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문의 / Tel. +82.(0)41.852.6039 공주문화관광재단 문화사업팀
주최,주관 / 공주문화관광재단 후원 / 공주시_공주시의회 협력 / 에이치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센터 고마 ARTCENTER GOMA 충남 공주시 고마나루길 90 Tel. +82.(0)41.852.9806 www.gongjucf.or.kr www.facebook.com/gjcf2020 @gjcf_2020 www.youtube.com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오스트리아, 1862~1918) ● "예술가 클림트에 대해 알고싶다면, 내 그림을 보십시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 클림트는 역사상 여성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 찬란한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고전 양식을 타파하고 파격적인 기법과 소재를 다루 면서 '빈 분리파'라는 새로운 미술단체를 결성하여 오스트 리아의 미술계를 이끌었다. ● 1907년, 황금빛이 절정을 이룬 작품 「키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키며 황금시대를 열었 다. 모자이크 양식과 아르누보 장식성을 화폭에 대입시킨 그는 환희에 찬 인간의 모습과 격정적인 사랑을 우아한 에로티시즘으로 나타낸다. 눈부신 황금빛 색채와 환상적인 구도로 성(性) 과 사랑,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표현했다.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변화와 격동의 그 시대를 반영하듯 화가는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가지고 있었으며 화풍의 변화 과 정도 복잡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성과 논리 대신 감각을 일 깨우며, 클림트의 작품들을 영원히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 1918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2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그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우뚝 세웠다.
Section 1. 최고의 역사화가에서 상징주의자로 ● 1876년 클림트는 빈 응용미술 대 학에서 역사주의와 장식미술에 기초한 아카데미 교육을 받으며 명성을 이어갔다. 1892년 클림트의 아버지와 동생이 사망하며 죽 음과 삶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고, 이것이 곧 클림트를 상징주의 화가로 이끌게 된다. 1894년 오스트리아 정부는 클림트에게 새로 지은 빈대학교 대강당에 장식할 천장화를 주문했다. 의학, 법학, 철학으로 이루어진 천장화는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클림트는 자연의 힘이 지배하는 장엄한 우주의 모습을 창조해 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했다.
Section 2. 빈 분리파, 유토피아의 실현 ●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빈 분리파는 예술과 수공예, 주도적인 예술과 주변적인 예술, 서로 다른 장르 등 예술 속의 다양한 구분과 성역을 부정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과 생활을 넘나드는 수공예가, 건축물과 장식 등이 나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종합 예술을 추구했다. ● 1092년 베토벤 제9교향곡을 주제로 그려진 벽화 「베토벤 프리즈」는 막스클링거의 베토벤 흉상과 14번째 빈 분리파 전시 회에서 공개되었고, 전시 첫날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 아래 베토벤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이는 빈 분리파의 목적인 종합 예술을 향한 도약이자 클림트가 꿈꾸던 유토피아의 실현이었다.
Section 3. 클림트의 황금시가, 최고의 명작 탄생 ● 1903년, 이탈리아 라벤다, 산 비탈 레 성당의 화려한 비잔틴 프레스코 와 모자이크에 매료된 클림트는 그의 작품에 이런 모티브를 적극적으 로 반영시킨다. 또한 여성을 주제로 한 에로티시즘도 발전시켜 나간다. ● 1905년 빈 분리파를 탈퇴한 클림트는 황금빛 명작들을 탄생시키기 시작한다. 1908년 완성한 「키스」, 「아델리 블로흐 바우어」는 클림트만의 몽환적인 표현과 상징적인 아르누보 장식, 화려한 금박과 은박 재료들로 가득하다.
Section 4. 삶과 죽음 ●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 이 두 가지는 클림트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만삭의 임산부와 함께 등장하는 죽음의 모티프인 해골의 모습을 한 화면에 구성하는 대담함을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죽음과 삶을 다룬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클림트는 영원한 존재,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죽음과 연관된 모든 공간적, 서사적 관계들을 극적인 긴장감으로 묘사한다.
Section 5. 색채와 양식의 변화 (클림트의 풍경) ● 매해 여름 오스트리아 북부 아테제 호숫가에서 휴가를 보내던 클림트는 40여 점의 풍경화를 남겼다. 섬세한 붓터치로 다양한 색채를 구 현하고, 사각 뷰파인더를 통해 자연을 관찰하며 인물과 하늘이 없는 독 특한 화면을 구성한다. 모든 풍경화는 평평한 원근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후반기 동양화의 영향을 짐 작하게 한다.
Section 6. 오리엔탈리즘 ● 후반기 클림트의 작품에는 동양 적인 원색과 무늬가 주를 이룬 다. 클림트가 활동했던 19세 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화단의 많은 화가들은 일본풍의 자포니 즘에 큰 매력을 느끼고 매료되 었다. 클림트 역시 당대의 미술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고대 이집트, 미케네 미술관같이 당시 미술계의 변방으로 홀대받던 미술 양식에 대한 실험을 이어갔다.
Section 7. 클림트의 드로잉 ●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클림트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는 반쯤 옷을 벗은 여성이 유혹하듯 몸을 내보이는 드로잉을 많이 남겼 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무려 4천 점에 이른다. 클림트의 후기 드로잉 중 상당수가 여성 누드이며 에로틱한 성격이 짙어서 도판으로 실리거나 전시되지 않았고, 대부분 개인 소장품이 되었다. 이들 작품은 인체 세부에 대한 철저한 이해, 종이에 정확히 옮겨내는 감각, 그리고 육체적 특징과 옷의 질감 및 패턴을 묘사해 내는 다양한 선을 보여준다. ■ 공주문화관광재단
Vol.20240724d | 구스타프 클림트 레플리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