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0803_토요일_05:00pm
아티스트 프롤로그 2024 선정작가 개인전
주최 /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 / ㈜영일프레시젼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이재희 에듀케이터 / 이보연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김민경 사진 / 송호철 디자인 / 박채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토요일_12:00p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Art Centre Art Moment 서울 금천구 범안로9길 23 H동 4층 Tel. +82.(0)2.6952.0005 artmoment.org @artmoment.doksan
3192번 조각 ● 머리를 질끈 묶은 영상 속 인물은 벽에 종이를 붙이고, 간단한 도구를 활용해 격자무늬를 그려간다. 정적이지만 분주하게 자신의 할 일을 실행하는 인물 위로 한 남성의 인터뷰 음성¹이 흐른다. '민주적인 예술 경험을 판매한다'는 이 목소리는 이따금 더듬거리지만 막힘은 없이, 자신의 이상적 아이디어를 실현했다는 플랫폼 "파티클 컬렉션(Particle Collection)"을 소개한다. 여기서의 "조각(Particle)"은 블록체인 기술로 쪼갠 작품의 한 부분이자, 온전한 소유권을 의미하는 플랫폼의 개념어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이 플랫폼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민주적 예술 경험을 지향하며 누구나 자신만의 작품 컬렉션을 가지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장면이 전환된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기차 밖 풍경을 배경으로, 가상의 온라인 대화 창이 떠오른다. 간단한 질문과 적절히 친절한 대답으로 이뤄지는 대화의 주요 내용은 1만 개로 쪼개어진 뱅크시(Banksy)의 작품 「Love is in the air」(2005)의 한 조각(a Particle)을 구매하려는 자와 그 과정을 돕는 플랫폼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스쿠터(Scooter)" 사이, 구매를 위한 정보 전달로 이뤄진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 자신으로, 줄곧 예술의 제작자로 자리하고 있던 작가는 처음으로 미술 시장의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시도는 영상 속 목소리가 설파한 새로운 예술 소유 및 경험에 관한 의구심과 일말의 실현 가능성을 상상하는 호기심 어린 흥미가 뒤섞여 있는 응답이다. ● 영상 작업 「조각들」은 이번 최수현 개인전 『조각들』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전시는 영상 작품 및 영상에서 파생된 설치 작업으로 이뤄진다. 영상은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을 담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상으로 쪼개어진 작품의 한 조각을 구매하는 과정과 자신이 구매한 작품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의 한 미술관을 방문하는 여정, 그리고 자신이 구매한 조각의 소유권을 활용해 뱅크시의 작품을 이번 전시로 가져오기 위한 실험적 시도로 이뤄진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들"은 크게 세 가지의 형태로 읽혀진다. 먼저 조각들은 미술시장에 존재하는 디지털로 '쪼개어진 예술 작품'으로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구매)를 위해 분할된 작품의 가상적 형상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조각들은 1만 개의 조각들을 직접 그려낸 작가의 '드로잉 행위'로 재현된다. 이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조각과는 대조적으로 물질, 노동, 행위의 범주를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조각들은 전시장에 쌓아 올린 '물질적 종이들'로 구현된다. 작가는 자신이 구매한 조각을 확대 출력한 뒤 관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유권의 행사와 공동의 예술 경험을 시도한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조각들"은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예술에 관한 몇몇 질문을 도출한다. '매력적인 투자 상품과 애정 어린 컬렉션의 구분 가능성', '작품을 소유하는 것과 예술 경험을 향유하는 것 사이 충돌하는 사적 욕망과 공공성의 관계', '자유롭고 창의적인 제작자와 전략적이고 생산적인 공급자를 오가는 현대 예술가 위치' 등 작가의 질문은 작품의 소유와 예술적 체험의 가능성, 그리고 예술가 정체성의 키워드를 아우르며 던져진다.
영상은 다시 작가의 작업실로 돌아간다. 빈 종이에서 시작한 격자무늬 드로잉은 온전한 사각 프레임의 모양을 갖춰가며 서로 구분 가능한 조각들의 모습을 이뤄간다. 어느덧 다시 등장한 목소리가 플랫폼의 설명을 이어간다. 블록체인 기술은 분할된 조각마다 암호화된 고유한 번호를 부여하고, 플랫폼은 이를 소유권(ownership)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투자'라는 단어를 기피하며 이들이 내세우는 용어는 개인의 기호와 지속적 관심을 요청하는 '수집(collecting)'이다. 플랫폼이 지향하는 구매자 간의 공동소유권(co-ownership)은 이들이 설정한 민주적 방식을 통해 작품의 자유로운 순회, 곧 전시 가능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온라인으로 연결된 지갑과 가상화폐로 전환할 수 있는 자본의 보유이다. 인터뷰 음성 아래로 흐르는 화면은 자신이 구매한 작품과 같은 사이즈의 프레임을 총 1만 개의 격자로 분할해가는 작가의 드로잉 장면을 비춘다. ● 그리하여 칸칸이 숫자를 채워가는 작가의 행위는 총 1만 번 반복된다. 언뜻 로만 오팔카(Roman Opałka)식의 개념미술을 연상케 하는 작가의 행위는 무형의 디지털 조각을 아날로그 방식과 물질적 재료로 재현함을 통해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관한 자신의 의문점을 행위로써 재인식하는 과정이며, 현란한 마케팅 언어로 점철된 현대 미술시장의 허상성을 가시화하는 퍼포먼스이다. 고유하고 확실한 소유 가치를 주장하는 플랫폼이 전달하는 실체 없는 소유물이라는 결과값, 그리고 종이, 연필, 자를 활용해 작가의 노동으로 완성해가는 드로잉 작업이 그려내는 대조적 장면은 미술시장에 만연한 가상과 허구, 현실과 실재의 경계 지점을 공존시킨다. 1만 개로 쪼개어진 작품이 누군가의 주장처럼 예술 경험의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기점이 될 수 있을지, 혹은 더욱 기이하게 상품화되어가는 현대 미술시장의 한 단면으로 자리할지에 관한 판단은 유보된다.
뱅크시의 작품은 미국, 영국, 스페인 등 여러 국가를 순회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작가는 안전하고 쾌적해 보이는 미술관에서 금빛 액자에 둘러싸인 채 전시되고 있는 뱅크시의 작품을 직접 확인한다. 그리고 작가는 플랫폼으로부터 구매한 조각의 고화질 이미지 파일을 제공받는다. 뱅크시 작품 위로 작가가 구매한 조각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작가의 조각은 자신의 자리인 3192번 칸을 찾아간다. 점차 축소되어 가는 조각의 모습에서 그 미비한 크기가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이윽고 작가는 1만 개의 격자무늬 중 3192번에 '판매 완료'를 상징하는 빨간 스티커를 붙이며 드로잉 작업 「3192/10000」를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 타인이나 공공의 자산을 침해하기에 불법의 범주를 오가는 스트리트 아트일지라도, 고가의 가격으로 책정되는 뱅크시의 작업은 이제 '환영받는 침범'이 되었다. 예술 테러리스트를 자청하고, 미술제도 비판과 저항을 외칠지라도 한편에서 그의 작품은 오랜 시간 권위의 자리를 차지해 온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경매에서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그 명성을 자랑한다. 거대한 세력이 만들어가는 흐름 안에서 주체의 의지는 때로 모순되고, 방향성을 상실한다. 이념이 부재하고, 거대 서사가 무너진 포스트모던 시대를 붙잡고 있는 'Anything goes!'가 그려내는 현상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예술과 비예술, 좋은(성공하는) 예술의 기준은 불가분 예술계(The Artworld(Arthur C. Danto)) 개념과 연계되어 있다. 시각예술가의 사회적 정체성은 자연을 모방하는 기술자에서 창조적 정신의 기록자로 인식되기까지 수 세기가 걸렸으며, 이후 천재의 등장과 고독하고 우울한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조금씩 변화해 왔지만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능력자의 면모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오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를 빠르게 묶어내고 모든 것에 소비 가치를 부여한다. 아무것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고 서로 다른 담론만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는 시대에서 어쩌면 가장 분명하게 자신을 지시하는 것은 자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신화 현상, 곧 상품 영역으로의 진입은 개인과 노동력의 소외로 이어진다. 이 소외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생의 의미를 퇴색해 간다.(Jean Baudrillard, 1970) 작가는 거대 자본이 잠식한 지금 예술가의 정체성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묻는다. 예술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예술가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 「썩어빠진 사랑」(2021), '성공'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을 담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2021)은 현대 예술가 정체성에 관한 작가의 지속적 관심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드러난 작가의 시선은 자전적 이야기나 개인적 경험에 사회문화, 정치 및 경제 구조의 차원이 더해지며, 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형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상은 스쿠터를 다시 한번 소환하는 작가를 보여준다. 작가는 조각 구매의 목적 중 하나였던 전시권의 실행을 요청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뱅크시 작품을 가져오고자 했던 작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이 실패는 무응답에 기반하고 있기에 어딘가 모르게 개운하지 않음을 남긴다. 끝까지 대답이 없는 스쿠터와의 채팅을 배경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 예술의 소유와 예술적 체험의 연계 불가성은 작가의 실패에서 보다 명확해지고, 작가는 조각에서 파생된 작품을 통해 이를 확장해 드러낸다. 작가의 작업은 소비자로서 갖는 소유권의 행사와 작가로서 갖는 윤리적 태도가 서로를 침범하는 형상으로 나아간다. 「무제(no. 3192)」는 작가가 구매한 조각(0.9×0.9cm)을 약 60배로 확대 출력하여 쌓아 올린 뒤,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한 설치 작업이다. 이번 작업의 오마주 대상인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설치 작업과 같이, 최수현의 작업 또한 관객의 참여로 이뤄진다. 줄어드는 종이 조각들은 작가가 지닌 소유권의 행사가 증대하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공동의 예술적 경험이 실천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지나치게 확대하여 깨져버린 작품의 표면이 제시하는 추상성은 소유권이 가진 불분명한 면모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를 판매하는 내용을 담은 「전시 판매 계약서」는 더욱 적극적인 소유권의 행사를 보여준다. 전시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뱅크시 조각의 소유권 및 조각에서 파생한 드로잉과 프린트 작품을 함께 구매해야 한다. 이 제안의 핵심은 단순히 전시의 콘셉트나 작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모호한 작품 소유의 경험 자체를 판매하는 것에 있다. 작가의 계약서는 미술시장에서 불투명하게 존재하는 작품 소유의 진정성이나 예술 경험의 가능성, 예술가 노동력의 인식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관한 의문점에서 구체화되어간다. 최수현은 3192번 조각을 구매함으로써 미술시장에서 소비자가 되었고, 조각에서 파생한 작업 활동을 통해 다시금 예술의 창작자로 존재할 수 있었다. 작가의 3192번 조각은 현대 미술시장과 자본, 그리고 그것이 속한 예술계와 그 속에서 실존하는 예술가를 떠올리게 한다. 미비한 하나의 조각은 무수히 쏟아지는 예술 속 위치한 작가 자신이며, 수많은 입장이 교차되는 혼란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주체적 생각이다. 최수현의 작업은 예술에 관해 해소되지 못한 질문을 예술(작품)화함을 통해 직면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공, 혹은 실패의 모든 경험을 환영함으로써 완성되어 간다. ■ 김민경
¹ 영상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음성은 파티클 컬렉션(Particle Collection)의 대표 아놀드 잇단(Harold Eythan)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 인터뷰는 2023년 팟캐스트 채널 ArtTatic에서 진행되었다.
Vol.20240803e | 최수현展 / CHOISOOHYUN / 崔修賢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