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각형 시詩: 봉천동·불광동에서 보내온

솔방울_오정일 2인展   2024_0827 ▶ 2024_0913 / 일,월요일 휴관

작가대화 / 2024_0913_금요일_05:00pm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 아팅 디렉터)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정사각형 시詩: 봉천동·불광동에서 보내온 ● 그림이나 사진처럼 시각예술의 간판급 장르의 기본 포맷은 장방형長方形의 직사각형이다. 동영상을 재현하는 텔레비전 모니터와 영화관 스크린 같은 현대적 시각예술의 포맷도 그렇다. 가로 또는 세로로 길게 늘어난 공간에 스토리를 넉넉히 담을 수 있고, 안정감과 역동감을 만드는 프레임이라 선호된 결과일 것이다. 직사각형처럼 네 각의 크기가 같고, 네 변의 크기까지 같은 정사각형은 정방형正方形으로 표기되며 그림과 사진의 프레임으로 쓰이긴 해도 직사각형에 비하면 채택되는 빈도가 낮다. 네 각과 네 변의 크기가 같은 정사각형은 고유한 조형미와 장식성도 띤다. 아르데코를 포함한 여러 디자인 스타일에서 심심치 않게 패턴의 단위로 쓰인다. 정사각형 프레임은 두 대각선이 중점에서 교차하는 구도로 인해, 안에 담긴 내용물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효과 때문인지 소셜미디어 생태계에서 텍스트보다 한방의 비주얼에 호소하는 인스타그램의 기본 포맷은 정사각형이다. 정사각형은 시각예술이 취하는 여러 프레임 가운데 하나지만 동적이기보다 정적이며 산문보다 운문에 가깝다. ● 아팅에 초대된 2인은 정사각형 프레임이라는 접점 외에도 부수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개념미술 전시의 금자탑인 「태도가 형식이 될 때 When Attitudes Become Form」(1969)의 타이틀을 뒤집어 차용하면, 정사각형이라는 형식이 비슷한 태도를 만든 결과가 아닐까 한다. 초대작가 둘은 공히 채색을 흑백의 단색조로 통일했고, 정교한 필치로 대상을 정밀 묘사했으며, 그 결과 작품 완성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대단찮은 사물을 골라 정사각형 구도에 주제로 옮긴 것까지 닮았다.

솔방울_환상연습 no959(no42)_30×30cm_2022
솔방울_환상연습 no966(no35)_30×30cm_2022
솔방울_환상연습 no969(no32)_30×30cm_2022
솔방울_환상연습 no988(no13)_30×30cm_2021
솔방울_환상연습 no997(no04)_30×30cm_2019

솔방울(1972). '발견된 사물'은 동시대미술의 출발점으로 이해된다. 일상품에서 예술의 면모를 찾아낸 첫 시도이기에 그렇다. 이에 빗대면 보잘 것 없는 대상에서 광휘를 발견한 순간이 솔방울의 소품 연대기에서 자주 나타난다. 작가는 플라스틱 비닐 죽은 새 등 모두가 제 수명을 다한 대상을 택했다. 정사각형 속 주인공은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페트병처럼 1회용 제품이 다수다. 이들은 용도를 다한 후에 대충 구겨, 대충 묶어, 대충 찌그러뜨린 형태로 길바닥에 버려지는데,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무릎 아래의 삶을 필사했다." 한눈에 알아볼 만한 대상도 있지만, 무정형으로 바뀐 구겨진 비닐이나 찌그러진 플라스틱은 마주 보는 얼굴 모양 같기도 하고, 고인 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상의 부분을 가까이서 묘사한 페트병은 호사스런 다이아몬드 패턴 장식물처럼 보인다. 시의 함축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면 이런 모습일 게다. ● 짧게 요약한 작가노트에서 문장력이 읽혔다. 솔방울은 2024년 시 전문 계간지의 공모에서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사학史學을 전공했지만 미술 작가와 전시 기획자를 병행한다. LOFT갤러리 운영위원으로 있다.

오정일_Laboratory2021-II_리넨에 아크릴채색_40×40cm_2021
오정일_Fountain_리넨에 아크릴채색_30×30cm_2011
오정일_Laboratory2024-II_리넨에 아크릴채색_37.8×37.8cm_2024
오정일_Laboratory2024-III_리넨에 아크릴채색_37.8×37.8cm_2024

오정일(1972). 세필용 1호 붓에서 털을 제거하여 한 가닥 털만 남긴 붓으로 사람의 머리털 뭉치를 정밀 묘사한 큰 그림으로 주목받았다. 한 가닥 붓털로 촘촘히 머리털을 채워나간 뒤통수가 검은 화면 위로 떠오르는 그림 연작이었다. Laboratory 라는 연작으로 대부분 채워진 정사각형 그림에선 한 가닥 붓털로 묘사한 초기 작업에 더해, 대나무 촉과 손가락 지문으로 무정형의 대상을 표현한 실험작이 있다.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꿈틀대는 게 무언지 한 눈에 파악하긴 어렵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자태가 구름이나 연기 같기도 하고 덩어리 진 양감 때문에 바위 같기도 하나, 작가가 손수 제작한 작은 분수에서 힘없이 솟구친 물을 표현한 것이다. 분수의 자잘한 물결선은 작가의 지문 자국이다. 지문으로 물의 양감을 표현하고 세필로 마무리한다. 설명을 들은 후에도 솟구친 물의 무정형에서 입을 아 하고 벌린 악마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며 다시금 구름이나 바위 덩어리의 질감이 느껴진다. ● 서울시립미술관, 통인 인터내셔널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 반이정

Vol.20240827f | 정사각형 시詩: 봉천동·불광동에서 보내온-솔방울_오정일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