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주최,주관 / 예술공간 의식주
관람시간 / 01:30pm~06:30pm / 월,화요일 휴관
예술공간 의식주 The Necessaries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80 201호 Tel. +82.(0)507.1414.9653 @the_necessaries
"우리는 이제 땅과 하늘이 아니라 구글어스와 클라우드에 거주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와 마주치지 않는다. 우리는 탈 사물화한 세계, 정보가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 - 『사물의 소멸』 한병철 지음 中
소진된 사랑 ● 사물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눈, 코, 입, 귀, 피부의 감각은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간다. 이제 새로운 감각이 오늘을 감싸안는다. 우리의 눈은 밀도가 없는 부피와 색을 따라가고, 코와 입은 유사한 냄새와 맛을 그리며 비어 있는 음식을 쫓는다. 귀는 누군가 정리한 기분과 정서에 기댄다. 피부와 솜털은 더 이상 다른 이에게 닿지 않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타인과 외부에 대한 인지가 점차 무뎌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SF영화가 그려왔던 미래세계의 이야기 중, 인간이 스스로를 기계에게 의탁하여 생각만 존재하게 되는, 가짜감각과 인지가 인간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디스토피아가 이제는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 듯하다. 영화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회로와 전선의 실체는 없지만,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많은 것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윗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랑과 온기를 담아낸 우리의 이름 석 자는 이제 아이디와 계정, 크래딧 카드, 휴대폰 번호로 이관되어 촘촘하게 연결된 정보망 속에서 소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밀도와 맛, 정서와 맞닿음은 형형색색으로 가득 찬 유사현실에 봉인되었다. 사랑이라 말했던 거대한 이념의 실체는 이제 거의 소진된 것이다.
피부에서 들리는 신호 ● 환상진동 증후군, 유령 진동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스마트폰에 노출된 모든 이들이 겪을 수 있는 현대의 새로운 질병이다. 아무런 기구와 기계를 잡고 있지 않음에도 손이나 팔에서 진동을 느끼는 증상이다.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이 클수록 이 증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착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복잡한 신체의 신경계가 디지털 기기의 신호를 감지하고 예측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인간의 감각 체계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시사한다. 일종의 조건 반사로 작용하여, 몸은 진동 신호가 없더라도 그것에 반응하게 된다. 지금의 삶 전반, 사회 구조 전반에 걸쳐 이 디지털 신호는 우리 피부에 이식되어 내일이라는 우발적인 현상과 알 수 없는 가능성의 세계를 삭제한다. 안전이라는 이상공간을 잉태하고 번식하면서 스스로의 시간을 갉아먹곤 한다. 이번 전시 환상진동은 가짜 감각과 유사 감각의 발현으로 남겨진 감각의 잔여물, 그리고 신체화된 디지털-몸을 인지하여 그 구조를 재현하는 4명의 작가를 통해 열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누락된 감각을 복권하고 드러낸다.
실체와 밀도, 힘과 시선 ●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대면이 어색해진 지 오래되었다. 손에 쥔 디지털 기기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눈을 직면하지 못한다. 손가락으로 이런저런 수많은 이야기와 너무나 가벼운 텍스트가 생산되고 휘발되고 있다. 손가락으로 확산되는 이러한 단어와 말은 가장 취약한 공간을 파고든다. 익명이라는 찾아낼 수 없는 누군가의 헛된 발언들이 사건과 현상 사이를 휘저으며 불필요한 낱말과 불신의 공간을 열어젖힌다. 전시공간에서 4인의 작가들이 펼쳐낸 작업은 환상진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조건반사 운동에 대해 4가지의 좌표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곳에 위치한 이 좌표는 모두 공통된 교집합을 취하고 있다. 바로 납작함이다. 손으로부터 구현되는 가짜 진동, 혹은 눈에 맺히는 잔상의 이미지들은 모두 디지털 세계에 밀착되기 위한 공통의 조건이다. 작가들은 이 밀착 조건을 통해 발현되는 감각과 운동의 그라운드를 펼치고(곽인탄), 눈을 감으면 보이는 우리의 형태에 손끝의 물리지적인 힘을 가한 흔적으로(신제헌) 우리가 잃어버린 원시의 감각을 재건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교차와 얽힘으로 찾아낸 우발적인 신세계를 드러내고(윤두현), 눈을 중심으로 흡수되어 얇아지는 피사체와 풍경을 전개하여(김윤하) 비어 있고, 휘발되는 납작한 세계를 재현하기도 한다. 결국, 오늘의 눈과 빛을 침범하고 있는 이 설계된 숫자의 얽힘 속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 보게 하고 직면하게 하는 신호로써 이들의 작업은 작동된다. 이를 통해 가짜와 진짜, 정지와 운동, 봉인과 해방의 경계를 탐구하여 묻혔던 무엇과 잊혀질 무엇을 회복하게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실체와 밀도가 소진된 이곳에서 힘과 시선이 닿아야 하는 해방의 통로가 발견되길 바란다. ■ 박소호
Vol.20240706d | 환상진동 Phantom Vibration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