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Art as the Doorway to the Unseen展   2024_0912 ▶ 2024_1124 / 월요일 휴관

개막식 / 2024_0912_목요일_04:00pm

참여작가 권오상_김두진_김상돈_김현준_노상균 민찬욱_배형경_신기운_신미경_안재홍 이석주_전성규_최수련

연계강연(예정) 「보이지 않는 것들의 미학: 영성과 예술의 만남」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각적 표현」   큐레이터와의 전시관람 2024_0925_수요일_02:00pm~03:00pm 2024_1030_수요일_02:00pm~03:00pm

주최 / 서울대학교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151동 Tel. +82.(0)2.880.9504 www.snumoa.org @snu.moa

화이트헤드가 말했듯 2,000년 서양 철학은 플라톤에 덧붙여진 고만고만한 각주들에 지나지 않는다. 시각예술은 어떠했나. 리요타르에 따르면 서양미술은 고전과 현대, 신, 구대륙을 막론하고 숭고미를 추구해왔다. 인상주의자들이 잠시 보는 행위에 방점을 찍었지만, 20세기의 흐름도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슈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물(水)의 사례를 들어 즉각 그 한계를 짚어냈다. "물을 보는 것만으로는 물의 절대적인 모성, 생명의 최초의 환경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 ●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예술의 목적이 물질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예술은 데생 기술이나 환영의 생산에 머물러선 안 되며, 해방된 영혼의 실재(fact)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피에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신조형주의 추상도 "존재 내의 보편적인 진리와 교감할 수 있는 정신적인 미술"에 이르는 걸 목적 삼았다. ● 가장 물(物) 자체에 경시되었던 시기에도 그 물(物)은 정신적인 것의 추구와 결부되었다. 슈퍼마켓이 신전(神殿)화 되고, 코카콜라와 캠벨 스프가 은총의 성유물로 되었을 뿐, 팝아트조차 이 계보에서 예외가 아니다. 지각과 인식의 해방을 위해 올더스 헉슬리는 메스칼린의 환각 효과에 기대야만 했다. 그 실망스러운 결과를 자신의 에세이 『인식의 문』(1953)에 기록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긴 했더라도. 1950년대 프랑스 추상화가 앙리 미쇼(Henri Michaux)도 같은 길로 나아갔다. 에테르, 아편, 메스칼린의 힘을 빌어 꿈, 무의식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곤 했다. 이 이야기는 이후로도 길게 이어진다. 존 케이지는 적대주의의 온상인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려, '선불교-아방가르드'라는 다소 엉성한 텃밭을 일구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와 백남준은 사자(死者)의 영혼을 불러내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극한다는 샤머니즘의 길로 우회로 없이 나아갔다. ● 계몽과 이성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주가 얼마나 집요하게 추구되어야 했던가? 자유롭고 해방된 삶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미 상실의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서성인다. 의미의 상실, 모든 생명체의 결코 기계적으로 규정되어선 안 될, 풍성한 의미의 상실, 그 상실의 굴레에서 해방되기를 염원하는 것이 기나긴 추구의 출발점이었다. ●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은 그 연장선상에 열세 개의 추구를 배치함으로써,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의 긴장을 인식하고 반추하고자 하는 시도다. 자연과학자 야콥 폰 윅스퀼(J. von Uexküll)은 그 의미를 이해할 때 비로소 주어지고 생성되는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제대로 알 수 있다. 의미가 삶을 붙들고 지식을 견인한다. 의미가 미궁에 빠지면 결국 삶을 놓치게 된다. ●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떤 불멸의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쟁론만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상실의 시대의 배후를 탐사하면서, 인간에 대한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의 관점을 환기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에 의하면 '저해상도로 창조된 신'이자 '신성은 없는 신'인 인간이 신에게서 멀어질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의미의 상실이다. ● '보이지 않는 것들'은 정작 보이는 것들의 운명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보이는 것들의 전투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전쟁이 있다. 보이는 것들의 해석과 판단도 실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존한다. '빵'과 '숭고'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빵을 대하는 인식은 신에 대한 것의 한 접힘이다. "한 조각 빵과의 만남이 신과의 만남임을 믿음으로써, 신에 대한 유일한 경배의 시험을 통과한다."(시몬느 베유.Simone Weil) 의미는 보이는 것들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 신화경제학의 저열한 수준에서 이 관계 항이 한 번 더 목격된다. 신자유주의 주장대로 규제가 사라지자 시장이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시장은 늘 존재했지만, 오늘날처럼 시장을 신으로 섬긴 적은 없었다.(하비 콕스.Harvey Cox) 모든 것을 파괴한 뒤 자신마저 파괴하는 자본주의 사고 틀의 종국은 끊임없이 등장해서 보이는 것들의 해석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신들의 역사, 곧 만신전(萬神殿)으로의 회귀일 것이다. ● 예술의 임무는 다른 현실이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이 제시하는 열세 개의 관문이 누군가에게는 이 시대의 파행하는 의미 지평에 대한 반추를, 누군가에게는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이 말하는 '영원한 정체성의 본향'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 ■ 심상용

권오상_공백_예외상태_2024J6(the void_state of exception_2024J6)_ 피그먼트 프린트_150×110cm_2024

권오상의 「공백」 시리즈는 종교 조각과 종교 건축물을 디지털 포맷으로 샘플링하여 해체하는 '공백과 비결정'의 상태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가치의 무화 상태와 성스러운 공간의 붕괴를 표현하며, 진리와 미적 경험의 재고를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는 진리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자 하는 실험적 예술 행위로, 미술의 행위와 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모색하며 양자 사이의 공백을 통해 재현 불가능한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김두진_피에타(Pieta)_디지털 페인팅_220×180cm_2016

김두진은 고전 명화 속 인물들을 해골 이미지로 변환한 디지털 회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평등과 삶의 보편적 경험을 탐구한다. 작가는 성화에 등장하는 이상화된 신체의 외피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성별, 인종, 시대에 대한 구분이 불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해낸다. 남아있는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기보다는 모든 살갗이 벗겨진 채 남는 영원한 삶의 몸짓을 드러내며 삶의 에로스적 에너지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로써 작품은 욕망과 평등의 철학적 층위를 시각화해낸다.

김상돈_카트(Cart)_혼합재료_250×210×108cm_2019~20

김상돈의 작업은 물질사회의 '시장의 황홀경'을 넘어 원형적 황홀경으로 안내한다. 그의 작품은 혼돈과 질서가 만나는 '카오스모스'적 세계를 표현하며, 전통과 현대, 물질과 정신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다룬다. 쇼핑카트와 전통 상여를 결합한 「카트」는 소비사회의 오브제와 주술적 상징을 재배치하여 새로운 맥락을 생성한다. 김상돈은 작품을 통해 물질사회의 공허한 '황홀경'과 대조되는 '현실주의적 황홀경'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김현준_숨 덩어리(Breath Fragment)_ 2채널 비디오 설치_00:18:11, 00:08:11, 가변크기_2024

김현준의 「숨덩어리」는 제주 해안의 시멘트 구조물을 인간의 확장 욕망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이를 바다에서 꺼내기 위해 조각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산소 공급 장치 없이 숨만으로 바다를 오르내리며 조각 작업을 반복하는 이 행위는 자연의 초월적 힘과 인간의 제한된 존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김현준은 이 작업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몸으로 표현하며, 인간과 자연의 위태로운 관계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노상균_For the Worshipers_(h_red)_Wall Buddha head_ 유리섬유와 레진 부처 두상에 시퀸_84.5×69×46.5cm_2008

노상균의 '축광회화'는 빛을 흡수한 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광하며, 존재와 부재, 시간의 가변성을 드러낸다. 이로써 작품은 순간과 영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영적인 성찰을 유도한다. 더불어 작가의 '시퀸 종교 조각'은 빛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물질과 비물질,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에 선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작품은 감상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적 시공간을 창출하며, 시간에 따른 감각적 변화로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관계를 보여준다.

민찬욱_디지털 휴먼은 무엇인가?(What is Digital Human?)_2채널 비디오_00:55:00_2022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존재를 탐구하는 민찬욱의 「디지털 휴먼은 무엇인가?」에서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된 디지털 휴먼은 물리적 인간과는 달리,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구성된 존재로 인간 정체성의 새로운 층위를 드러낸다. 작품은 디지털 휴먼이 단순한 기술적 산물이 아닌 우리 시대의 철학적 질문과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현실과 가상 세계가 얽히는 지점에서 현대 사회의 인간성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배형경_Wall_Human_시멘트 혼합재료 ,철(cement, steel)_200×55×120cm×3_2023

배형경의 「Wall-Human」은 강철 벽과 성인 크기의 군상으로 인간의 고뇌와 침묵을 표현한다. 작가는 벽을 물리적이자 내적인 장벽으로 해석하여 인간이 직면하는 심리적 벽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Equalizer」는 다양한 크기의 인체 조각들을 같은 높이로 배열하는데, 작품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진정한 평등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물리적 형상과 정신적 깊이를 결합하여 인간의 내면적 고뇌와 가치를 탐구한다.

신기운_진실에 접근하기_동전_얼굴(Approach the Truth_Coin_Face)_ FHD 비디오설치와 클래식 음악_00:03:13_2007

신기운의 「진실에 접근하기」는 사물의 창조 대신 제거와 파괴를 통해 예술의 본질과 존재 방식을 급진적으로 재고한다. '사물의 처형'은 인간의 욕망과 상실, 폭력의 내재적 요소를 드러내며, 예술의 정신적, 물질적 경계를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작가는 사물을 갈아 없애는 방식으로 부재를 드러내며, 예술적 창작과 생존의 욕망, 진리와 허위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기운은 예술의 본질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새로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신미경_풍화 프로젝트 012(Weathering Project 012)_ 비누_13×33×18cm, 13×13×10cm_2013

비누를 사용하여 고대 조각상 등의 '문화유산'을 비누로 모사하는 신미경의 「풍화 프로젝트」는 비누라는 재료의 특성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이 점차 풍화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렇게 풍화된 비누를 다시 브론즈를 떠냄으로써 시간의 변화를 고정하려 시도한다. 이 과정은 자연적인 소멸과 문화적 가치의 변화, 기억의 퇴색 등을 은유하는데,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점점 흐려지거나 왜곡되며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안재홍_The Giver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22~3

안재홍의 회화는 고전주의적 고요함과 엄숙함을 통해 환상적인 종교화나 신화 속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림 속의 개체들은 분리와 분절, 절대성의 파멸과 그 결과로서의 죽음으로 인한 공포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고립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지되는 엄숙함과 고요함은, 우리가 분리된 객체로서 서로 떨어져 나오거나 뒤엉켜 경쟁하면서도 어떠한 예술적 균형, 더 나아가 삶에서의 공존을 이루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석주_사유적 공간(Space_Contemplation)_캔버스에 유채_227.3×363.6cm_2017

이석주는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통해 현실의 진실성을 탐구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닌 사물의 내러티브와 감춰진 의미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사유적 공간」 연작은 고전 거장들의 작품을 재구성해 회화적 진실성과 서정성을 표현하고, 현실과 초월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작품 속 상징 이미지들은 사유의 공간에서 감상자에게 다양한 내러티브를 제시하며, 작가는 현실의 구체성을 탐구하면서도, 일상의 미학적 가치와 예술적 가능성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전성규_감추인 통로23_다차원(Hidden Passage23_Multidimension)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전성규의 회화는 양자물리학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여 '카오스적 파동 공간'을 그려낸다. 그의 작품 속 구불구불한 선과 점들은 에너지의 순환과 생명, 그리고 보이지 않는 통로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작가는 물질과 비물질, 유한과 무한이 맞물리는 구성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영적 도약을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우주와 인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이를 통한 존재와 영적 도약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물질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사유를 향해 나아간다

최수련_선녀(Seonnyeo(Celestial Maiden))_리넨에 유채_227×182cm_2017

최수련은 동양풍 이미지의 재현과 소비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작품을 통해 전통적 동양의 판타지를 재맥락화한다. 작가는 동북아시아의 신화와 전설, 괴담과 민담을 바탕으로 내면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일상적 규범과 정형성을 넘어서는 판타지 세계를 창조한다. 최수련은 전통의 이미지가 현대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고 소비되는지를 고찰하고, 보이지 않는 문화적 무의식과 전통의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과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Vol.20240912b |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Art as the Doorway to the Unseen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