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廣野): 욥이 키워낸 선인장 Wilderness: Cacti in Job's

2024 명성교회 bara 기독미술인 선교부 정기展   2024_0806 ▶ 2024_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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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0806_화요일_03:00pm

참여작가 강기호_곽정희_김계신_김명래_김민주 김영숙_김예령_김재경_김정숙_문위정 박희연_손정은(Esther)_송광희_연위봉 유승현_윤호선_이민애_이승은_이인경 임치용_전애_정인영_진혜윤_최진희_홍성호

주최 / 대한예수교장로회 명성교회

1부 / 2024_0806 ▶ 2024_0815 관람시간 / 10:00am~05:00pm / 8월 11일 휴관

소금의 집 Salt house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191 B2 전시장

2부 / 2024_0907 ▶ 2024_0921 관람시간 / 07:00am~07:00pm

명성교회 Myungsung Church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 452 예루살렘 성전 B1 전시장 Tel. +82.(0)2.440.9000 www.msch.or.kr

"bara"는 히브리어로 '창조하다'를 뜻한다. 명성교회 기독미술인선교부는 "bara"라는 이름 아래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마고 데이(Imago Dei)의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창작 전시를 기획한다. bara는 전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의 문화를 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며, 기독교 미술이 세상의 예술과 구별되어 더욱 아름답고 영화로운 예술로 교회가 덕을 세우길 바란다.

강기호_끝이 없고, 깊이를 알 수 없는_욥기 38:1-20_3D 사진_50×70cm
곽정희_욥의 고백_욥기 42: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
김계신_하나님의 은혜_욥기 42:1-2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
김명래_등불_욥기 33:4_종이에 수채_91×116.8cm
김민주_고난 그리고 축복의 폭발_욥기 23:10, 42:10_ 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91cm×2
김영숙_은총_욥기 38:2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90.9cm
김예령_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을 택한 아이, 소년, 청년_ 욥기 23:10, 창세기 2:8-9, 요한계시록 22:1-2_ 캔버스에 혼합재료_53×45cm×3
김재경_다스리신다_욥기 23:1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1cm
김정숙_고난과 축복_욥기 16:12, 2:10, 42:10_ 한지에 분채, 석채, 금박_116.2×150cm
문위정_숭고_욥기 2:3-7, 11-17, 42:1-6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5×91cm
박희연_고통의 문제_욥기 1:21-2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0.7cm
손정은(Esther)_Restoration in Embracing Warmth_ 욥기 2:11-1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53cm
송광희_내가 너를 믿어_욥기 22:21, 24:13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80.3cm
연위봉_Coram Deo_하나님 앞에서_욥기 42:5-6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0×43cm
유승현_위로의 주, 축복의 종_욥기 7:1-21_ 슬립 캐스팅, 슈퍼화이트, 컬러 유약, 1240°c 산화소성_가변크기
윤호선_회복_욥기 42: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0.6cm
이민애_물이 바다 덮음같이_욥기 8:7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끈, 젤스톤_91×116.8cm
이승은_무고_욥기 5:18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116.8cm
이인경_Who Is the Sinner?_욥기 42:1-9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5×97.5cm
임치용_시내산 광야의 싯딤 나무_욥기 14:7-9_ 캔버스에 유채_72.7×90.9cm
전애_치유와 회복_욥기 33:25~26_캔버스에 유채_91×91cm
정인영_My Only Hope_욥기 33:28-30_ 캔버스에 혼합재료_100×80.3cm
진혜윤_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_욥기 23:10_종이에 수채_80.3×100cm
최진희_새벽기도_욥기 38:7_캔버스에 유채_116.8×91cm
홍성호_새벽-기도_욥기 42: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4×130.3cm

당대 의로운 자로 신의 칭송받았던 시대적 인물, 욥조차 이 '고통의 평화'로의 여정을 이해할 수도, 응답할 수도 없었다. 그를 둘러싼 시대의 외침은 '안락'했던 과거와 대비되는 욥의 '죄와 벌'에 대한 확실한 변증 요구였다. 그러나 욥은 해답 부재의 망연한 침묵과 절규로 자신과 시대와의 대화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인생과 우주에 관한 섭리를 향한 의문은 욥을 더욱 연약함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본래부터 이 모든 대화 담론에 참여하고 귀 기울였던 제4 담론의 주체는 연약함 중에서 자신을 계시한다. 자신을 비우고 낮추었기에 보이지 않았던(kenosis) 그분의 담론은 비로소 지금-여기 현존하는 창조주, 자신의 존재 증명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이러한 창조주의 담론은 욥을 포함한 모든 시대 담론을 변화시킨다. 들리지 않아 듣지 못했고, 보이지 않아 볼 수 없었던 고통 속 모든 주체들의 무지(無智)를 깨운다. '응답 부재-존재 증명 불가'로 처리하려 했던 그들의 막히고 묵은 감각을 깨끗하게 한다. 실재(實在)를 향한 지각의 인식을 일깨운다. 이로써 시대 담론 속 주체적 인생들을 순금과 같은 새 창조의 존재 가치로 자신을 변증하도록 정화(淨化)하며, 모든 인생과 믿음의 시작이며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사(役事)를 뚜렷이 증명해 보인다. ● 이러한 부활과 창조의 초월 담론은 욥의 서사를 우리와 동떨어진 먼 이야기로 액자 안에 갇혀 있게 하지 않는다. 여기 널디 너른 광야에 던져져 온갖 무응답의 물음과 존재 증명을 헤매는 오늘 우리 시대의 담론에도 여전히 귀 기울인다. 오히려 욥처럼 묶이고 정지된 우리의 무감각을 쇄신하고, 우리를 시대의 참여적 주체로 초청한다. 과연 우리는 보이지 않는듯하나 현존하는 연약함의 제4 담론을 이 시대의 지금-여기의 창조와 부활이 작동하는 대화의 장(場)으로 응하고 초대하려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로 본 전시는 기획되었다. 미로(迷路) 같은 인생길에 소용돌이치는 티끌과 재의 먹구름, 고통의 비바람, 깨질듯한 질그릇의 연약함 중에도 망연히 피어나는 들꽃들처럼, 회개의 몸부림 속에 순금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새 창조로 소생하게 하는 전능자의 영과 기운을 노래한다. 창조주의 담론 앞에서 새로워진 감각의 기도와 고백은, 영글어진 생명으로 결실하여 시대를 울리며 회복하는 소망의 축복과 치유, 위로의 사명이기를 선언하며, 오늘 우리의 대화를 시작한다. ■ 명성교회 bara 기독미술인 선교부

Vol.20240806b | 광야(廣野): 욥이 키워낸 선인장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