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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0830_금요일_06:00pm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협력기획 / 강정아 @hysterian.public 자문,장비 / 다이애나밴드 @dianaband_w @lost.tra8n 평문 / 김지승 @medusa.ji 웹 페이지,디자인 / 김보라 @bora_kim_in 촬영 / 고정균 @goh_jk
관람시간 / 01:00pm~06:30pm / 월요일 휴관
임시공간 space imsi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48 Tel. 070.8161.0630 www.spaceimsi.com www.facebook.com/spaceimsi @spaceimsi
포구 끝에서 눈부신 흰 빛을 보았던 한 시인의 고백처럼, 저 먼 등대에 의지하여 바다를 응시한 적이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그 밤으로부터. 떠남과 도착이 공존하는 항구에서 항해의 종착을 꿈꿨을 난파된 배에 대해 생각했다. ● 지평선 끝에 도달한 고달픈 눈동자는 맹점의 상태로 바다를 응시한다. 시선의 끝에 도달한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바다로 추락한 별들의 죽음에 빗대어 태어나고 죽어가는 유한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 살아있다는 것과 죽어있다는 것의 사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일종의 기시감은 과거의 장면 자리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나는 그것이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것임을 알고 있다.
죽고 사는 문제 말고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사의 고비를 빌어주는 마음이 전부가 아니면 무엇이 전부란 말인가. 치유할 수 없는 재난(박영옥, 「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불가능한 목소리』, 56쪽, 림보 출판사, 2021년)이 삶을 덮친 후에야 죽음에 따른 자리를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고통에 따른 글쓰기가 아무런 증명과 공허를 이기지 못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것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죽음이 우리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유은의 이번 개인전 『당신에게 dear, you』는 배를 잃은 포구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안산과 목포, 진도, 그리고 인천 바닷가에 가닿은 심상을 글로 담았고 심연으로 이어지는 세이렌의 소리를 드러낸다. 신화에서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만, 귀를 닫은 자들에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이렌들은 조난 당한 자를 찾기 위해 고동을 울린다 전시장에는 세이렌의 몸짓으로 생성된 울림이 가득하다. 세이렌의 소리를 들은 자는 바다의 심연으로 미끄러진다. 심연의 세계는 어둠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공명하는 빛은 완전한 어둠을 만들 순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은 침묵을 동반했을 때 드러나는 법이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공허에는 반드시 어떠한 울림을 내포한다. 신화 속, 세기의 별들과 같은 이야기에는 생사의 필연성, 끌림과 두려움이 함께 얽혀있다. 이것은 아직 한 번도 쓰여지지 않은 서문을 쓰게 한다. 지금 여기, 전시를 여는 서문(誓文)이 당신을 기다린다. 서문은 물기에 젖어 끝말을 잃는다. 당신에게 건네는 이 글은 일종의 편지와도 같다. 물기를 머금은 서문의 독백은 '당신에게'로 향해있다. 당신이 잃어버린 말의 자리를 찾고자 서문(署門)의 방향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그 행방을 아는 이를 찾기는 어렵다. 안부를 묻는 몇 편의 편지는 응답자의 부재로 끝내 반송되고 만다. 수신과 발신의 어긋남 속에서 기다림이 주는 통증은 장소의 흔적을 고정시킨다. 비를 맞으며 바닷가 마을을 거닌다. 글을 쓰기 위해 종이를 꺼내지만, 젖어버린 종이는 끝내 쓰고 싶은 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문장을 되새긴다. 문장을 새기기 위한 활자는 파동을 일으키고 음률을 형성한다. 글자와 글자 사이가 벌어지며 공백을 만든다. 공백으로부터 말의자리를 찾는다. 머릿속에 메아리가 울린다. 그저 그것을 흥얼거린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시간에 따른 망각의 필연성은 도래할 죽음을 새까맣게 잊게 하지만, 잃어버린 말의 자리를 찾는 일은 기억하기를 통해 실현된다. 우리는 하기와 되기, 그 가장자리를 서성인다.
유은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행위와 선택들, 그로부터 이어지는 세속적 얽힘의 과정에 관한 아티스틱 리서치를 수행한다. 텍스트, 드로잉, 사운드, 설치 등을 통해 교차성에 기반한 상호 연결을 위한 예술 실천을 지향한다. 2023년 단체전 『층계참』(아르코미술관 공간열림: 서울), 『우징: 섬 안의 섬』(언러닝스페이스: 제주)에 참여했고 2024년『당신에게 dear, you』(임시공간: 인천)이 첫 개인전이다. ■ 강정아
텅 빈 기호로서 '당신/너'를 불러본다. 당신의 자리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 당신과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마주쳤는지. 어떤 찔림으로부터 '당신'은 '나'를 감각하게 되었는지. 듣는다. 낯선 소리들을, 불편한 소리들을, 몸에 박히는 소리들을. 우연의 마주침으로 보이는 소리들의 교차, 시선들의 교차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 그것을 포착해내는 일련의 움직임. 말이라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상태들 상태 그 자체에 놓일 수 있도록 명명하는 행위를 미룬다. 당신을 맞이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 간다. 나의 소리를 점점 비우고, 당신의 소리가 채워질 수 있도록. 당신의 소리에 맞물려 나의 움직임을 이어간다. 내가 수집하고 기록한 곳에 당신이 자리한다 (불협)화음. 어색한 조율. 어긋난 말들의 마주침. 메아리와 울림.
통증으로 남은 기억들, 동시에 아직 명료하게 말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상흔 자국을 발견했다. 그 기억들을 꺼내야만 하는 순간이다. 말하지 못한 통증의 기억들을 꺼낼 수 있는 방식의 말하기와 여성적 글쓰기¹를 새로 익힌다. 자신의 내밀한 기억과 사회적 참사에 대한 자기연관적 경험을 반복적으로 마주한다. 통증 앞에서 징징대던 화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터져나온 고름을 발견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 징징거리기를 그만해도 되겠다. 시선은 점차 "고름"이 빠져나가고 남은 빈 자리로 옮겨간다. 빈 터에 머물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깊은 바다와 침몰하는 배, 사회적 참사에 대한 기억이 빈 자리의 살점을 울린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괴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다시 침묵으로 혹은 다른 파장으로 옮겨 가기를 반복해왔다. 이제 다시 통증의 기억을 마주한다. 안산과 목포와 진도에 몸을 가닿는다. 장소에서 발생하는 파형이 몸의 빈 자리를 돌며 울린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어느덧 빛바랜 노란 꼬리들은 하염없이 흐드러지며 타닥타닥 피어오르고 하강하기를 반복한다. 기억의 장소를 따라 가다 길을 잃는다. 중소도시의 풍경, 숲과 항구, 기억의 터 곁에 머물며 초연하게 장소를 품은 장소의 소리들이 함께 공명한다. 서서히 빈 자리에 살점이 차오른다. 이는 이전의 상흔을 품으며 상승하는 "존재의 살점"인 동시에 다가올 하강의 시간을 가늠하는 관계적 살점이기도 하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통증으로부터 '나'는 언제나 홀로가 아님을, 타자와의 접촉 속에서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축되기를 반복한다. 통증의 생성과 소멸의 교차 속에서 나는 아주 조금이나마 비워지고 타자는 나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가까운 '당신/너'가 된다. 전시장에는 안산과 목포와 진도에서 필드레코딩한 소리와 퓨어데이터를 활용해 재구성한 비/언어적 소리들이 교차하며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진다. 공간의 벽면 곳곳에는 통증에서 시작된 관계적 기억을 매개로 당신/너에게 다가고자 한 사유의 흔적들이 자리한다. 관계적 통증의 기억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덧 돌아봄과 경청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나의 고통으로부터 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의 한가운데 혹은 "가장자리"로부터. ■ 유은
¹ 본 글에서 '여성적 글쓰기(I'Ecriture féminine)'는 엘렌 식수가 『메두사의 웃음』에서 제시한 의미와 더불어 서사 짓기를 통해 자신의 정치·생태적 지형을 가늠해가는 여성 화자의 몸짓을 드러낸다. 말하는 자로서 여성은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시공간적 차원을 넘나들며 자신의 관계적 주체성을 알아차린다. 나아가 여성 화자는 '여기'에 자리한 기존 언어를 삭제/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다시 쓰고 다시 수행함으로써 기표들에 새겨진 가부장제적 함의에 대한 내파와 전복을 시도한다.
* 이 전시는 인천광역시와 (재)인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2024년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개최하며, 임시공간의 대관전시로 열립니다.
Vol.20240826c | 유은展 / UEun / mixed media.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