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을 공유하는 방법

김민지_김윤희_임승주_정혜정展   2024_0828 ▶ 2024_0904

초대일시 / 2024_0828_수요일_05:00pm

기획 / 김강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킵인터치서울 Keep in Touch Seoul 서울 종로구 북촌로1길 13 Tel. +82.(0)10.9133.3209 keepintouchseoul.wordpress.com/ www.facebook.com/keepintouchseoul @keep_in_touch_seoul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 1934-1992)가 아주 어렸을 적에 할렘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탔을 때의 일이다. 그가 빈 자리에 앉자,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어린 로드는 순간 자신과 그 사람 사이에 아주 끔찍하고 더러운, 바퀴벌레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피하고자 했던 '아주 끔찍하고 더러운 것'은 오드리 로드, 자신이었다. ● 퀴어 페미니스트 철학자 사라 아메드(Sara Ahmed, 1969~)는 로드의 일화를 분석하여, 신체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이 재창조되는 과정에서 "어떤 타자와는 동조하고 어떤 타자와는 적대하는 일이 구체적인 움직임 가운데 촉발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렇다면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보여주는 이 일화는, 단순히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순간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평등과 연대로 향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까지도 고민하게 한다. 이에 본 전시는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공간으로서 '곁(side)'을 공유하는 행위를 공존과 연대의 실천적 방법론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곁을 공유하는 방법展_킵인터치_2024
곁을 공유하는 방법展_킵인터치_2024
곁을 공유하는 방법展_킵인터치_2024

김민지는 쉽게 지나쳤던 무언가(혹은 누군가)와 그를 보살피는 이들이 중첩된 상태를 그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당겨온다, '나'와 '나'의 친구들 곁으로. 겨울철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놓은 지푸라기에 쓰인 "나무사랑"에서 출발한 〈ㄴㅏㅅㅏㄹㅏㅇ〉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여름나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입구 좌측에 설치된 9점의 드로잉은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한 사진처럼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밀함의 순간들 담고 있다. 두 작업은 서로 기대어 있는 '나'와 '나'의 주변을 다시 살피게 한다. ● 김윤희는 나이테와 비인간 동물의 형상을 주된 모티프로 활용한다. 비인간 동물의 초상과 그들이 썼을 법한 편지글을 조합했던 〈Dear〉(2023)의 연장선에 있는 〈annual ring〉(2024)과 〈finding true happiness〉(2024)는 스스로 묻고 답한다. 우리와 맞닿은 존재들이 우리 안에 어떻게 쌓여가는지, 그리고 켜켜이 쌓인 관계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 임승주의 작업은 친밀한 사람과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사진은 빛에 의한 존재론적인 자국(trace ontologique)라기보다, '나'와 '너' 사이에서 오갔을 수많은 감정을 풀어나갈 실마리에 가깝다. 작가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때로는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이 감정의 불순물을 해집는 과정이다. 이로써 그는 우리가 함께, 또 따로 있을 때에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되짚어 보며 '나'와 '너'의 '사이(between)' 지대를 발견하고자 한다. ● 정혜정이 천착하고 있는 물고기의 이미지는 아주 사적인 경험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태풍이 오던 날 천변에서 물고기를 주워담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고 한다. 왜 물고기를 주워담고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잡아 먹으려" 한다고 대답을 했다. 당연하게도 강으로 되돌려 보낼 줄로만 알았던 그는, 집으로 돌아와 어항에 있는 구피와 그들의 뱃속에 있을 물고기에 관한 생각에 빠졌다. 왜 어떤 물고기는 보살핌을 받고, 어떤 물고기는 잡아 먹히는가?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향한 잔인함(cruelty)을 당연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혜정_untitled_석기_25×15×1.5cm_2020
임승주_untitle_캔버스에 유채_10×10cm_2024
임승주_070124_캔버스에 유채_33.4×45.5cm_2024

《곁을 공유하는 방법》은 사적이고 친밀한 공간인 '곁'을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향한 책임감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윤리적 태도를 추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철학자 김은주는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1954~)의 유목적 주체(nomadic subject)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유목적 여성 주체는 변이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황적인 연결점을 지니지만 하나의 정체성은 부인하는 것이다. (…) 이러한 여성 주체는 체현성으로 인해 이질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연대를 맺을 수 있는 관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차이를 생성해 내며, 차별과 억압을 작동시키는 통제의 원리를 발견하고 각기 다르게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상호 연결성에서 비롯된 책임감의 확대를 낳는다." 상대방의 구체적인 얼굴을 바라보고 그가 처한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주 사소한 행동이 '나'와 '나'의 친구들의 행복을 앞당길 수 있기를 소원한다. ■ 김강리

임승주_071524_캔버스에 유채_15×15cm_2024
임승주_060724_캔버스에 유채_100×80.3cm_2024
임승주_112822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4
임승주_072424_캔버스에 유채_162.2×112.1cm_2024

얼마 전, 가장 오랜 친구와 크게 다투고 서로에게 보여 좋지 않은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 서로의 가장 가까운 곁에 있었던 만큼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만나면 항상 "너는 나보다 날 잘 알아."라는 말을 습관처럼 주고받았어요. 하지만 서로가 다른 환경을 겪어 오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 알게 모르게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의 새로운 사람들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그러니까 내 세상의 고됨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이기에 마땅한 책임과 도리는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그래."라며 잘못된 것, 틀린 것을 못 본 척하고 흐린 눈을 하며 넘기는 모습은 지금껏 내가 알던 네가 맞니,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인 듯 낯설었습니다. 내 세상에 언제나 나보다 더한 공감을 전하며 자신의 깊은 구석을 내어주던, 친밀하고 따스한 곁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기분이었어요. 함께 쌓아온 시간처럼 꽤 질기고 단단해 보였던 '우리'라는 말이 이렇게 가볍게 부서지기 쉬운 말인 줄 몰랐습니다. 상처는 깊고 지혈은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미 부서진 관계는 씁쓸하지만, 그날의 어떤 선택과 비워낸 그 곁이 아쉽지만은 않아요. ● 어쩌면 곁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믿음과 결심이 필요할 듯합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곁을 내어주고, 의식하지 못한 시간 속에 서로를 향해 곁을 건네보았던 사람은 압니다. 내가 나에게 솔직할 때, 내 주변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그러면 나 이외의 것이 눈에 밟히고, 그런 다음 비로소 자리를 조금 비켜 진정한 곁을 내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윤희_finding true happiness_캔버스에 유채_60.6×90.9cm_2024
김윤희_annual ring_캔버스에 유채_46.5×37.9cm_2024
정혜정_온 마음 다해 사랑해_도자, 실_가변설치_2023

《곁을 공유하는 방법》은 우리 주변의 이 성실한 관계들을 묘사하면서 나의 안과 밖, 감정을 느끼는 삶과 지금 내 옆에 있는 것들의 의미를 반추하게 합니다. 곁을 '공유한다'는 행위는 관계에 겹겹이 감긴 것을 풀어내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의 초대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나'와 '너' 사이에 서로를 향한 이해가 충분하고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을믿음의 조건으로 전제하는 것 같아요. 《곁을 공유하는 방법》의 작품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발견하고, 또 종종 마주치는 관계 속에서 촉발되는 감정들이 전시를 거쳐 내 주변 공동체를 의식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줍니다. ●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왼쪽 벽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림들이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정사각형의 이미지들은 사소하면서도 구체적인 상황이 담긴 장면이어서, 누군가에게 참 소중한 장면들이겠구나 싶었어요. 깊이 들여다보니, 누군가의 일기 같은 사적인 일상이기 때문에 누구든 비슷한 순간을 연상하면서 공감하는 지점을 만들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림 하나하나를 떼어보다가 가만히 보니 정사각형의 프레임과 사적인 이미지, 가로세로 3열 3행으로 배치된 이미지로 눈에 익은 구성은 인스타그램의 피드처럼 보였습니다. 이 9점의 그림은 김민지의 피드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김민지_ㄴㅏㅅㅏㄹㅏㅇ_2합장지에 분채_24×36cm_2024
김민지_신비복숭아 신비해 외 8 작품_한지에 채색_각 16×15cm_2024
김민지_신비복숭아 신비해_한지에 채색_16×15cm_2024

〈신비복숭아 신비해〉(2024)에서는 '오 신비복숭아? 나도 이거 이름 진짜 신기하다고 생각했어. 특별한 맛은 아닌데 어쩌다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라거나, 〈모두 모여봐〉(2024)는 '그래, 익숙한 인증샷. 근데 어디지. 무슨 날이었길래 이 인원이 시간 맞춰 모일 수 있었을까. 다들 바쁠 텐데…. 서로 대단한 관심과 애정이겠다.' 싶었어요. 이렇게 작업은 전시장 공간에 자리를 틀고 앉아 자신의 사소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전달자가 되었고, 마치 작가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딱히 의식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겠지만, 가끔은 너무 가깝기에 멀리 볼 때보다 더 고개를 크게 돌리고 눈길을 주며 초점을 맞춰야 해요. 김민지의 시선을 통해 그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보다가 문득 나의 일상과 관계들이 떠올랐습니다. ● 화면에 남겨진 붓자국을 보자, 임승주가 만들었을 움직임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작업의 시작이 된, 어느 순간을 남겼을 사진과 캔버스 화면. 이 공간에서 임승주의 과거는 그 시간에 누군가와 나누었을 대화와 감정으로 다시 구성되네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시간과 순간은 화면 위 속도감 있는 선으로 그리고 작가가 느꼈을 감정들 또한 함축된 색으로 캔버스에 불러 모아졌습니다. 〈072424〉(2024)처럼 주변의 인물과 공유한 시간에 작가가 겪었을 감정의 교차 또는 교환이 화면의 규칙을 따라 조형언어로 변환됩니다. 그러면서 일종의 언어로 변환된 감정들은 회화적 요소로써 화면에서 물리성을 획득합니다. ● 이는 시간과 임승주가 화면을 통해 그 언어로 치열한 대화를 주고받은 결과임이 틀림없기에 관람자의 눈에 선명하게 담깁니다. 눈에 맺혀있는 색 위로 선이 지나가면서 잔상처럼 남는 것처럼요. 화면 앞에서 기억 속의 시간을 불러내고 손을 거쳐 온몸으로 재감각하는 동안, 작가가도 속도를 내어 움직였을 것이 느껴집니다. 화면 앞에서의 수 시간에 걸친 동선과 호흡을 상상하다가 나중에서야 그림에 몰입한 것을 알아차렸는데, 시선을 오래 잡아두었던 이유는 그림 곁에서 작가와 관람자가 시공간을 넘어 연결될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림 앞에서 과거 임승주의 시간과 지금 나의 시간이 중첩되면서 우리의 의미가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김민지_미스터 패럿씨_한지에 채색_16×15cm_2024
김민지_주렁주렁 달려품_한지에 채색_16×15cm_2024
김민지_켄군의 벌레트랩_한지에 채색_16×15cm_2024
김민지_구피의 꿈_한지에 채색_16×15cm_2024

〈annual ring〉(2024)과 〈finding true happiness〉(2024)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때 찾을 수 있는 존재들은, 우리와 같은 하늘과 땅을 공유하고 있지만 빼곡한 사람들에 쌓여 살아가는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김윤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들에게 특별한 자리를 내어주며 관람자가 작품을 통해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상생의 관계와 연대의 의미를 고민하게 합니다. 그 시간에서 우리는 평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나)의 연결에 대해 생각합니다. 끊어질 듯 희미했던 관계를 치유하는 회복의 시간에서의 반성과 고민은 관람자의 몫이 됩니다. ● Keep in Touch의 입구가 위치한 벽에는 크고 긴 창이 있어요. 마침 해가 지면과 가까워지면서 강한 빛을 공간에 들이고 있었고, 창 바로 앞에서 〈온 마음 다해 사랑해〉(2023)가 길고 선명한 그림자를 공간의 벽과 바닥에 그려 넣고 있었습니다. 정혜정의 개인적이고 특이한 경험에서부터 출발하여 작업의 소재가 된 물고기는, 다시 한번 인간과 비인간 종의 관계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작고 부서질 듯한 물고기들은 발([ 발ː ])처럼 걸려 큰 창의 전체 면적을 덮는데, 작은 물고기들은 관람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약한 바람에도 회전하고, 흔들립니다. 작품 주변의 바닥과 벽에 그려진 그림자의 크기와 위치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렇게 부드러운 마티에르(soft matière)의 조각은 해가 질수록 공간을 점유하는 영역을 넓혀가면서 전시 공간에서 변화하는 풍경을 만듭니다. 그리고 스스로 형태를 조각해 나가며 공간에 설정된 조각 기능의 범위를 바꿔 가는 방식으로 공간과 작품, 관람자의 관계를 재정의합니다. ● 영화 〈업타운 걸스(Uptown Girls)〉(2003)의 레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깁니다. 누군가에게 곁을 주는 것, 그로부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감정을 감추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며 "It's a harsh world.(비정한 세상이야.)"라고 말해요. 하지만 몰리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되고, 비로소 상대에게 마음을 열어 곁을 내어주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내 마음과 곁을 나누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내가 지금에 있는 한, 체온을 나눌 곁이 언제나 나와 나의 주변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시를 단서 삼아 나의 가까운 곳에 너를 두는 법을 알아간다면 좋겠습니다. ● 곁을 내어주고, 또 서로의 곁에 서길 반복하면서. ■ 안수빈

Vol.20240828h | 곁을 공유하는 방법展

@ 제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