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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7:00pm
임시공간 space imsi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48 Tel. 070.8161.0630 www.spaceimsi.com www.facebook.com/spaceimsi @spaceimsi
그곳으로 걸어가(,) 보는 사람들 ● "저기를 봐!"—발견의 시간은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이 순간을 만나기에는 아주 오랜 기다림이 선행된다. 자연현상을 대면하거나 자연물을 발견할 때, 관찰이 밑바탕에 깔린다. 관찰이란 결코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다. 돌아다니다가 잠시 한 곳에 머물면서, 수단과 도구를 바꿔 가면서 보고자 하는 대상에 접근하는 과정은 선택과 고민의 연속이다. 시행착오와 기다림의 상태가 관찰에 유지된다. 우리가 바라던 것을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충분한 시간과 예민한 판단력이 관찰에 요구된다. 그러다 드디어 만났을 때, 기다리는 마음이 잠시 해방된다. 그 장면을 기록하고,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보길 바라던 동물이나 자연현상 못지않게 포착되는 것이 있다—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 순간, 우리는 충격과 기쁨에 포획된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할 때, 말 그대로 '뭐라 할 수 없는' 충격 안에서 충만함을 느낄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서사를 그려나갈 수 있다. 이성과 행동과 반대에 놓인 감동, 이 막다른 길 1) 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감정을 서술하고 지나온 과정에 눈을 돌리게 해 주는 이 길은 밖으로 퍼져 나가는 힘을 지닌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라는 질문에 앞서, 이유를 잘 묻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보다 열망이 앞서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연구의 의의, 조사를 기반으로 한 통계 자료 작성, 개체수 확인에 따른 시대별 추이 등등 관찰의 목적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관찰 과정에서 보고 발견하고자 할 때, 이런 목적을 사람들은 망각한다. 보고자 하는 열망만큼 나를 붙잡는 것도 없다. 그리고 바라던 대상을 발견하거나 만났을 때, 그 대상 못지않게 나를 포획하는 것도 없다. 저기, 거기, 여기를 보는 시선이 담긴 회화가 여기에 있다. 황윤서의 회화 작업에서 우리는 자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이나, 이들이 보는 것을 본다. 한 작품에는 카메라와 같은 도구를 통해서 발견과 만남의 순간을 기록한 모습이 담긴다. 다른 작품에는 발견하러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화면에 그려진다. 이번 개인전 『무엇을 발견한 사람들』에서 선보이는 「탐구생활」 시리즈는 자연을 탐구하는 여정을 여러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무엇'이 어떻게 보일까? 화면을 우리가 마주할 때, '무엇'은 어디에 있을까?
화면 앞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을 본다. 화면 안에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시선을 보내거나 그곳을 향해 간다. 이때 화면 밖에 서서 보는 사람은 시선 끝에 있는 것을 머릿속에서 따라가는 여정을 떠난다. 탐험가의 목적지, 어쩌면 이상향과도 결부되는 그곳은, 회화를 대면하는 관객이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장면을 떠올리는 곳으로 자리하게 된다. 인물들의 표정은 기뻐해 보이지만, 때로는 쌍안경에 가려져 있거나 뒷모습만 보여 알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이 보고 있는 무언가의 부재를 통해서, 이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는 시선, 그 순간적인 눈빛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회화 속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순간적으로 머무는 곳/것을 상상의 충만함으로 채운다—이 충만함이란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났으리라는 믿음의 시선이 반영된다. 황윤서의 그림 속에서 벌판을 걸어가면서 동물들을 만나, 표정을 짓는 인간을 볼 때, 여정의 기록에 그치거나 작가가 즐겨보는 자연 관련 다큐멘터리의 한 컷을 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떠나고, 보고, 발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회화에서, 우리 시선이 다가갈 수 있는 만큼 '무엇'은 있을 수 있다.
존 버거의 저서 『본다는 것의 의미』(1980)는 인간이 동물에게 보내는 시선에서 시작하여 2) 벌판에서 일어나는/일어날 일을 보는 인간의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3) 책을 읽어 가면서 우리는 동물을 가까이서 보는 동물원에서 출발하여,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입체적인 경험을 하는 벌판에 서게 되었다. 존 버거에게 보는 경험은, 동물원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경험들로 비롯되어 퍼져 나가는 것이다. 벌판을 걸어가면서 새소리를 듣고, 새가 살고 있는 숲의 깊이를 알고, 땅을 밟을 때 매끈한 길인지 알게 될 때, 우리의 시각은 넓어진다. 회화는 늘 여기에 있지만, 저기, 거기, (또 다른) 여기를 가능한 한 이곳으로 끌고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엇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매체이다.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발견하거나 만난 생물을 그린 작업도 소개된다. 발견의 기쁨은 표정이 그려지지 않을 때도 충분히 전달된다. 회화를 보고 우리가 시선 끝에 있는 것을 그려나갈 때, 혹은 발견한 생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탐사대 못지않게 벌판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작품에 보이는 텐트처럼—화면은 긴장감과 감동을 그 안에 고스란히, 장면으로써 담는다. 회화 앞에서 무엇, 그 무엇이 있는 그곳으로 다가가는 여정은, 기다림 끝에 맞이한 조우의 순간만큼 응축적이고 내적으로 충만하다. ■ 콘노 유키
* 각주 1) Georges Didi-Huberman, Quelle émotion! Quelle émotion?, Paris : Bayard Jeunesse, 2013. 2)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 3) 「벌판」
Vol.20240717c | 황윤서展 / HWANGYUNSEO / 黃阭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