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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예술협동조합이루_오분의일 후원 / 태영D&I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토요일은 24시간 관람가능, 06:00pm 이후에는 윈도우 갤러리로 운영
오분의일 One Fifth 1/5 경기도 광명시 양지로 19 어반브릭스 4층 437호 Tel. +82.(0)2.2688.7771 @onefifth_5_1
인간은 테두리가 깔쭉깔쭉한 세계의 파편들을 통해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 왔다. 문자가 고안되기 전에 이 과정은 신화의 형태를 띠었다.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엄지와 검지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자그마한 비정형의 청동 조각은 낯선 형상으로 미지의 상황들을 굽이굽이 저장하고 있다. 신화의 일부가 담겨 있는 이 조각에 포함된 문장을 읽어낼 수 있는 자는 오로지 하루스펙스(Haruspex) 뿐이다.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미래를 점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들은 지배자 곁에서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내장을 뜻하는 '하루(Haru)'와 바라보는 자를 뜻하는 '스펙스(Spex)'의 합성어인 하루스펙스(haruspex)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들은 신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 피아첸차의 간을 사용했다. 산양의 간을 본뜬 청동판에는 다양한 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은 이 간을 통해 신의 의지를 읽어내고 미래를 예측했다. 이 주구는 말을 짓는 하나의 도구이자 상징물이다.
현대인들도 이 차가운 미지의 돌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읽어낼 수 있을까. 이번 작업은 이 청동 간으로부터 시작한다. 고대인들의 예언은 '알 수 없음'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처이다. 인간에게 낯선 것, 이방인, 나그네와 같은 '알 수 없음'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이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끌어내린 후, 기원을 담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형상에서 기인한 텍스트는 상황과 미래를 예측하는 수단이었다. 피아첸차의 간에서 발생한 예언의 말들은 선택된 자들에 의해만 구체화되었다.
하루스펙스는 특정한 하나의 형상과 그 형상에 부합하는 신의 이름만으로 추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언어로 구체화한다. 고착된 형태로 실체의 세계로 끌어내려진 예언의 말들은 인간의 삶에서 접목할 수 있는 상황과 결합하여 이해 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화한다.
불확정적인 형태, 곧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뽑혀 언어의 형태로 변환된 이 예언은 보고 싶은 상황을 묘사한다.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들로 나타나며 이것을 읽어낼 수 있는 특별한 존재, 하루스펙스가 이것을 정제된 문장으로 표출한다. 이들이 '읽어낸 것' 또는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어떻게 그것들을 언어로 구현한 것일까? 이 작업은 하루스펙스에 대한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출발했다.
글자를 가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글자가 달라붙어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전시 『내장을 바라보는 자 Haruspex』 가 펼쳐질 오분의일 공간은 내장을 바라보는 자의 예언을 펼쳐내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공간에 펼쳐둔 형상들은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읽히지 못하고 그저 그곳에서 우연히 결합되어 불확정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관객의 시선에 포착된 임의적인 의미는 또 다른 관객에 의해 해체되고 또 다른 형태와 의미로 빠르게 변화된다. 이 변화의 시작은 그것을 감각하고 읽고자 하는 당신으로 부터 시작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서로를 보완하며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점성술에 사용된 도구는 하나의 이미지로 예언의 언어를 지어낸다. 상징물이 적힌 돌은 날씨를 예측하고, 기원을 담고 또 삶의 지표가 된다. 이미지로부터 뽑아낸 언어들은 다시 기록을 통해 영속성을 갖는다.
실체하는 무언가로 고정된 사고는 언어로 표출되며 이 언어가 다시 현실에 고착되며, 감각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장을 바라보는 자』에서는 고대 하루스펙스의 예언의 행위를 추측하여시각적으로 재해석한다.
제시된 설치물들은 홀수의 기둥과 가둬둘 수 없는 성질의 물질들을 사용하여 구성하였고, 언어들은 이 물질 표면을 떠다니거나 스며들어 물체를 유영한다. 이것을 온전히 감각하기 위해서는 감상자의 능동적인 추적 행위가 필요하다. 감상자는 본인의 체온을 작품에 나누어 작품 속에 감춰진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순간의 드러남은 곧 다시 감춰지며, 형상을 잃어버린다. ■ 곽기쁨
Vol.20240803f | 곽기쁨展 / GWAKGIPPUME / 郭기쁨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