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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네 홈페이지_www.shinekong.com 인스타그램_@314khz
초대일시 / 2024_09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8:00am~08:00pm 토요일_09: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더스퀘어 The Square 서울 강남구 학동로21길 13 Tel. 070.8823.7495 @the_square_nonhyun
정물(still life)에 관한 몇 가지 메모 ●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공시네의 작업실 한편에는 격자 모양의 책장이 자리 잡고 있다.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원목 책장에는 작가의 회화에 등장하는 조그마한 점토 오브제와 마스킹테이프, 물감과 향초, 색종이로 만든 미니어처 조형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강렬한 여름 햇살이 공간 안으로 깊숙이 침투할 때면, 각양각색의 사물은 역광으로 인해 볼품없어 보이는 크기에도 불구하고 꽤 극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았던 것은 작가가 손수 정사각형의 종이 조각에 써 내려간 후 동일한 간격으로 붙여놓은 메모 'n' 'a' 't' 'u' 'r' 'a' 그리고 그 아래 'm' 'o' 'r' 't' 'a'였다. 왜 굳이 한 문장으로 적지 않고, 철자를 모두 분절해 놓았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이탈리아어로 직역하면 '자연(natura)'과 '죽음(morta)'을 뜻하는 이 알파벳의 조합은 미술 장르에서는 정물(still life)을 뜻하며 이번 전시에서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는 두 단어를 분절해 놓으니, 일종의 거리감이 생기는 듯하다. 어쩌면 작가는 의도적으로 생소함을 부여해 정물이라는 친숙한 장르의 개념을 재고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어를 분할하는 행위를 통해 기표가 가리키는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던 것일까? 조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정의되고 규범화된 언어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공시네의 종이 조각들은 작업실 한쪽에 가지런히 정렬된 형형색색의 정육면체 종이 큐브에와 공명한다. 작가가 직접 종이를 접고 표면을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해 제작한 수백 개의 입방체 유닛(unit)들은 후술하겠지만 공시네의 작업에서 정물화의 형태와 방법론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다.
note 1. 사물의 씨앗 ●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rerum natura) 』는 제목이 암시하듯 세상을 이루고있는 모든 사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과 물리, 윤리학에 주목한 헬레니즘 시기의 에피쿠로스 학파로부터 영감을 받아 총 6권으로 구성된 서사시를 완성한 루크레티우스는 놀랍게도 우주는 '원자'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사물의 씨앗이나 마찬가지인 원자들의 만남과 연결이 빚어낸 결과라는 그의 이론은 기원전 1세기에 쓰였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이다. 나아가 그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성은 결국 우리를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한다고 설득한다. 공시네가 지난 몇 년간 천착해 온 정육면체의 회화적 구조는 우리를 둘러싼 만물의 존재와 그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관심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그것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상기시킨다. 세 폭의 대형 회화 「아송」(2022)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작가는 푸른 빛의 바다와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소나무가 구성하는 자연의 풍경을 정육면체의 유닛으로 구조화한다. 즉 생동하는 자연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을 배열해 그린 그림'을 뜻하는 정물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위태롭지만 섬세하게 쌓아 올려진 큐브는 타일 패턴의 배경과 시각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며 추상과 구상을 모두 아우른다. ● 전시장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신작 「우린(羽鱗)」(2024)은 기존 작업에 내재되어 있던 이러한 추상성을 전면화하는 동시에 회화의 바탕으로만 존재하던 캔버스 자체를 조형화한 시도로 볼 수 있다. 50 x 50cm 크기의 화판은 물성을 지닌 정육면체 유닛이 되어 새로운 조합과 배치로 끊임없이 변주될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시네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종이나 채색된 투명 PVC로 제작한 큐브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해 보며 정물의 장면을 구성한다. 말하자면 동일한 크기의 각기 다른 색상을 가진 입방체 큐브는 공시네의 회화에 등장하는 사물과 존재의 최소 단위, 즉 씨앗이자 원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들의 배열, 간격, 높이, 각도, 색상의 리듬은 무한히 변주되어 하나의 그림을 위해 존재했다가, 또 다른 그림을 위해 소멸하는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note 2. 빛의 시간 ●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와 같은 물리학자는 어쩌면 정물화의 사전적 의미에 반기를 들 수도 있겠다. 그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결국 각자의 시간 속에서 변화하며, 돌처럼 가장 사물다운 것조차도 물리학의 관점에선 그런 상태를 일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사건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사물'은 원자가 일시적으로 모여서 특정 형태와 물성으로 유지하고 있는 장기적인 '사건'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는 굳이 최신 물리학 이론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정물화의 개념과 장르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해 온 공시네의 작업에서 어렵지 않게 시간성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 구체적인 단서를 시간과 공간을 환산하는 매개 단위인 빛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모래시계」(2024), 「Standing Blue」(2023), 「Meeting Green」(2023)을 비롯한 최근의 작업은 빛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그림자를 통해 드러내며, 비물질적인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통해 회화가 정지된 사물이 아닌, 찰나의 순간이 만들어 낸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사물 그 자체보다 그림자 안에서 만들어지는 빛" 에 주목해 왔다고 고백하는 공시네는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커튼을 활용해 자연광의 조도를 조정하거나 조명의 각도, 밝기, 방향을 설정하는 등 치밀하게 빛을 연출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빛이 시시각각 빚어내는 상(像)을 관찰한다. 「Untitled」(2024)는 관찰을 바탕으로 한 연출에 허구적 상상을 더해 구성한 장면으로 어두운 방에 스며든 한 줄기 빛을 통해 정육면체 구조물이 그 앙상한 윤곽을 드러낸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이 빛이 머무를지 모르는 일종의 초조함과 함께, 암흑의 공간 속에서 외롭게 존재하는 사물의 모습(또는 그 모습의 소멸)을 떠올리게 된다. 한때 유리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을 카페이자 전시장으로 재구성한 '더스퀘어'의 장소성은 빛의 속성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표현하는 공시네의 그림에 풍부한 맥락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전시 공간이 두터운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번 전시는 갤러리를 둘러싼 통창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빛과 어둠에 유화의 연약함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시간의 흐름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note 3. 모서리의 만남 ● 자칫 회화적, 장르적, 물리적 탐구의 결과물로만 읽힐 수 있는 공시네의 유화는 흥미롭게도 신체가 감각하는 분위기와 사유를 통해 어렴풋이 유추해 볼 수 있는 서사를 품고 있다. 작가가 화면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존재는 공통적으로 모두 연약하다. 섬세한 붓질과 색으로 표현한 얇은 종이 의자, 백색 점토, 힘없이 늘어져 있는 휴지는 그런 의미에서 반(反)기념비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약함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개별적 존재가 서로 의지하며 맺고 있는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친구사이」(2010), 또는 「방해자」(2010)가 방증하듯, 공시네는 오랜 시간 관계–특히 사물 간의 관계와 그것이 은유하는 것–에 주목해 왔다. 한 덩어리의 숯과 바닥을 드러내는 두루마리 휴지가 위태롭게 미니어처 구명보트를 떠받치고 있는 상황은 제목을 통해 '친구사이'를 은유하지만, 그 관계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두 친구는 서로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사이일 수도 있지만, 구명보트를 독차지하기 위해 애쓰며 오히려 서로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사이일 수도 있다. 두 컵 사이에 어색하게 자리 잡은 검은 물병은 과연 '방해자'인가? 두 검은 물병 사이에 낀 흰 컵이 '방해자의 방해자인가'? 만약 사물들의 만남에 눈치 없이 끼어든 우리, 즉 관객이 방해자라면? 작가가 구성한 구체적인 장면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관계의 서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 정육면체를 방법론으로 도입한 최근 작업에서도 만남을 통한 관계에 대한 탐구는 지속된다. 펼침과 접힘, 그리고 오려짐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 연약한 종이 구조물은 「밤바다」에서 홀로 외롭게, 또는 무리 지어 등장하거나 「하송II」(2024)에서처럼 전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정육면체를 이루는 면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모서리를 만들고, 그 모서리는 공간과 형태를 구분 짓고 빛을 굴절시키며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공시네의 작업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부유하지 않고, 화면 속에서 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들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 중력 때문이다. 그의 작업 「중력을 좋아하는 소년」이 암시하듯, 자칫 제약처럼 느껴질 수 있는 요소를 한껏 끌어안으면서, 작가는 미술의 가장 전통적인 장르와 매체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다. ■ 임수영
Vol.20240911e | 공시네展 / KONGSHINE / 孔诗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