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5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 수상자展

김송리_안진영_이유지_김지연_이유진_정진민_서준_정다겸展   2024_0802 ▶ 2024_090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4_0802_금요일_02:00pm

주최,주관 / 서울강서문화원_겸재정선미술관 후원 / 서울특별시 강서구청_강서구의회

관람료 / 어른 1,000원(단체 700원) / 청소년·군경 500원(단체 300원) 단체_20인 이상 무료관람_7세 이하 및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 또는 가족, 장애인 및 그와 동행하는 보호자 1인, 다둥이행복카드 소지자(등재된 가족 포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겸재정선미술관 GYEOMJAEJEONGSEON ART MUSEUM 서울 강서구 양천로47길 36 (가양1동 243-1번지) 제1기획전시실 Tel. +82.(0)2.2659.2206 culture.gangseo.seoul.kr @gjjs_artmuseum

겸재정선미술관에서는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지원하고자 매년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를 진행해왔습니다. 2010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15년이 된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매해 8명의 작가를 선정하였고, 지금까지 112명의 작가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며 작품 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 올해에도 강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 세계에 도전하는 《2024 제15회 겸재 내일의 작가전》을 마련하였습니다. 부디 미술관에 방문하시어 내일의 작가로 선정된 8명의 작가의 작품활동을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 앞으로도 실험적인 작품과 작가들을 지원하는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겸재정선미술관

김송리_A Place of Sublimity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8

내 작업의 시작은 인간의 부재다. 사고로 인해 인간 존재가 한낱 물질 덩어리로 해체되는 순간을 목격 하였고, 주변인들의 사고사를 여러 번 겪은 뒤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추모하고 위로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영혼이 있다면 그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려 하였고, 그 공간은 곧 숭고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 이후 초기 작품의 주제인 '부재'와 '죽음 그 너머'는 곧 현시 불가능 한 것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현시 불가능 한 것'이 숭고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재현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숭고가 가진 특성을 이용하여 작품 안에 배치하였다. ● 특히 '대자연'은 숭고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판단내릴 수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였기에 「A Place of Sublimity, 2017~2021」 연작은 흰 캔버스 위에 자연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후 색을 덮어 올리는 과정(Layering)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나는 색이 올라간 뒤 모호하게 드러나는 자연의 이미지에 주목하게 된다. 작품 안에 보일 듯 말 듯하게 비춰지는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시각적인 불편함과 좌절을 경험하게 하고, 이는 숭고의 부정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 또한 작품을 관람할 때, 멀리서보면 파란색 화면일 뿐이지만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모호하게 드러나는 자연의 이미지들을 발견하기를 의도하였다. ● 기존 작품에서 보여지는 색을 덮어올리는 과정(Layering)은 신작에서도 진행된다. '레이어링'은 얇은 레이어를 수없이 반복하여 올리는 과정인데, 이는 캔버스 내 공간을 현시 불가능한 무언가로 만들고자 하는 막이며 몰입행위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현존하는 이야기는 레이어링을 통해 '그 너머'의 이야기가 되고 현재이던 것들은 현실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수없이 덮어 올림을 통해 기존 이미지가 가진 구조관계를 해체하고, 마침내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 김송리

안진영_어둠이 양보한 거 일 수도_장지에 중성 잉크, 먹물, 동양화 물감_97×130cm_2023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표현한 행동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눈을 감고 힘껏 울었고, 눈을 떠 보니 밝음과 눈이 따스하게 닿았다. 이유 모를 따뜻한 감촉에게 '다정함'이란 단어를 배웠고, 다정함의 행동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시작되었다. 사랑은 눈물로부터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마음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보다 강력하다. 초능력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낸다. ● '누군가를 위해 어둠이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작업은 시작되었다. 캄캄한 밤에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나의 시선은 묵묵하게 노를 젓고 있는 어둠으로 이동했다. _따뜻한 검정 ● 도도해 보일 것만 같은 검정은 굉장히 소심하다. 누군가의 발을 밟을까 조심하며 넓고 깊은 마음을 가졌다. 기다려주는 것에 익숙하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발걸음을 맞춰주기도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를 듣고 호흡을 맞추며 발걸음을 맞춰준다. 우리에게 검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존재를 위한 묵묵한 울림이다. 검정에게도 감정이 있다. ■ 안진영

이유지_습지에 피어난 자아 : 심연의 꽃_캔버스에 유채_100×70.3cm_2023

인간에게는 보호의 상실과 지탱해주는 대상의 결여에 의한 때 이르고 지속되는 강렬한 불안과 근원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진 무력 상태가 주어진다. (피부자아, p.165 발췌.) ● 무언가를 잃어버린 감정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여 꿈을 꾸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상실하는 경험들은 꿈 속에서 생각하는 몽상가가 되어 상상 속 풍경에 빠져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나를 감싸주는 신체와 정신적 사고를 버팀목인 보호막은 나의 기억의 산물이자 치유의 껍질이 되어 태어난다. 상실의 연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애도를 할 수 있는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예술가는 무엇으로 염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 이곳은 몽상가의 파라다이스. 작가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내면의 생채기와 짓무른 상처들과 같은 인간관계의 이별, 잃어버린 신념을 되찾기 위해 허물을 지키기 위한 보호와 염원을 담은 쉼터를 만들게 되었다. 마음을 쏟은 안정감의 원천인 대상과의 관계로 인한 분리 감을 경험할 때. 일상의 크고 작은 잃음을 통해 공허함이 느껴질 때. 우리는 물리적, 정신적 상실감에 매몰되고, 때론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지며, 상상하거나 말한 대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고 원해한다. 나는 심리적 상실감에 대안적인 방안을 샤먼의식처럼 미술로서 은유하고 수집된 드로잉과 꿈의 연상 이미지들을 조합해 비현실적 세계인 백일몽 같은 회화의 늪을 만들어 내었다. 회화의 늪. 몽상가가 만들어 낸 파라다이스는 캔버스라는 거름망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게 만드는 염원의 성물이다. ● 작품에 등장하는 누에와 같은 보호막인 엉켜진 실들은 유년기에 상처를 꿰매는 실이라는 치유의 경험에서 왔다. 중첩된 붓질과 겹친 실들은 쌓여진 기억의 보관이자 몰입의 과정을 나타낸다. 이는 불안의 방어기제들로 무의식의 환영의 공간에 해소의 상징물로 등장한다. 정신분석가 디디에 앙지외(DidierAnzieu)의 '심리적 싸개'를 인용하여 피부처럼 감싸는 자아 내면의 보호막을 의도했다. 잠시나마 감정의 덩어리들을 물가에 잠시 흘려보내고 내면이 지친 자들을 위한 염원의 쉼터를 나타낸다. 상실과 좌절의 연속에서 보호막이 단단해질수록 회복의 탄력성은 커지고 또 다른 내일을 출발할 수 있다. 나에게 만들어진 상상 속 자연과 예술은 격리된 어두운 세상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이며 삶이다. 별빛이 쏟아지고 햇살에 물결이 반짝이듯 언젠가는 삶도 따뜻해질 것이라 믿는다. ■ 이유지

김지연_배 없는 바다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23

나는 나를 중심으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개인적 해석과 감정을 회화로 표현한다. 이것은 시각적으로 표현된 개인의 역사이지만 미시사(Microhistory)적 관점에서는 세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파편이다. ● 2022년 일어난 10.29 참사는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는데 이 사건을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애도와는 별개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배타성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우리는 종종 추상적인 집단에 어떠한 특성을 부각하여 성격을 만들고 이를 구체화하며 명칭을 붙인다. MZ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가 그 형체를 볼 수 없지만 주변에 알고 있는 것 같은 공통된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과정이 형체가 없는 추상적 감각을 시각화하는 미술의 성격과 어딘가 연결점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MZ 라는 추상적 대상, 형체 없는 모델을 관념적인 초상화로 표현하고자 밀레니얼스(Millennials)연작을 시작하였지만 이것이 흔히 그들에게 얹어진 이를테면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이미지를 연결하고 반복하는 그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시선에서 그들은 불안하고 불완전하며 갈등하고 고민한다. 연민이 섞인 이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찰자적 위치에서 점점 대상 그 자체가 되었는데 나의 이야기가 섞이며 스스로 나와 그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대상과 관찰자가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이고 갈등하며 불안하고 피로하다. ● 그들은, 나는 더 이상 꿈을 꾸는 아이도, 많은 것을 이룬 어른도 아니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헤메이며 방황한다. 불확실한 미래, 사랑조차 힘겨운 삶, 회색빛 풍경에 묻혀 무표정한 얼굴로 나약함을 감춘다. ■ 김지연

이유치_고강동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1

어렸을 적, 택시 운전사로 일하셨던 아버지의 굳은살은 나에게 노동의 가치와 자식에 대한 헌신의 의미였다. 그 굳은살에서 느껴졌던 감정은 애증의 관계로 다가오기도 하였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으로 진화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영웅과도 같았다. 그는 영화나 만화 속의 완벽한 슈퍼맨은 아니었지만, 그의 노동은 나에게 가장 큰 영웅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그 후 세상을 넓게 바라보며 성장하면서, 수많은 곳에서 다양한 영웅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 어린 시절에 각인된 노동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나에게 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교감을 내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한 가족사로부터 비롯된 노동에 대한 남다른 긍정적 관점과 의미 부여는 노동을 '개인의 삶'의 수단으로만 보는 단순한 이해를 뛰어넘어, 가족들을 보호·부양하고 인간 사회의 안정성, 영속성을 수호하는 이타적, 헌신적 행위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심화된 이해와 공감을 기반으로 노동 장면을 기록하는 작업에 집중하였다. 노동 기록을 나의 작업 활동의 핵심 주제이자 차별화된 특성으로 정립한 이후부터 타인들의 노동을 온전히 화면에 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전 자료 수집 과정으로 현장을 방문하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부터 본 작업까지의 창작 과정을 통해 나는 다수의 익명 노동자와 그들이 일하는 시간, 공간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공감하고 사색하였으며, 이러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느끼고 감동한 내용을 회화,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표현 형식을 빌려 기록하였다. ● 한편 노동을 기록하는 나의 작업에서 모든 대상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익명성이 강조된다. 이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불특정 익명의 노동자들을 이 시대의 '도덕적이고 진정한 익명의 소영웅'으로주목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대의 소시민들이자 익명의 영웅들이 땀 흘려 노동하는 일상과 진실된 삶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동시에, 이를 보다 많은 동시대인에게 전파하는 매개체 역할을 나의 작업이 담당하기를 희망한다. 그럼으로써 익명 영웅들의 노동이 개인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를 공유하는 모든 인간의 진실된 이야기로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 이유치

정진민_여명080_장지에 채색_100×100cm_2023

무작정 사람을 그리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알고 있는 해부학적 지식을 대상에 투영해 조형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재밌고,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특징이 흥미롭고, 무엇보다 대상의 특징을 파악해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좋았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기에 그 연장선일 뿐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좋았고 그 얼굴 안에 담긴 표정을 그리는 것이 좋았다. 표정은 상대의 감정이 가장 잘 담겨있는 부분이었고 나는 그 감정을 추측해 담아내는 매우 인간다운 행위를 즐겼다. 감정을 토대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넘어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능력이란 생존 본능에 가까운 본능적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조차도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방증이었고 나에게도 특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 그릴 대상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때 큰 의미를 담지 않고 선택한 대상이었기에 그를 그리고 난 후 내 감정의 여파는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 그림 속 내가 그린 당신은 나를 꿰뚫어 보듯 했고, 두려웠고,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감정의 격동을 느끼는 스스로도 의아해서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지 파악하기에 급급했다. 아직까지도 그 명확한 해답은 내릴 수 없지만 그것은 죄책감이 깔려 있는 복합적인 무언가였다. ● 이전까지는 그저 덮어두었던 그 사람의 인생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내가 마주한 그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바라보았던, 내가 몰랐던 그의 생을 들추어보고 찾아내고 추측했다. 어째서 내가 보았던 그의 모습은 이러했는지, 어떤 생을 살아왔기에 그는 이러한 성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를 한 인간으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 속 내가 내린 결론은 죄책감이었다. 그에 대해 알려 들지 않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모면하려고 행동했던 날들의 죄책감과, 알고 있었다 한들 여전히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는 합리화가 뒤엉켰다. 결국 나 또한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는 한 사람이었다. 감히 인간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이전에 나도 감정에 휩싸이고 행동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꺼내보고, 당신이 느꼈을 감정을 추측하고, 내가 당신에게 느낀 덩어리를 뭉쳐 당신에 투영해 그리기까지 이르렀다. 추모인지 후회인지 모를 일련의 과정들이 이어졌고 그 과정 속에 상대에 대한 극한의 감정은 점점 풍화되었다. ● 사람이 가진 특징에서인지 우리는 실제로 사람을 마주할 때는 물론이고 매체 속의 혹은 그림 속의 사람을 마주할 때조차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만다.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행위는 본인이 인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며 이것이 소통을 하는 실제 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그저 추측으로 남아 각기 다른 해답으로 남게 된다. 나는 이것을 '표정 읽기' 혹은 '감정 읽기' 라고 칭한다. ● 표정 읽기는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고 상황을 살피며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배경에 따라, 혹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각자 받아온 영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답을 내리기도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경외를 느낀다. 무엇 하나 정답이 없고 모두 다 정답이 될 수 있는 이러한 행위는 사람이라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행위가 되었다. 나는 그런 표정 읽기를 즐긴다. 내가 제공한 화면 속 제한적인 정보는 나의 시각을 거쳐 조종된 결과물이지만 감상자가 느끼는 결론은 다 제각각이다.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도 혹은 오답이 될 수도 있는 이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감정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느낄 때에도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하고 그것이 다 다른 정답이 되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시각이 존재하고 그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는 나의 감정 덩어리를 담아 대상을 표현하지만 감상자는 저마다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감정이 타고 흘러 또 다른 감정으로 파생되는 이 과정 속, 작업이 갖는 매개의 역할을 더욱 극대화하고자 한다. ■ 정진민

서준_Replicant mob-running_한지에 수묵 채색_65×91cm_2023

본인은 한국의 사회적 현상인 집단주의에 주목하여 왔다. 농경사회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집단주의는 유교사상을 통해 사상적 바탕을 이루었으며, 이는 권위주의,연고주의와 같은 양상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한국의 집단주의는 수평적 관계를 중요시한 서양의 집단주의와 달리 수직적 관계를 중요시했다. 이는 농업의 생산성,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에 한국사회에서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주의는 그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였고, 이 때문에 많은 부조리를 야기하였다. ● 본인 또한 이러한 한국 사회의 집단에서 속하면서 집단의 권력으로 말미암은 부조리함을 겪었다. 유년시설 본인은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하였다. 선생님들은 자신의 진학실적을 위해 학생인 본인에게 폭언 및 가스라이팅을 하였고 심지어 자신들이 학생 따돌림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본인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선생님들로부터 시작된 따돌림은 어느새 반 친구들로 이어졌고 나는 투명 인간처럼 학교생활을 했다. 정식적 고통이 극심했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므로 따돌림이 곧 멈추리라는 것은 본인의 거대한 착각이었다. 따돌림은 반을 넘어 학교 전체로. 학교를 넘어 학원에서도 행해졌다. 누군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따돌림은 세포분열처럼 증식하여 온 곳에 퍼져있었다. 결국, 진학실적이라는 그들의 목표에 본인은 꿈도 인권도 짓밟힌 체 따르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학교에 증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온순하던 성격은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학교 및 무리에서 나의 의견을 덮거나 나의 행동에 제지를 가하면 그들에게 폭력성을 표출하곤 했다. 학교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는 나를 자해하는 행동으로 시작했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타인을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형되어 드러나고 있었다. ● 이러한 경험을 통해 본인은 한국의 집단주의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본인이 주목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동질성을 강조하여 우리와 같지 않은 특이하고 다른 누군가를 배척하고 심지어 박해하기도 한다. 다수가 소수 개성을 존중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는 다수가 소수를 배척함으로써 집단의 힘을 과시한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밑 세대로 전달되어 다양한 모양으로 확산하였다. 여기서 본인은 집단주의라는 것이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가 증식을 한다는 상상으로부터 'replicant mob'라는 주제를 고안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의 양상을 일상의 군중을 통해 주목했다. 가령, 학교 내에서 운동회, 군대의 아침점호, 스포츠 경기 등을, replicant mob 주제의 소재로 설정하며, 막을 통하여 그들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의도하고자 함은, 그러한 집단주의로 분류되어지는 무리를 막을 통해 봄으로써, 그들의 행동에 대해 회의적인 느낌을 주고 싶음이다. 하여, 이 사회, 이 시대에, '우리 주변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 한번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하는 '물음'을 던져, 집단주의 사회에 짙은 연기와 같이 깔린 폭력성을 환기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 서준

정다겸_나무와 별자리_장지에 수묵_130.3×162.2cm_2024

현대에서 풍경은 환경의 변화와 반응을 드러내는 주체로 기능한다. 나는 도심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교외 풍경에 주목하여 그곳에서 감각한 다층적인 시간성을 기록한다. 나에게 풍경은 시간을 물질로 감각하는 공간이다. 겹겹이 쌓인 땅과 나무, 건조하고 습한 공기, 구름과 별의 움직임을 통해 추상적인 시간의 감각을 순간의 형상으로 구체화한다. 무엇보다 현재는 찰나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동시에 과거의 흔적들로 만들어지는 양가적인 순간으로 인식된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사라진 현재의 흔적은 시간의 불분명한 층위를 만든다. ● 오랜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보이는 별처럼 풍경의 현재는 사라졌을지 모르는 과거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다. 변두리의 한적한 길을 때면 풍경의 한 부분은 파괴되어 사라지고, 또 한 부분은 다시 잘 다듬어져 재생산되는 걸 발견한다. 도심으로 옮겨지기 위해 베어진 나무와, 언제 심어진지 모르게 잔가지가 무성한 나무는 풍경에 대한 이중적인 관심을 드러낸다. 이렇듯 분할된 이미지는 풍경의 각기 다른 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어 새로운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절대 만날 수 없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별이 별자리를 통해 이어지듯, 파편으로 나눠진 풍경의 조각들은 관람자의 시선과 이동을 통해 이어져 다층적인 현재를 만든다. ■ 정다겸

Vol.20240802a | 2024 제15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 수상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