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24_0907_토요일_04:00pm
백인백색 기획 시리즈 11
기획 / 김혜원 주최 /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후원 / 전북문화관광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진공간 눈 Photospace NOON 전북 전주시 덕진구 권삼득로 455 (덕진동2가 27-43번지) 2층 Tel. +82.(0)63.902.2882 blog.naver.com/space-noon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에서는 11번째 기획 시리즈로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Nature, Beyond the Limits)』展을 마련하였다. 지금까지 10회에 걸친 이 기획 시리즈는 소비문화, 에콜로지(Ecology), 장소애(Topophilia), 타자, 언어, 추상, 산업, 지역, 신체, 자화상을 키워드로 하고 그와 관련한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을 초대하여 인문학적 담론을 제시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풍경 사진의 주요 소재가 되어 온 산(山), 천(川), 초(草), 목(木)을 소재로 하면서도,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기존 예술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초대하여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특히 '통섭(統攝, Consilience)'을 키워드로 한 이번 전시는 오늘날 문화 예술의 지형을 넓히고자 전시와 「백인백색 문화예술 아카데미 1: 사진과 영화」(강사: 임민수)를 연계하여 진행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전시는 현대 예술의 특성을 바탕으로 자연 풍경을 동시대 삶과 문화의 한 요소로 인식한 6인 사진가의 작품을 매체 혼성(곽풍영×허성철), 소재 확장(곽진영×이선종), 장르 혼성(차경희×김미경)의 3가지 방식으로 범주화하여 우리 시대 자연의 의미와 사진 매체의 융복합적 다양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하나. 매체의 혼성: 곽풍영 × 허성철 ● 곽풍영(Kwak, Poung-young)의 「Black」은 드론으로 촬영한 풍경 사진 시리즈이다. 그동안 항공 사진에 몰두해 왔던 곽풍영은 전주 도시 풍경뿐만 아니라 산, 논밭 등의 전원 풍경을 드론으로 촬영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가장 넓은 면적에 피해를 입혔다는 울진-삼척 산불과 강릉-동해 산불 현장을 버드 아이(Bird Eye)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인 산악 사진의 시각에서 벗어난, 혹은 그보다 더 스케일이 큰 드론의 시각을 통해 사진 매체의 경계를 확장한다. 또한 산불로 파괴된 숲과 사라진 동식물에 대한 아픔과 위로를 표현한 영상 작품 「Black」도 함께 전시하여 미디어 매체의 특성을 극대화한다. ● 허성철(Heo, Sung-cheol)의 「희망을 품다-山(Shooting Hope-Mountain)」은 한지에 채색한 풍경 사진이다. 실제와 허구, 기록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 허성철은 이번 전시에서는 산을 촬영한 이미지를 한지에 인화한 후 채색하거나 바느질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역경을 상징하는 산은 밝은 채색에 의해 희망으로 승화된다. 유희적 수공 작업으로 대자연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자연 간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거리는 더 좁혀지고 밀착된다. 특히 포토 드로잉, 포토 콜라주 등 카메라를 허구와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원본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고 매체의 경계를 확장한다.
둘. 소재의 확장: 곽진영 × 이선종 ● 곽진영(Kwak, Jin-young)의 「람사르 습지에서(At the Ramsar Wetland)」는 한국 곳곳의 람사르(Ramsar) 습지를 촬영한 풍경 사진이다. 1971년 환경 보전을 위해 생물 지리학적 특징이 있거나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지정한 람사르 습지에서, 곽진영은 생물의 보고인 습지의 특이한 심미적 경관을 촬영하였다. '자연의 콩팥'이라 불리는 습지대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생명체를 키우는 생태 환경의 의의를 확인하고 생태 가치와 그 보전의 확산을 기대하고 있다. ● 이선종(Lee, Sun-zong)의 「숲-자연스런 혹은 부자연스런(Forest-Natural or unNatural)」은 국립생태원에서 숲을 이루어 서식하고 있는 이주 식물들을 생태학적 시선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생태원의 에코리움은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으로 나뉘어 있다. 이선종은 환경 파괴로 사라져 가는 지구촌의 수목을 재현한 바이옴 공간에서 자연/인공을 이분화하는 근대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희망한다. 풍경 사진의 소재를 온실의 이주 식물로 확장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한 낯선 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자연 생태의 의미를 확인하고 있다.
셋. 장르의 혼성: 차경희 × 김미경 ● 차경희(Cha, Kyung-hee)의 「사진과 산책(Photography and Walks)」은 산책길에서 만난 사소한 소재들 즉 물에 떠 있는 꽃잎이나 나뭇잎, 물속의 물고기들, 물에 비친 나무그림자나 구름조각 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사진에 시를 붙인 포토 포엠(Photo poem)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을 하이쿠에 비유했듯이, 차경희는 사진 이미지에 3행이나 4행의 짧은 시 텍스트를 병치하여 영상 언어와 문자 언어의 상호텍스트성을 시도한다. 즉 이성/감성, 문자/영상으로 이분화하여 감성이나 이미지를 억압해 왔던 근대 기획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와 영상의 장르 혼성을 시도한다. ● 김미경(Kim, Mi-kyoung)의 「식물들의 사생활(The Private Lives of Plants)」은 이승우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고 소설 속 이미지를 시각화한 사진과 설치 작품이다. 미생물학자인 김미경은 뿌리와 가지가 얽히고설키며 성장하는 나무를 소재로 하여 사랑과 고독, 질투와 연민, 죄악과 윤리, 고통과 죽음 등을 둘러싼 인간 욕망을 드러내고 이로써 진정한 인간의 삶의 길을 암시하고자 한다. 소설의 서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식물과 인간의 내면과 그 교감 관계를 유추하고 사진과 소설 간 장르를 확장한다.
이렇듯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展은 산천초목을 소재로 하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활성화된 통섭적 사유와 그 표현 기법으로 인문학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킨 6인 사진가의 작품을 매체, 소재, 장르의 3개 유형으로 나누어 확인하였다. 즉 드론 촬영의 사진과 영상을 보여준 곽풍영과 한지에 채색한 포토 드로잉을 보여준 허성철은 과학적 도구로서의 드론 또는 전통적 회화 기법과 혼성된 사진 매체의 융복합적 기법을 보여주었다. 한국 곳곳의 람사르 습지를 촬영한 곽진영과 국립생태원의 에코리움에서 서식하고 있는 이주 식물을 촬영한 이선종은 생태 담론에 주목하면서 풍경 사진에서의 소재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사진에 자작시를 병치한 포토 포엠의 차경희와 소설 텍스트를 사진과 설치 형식으로 시각화한 김미경은 사진과 시, 사진과 소설 간 장르의 벽을 허물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주었다. 현대 매체 환경과 인문학 확산이라는 현 시대적 추세에 맞춰 기획된 이 전시와 「문화예술 아카데미 1: 사진과 영화」가 함께 진행되는 이번 사진예술제가 사진 장르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화 예술의 다양성과 확장된 지형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김혜원
2022년 3월의 봄은 유난히도 대형 산불이 많았다. 때마침 전북특별자치도 산림박물관 영상관에 상영할 산불에 관련한 영상을 제작 중이었다. 2022년 두 차례의 울진-삼척 산불과 강릉-동해 산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많은 면적의 피해를 가져왔다. / 산불 피해 지역을 찾았을 때는 이미 산불이 큰 나무 아래 쌓인 낙엽과 관목을 태우고 지나갔기에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최소 두 번의 불길이 지나간 곳은 여지없이 산의 모든 것을 태웠고 남아 있는 건 검정의 색깔뿐이었다. / 아름다운 한국의 산천초목에서 초목이 사라진 산불의 피해는 초목뿐만이 아닌, 동식물이 사라진 생태계의 파괴를 의미한다. 산불은 인간의 실수로 발화되었지만, 그 결과는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 산불 피해 지역을 자세히 살피고, 파괴된 산림을 드론을 사용하여 직부감(Over Head View) 시점의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였다. / 특히 영상 작업은 산불 발화 후의 진화 과정과 산불이 지나간 파괴된 숲을 배경으로 연출한 아티스트 퍼포먼스를 촬영 편집한 작업으로, 산불로 파괴된 숲과 사라진 동식물에 대한 위로와 아픔을 표현하였다. 이 영상은 2022년 JDFF 제주국제드론필름페스티벌 Genre 분야에서 3위를 수상하였다. ■ 곽풍영
삶의 역경을 희망을 품고 이겨내 앞으로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 삶의 역경은 높은 산으로 상징된다. 따라서 대상의 단순 재현이 아닌 사진과 페인팅 작업을 병행한 방법으로 산 너머의 희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사진 이미지를 한지에 출력한 후 밝은 색상의 색을 입히고 그 위에 다시 콜라주 작업을 추가하였다. ■ 허성철
『숲-자연스런 혹은 부자연스런』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미지(Image)' 수집 작업의 연장선이다. 그때 주제를 찾아 촬영하는 작업과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친 지극히 감각(눈)에 의존한 이미지를 순간 포착(촬영)하는 작업을 병행하였고, 그 이미지들을 모아서 2005년 첫 전시 『Image-Natural or unNatural』과 2017년 『The Dot and The Line』을 개최한 바 있다. 그때는 주로 반짝이는 반사체(물, 거울, 비닐, 동상, 나뭇잎, 불투명 유리 등)에 관심을 두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사물과 사람들, 또다시 날아가는 풍선이나 변화무쌍한 바다와 하늘의 색에 매료되었다. / 이번 『숲-자연스런 혹은 부자연스런』은 Image 수집의 세 번째 전시로, 이 사진들은 지난 3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마주한 온실 속 식물에 이끌려 수천 장의 휴대폰 사진(스케치) 촬영을 거쳐 카메라에 담은 것들이다. 사진을 왜 찍는지 자문해 보면 스스로 만족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렇게 전시되어 보여주는 행위까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모든 사진 작업은 촬영하는 행위를 넘어서 전시장에서 보였을 때 비로소 완성되며, 이때 작가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된다. / 개인 전시를 기획하던 작가에서 공공을 위한 전시 기획자로 명함을 사용한 지 어느덧 15년이 되어간다. 내 사진전 이력 사이의 빈 공백은 '공공을 위한 전시 기획'으로 채워져 있다. 이번 전시는 다시 예전의 사진가로 돌아가 또 하나의 사진 작업이 완성되는 아주 특별한 전시다. 가까운 미래, 우주의 어느 행성에 온실을 짓고 지구의 숲을 재현한 것만 같은 이곳 서천 국립생태원과 기꺼이 피사체가 되어준 식물들에 감사한다. ■ 이선종
물과 땅이 만나는 곳, 습지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 습지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강가, 해안가 등의 습지 주변에 모여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인간과 습지의 오랜 공존은 인간의 습지 지역 개척이 시작되면서 자연 환경의 파손과 기후 위기의 원인으로 변모되었다. / 따라서 연안습지인 갯벌의 간척사업용 제방으로 야기된 호수의 수질 오염, 해양 생태계 파손 문제 등으로 다시 갯벌을 되살리기 위한 역간척도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람사르 습지 협약이다. 습지의 중요성을 알게 된 많은 국가들이 1971년 이란의 람사르 시에서 '습지의 천연자원과 서식지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약으로서 습지 자원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을 위한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람사르 습지 협약을 체결한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개척과 개간의 대상이 되었던 많은 습지들을 보존과 보전을 위한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였다. 1997년 강원도 인제 대암산 정상에 있는 '용늪' 이래 현재 25곳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 기후 위기, 지구 온난화, 기후의 역습 등의 단어가 낯설지 않은 삶을 사는 현재의 우리에게 습지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낯선 단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다양한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습지 지역을 촬영하면서 다시 인간과 습지의 공존을 기대해 본다. ■ 곽진영
사진은 지극히 개인적인 매체이다. -한정식, 『사진 산책』/ 언젠가부터 사진 촬영은 매일 숨 쉬는 것처럼 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내게 사진은 가장 즐거운 놀이이자, 내 삶을 가장 은밀하게 증명하는 도구이다. 카메라는 사물에 반사된 빛을 렌즈로 수치화하여 그를 보여 주지만, 나는 나의 경험적 기억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의미화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감정의 육체이자, 내 삶의 방향을 찾는 이정표이다. / 『사진과 산책』 시리즈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풍경을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다. 늘 다니는 길이지만, 자연 속 소박한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자세히 보아야만 보이는 작은 존재들을 바라보며 온전히 내 안에 머문다. 계절이 오고 가는 동안 잠시 물 위에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들, 비와 바람이 남긴 흔적들을 바라보며 풍경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에 집중한다. 그리고 피고 지며 순환하는 자연의 흐름을 바라보며 자연의 무한함과 인간의 유한성을 느끼곤 한다. 멈추지 않고 흘러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사진으로 붙잡으며, 모든 순간이 생의 반짝이는 순간임을 발견하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 나의 사유 세계가 더 잘 공감될 수 있도록 사진에 언어를 붙여 보았다. 피사체와 마주할 때 느낀 감정을 시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 사진을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시의 언어 안에서 나의 내면 세계에 머물게 하고, 나아가 각자의 경험적 기억으로 사유의 세계를 확장시키기를 바랐다. ■ 차경희
나의 작업은 대부분 자연과 인간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 시리즈는 이승우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으며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나는 식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식물 그 자체를 바라보고 그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려 했다. 인간과 식물 간의 위계를 허물고,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나무'와 '풀'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식물들의 사생활』은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충동인 사랑에 대한 성찰을 포함한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죽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할까? /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에로스(Eros)적 욕망과 타나토스(Thanatos)적 욕망이 공존한다. 에로스는 삶과 사랑에 대한 충동 에너지이며, 타나토스는 소멸과 죽음에 대한 충동 에너지다. 진정한 삶과 사랑만이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다. 즉, 나의 욕망은 결국 타인의 욕망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나는 나무들이 얽히고 섞여 살아가는 풍경 속에서 인간이 사회화되는 과정을 욕망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기하학적으로 성장한 나뭇가지와 뿌리가 사랑, 고통(고독), 죽음, 죄, 윤리 등을 마주하며, 타자의 욕망을 넘어, 진정한 삶과 사랑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를 탐구했다. 식물들과 나무들이 교감하고 교차하는 중층적 구조 속에서, 진정한 삶과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 김미경
Vol.20240907a |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Nature, Beyond the Limit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