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아일랜드 12,1,2,

Phantom Island 12,1,2,

김자연展 / KIMJAYEON / 金慈姸 / painting   2024_0723 ▶ 2024_0804 / 월요일 휴관

김자연_일, 이, 삼, ...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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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공주문화관광재단 후원 / 공주시_공주시의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공주문화예술촌 GONGJU CULTURE ART VILLAGE 충남 공주시 봉황로 134 Tel. 070.4415.9123 www.madeingongjuartproject.com/공주문화예술촌 @gongju_creative_residency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지는 유령섬(팬텀 아일랜드)에서1. 분명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회화 속 인물과 분위기가 김자연 작가의 회화 연작을 특징한다. 청년작가에게 계절이란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이거나 한겨울일 것이다. 사슴을 닮은 목이 긴 검은 동물이 있고 악어 또는 공룡처럼 육식동물이 있다. 화면에는 한 인물이 표정을 알 수 없는 어슴푸레한 빛과 형상으로 등장한다. 형상은 마치 누더기를 걸친 듯 유화 물감이 뒤엉킨 표면으로 복잡한 감정의 상태 또는 가늠할 수 없는 개인사의 깊이를 은유한다. 작가의 형상들은 다른 무엇과의 유사성, 연결점을 거부한다. 그 자체로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다.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1_캔버스에 유채_34.8×27.3cm_2024

'팬텀 아일랜드'라는 제목에서 일견 생각할 수 있는 인상이다. 모든 사물과 사건은 유령과 관련된다. 유령 같은 섬이거나 유령들이 출몰하는 섬이거나 어찌 되었건 '유령'을 떠나서는 작가의 이미지에 다가갈 수 없다. 회화가 일루젼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미 동굴벽화의 빛과 그림자들의 마술적 이미지의 연장선에서 모든 회화는 유령과 연결된다. 지나버린 과거의 경험은 오래전 꿈처럼 왜곡되고 변형되어 원래의 원형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다른 존재가 된다.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2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24

유령은 오래전부터 타자의 대명사였다. 이 정체불명의 존재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왕복하며 일상의 평범한 의식을 교란한다. 세계를 흔들고 현재를 파열시켜 다른 시간 다른 차원을 초대한다. 주인이 아닌데 주인 역할을 한다. 유령은 비존재가 존재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실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인간의 명료한 이성과 의식이란 그만큼 유약하다. 의미와 의미 사이의 틈, 오히려 거대한 무의미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처럼 의미가 생성한다. 유령은 주인과 손님의 위치를 뒤바꾼다. '백년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의 단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익사체'는 외딴 섬에 익사체가 파도에 밀려오며 벌어지는 한바탕의 우화이다. 주민들은 익사체를 자신들과 함께 살았지만, 이제는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망각된 주민으로 생각한다. 그러고는 성대한 축제와 함께 익사체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환상적인 장례식을 벌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익사체라는 매우 익살스러우면서도 중남미의 사회 현실을 은유하는 우화이다. 익사체가 더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죽음은 생명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존재의 다른 면일 뿐이다.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3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2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령이 방문하는 섬처럼 김자연 작가의 팬텀 아일랜드, 그러니까 유령들이 손님처럼 또는 터줏대감처럼 섬에 자리 잡고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좌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속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유령이라 부른다.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4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24

2. "다리 위에 서서 그 늪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검고 속을 알 수 없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도 고요하고 검게 죽어있는 것 같은 안락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간접적 죽음을 음미하며, 자조하며, 고주망태가 되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며, 고통을 마주하며 지냈다." (작가노트)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5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24

작가의 문장은 그녀의 그림보다 밝은 편이다. 그림은 보다 어둡고 모호하고 형상이 불분명하게 배경과 용해되어 있다. 반면 문장은 분명하게 구체적이며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녀의 문장은 묘사에 충실한 반면, 그림은 거의 묘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인상, 감정과 느낌을 화면에 전사(傳寫) 하듯 어떤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서 운동하는 행위의 기록이다.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글과 그림은 다른 분위기와 표현을 평행하게 유지하며 긴장상태 또는 전혀 무관한 작업들로 구분 짓고 있다. 문장은 문장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각자의 길을 따라 진행된다. 두 개의 주름, 세 개의 결, 네 개의 차원 등 지속해서 확장하는 다차원의 복잡성이 미로처럼 연결되고 끊어진다. 이러한 불규칙한 의미와 텍스트의 단속적 전개를 특징으로 작가의 문장과 그림이 교차하거나 멀어진다. 숲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사물들을 삼켜버리듯 문장과 회화 이미지가 서로를 삼켜버린다.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6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24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7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24

"갑자기. 시간이라는 것이 찬란해지는 순간이었다. 섬에서 잠시 벗어났던 탓일까? 영문은 몰랐지만 몇 가지는 확실했다. 우주를 한 덩어리라고 가정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틀어 앉아 시간을 영위하는 나의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존귀하다는 것. 그런 위대한 단어들이 불꽃처럼 떠올랐다. 끔찍한 기적과도 같은 사랑스러운 사람들과의 유대, 내 치졸한 선택들이 모여 만든 위대한 자리,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나버릴 나의 '살아있음'의 덧없음. 그 덧없음이 반증하는 찬란한, 아주아주 눈부시게 찬란한 삶의 값어치." (작가노트)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8_캔버스에 유채_22×27cm_2024
김자연_개의 초상 연작9_캔버스에 유채_22×27cm_2024

한편의 긴 서사시처럼, 설화처럼 길게 문장이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 거미줄처럼 날아가다 엮이고 다시 날고 다시 엮인다. 어쩌면 마치 유령처럼 의미가 우리의 마음에 출현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자전적 서사가 작가 자신의 슬픔과 기쁨, 불안과 우울, 고통과 공포로 응축된다. 섬은 일상을 벗어난 사건의 장소이다. 작가에게는 섬이 바로 사건 그 자체이다. 섬에 출현한 작가의 일상은 곧 유령의 행위처럼 역전된다. 존재와 비존재가 하나가 되어버리듯 유령과 내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버린다. 모든 세속적 감정의 사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유령 같은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서, 의미의 혼돈 속에서 비참하고 불쌍하고 서럽고 시시한 밤을 보낸 작가는 그럼에도 새삼 희망적인 자기 위안과 다짐을 한다. 작업 과정에 작가의 내면에 밝은 섬광처럼 또는 불분명하고 칙칙한 어둠처럼, 빛과 어둠의 두 세계가 작가의 섬(세계)을 떠받치고 있다. ■ 김노암

Vol.20240723c | 김자연展 / KIMJAYEON / 金慈姸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