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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홈페이지_jaeyeonchung.com 인스타그램[email protected]
초대일시 / 2024_0912_목요일_05:00pm
주최,주관 / 갤러리더씨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예술경영지원센터 예비전속작가지원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더씨 Gallery the C 서울 용산구 임정로 35 (효창동 3-117번지) 2층 Tel. 070.7869.0078 www.gallerythec.com @gallerythec
멜랑콜리아 가지고 놀기 How to play with Melancholia? ● 실시간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기술과 미디어의 변화 과정을 보고 있자면 문득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익힌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늘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는 예술가에게도 과학과 기술의 변화는 매혹적인 창작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난하게 구축해 온 자신의 예술관과 정체성을 뒤흔드는 위기가 되기도 한다. ● 『Melancholia_40s』라는 표제가 붙은 이번 전시는 제목이 시사하듯 예술가 정재연이 사십 대를 지나오며 느끼는 불안과 위기감에 대한 소고(小考)이다. 흔히 사십 대를 불혹(不惑)이라 한다.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 시기. 하지만 그는 거침 없던 이십대와 종횡무진 활발한 활동을 하던 삼심 대를 지나 사십 대가 된 지금이 예술 활동 기간 중 가장 흔들리는 시기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예술 활동의 토대를 하나하나 의심해 보고 한계를 인지하게 된 작가는 어느 날 르네상스 시기의 작은 판화 속 이미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전시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판화 「멜랑콜리아 I」(1514)은 뒤러의 예술성이 정점에 이른 16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지식과 창작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가득 차 있다. 금속 인쇄술이 대중화되고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인류가 가진 정보와 지식의 양이 증폭하던 패러다임의 변환기를 살아가던 독일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정재연이 발견한 자신과의 접점은 무엇일까?
정재연은 그간의 작업에서 역사 속 가치관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개별적 자아가 겪는 경험에 주목해 왔다. 근현대화 과정에서 한국이 겪은 유·무형의 사회적 변화와 개인이 체감하는 문화의 간극을 포착하고 작가적 개입을 통해 이를 가시화하는 방식은 그의 예술 작업의 근간을 이뤄왔다. 특정한 역사적 장소나 유물이 가진 콘텍스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발굴하고 작품의 영역을 전시 공간 전체로 확장해 나가는 실천 방식 을 즐기던 그는 『Melancholia_40s』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시선의 방향을 외부 세계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 것이다. 작품은 작가가 지금까지의 예술 활동을 되짚어보며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자문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멜랑콜리아 I」을 힌트로 시작되는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은 각자가 온전한 완결체라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참조가 되어 의미를 확장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이퍼링크의 조합에 가깝다. 작가가 소환한 뒤러의 도상들 중 주목할 것은 마방진(Magic Square)의 이미지이다. 마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동일한 숫자 배열로 추상 개념을 다루는 고도의 지적 산물이다. 이 완벽한 수의 배열은 오래전부터 수학자들에게 유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안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여겨져 동양에서는 팔괘(八卦)가 되어 우주의 이치를 설명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서양에서는 부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완전해 보이는 기하학과 수의 영역도 결국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전시장 벽면에 펼쳐놓은 작가의 인생 그래프에 겹친 마방진 역시 정재연의 풀이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마방진에서 파생된 작품의 상징은 민속놀이인 고누 를 거쳐 돌이킬 수 없는 세계의 파괴를 유예하는 전쟁을 상징하는 스위치에 이르기까지 경계 없이 확장된다. 작가는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인류의 지적 소산이 내재하는 창의적이며 파괴적인 양가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작가님, 얼마 전에 우울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정재연의 멜랑콜리는 결과로써의 무기력감이나 우울함이라기보다 창작자가 관통해야 하는 자발적인 번민의 상태를 지칭하는 듯 보인다. 멜랑콜리를 다루는 뒤러와 정재연의 공통점은 그들이 각자가 가진 최선의 예술적 자원을 동원해 눈앞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능동성을 가졌다는 점과 자신의 한계조차 작품으로 승화할 줄 아는 창작의 기질을 가졌다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차피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겪는 변화 역시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한계를 자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현재일 뿐이다. 『Melancolia_40s』 전시장을 들어서는 관객들도 놀이하듯 작품 속에 숨겨둔 작가의 단서를 하나씩 찾아내 보기를 권한다. 작가가 자신의 말을 두었으니 이제 관객이 말을 옮길 차례이다. ■ 김지영
Vol.20240912d | 정재연展 / CHUNGJAEYEON / 鄭在姸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