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속 풍경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한희정展 / Samanth Heejung Han / 韓希姃 / painting   2024_0711 ▶ 2024_0720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II) A Landscape of Plis (XI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37×150cm_202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21011e | 한희정展으로 갑니다.

한희정 인스타그램_@pinkasa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갤러리 보나르

관람시간 / 11:00am~07:00pm / 20일_11:00am~01:00pm

갤러리 보나르 Gallery Bonart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한강로158번길 91 (망월동 839-4번지) 1층 Tel. +82.(0)31.793.7347 blog.naver.com/gallerybonart @gallerybonart

이해를 위해 세 가지 이야기 먼저 - 이야기 1. '리좀'을 이해하기 위하여 ● 대나무는 뿌리줄기 식물로 뿌리로 번식하며, 마디가 있어서 이를 나누면 다른 개체로 성장한다. 보통 나무는 뿌리-줄기-가지의 구조로 하나의 몸체-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뿌리라는 중심을 벗어날 수 없지만, 대나무와 같은 뿌리줄기는 중심뿌리 없이 분절되어 복수의 몸체가 연결되기도 하고 분화하기도 한다.

이야기 2. '주름'을 이헤하기 위하여 ● 여름이 되면 접는 부채는 휴대하기 좋아 가방 속에 쏙 넣어 다니는 외출 시 필수품이다. 이 접는 부채는 접혀 있을 때 납짝하고 길쭉한 육면체 형태이지만 펼치면 납작해지면서 접혀 있던 주름 속에 숨어 있던 근사한 그림이 펼쳐진다.

이야기 3. '맥락'을 이해하기 위하여 ● 신문에 게재되는 사진은 어느 장소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 한 장면만을 프레임 안에 고정시켜 재단하여 담는다. 우리는 그 프레임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고, 고정된 순간의 전후의 사정도 알 수 없다.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IV) A Landscape of Plis (XXIV)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38×150cm_2023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VI) A Landscape of Plis (XXV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10×140cm_2023

맥락(context)과 의미에 대하여 ● 음절이 결합된 단어들이 어떤 체계에 의해 나열되면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관계를 맺으며 나열되면 문단이 된다. 체계와 관계성을 갖고 나열된 단어와 문장, 문단을 순서에 따라 읽다 보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게 되는데 그것이 맥락이다. 간단히 말하면 언어적 체계에 따라 생성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맥락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의미 전달과 이해가 커뮤니케이션이라면 단어의 나열이 맥락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 사진의 경우 맥락을 분절하여 어느 한 구간만을 들어낸(trimming) 것으로, 사진의 프레임 안에 담긴 이미지에서 정보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이미지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의미-진실'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이미지가 포착된 순간에 분명히 존재했던 '의미-진실'에 대해서 말이다.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VII) A Landscape of Plis (XXVI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48×130cm_2023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XI) A Landscape of Plis (XXX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25×160cm_2023

우리가 어떤 대상을 접할 때 피상적 외피에서 파악하는 의미가 있다면,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심층적 의미는 어떤 환기가 일어날 때 파악할 수 있다. 의미는 중층적 구조를 지니는 경우가 많은데 본질적인 의미는 이러한 중층 구조의 심층에 자리한다. 이러한 위계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의미의 진실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외피적 의미가 전혀 다른 맥락의 외부적 의미를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 ● 왜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을까.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XII) A Landscape of Plis (XXXI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10×140cm_2024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XIII) A Landscape of Plis (XXX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30×123cm_2024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 '말(언어)'의 사이사이에는 침묵의 공간이 있다. 말이 '있고', 말이 '없는' 그 전체가 완전한 맥락을 구성한다. 즉 표현되는 것과, 표현된 것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표현되지 않는 것이 모두 연결될 때 (혹은 파악될 때) 의미를 생성한다. 이 말은 즉, 외피적(피상적) 소통만으로 대상-타자를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표현되지 않은 것에 의해 혹은 간극에 의해 모르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 듣고 있는 것, 혹은 인지하는 모든 것들을 진짜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 한희정 작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깨닫는 순간 그는 다시 말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다." ● 한희정 작가의 작품세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XIV) A Landscape of Plis (XXXIV)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35×130cm_2024
한희정_주름 속 풍경 (VII) A Landscape of Plis (VII)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09×158cm_2022

주름의 펼침 vs 해체와 재구성 ● '완결성을 갖는 하나의 이미지가 갖는 피상적 의미가 진실인가'에 대하여 숨겨진 심층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은 본질과 진리에 대한 탐구이자 작가가 말한 '아무것도 모르는 나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영적 여정'이다. ● 첫 개인전에서 구상화를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과정은 마치 주름진 옷의 주름을 펼쳐 가려진 부분을 펼치듯, 접힌 부채를 펴서 주름 속에 갇혀 있던 이미지를 펼치듯 숨겨진 또다른 의미-맥락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부분부분 드러나는 이미지 파편들이 피상적 의미의 일부를 보여주며 숨겨진 맥락을 드러내고자 분절 속에서도 관계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맥락을 좀 더 완전히 해체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전혀 다른 맥락을 창조한다. 어떤 이미지의 일부였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파편들은 길게 이어지다가 다른 파편을 만나면서 단절되거나 사라지고, 중첩되기도 하면서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맥락이 해체된 이미지 파편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완전히 박탈당한 채 재구성되어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해체 후 재구성된 이미지 파편들은 새로운 맥락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유희적 성격을 띠게 된다.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IX) A Landscape of Plis (XXIX)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30×120cm_2024
한희정_주름 속 풍경 (XXXV) A Landscape of Plis (XXXV)_ 종이에 혼합재료, 콜라주_152×120cm_2024

이전의 작업이 대나무의 뿌리줄기처럼 중심구조적 맥락을 벗어나 분절되고 다양하게 연결되는 내재적이고 노마드적인 차이와 다원성을 보여주기는 하나 여전히 원본과의 관계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은 이러한 관계성마저도 완전히 해체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맥락을 생성해가는 유희적이면서도 영적인 과정의 창조성을 보여준다. ● 필자에게는 이번 작업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진실을 향한 고통의 루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맥락의 창조로 가는 유희의 루트로 보인다. (2024. 7. 9) ■ 이승신

Vol.20240711e | 한희정展 / Samanth Heejung Han / 韓希姃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