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풍경

최병철展 / CHOIBYUNGCHEOL / ??? / painting   2024_0723 ▶ 2024_0802 / 일,월요일 휴관

최병철_산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4

초대일시 / 2024_0725_목요일_04:00pm

후원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기획 / 평범한 작업실

관람시간 / 10:30am~05:30pm / 토_12:00pm~05:00pm / 일,월요일 휴관

두루 아트스페이스 DURU ARTSPAC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45길 5 Tel. +82.(0)2.720.0345 www.duruartspace.co.kr @duru_artspace

허구의 뼈 ● 최병철 작가의 그림에는 유독 인물이 배제된 풍경과 동식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대체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작가가 선택한 디지털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목탄 드로잉과 유화 채색으로 완성된 화면은 결코 재현적 표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회화는 예술적 상상과 추상을 토대로 한 허구의 이미지일까? 《상상 풍경》이라는 전시의 제목은 이 질문에 간단한 답을 이미 제시한 듯하다.

최병철_산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4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이번 전시의 주제가 제시하는 "상상"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에서 태어난 한비 등이 난세에 군주가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며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책 『한비자(韓非子) 』에는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1) 고대 중국에서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살육으로 사라져 버린 코끼리가 남긴 거대한 뼈와 상아를 통해 사람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동물의 모습을 머리와 마음속으로 그리며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죽고 남겨진 코끼리의 뼈를 보고 각각 자신만의 코끼리를 마음으로 그리고 믿는다는 "견골상상(見骨想象)"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상상(想像), 즉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것을 뜻하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점차 코끼리 상(象)은 사람이나 구체적 모양을 지닌 어떤 것의 모습과 생김새를 가리키는 형상 상(像)으로 대체되었지만, 단어의 흥미로운 어원을 통해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상상은 실체가 없는 완벽한 허구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병철_해수욕장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24
최병철_해수욕장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cm_2024

현실을 초과한 어떤 것을 그리는 행위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크기의 타원형 패턴과 색으로만 구성한 화면에서부터 그림 속 형상을 직관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정도의 구상성을 강조한 회화에 이르기까지 주관적 표현의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병철의 작업은 모두 현실, 다시 말해 일상이라는 뼈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작가가 사진으로 포착한 대상을 참조하고 인식하며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해 완성한 작업 앞에서 관객인 우리는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현실을 오히려 낯설게 여기며, 대상의 본질을 새롭게 질문하게 된다. 예컨대 낮게 솟아오른 갈색 봉우리 위에 흰색과 짙은 회색 안료를 쌓아 올려 굴뚝같은 형상을 담은 「산」은 무엇이 산을 산답게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끔 한다.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서부터 배경인 것일까? 그림의 어떤 요소가 제목이 지시하는 대상을 동일하게 인식하게끔 하는 것일까? 형형색색의 「까만 새」, 동물이 떼 지어 있는 「캥거루」, 그리고 각진 선이 돋보이는 「다람쥐」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그들의 실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최병철_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4
최병철_새_극락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cm_2023

중증 자폐성 장애를 가진 최병철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각은 그의 작업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그의 그림이 상상 풍경이며 동시에 현실 풍경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소하게 지나치고 무감각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순간들에 작가는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를 작업에 (비)의도적으로 적용한다. 여기에는 그가 매주 작업하는 복지관으로 향하는 버스 안 무미건조한 안내방송부터 한 여름의 습한 더위, 작업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동료 작가들의 움직임, 책상 위에 놓인 조그마한 간식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직조하는 모든 요소가 포함된다. 작가가 매일 경험하는 이 구체적인 감각의 총체는 때로 작품의 토대가 되는 특정 이미지를 검색하고 선별할 때, 어떤 색상을 선택할 때, 그리고 붓질의 방향을 결정할 때와같이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 깃들어 있는 듯 하다. 현실의 뼈대를 구축하고 이를 점차 지우거나 변형하며 상상의 영역을 더듬어보는 시도는 최병철의 작업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주로 연필보다 훨씬 부드러운 소묘 재료인 목탄으로 인터넷에서 발췌한 참조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옮기고 이후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다. 목탄의 검은 선들은 처음에는 명확한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빠르고 거침없는 필치로 물감을 덧바르는 과정에서 윤곽선은 사라지거나 희미하게, 또는 불완전하게 남겨진다.

최병철_까만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4
최병철_솔방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24

허구적 상상을 통해 현실을 비평적으로 재인식하려는 시도는 미술의 전개 과정에서도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대표적으로는 초현실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1919년에서 1925년까지 파리에서 『문학( Littérature)』지 를 간행한 일군의 시인들에 의해 탄생한 이 움직임은 동유럽과 남미, 아시아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정착했지만, 공통적으로는 예술을 표현주의적 감정분출의 매개체가 아닌, 상상과 정신의 힘을 보여주는 태도로 보았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한 발레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글에서 "초현실주의"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은 발걸음을 모방하려 했을 때, 다리와 닮지 않은 바퀴를 창안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를 실천한 것이다."2) 그는 고전적 개념의 모방조차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시적 상상력과 유추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실재와 허구, 재현과 상상, 추상과 구상은 이분법적 대립 항이 아닌, 상호 의존적, 또는 상호 참조적 요소인 것이다.

최병철_진달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65.1cm_2024
최병철_녹차밭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22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이들의 그림을 잠시 떠올려 보자. 스페인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충격적으로 기괴한 풍경들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세계처럼 보이지만, 전쟁으로 가시화 된 폭력의 장소를 소환하며,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그린 정글과 도심의 자연은 아픔을 견디는 자신의 신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체코슬로바키아의 토옌(Toyen)의 삭막하고 광활한 대지는 사회적으로 억압당한 정체성을 풍경화한다. 이들은 모두 현실을 초과하는 장면을 통해 의도적으로 현실의 부조리성을 일깨우고 현실 재구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동시에 이 과정을 통해 사회가 지금까지 논리와 이성, 질서와 합리성을 추구하며 무시해 온 상상력과 꿈, 무의식과 감각의 힘에 주목했다. 현시점에서 초현실주의를 언급하는 이유는 최병철 작가의 작업을 같은 형식적 맥락 안에 위치시키거나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뼈대 위에 시적 허구 세계를 지어보는 그의 시도와 공명하는 태도를 미술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상기해 보는 것에 가깝다. 《상상 풍경》에서 마주하게 되는 최병철의 작업은 이렇듯 고유한 예술적 형식에서 시선을 옮겨 우리가 관념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현실을 또 다른 거리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태도, 그 상상의 실천적 가능성에 주목하게끔 한다. ■ 임수영

* 각주 1) 한비자, 김원중 역, 「해로」 『한비자(韓非子): 법치의 고전』 휴머니스트, 2016. 2) 기욤 아폴리네르, 장혜영 역, 『티레시아스의 유방』 연극과 인간, 2004.

Vol.20240723g | 최병철展 / CHOIBYUNGCHEOL / ???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