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4_0704_목요일_05:00pm
주최 / 라흰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라흰갤러리 LAHEEN GALLERY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 Tel. +82.(0)2.534.2033 laheengallery.com @laheen_gallery
외부를 향한 인식과 감각, 행위가 일어나는 지점에서는 언제나 나와 타인, 나와 환경 사이의 구분이 지어진다. 세상을 향한 모종의 행위도 바로 그러한 경계에서 일어나는데, 요는 이 경계에 서서 바깥만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일상의 생활이고, 그렇기에 삶에는 너절하고 피상적인 노이즈와 번민이 늘 즐비하다는 점이다.1) 그러나 현세의 기류라는 것이 늘 소음에 가까운 상태임에도, 이를 명확히 바라보고 경계를 확장하며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질 길이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을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나'를 알아차리고, 경계가 둘러싸고 있는 내면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일이다. 스스로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러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 존재가 진실한 나이고, 이처럼 나를 인식 주체로 알아차리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유한한 마음이 환원 불가능한, 내재적이고도 본질적인 정수로 향하는 까닭이다. ● 본 전시 《Our Original Face》는 이처럼 세 작가들을 한정 짓는 일련의 모든 것을 제외한, 그들의 '본래면목'에 대해 통찰력 있는 해답을 고민해보고자 기획되었다. 또한 참여 작가들이 경험과 인식 주체로서의 나를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전시는 이들이 유달리 골몰했던 특정 대상은 무엇이었는지, 어떠한 문제를 계기로 그들이 본래 상태의 나를 추구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곱씹는다. 달리 말해 본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에는 고유한 주어에 착목하는 징후가 다른 어떠한 때보다도 짙게 포착되며, 나 자신을 섬이자 안식처로 삼아 의지하려는 회화적 시도가 (특히 몸이나 얼굴의 형태로) 그림에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더불어 전시는 박다솜과 서원미, 오하은의 작업에서 이러한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왜 회화를 매개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고찰하여, 그들 작업에서 일정한 정향을 취하는 내면적 뼈대를 추론하고자 한다.
박다솜 : 부정의 향유 지대 ● 삶이 일어나는 곳은 본디 물질의 세계다. 그리고 회화는 물감의 물성과 이미지, 레이어가 화면에 유기적으로 집적되어 있다는 점에서 물질의 유전자가 분명히 남겨진 영역이다. 그런데 회화가 물질이라는 사실은 작가 박다솜에게 작업의 난맥상을 노정하는 문제로 다가왔다. 물질은 시간과 세월의 액자에 갇힐 수밖에 없기에, 회화는 (이를테면 주름과 먼지와 크랙 등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냄새를 풍기는) 시간성에 속박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말인즉 세상 모든 것이 그에게 흥미로운 소재로 다가올진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물질의 모습을 띠고 작가 자신은 시간으로부터의 지속적인 탈출을 감행한다면, 물질을 다루는 그의 행위만큼 영원하고 힘겨운 사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더구나 항구적이지 않기로는 우리 존재의 '몸'도 매한가지라는 사실로 인해 작가는 이러한 허무의 무의미한 순환을 더욱 깊이 성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박다솜은 그가 그리는 것이 물질이자 몸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회화의 몸에 집중함으로써, 고통을 긍정하고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몸을 자유롭게 확장해내는 그의 고유한 자질을 발견한다. 여기서 박다솜이 발현한 역량이란 명료한 묘사와 형태를 부정하고, 부정으로 이미지의 생성을 개척하며, '형체 없음'으로 포복하는 향유를 전면화하는 것이었다.
박다솜이 표현하는 몸의 형상이 (작가의 말에 의하면 '다정하게') 파괴되는 듯, 온몸의 근육이 풀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배경에 연유한다. 또한 몽환적으로 빚어진 그림자놀이처럼 그의 화면이 일체로 미끄러지고 있는 현상은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조형 언어가 롤러코스터의 낙차를 연상시키는 곡선이라는 사실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처럼 몸을 곡선과 각도, 기울기 등의 추상적 형태로 치환하는 일이야말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줄 에너지'를 회화가 비축하는 길이며, 그러한 시도가 축적될 때 그림과 작가 개인은 시간이라는 명제 앞에서 비로소 모종의 자유로운 향유 지대를 건설한다. 더욱이 그는 정형화된 네모의 캔버스마저도 이따금씩 부정하며 종이와 천을 자르고 붙이는 방법으로 얇은 화면이 어떠한 색과 면으로 레이어를 형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마찬가지로 부정이 개척이요 개척이 부정이 되는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는데, 이를 통해 박다솜은 그림을 더욱 추상적인 태도로 접근할 수 있는 추동력을 확보해낸다. 그러다 보면 종국에는 가장 바깥에 자리한 피부의 주름에서부터 내부의 모양 순으로, 그림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얼굴을 드러내며 어느새 작가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펼쳐서 자르고 붙이기를 반복하는 작업의 과정이나 이미지와 강하게 밀착된 물감의 성질이 유지되는 이상 그림은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하지 못할 터이다. 그러나 박다솜은 묘사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부정을 전면화하고, 부정을 탐닉하면서 회화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자체로서 이미지가 된 그의 그림으로부터 회화의 자유를 만끽함으로써 무엇에도 침윤되지 않는 그 자신의 세계에 들어선다.
서원미 : 범람하는 말들과 그림의 초상 ● 서원미의 작업 세계에서는 다양하면서도 어수선한 발화, 알지 못하지만 왕성한 그만의 밀어가 그림의 변방에 가득하다. 서원미의 표현을 빌려 전하자면, 작가로서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그것이 늘 머릿속에 넘실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표현의 본령인 서원미의 그림에는 이와 같은 실토들이 화면에 노상 부유하고 있다. 그가 자주 그리는, 눈동자와 색이 강렬하게 어우러진 말 (horse)들도 그의 머리에 범람하는 말 (word)들을 의미와 상징의 가림판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서원미는 젯소칠을 끝낸 캔버스를 마주할 때마다 이미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머릿속의 말들로 이를 구상할 때보다)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긴장과 두려움이 동반되는 지난한 고투가 펼쳐지는 것을 매번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그에 따르면 그림은 연약한 물질에 그치면서도, 회피할 수 없는 존재로서 작가와 동등하게 마주 선다. 그림에는 감정의 은폐와 개시가 교차하고 작가의 증언이 간직되며, 종종 그것은 창작자의 개인사가 한 사람 한 사람과 깊게 관계를 맺으며 사적으로 연대하는 고백이 되도록 유도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서원미와 서원미의 그림이 형성하는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지키면서도 각자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뜨거운 긴장이자 동행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의 존재와 작용에 의해 당당하게 자신의 눈앞에 서게 된 그림을 유심히 보는 행위가 그리는 것만큼이나 막중하며, 이 과정에 수반되는 괴로움마저 그가 그림을 계속 그리는 중대한 이유임을 역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원미가 그의 본래면목을 모색하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그의 손을 이미 떠난 그림과 앞으로도 종착지 없이 펼쳐질 자신의 그림인 셈이다.
기실 서원미가 걸어온 작업의 행보는 (마치 변증법적인 흐름처럼)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의 그림을 정 (正)과 반 (反)으로 삼아, '내가 나를 건설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측면은 특히 그림의 전부와도 같은 색과 붓질에서 잘 드러난다. 예컨대 과거 그는 모노톤의 그림과 색이 인위적으로 강렬하게 조합된 그림을 다루며, 극명하게 다른 팔레트가 사용된 두 시리즈를 통해 명암으로 풍부한 색을 표현하는 것과 강렬한 색채의 덩어리로 형상을 창조하는 법을 익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문을 뿌리로 삼은 서원미가 근래부터 출현시키는 것은 또다시 전연 새로운 토양이다. 이제 그는 의식의 얇은 막을 벗기기만 하면 꿈틀거리며 나타날 법한 몽환적인 이미지를 시간과 위치 너머로 불시착하는 원초적인 색에 놓아둠으로써, 인식의 틀이 작용할 수 없는 자기만의 풍광을 파급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는 붓질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붓터치는 화가의 시간과 감정, 태도를 표면에 찰랑이게 만들고 그러한 요소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관객과 공유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곧 화가의 자아와 다를 바 없다. 서원미의 붓질에서도 그가 화면에 정돈이나 파격을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이 고스란히 노출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일종의 합 (合)으로의 통합을 추구하듯이 붓질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그는 실수와 우연으로 중얼거리는 터치가 그림에 침입하도록 허용하는 동시에 기술적인 붓질로 그와 같은 불협화를 불시에 잠재우는 것이다. 그리고 상기의 맥락에서 볼 때 서원미가 걷는 노정은 창조의 쾌감과 그림의 정도 (正道)를 찾는 모험을 색과 붓에 무한히 걸어봄으로써 그림 자체의 초상을, 더 나아가서는 그림에 투영될 온전한 자신의 초상을 모색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작가가 즐겨 내세우는 카우보이는 어쩌면 그림과 서원미 내면의 초상에 다름 아니다. 보는 이를 빨아들일 듯 깊어지는 모습의 카우보이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과연 우리는 머릿속에 범람하는 말들을 노련하게 다루려는 서원미의 본연을, 부유하는 질서의 틈새에 우연과 실수가 맞닿아 솟아난 그림의 본색을 그만큼 선연히 목격하게 된다.
오하은 : 손끝으로 물드는 감각 ● 언젠가 오하은은 바깥 세계가 돌아가는 형편을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의 웅성이는 파장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런데 그의 눈은 어떤 고상하고 높은 세계를 향하기보다는 일상에서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들에게 맞춰져 있기에, 작가는 노이즈의 저편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주파수를 포착하기 위해 안팎에 자리한 혼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오하은은 지난 첫 개인전 《볼레로》에서 이를테면 데뷔 무대에 오른 무용수처럼, (쉽게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다소의 압박감 속에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야 했을 터이다. 하지만 본 전시를 통해 오하은은 무대에서 내려와 진솔한 내면을 자각하는 길에 초대받는다. 그리고 작가는 마치 숨통을 죄던 옷에서 벗어나 봉제선 자국이 미처 가시지 않은 몸을 차근히 바라보는 듯한 이 과정을 통해, 의미와 의무와 책임의 옷을 빌리지 않은 그의 자연스러운 육성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오하은이 찾아낸 보루,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진면모는 바로 그 자신의 체온과 무게였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를 늘 희구하지만,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나와 누군가의 체온과 무게뿐이지 않던가. 더구나 신체를 통해 이를 아날로그하게 담아낼 매체로는 단연 회화만 한 것이 없는데, 그러한 이유에서 오하은은 그에게 붙박인 감각의 편린들을 투영할 모티프로서 신체를,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몸을 화면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오하은이 빚은 여체는 (그의 이전 작업에서 일렁이던) 원색의 정염을 벗고 희끄무레한 베일처럼 아른거리며, 반투명한 피부 너머로 본모습을 숨김없이 호흡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작가가 투영하는 감각은 격정이나 몰입을 유도함으로써 심장으로 부딪쳐오기보다는, 오히려 창백한 볼을 발갛게 비추는 홍조처럼 번지고 스며든다. 이와 같은 표현의 일차적인 배경은 물론 작가가 영감을 얻었다는 시구에 있다.2) 그러나 우리는 그가 감정과 기억을 신체에 발현시키고 그렇게 비춰진 본디 모습을 살피는 과정이 폭포처럼 일순간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홍의 햇살이 봉우리를 서서히 포개는 듯한, '스밈'에 가까웠던 까닭임을 주목해야 할 테다. 자신에게 묻어나는 감각을 이처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헤아리는 오하은의 태도는 사실 작업을 대하는 그의 신념과도 닮았다. 그는 관성으로 작업을 마주하기를 경계함으로써, 작업의 조형 요소와 방식, 발전 단계와도 직관적이고 자연스럽게 조우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가 더 중시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리다가 특정 대상으로부터 주파수가 잡혔을 때, 대상과 얼굴을 맞대고 손끝으로는 대상의 깊이를 감각하는 그의 섬세한 자력이다. 그러한즉 체온과 무게로 대변되는 오하은의 면모는 손끝에 봉숭아물을 들이듯, 어쩌면 다소 흐릿하고 유약하며 더디게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기나긴 시력을 두고 외부 세계의 기호들을 풀어내면서, 드리운 베일을 벗기듯 그의 진면목을 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 조은영
* 각주 1) 김주환, 『내면소통』 (인플루엔셜, 2023), 2)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도종환, 「봉숭아」
Vol.20240704e | Our Original Face展