Wrinkle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